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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는 조선에 대해 신탁통치를 하기로 의결했었다. 당시 국민소득은 연간 45달러, 문맹률은 78%나 되었으니 독립국가를 건설할 자격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자극하여 대동단결하여 반탁(反託)운동을 벌이게 되었다. 또 그 결과 소련 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찬탁(贊託)의 입장으로 돌아선 좌익세력에 대한 지지가 격감하고 이후 남한만이라도 자유선거를 실시함으로써 대한민국이 건국되게 되었다.
이번 베이징 6자회담에서 북한이 핵실험불능화(disabling)조치와 IAEA사찰단 복귀를 수용할 경우 상당의 경제 에너지 지원을 하기로 합의되었고, 앞으로 美北관계정상화, 北日관계정상화, 동북아평화안보메커니즘 등에 관한 실무단일이 가동될 것이라고 한다.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은 ‘악행에 대한 보상'의 성격을 면할 수 없다. 북한은 이번 합의로 새로이 2억불 이상의 경제지원을 받게 되었고, 이미 확보된 한국으로부터의 2007년도 지원금 11억불(1조500억원)을 합하면 핵실험 후 연간 13억불 이상의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된 것이다.
게다가, 1994년의 제네바 美北합의 당시는 영변 원자로가 ‘발전용'이라고 인정해주어 원자로 가동중단에 따른 대체 에너지 지원을 합의했던 것과 달리, 이번 합의는 영변 원자로가 발전용이 아니라 핵무기용임이 판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 에너지를 지원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허구(虛構)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북한이 과거 1994년 합의에도 불구하고 중유와 원자력발전소 설비만 받아먹고 영변 원자로를 계속 가동했던 것처럼 이번 합의 후에도 숨겨놓은 또 다른 원자로를 가동하는 등의 방법으로 속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앞으로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협상에 들어간다는 것이고, 그 수교협상 의제에 美北평화협정까지 포함된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그 조건으로 북핵폐기를 요구하고 일본은 납북자문제의 해결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 외에 북한의 ‘유일(唯一)사상 체계'와 ‘선군(先軍)정치'로 인한 전체주의 절대독재 체제나 대한민국 공산화 전략의 폐기는 한국의 노무현 정부조차 이를 주장하지 않고 있으므로 아무런 쟁점이 되지 않을 전망이다.
그렇다면 한국 국민들은 저 북한의 김정일 폭정을 그냥 둔 채 북한이 대한민국이 아닌 외국이 되고, 북한 땅이 남의 나라가 되며, 북한 동포가 외국인이 되어버리는 것을 묵인하고 말 것인가? 그런 주제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 부르고 ‘만주는 우리 땅'이라고 큰 소리 치는가? 그러고도 ‘선진화'니 ‘일류국가'의 미래를 그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비굴하고 허황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허구와 위선 속에서 우리 나라의 운명, 우리 민족의 장래가 요동쳐지는 6자회담을 바라보면서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과 자괴감(自愧感)을 느낀다. 참으로 자존심이 상한다. 근본원인은 국민대표성을 상실한 노무현 정부가 대한민국을 대표하기 때문이겠지만, 한국의 지도층 가운데 국권(國權)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희생을 하는 사람이 너무나 적기 때문이 아닐까 반성해본다. 아무래도 제2의 반탁운동을 벌여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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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갑자기 ‘중도'와 ‘실리'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그동안 통일, 평화, 자주, 혁명, 청산과 같은 추상적인 말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면서 흥분에 들떠 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성숙되고 안정된 기분이다. 이렇게 된 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실험에 따른 국민들의 놀라움, 그리고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수호를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인 소수 보수우파 인사들의 노력이 작용한 것 같다.
중도와 실리를 내세우는 중도파가 존재하려면 당연히 좌파와 우파가 먼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자신을 우파로 부르는 사람들은 있는데, 자신을 공공연히 좌파로 내세우는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은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자신을 진보파로 부르는 사람들은 많은 것 같다. 그러니까 좌파는 없지만, 진보파는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진보파라는 단어 하나만을 가지고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정확히 표현해 내지 못한다. 그것은 미국의 경우를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왜 이 시점에서 미국의 경우를 들먹이느냐고 시비를 걸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우리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의미의 용어들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세계화가 되어 있다. 그러한 사실마저 부정한다면, 그것은 한국 사회의 국제적 위치를 전혀 모르는 구시대적인 ‘현대판 위정척사파'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 보수파라 함은 개인주의, 자유방임주의, 청교도주의의 이념에 토대를 둔 전통적인 체제를 적들로부터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이다. 우파도 이 점에서 보수파와 생각이 같지만, 미국적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보다 더 투쟁적인 방법이 필요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 변혁세력들에 의해 바뀐 부분들을 예전의 것으로 복원시키려고 하는 적극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다. 두 세력은 대체로 협조관계에 있기 때문에 ‘보수우파 연합'으로 불리게 된다. 그것은 대통령 선거 때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게 됨으로써 프랑스의 ‘우파 대연합'을 연상시키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진보파는 대체로 자유주의자(liberal)를 말한다. 자유주의자는 자신을 가리켜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인정하지만 그것을 보다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돕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 사회주의적인 정부 개입의 방법을 포함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이념에 사로잡힘이 없이 관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혁신파(progressive)란 말로도 드물게 사용된다. 이와는 달리 좌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체제, 예를 들면 사회주의 등과 같은 대안체제를 찾는 사람들이다. 진보파와 좌파는 대체로 협조관계에 있기 때문에 ‘진보좌파'로 불리게 된다. 그것은 대통령 선거 때는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게 됨으로써 프랑스의 ‘좌파 대연합'을 연상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보수우파'는 성격이 분명하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정통 체제인 반공적인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놀라운 발전을 가져 왔다고 보고 그것을 지키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진보좌파'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뚜렷이 표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좌파란 말은 공산주의 체제를 가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동일시된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진보파라는 말도 사용이 불편하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내부적 문제들에 대해서만 사용될 때는 괜찮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에서 사용될 때는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통치권이 아들에게 세습되고 공산주의 이념의 국가가 국민생활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는 봉건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체제와 동일시되는 입장을 진보적인 것이라고 부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구좌파'란 말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중도'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보수우파'와 ‘진보좌파'가 대립하고 있는 현재의 이념적 구도 속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합치부분에 대해서는 협조하고 대립부분에 대해서는 타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리' 또는 ‘실사구시'를 내세우는 사람들도 이념적 대립 구도 속에서 자기 위치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사람치고 실리를 추구하지 않는 경우가 없는데, 누가 어떻게 잘못했길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것을 내세우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자신의 이념적 정체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애매한 말로 대중의 생각을 혼란케 하는 지도급 인사들은 해방 직후에 자기의 진짜 모습을 감추던 위장혁명가들이나, 아니면 동서남북도 모르면서도 대중을 그릇 인도하려던 좌우합작론자들로 비쳐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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