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의 실용주의(Pragmatism)가 꽤 유용한 것 같다. ‘실용’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니 좌파세력의 무능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기세등등했던 과거사 파헤치기도 맥을 못 쓰게 되고 말았다. 한편 보수우파 이념 역시 무색화되고 있다. 김정일정권도 핵포기만 해준다면(혹은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공산독재를 계속하더라도 국민소득 3천달러로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전략적 동맹으로의 격상을 제의하면서 ‘공통의 가치 추구’를 강조하였다. 방미 직전 “나는 친미도 아니고 친중도 아니고 국익만 중요하다”고 말했었지만 이번에는 한미 ‘가치동맹’을 내세운 것이다.
실은 이명박정부의 실용도 그 지향하는 가치를 명백히 밝히지 않고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을 만나 ‘21세기 전략적 동맹’이라는 멋진 제안을 하려다 보니 ‘가치동맹’을 언급치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조지 W 부시의 반응은 “그거 말 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말은 되는데 실제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좀 더 들어보아야 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서로 이익만 되는 일이라면 경쟁자나 심지어 원수(enemy)까지도 같이 하려들 것이다. 그러나 이익이 나지 않고 손해가 나는 일이라도 같이 해주는 것이 친구(friend)이다. 동맹(ally)이라면 한층 다르다. 손해 정도가 아니라 희생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단순한 동맹도 아니고 ‘전략적’ 동맹을 하자고 하려면 실용이니 실익이니를 말할 것이 아니라 목숨이라도 걸 정도의 사명감을 느낄 가치를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가 미국과 더불어 그리고 일본과 더불어 공동으로 추구할 가치가 무엇인가? 아니, 우리 나라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이것을 분명히 하지 않고서는 동맹은 커녕 국가 정체성조차 애매모호해지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나는 한미동맹을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의 가치와 신뢰를 기반으로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21세기 전략동맹으로 발전시켜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하는 표현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다.
우리는 이 기회에 우리 나라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더 분명하게 정리해 볼 필요를 느낀다. 흔히들 그 가치를 ‘자유와 평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의 관계가 분명치 않으면 그러한 표현은 많은 오해와 충돌을 낳는다. 그보다는 우리의 지향가치를 ‘자유와 인간의 존귀성’에 둔다고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우선 자유는 인권, 민주주의, 시장경제, 개방사회, 국제협력 등의 개념들을 관통하고 통합시키는 키 워드가 될 수 있다. 정확히 말해서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은 바로 진리이다.
그렇다면 평등의 가치는 어떨까? 엄밀하게 말해서 인간은 누구도 전혀 같지가 않다. 머리카락 한 올도, 손가락의 지문조차도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사람에게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누구든지 다 존귀한 인격체라는 점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귀성이라는 점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지만 사람은 저마다 다르므로 다 똑같이 취급한다면 이는 획일주의와 전체주의의 악에 빠지는 첩경이 될 뿐이다.
결국 우리의 이념은 자유의 가치와 인간의 존귀성에 있다. 이 이념을 부인해서는 안 되며, 실용은 이 이념을 지향하는 수단으로서만 유용한 것이지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