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한반도 안보 위상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 해 11월 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韓美)정상회담에서 "한국전 종료를 선언하는 문서에 서명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한 이후 미처 예기치 않았던 후(後)폭풍이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경우 현재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꿀 수 있다고 한 부시의 발언으로 '한반도의 평화체제' 논의가 새롭게 시작된 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풍랑은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와 맞물려 이제 공론(空論)이 아닌,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25∼28일 한국을 비밀리에 방문했던 미 국무부 고위관리가 있었다. 캐슬린 스티븐스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수석부차관보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현재 유엔군사령관이 갖고 있는 정전(停戰)협정 유지 관리의 권한을 한국 정부에 넘기는 방안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이처럼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美대사 역시 최근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지면 휴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에 서명하게 될 것이며, 남북관계의 분수령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었다. 이 말의 진의를 검증할 틈도 없이 이 달 8일부터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6자회담에서 중국이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해 협의하는 '실무그룹' 설치를 새로 제안할 것이라는 일본 아사히(朝日) 신문의 보도(2월5일)가 있었다.
아사히신문 보도대로라면 휴전협정에 조인한 북(北)·미(美)·중(中) 3국에 한국이 추가되어 4개국이 실무그룹에 참가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 야당의 한 중진의원도 이 달(2월) 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가 8·15남북정상회담을 통해 2+2 방식의 평화체제를 출범시킨다는 구체적인 목표 아래 북한과 실무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성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항간에 오는 '8월15일 회담개최' 시나리오까지 공공연히 나도는 남북정상회담 설(說)은 바로 이것이다.
중국의 중재와 미국의 용인 아래 남북한(南北韓)과 미중(美中)이 모두 참여하는 '2+2방식에 의해 반세기 넘게 지속되어온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면 이제까지 한반도의 정전체제 관리주체인 UN군사령부는 그야말로 해체(解體) 수순을 밟아야 한다.
UN군사령부의 주축기지인 주한미군사령부 역시 지난 1월 하순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후로는 한국군에 대한 전작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북한 도발로 인한 한반도 위기고조 상황에 대한 대처는 물론, UN사의 정전협정 유지 및 관리 기능을 한국군에 넘기겠다는 뜻이다.
전작권 이양에 따라 한미연합사 해체에 이어 UN사마저 해체될 경우, 주한미군의 존립 근거는 상실되고 만다. 약화(弱化)가 아니다. 북한정권이 남한 내 친북 동조세력과 함께 주한미군철수와 '연방제 적화(赤化)통일'을 거세게 몰아칠 것임은 강 건너 불을 보듯 뻔하다.
북한은 그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킨 후 연방제로 통일(赤化)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북한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여 조선통일의 가장 큰 장애물인 남조선 강점(强占) 미군을 철수시키자"고 했고, 북의 대남 선전기구인 '반제민전'(反帝民戰) 역시 "평화체제를 공고히하여 미군을 철거하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진입해야 한다"고 강변해왔다.
남한에서 평화체제 구축에 앞장서고있는 '평통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등 좌파단체들이 그간 '연방제 통일'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국가보안법 철폐'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등을 외쳐왔음은 북한정권의 정치공세에 손발을 맞춘 철저한 동조(同調)였다.
미국은 북한의 '평화체제 주장'이 '한반도 적화(赤化)의 전(前)단계로 제시하는 북한측의 계략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이를 수용하고 나선 것은 (1)이라크-이란문제 집중처리로 인한 북한문제의 '시간 벌기' (2)향후 대북(對北) 군사제재 가능성에 대비한 '명분 쌓기' (3)북핵(北核) 폐기와 '김정일의 폭정(暴政) 용인'의 맞바꾸기 식 타협론(妥協論)이 우세를 보이자 현실적인 선택 중시로 기운 것으로 보여진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종국적으로 '한국전 종료선언 및 체제보장 약속'을 받아내고 핵(核)포기 요구에 대해서는 '선언적 약속'만으로 버티면서 '주한미군 철수' 'UN사 해체' '핵우산 철폐' 등을 관철시키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이에 더해 평화협정 체결 후 김정일이 최후의 승부수를 겨냥하고서 월맹(越盟)식 모험을 시도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과거 베트남 사태가 그러했다. 최종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불법적 수단까지도 정당화하는 집단이 공산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평화협정 술책은 한반도 적화(赤化)를 겨냥한 전(前)단계 전략일 뿐, 평화와 안보 또는 남한 불가침(不可侵)에 대한 실질적인 보장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대남(對南)전략은 이렇듯 명분과 실질이 크게 다르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여 이른바 '평화체제'를 표방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북한정권과 남한 내 친북세력이 주한미군철수와 연방제 적화(赤化)통일의 사전 단계로 반세기 여에 걸쳐 일관되게 주장해온 전략이다.
1973년 베트남은 미국·월남·월맹·베트콩 등 4자(者)에 소련·영국·프랑스·중공 등 4강(强) 그리고 휴전감시위원단 차출국인 캐나다·이란·폴란드·헝가리- 이 4국까지 참여시킨 '4+4+4 방식의 평화협정'을 체결하고도 미군 철수 직후 월맹의 침공으로 공산화됐었다.
대한민국의 안보위상이 주한미군이 물러나고 한반도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주체가 UN사에서 한국 정부로 전환된 상태에서 남북간에 자칫 위기상황으로 확산될 수도 있는 크고 작은 군사충돌사태가 일어날 경우 한반도 안보상황은 그야말로 예기치 못한 파국(破局)으로 치닫게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 4천8백만 국민은 바로 이 점을 직시해야 한다. (출처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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