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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말 못한 불편한 진실

새벽이슬1 2009. 8. 29. 00:01

시론] 그때 말 못한 불편한 진실

  • 김영봉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김영봉 중앙대 교수
김대중 대통령의 국장(國葬)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소통과 통합"이 큰 화두로 던져졌다. 분열과 갈등은 이 사회의 골수에 미친 중병이므로 반드시 고쳐야 한다. 그러나 모든 갈등의 문제는 원인과 현상을 직시(直視)함으로써만 해결의 통로를 찾을 수 있다. 국장 때 말하지 못한 불편한 진실에 지금이라도 정면으로 부닥쳐야 우리는 진정한 국민화합의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지난 국장 중 조성된 소통·통합이 정도(正道)인지 허상(虛像)인지를 돌아보자. 정부와 장의장에는 소통·화해가 넘쳐났다. DJ에게 여야 거물과 저명인사들이 줄 이어 극진한 찬사를 표하고, TV는 고인을 기리고 사모하는 장면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러나 이로써 사회통합을 향한 대승(大乘)의 장이 마련될지는 알 수 없다. DJ는 많은 국민에게 사랑과 성취를 안겨주었지만 그만큼 좌절과 낙망을 겪게 했다고 생각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소통과 화해의 기본조건이 좌우 쌍방의 이해와 양보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번처럼 원인은 덮고 한쪽만의 양보와 스트레스를 요구하는 화해는 정의로울 수도, 항구적일 수도 없지 않은가. 이명박 정부를 530만 표 차이로 탄생시킨 보수층 국민들은 그분의 마지막 정치적 행동이 "모두 들고 일어나 이명박 독재정권을 타도하라"는 선동이었다는 점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이들은 국장이 관례를 깬 변칙이었다면서, 여러 미화(美化)된 행사에 노골적으로 식상함을 표했다. 이것으로 보수층의 좌파 기피증은 더욱 증대됐을 수도 있다. 보수층 다수가 마음을 열지 않는 한 정치권에서만 야단 피우는 소통은 허무한 것 아닌가. 실상을 감추고 한쪽만 양보를 요구하는 사회통합은 정도의 정치일 수 없고 국민의 신뢰도 끌어낼 수 없을 것이다.

지난주 화려한 DJ의 장례 길에 대조되는 것이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경우다. 이승만은 그 허물 때문에 외지에서 생을 마감했고 국장을 허락 못 받아 가족장을 치렀다. 그러나 이승만 이후 남한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그들의 기막힌 행운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지난 반세기간 우리 국민은 6·25 전란으로 죽고 상하며 뭉치고, 뼈를 깎는 노동, 땀과 눈물을 흘려 일하고, 굶주림 속에 저축·투자해 오늘날의 경제와 자유의 토대를 마련했다. 해방 후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시장체제 국가를 만들고 지켰기 때문에 이런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때 한국이 지도자를 잘못 만났다면 지금 우리의 삶이 북한처럼 세습왕조 지배에 얽매였을지, 아프가니스탄처럼 내란에 휘둘려 내일의 생사를 모르게 됐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의 좌파집단은 이런 이승만을 DJ만큼 인정할 준비가 돼 있는가. 우리나라에 사회통합 대승(大乘)의 장이 마련되려면 좌파도 박정희의 경제건설 업적은 물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의 크고 작은 노력을 DJ와 같은 선반에 올려놓고 긍정적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DJ정권의 "제2 건국선언"은 본질적으로 DJ 이전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 이래 좌파가 꾸준히 뿌리박은 사상이 김대중 노무현을 뺀 대한민국 역사는 친일파와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왜곡의 역사라는 것이다. 곧, 좌파는 서민과 약자를 대변하는 민주양심 세력, 우파는 기득권 보호를 탐하는 독재탄압 세력이므로 부정한 기득권 세력이 양심 세력에게 법, 원칙, 이성을 초월해 굴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리해서 우리나라에는 법과 원칙을 무너뜨리고 대신 타협·대화 화해·소통을 내세우는 좌파 질서의 전통이 세워졌다. 그러나 사회통합 거부세력이 언제까지나 일방적 강자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오늘날 국민이 만든 법은 과거의 왕법(王法)처럼 가혹하거나 부당하지 않다. 민주법치 국가에서는 법과 제도와 원칙이 지켜지면 소통이 따로 필요 없다. 최근 우리 주변에도 법과 원칙의 고수가 궁극적으로 소통과 타협을 인도한다는 증거가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DJ 조문단 파견에 앞서 남북 간 통행 및 체류제한 조치를 8개월여 만에 스스로 풀고 우리 정부에 접근했다. DJ 햇볕정치 때 일삼던 일방적 소통행태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원칙 고수 때문에 길을 바꾼 것이라 할 수 있다. 무법의 쌍용차 파업사태가 합의타결로 인도된 것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주변 압박에 굴하지 않고 정부가 적법(適法)과 불간섭 원칙을 끝까지 고수한 결과다. 이 작은 성과들은 법과 원칙이 다시 풀어질 때 물론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이다.

향후 범민련 전교조 민노총 등 불법과 갈등을 생산하는 집단도 추상같은 법치를 고수함으로써만 준법조직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무릇 사회통합을 원하는 정치지도자들은 "법치 완성의 수준이 한 나라의 사회통합 수준을 결정한다"는 사실부터 알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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