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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의 진실
1948년 4월3일 제주도에서 일어난 무장봉기사건으로 많은 희생자가 생겨났다. 이 사건의 희생자에 대한 진실규명이란 명분으로 제주 봉제동 한라산 중턱 40만m2(12만평)에 제주 4·3평화공원이 조성되면서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총993억 원이 투입된다. 여기에는 1만 3천여 명의 희생자 이름을 마을별로 나누어 검은색 대리석벽면에 새겨놓는다.
“탄압이면 항쟁이다.”라는 남로당의 전단과 ‘경찰 탄압에 저항’ ‘가혹하게 이어진 학살’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 터였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이 보이고, 총살장면과 진압부대 사진도 있다. 거기에 남로당 인민위원회를 ‘대중의 지지를 받았던 조직’이라고 설명하고, 해방 후 남한에 들어온 미군을 ‘점령군’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난해 4월3일 제주도청 주관으로 제주4.3범도민 위령제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가 잘못한 범죄사실에 대하여 58년 만에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사과하고 그들의 유족들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명한다'고 했다. 그러면 제주 4.3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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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봉 씨의 저서 <빨치산의 진실>에 의하면 1948년 10월 여수 순천지구 국군
14연대 반란사건의 주동자인 김지회(육군 중위)는 북한의 평양학원 대남 반에서
훈련 받고 1946년 말에 남파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내무국 정보처(후에 정치보
위국) 소속 공작원이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이현상(남로당 중앙위원),남도부(본명
하준수. 남조선 유격대장) 등도 평양학원 대남반, 혹은 강동정치학원 출신이다.
이들은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남한에 침투하여 대구 폭동, 제주 4ㆍ3사건, 여수 순천 반란사건 등을 일으키는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인민해방’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양민학살, 관공서 습격 방화, 경찰과 군인 살해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태백산맥> <녹슬은 해방구><빨치산의 딸>
<화산도> 등은 빨치산들의 참혹한 범죄행각을 숨기고 인민해방 투쟁 운운하며 미화 찬양하고 있다.
이런 저작물에 고무된 친북 좌익 세력들은 제주도 4ㆍ3 폭동, 여수 순천의 14연대 반란, 지리산 빨치산 활동을 “조국의 운명이 미 제국주의 총부리에 겨냥된 현실을 직감하고 무기를 손에 들고 일어선 정의로운 인민해방 투쟁이자 김일성 항일 유격투쟁의 후속 항쟁”(조선대학 교지 민주조선 창간호 1989년 3월)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1957년 4월 3일자 제주신보 보도에 따르면, "제주도 인민해방군이라고 불린 무장유격대의 병력은 1만 9,900명에 이르고 있다. 그 중 군경 토벌대에 의한 피사살자는 7,893명, 귀순자는 2,000명, 피체포자는 7,000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조직과 병력을 살펴볼 때 무장유격대는 다름 아닌 '공산 무장 혁명군'이라 볼 수밖에 없다. 여기엔 방대한 조직과 인원을 가지고 있던 제주도 남로당 조직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기록하고 있다.
과연 군,경이 이들을 진압하지 못했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의 존재는 과연 어떻
게 되었을까? 이것이 노무현정권이 자랑하는 치적이라면 지난 10년을 좌파정권
이란 말에 토를 달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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