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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사유화에 취한 문재인정치의 독주~국가원로회 연두칼럼 본문
국가원로회 서신 특호 -- 年頭 칼럼 --
국가원로회 서신 특호
-- 年頭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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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사유화에 취한 ‘문재인정치’의 독주
권력 하산길은 비좁은 비포장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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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수(卒壽)라는 90나이에 새해 맞이 떡국 한 그릇 비웠으니 영락없는 상노인 아닌가.
노병(老兵)에게도 나라 사랑의 권리는 있는 법. 세월이 하수상하여 우국충정을 읊어 봤다. 노한노필(老漢老筆)이라 문장의 맥이 풀려 앞뒤 고르지 못한 점 한두 군데가 아니다. 수다(數多)가 넘친 허물은 연로의 탓으로 받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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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임사 역주행하는 분열증후군
문재인 대통령의 언어는 A4용지에서 나온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숱한 국정재단(國政制斷) 그 어지러운 변곡점의 출구다. 대통령의 수사(修辭)는 에누리없이 역사의 문턱을 넘는다. 고스란히 사적(史籍)에 수납(收納)되기 때문이다.
문대통령은 이런저런 회의는 물론 측근 참모들과의 소소한 모임에서도 준비된 용지를 꺼내어 당부의 언어를 또박또박 읽는다. 외국 정상회담에서도 낯설지 않은 자기 스타일을 견지한다. 이런 풍경은 국제 외교가에서 심심풀이 쏠쏠한 가십(gossip)거리로 등장했다.
토씨 한 점도 놓칠세라 완벽추구의 깔끔한(?) 성정 탓일까. 혹여 타고난 말솜씨가 둔한 탓일까. 큰 허물이 아닐진대 굳이 매섭게 따질 것은 아니지만 한두 번 고개를 갸우뚱 생각을 멈칫거리게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대통령발언의 효과는 만인지상 벼슬의 무게만큼이나 일파만파로 이어지는 법이 아니던가.
문대통령은 세월호 어린희생자의 영전을 찾아 방명록에 뜬금없이 ‘고맙다’는 글을 남겨 호된 구설수에 시달린 적이 있다. 특유의 유체이탈화법으로 언론의 비판에 노출되기도 했던 대통령의 언어구사는 종종 현실인식의 빈곤으로 내몰리곤 했다.
대통령 ‘말씀’의 곡절을 모처럼 연두(年頭)칼럼의 머리말로 삼는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역대 12명의 대통령 중 19대 대통령 문재인의 취임사가 가장 인상적인 ‘일품’(逸品)이라는 빛바랜 예찬론이 유튜브(youtube) 모퉁이에서 설왕설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뻔한 속셈을 벌써 낚아챘을법하다. 갈팡질팡 국정혼란으로 문재인 지지율이 급락하자. 의기소침한 청와대 분위기를 일으켜 세우려는 ‘문빠’들이 어설픈 꼼수를 부리고 있음이 아니겠는가?
권력의 정점에 등극한 최고통치자의 초심(初心)을 담는 취임사야말로 더할 나위없는 언어의 성찬으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2017년 5·10. 문재인 취임사의 키워드는 ‘국민통합’이었다. 화사한 수식어로 포장된 취임사의 문맥은 매끄럽고 윤이 나는 흐름을 타고 번지럽게 다듬어졌다. 알찬 여럿 공약도 나무랄 구석이라곤 없었다.
그러나 ’문재인정치‘ 5년차 길목에 접어든 오늘. 취임사에 함축된 문재인의 야심찬 ’선택‘과 ’집중‘의 흔적은 오간데 없다. 통합은커녕 민심은 산산조각 온누리가 분열증후군으로 넘실댄다. 사악한 권력의 노림수에 놀아난 편가름 패거리 싸움에 공동체가 마구 부서지고 있다.
딱히 죠지오웰의 ‘동물농장’을 닮은 꼴이 아닌가.
한가지 공약만은 다부지게 챙기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만들기’다.
■ 불행의 씨앗 뿌린 ‘4·15현상’
문대통령은 역대대통령 가운데 언행불일치의 선두주자로 기록되어 마땅할 처지에 있다.
말끝마다 ‘촛불’을 들먹이는 현정권은 촛불을 혁명의 동위개념(同位槪念)으로 삼고 힘의 논리로 국가경영을 밀어붙이고 있다.
좌파정권의 속성인 대중영합정책에 집착. 나라의 곳간을 거덜내고 빚더미에 올려놓은 오늘이다.
4·15총선 이후 기세등등한 문정권의 폭주는 점입가경이다. 말로만 귀에 익은 ‘무소불위’ 권력이 작동하는 현장을 목격하는 것이 지겹다.
민주주의의 버팀목인 이 땅의 3권분립은 겉보기 허우대만 멀쩡할 뿐. 속골병을 앓고 있다.
집권당의 서릿발 폭주에 오금이 저린 제1야당은 어수선한 당내 사정으로 건곤일척의 ‘결기’(決氣)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문대통령이 입에 달고 다니는 협치(協治)는 구두선에 불과하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속속들이 청와대의 입김이 진하게 배어 있다.
알량한 이념의 밧줄로 동여맨 코드인사로 초록동색의 틀속에 갇혀 있다.
586정권이 잘도 우려먹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속의 또 다른 위선의 민낯인 것이다.
‘거여야소’(巨與野少)를 빚은 ‘4·15현상’은 문정권에게 불행의 씨앗으로 돌아왔다. ‘과체중정권’의 오만은 자기성찰을 거부하는 객기(客氣)로 이어져 안하무인 독재의 완성으로 치닫는 빌미가 됐다. 헌법정신에 어깃장을 놓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설치는 헌법기관인 검찰을 좌지우지 무력화 할 수 있는 옥상옥(屋上屋) 초유의 막강 권력이다. 현대판 조선왕조의 포도청으로 비유된다.
가뜩이나 차고 넘치는 현재 대통령권력의 무한대를 담보할 공수처 출범을 앞두고 문대통령은 ‘새민주주의를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알쏭달쏭한 또 하나의 유체이탈화법을 피력했다.
5·18왜곡처벌법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체를 해석 규명하는 다양한 논리전개의 자유를 통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언론자유를 원천 봉쇄하는 ‘반문명적’(反文明的)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대북전단살포금지법도 그렇다. UN을 비롯한 국제인권단체들이 한 목소리로 한국사회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주민을 인권사각지대에서 해방시키는데 있어 외부세계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자칫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하기 십상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반대 여론을 경청하는 유연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경직된 권력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우격다짐으로 통과시킨 경제관련3법은 개인과 기업의 창의성을 옥죄는 ‘반기업 친노조’의 색상이 물씬하다. 예사롭지않는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최근 ‘절차적 공정성’을 유난히 강조하고 나선 문대통령이 행여 야당과의 성숙된 협의절차를 밟지 않는 문제법률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단언컨대 한국정치사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역사적인 쾌거로 기록될 것이다.
송구영신에 붙여 답답다 못해 실없는 소망을 담은 덕담(德談) 하나를 띄워본다.
■ 물구나무 선 대통령 지지율의 행방
임기 3분의 2를 이제 막 채운 문대통령에게 2020년 세모는 생각하기조차 불쾌한 치욕을 안겨준 ‘끔찍한 시간’으로 거억될지 모른다.
대통령 권력의 가장 단단한 ‘알맹이’는 고유의 인사권이다. 감히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인사권이 한 법원 판사에 의해 졸지에 퇴짜 맞는 수모를 당했으니 말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칼끝을 겨눈 윤석열검찰총장의 직무상 올곧은 ‘용맹’이 괘씸죄의 덫에 걸린 것이다.
문대통령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으로 일컬어진 울산시장선거 불법개입, 월성1호기 원전 경제성 조작 등 일련의 의혹사건 중심에 문대통이 자리하고 있다는 ‘설의 난무’(亂舞)는 이미 공지의 사실이 아니던가.
윤총장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으로 호가난 사람이다.
윤석열 찍어내기에 앞장선 맹렬 여성 추미애법무장관의 일거수 일투족은 뉴스를 몽땅 사로잡는 괴력(怪力)을 발휘했다. 1년 내내 종횡무진한 그녀의 언(言)과 동(動)은 곱살스런 느낌과는 사뭇 달리 거칠고도 직선적이었다
범여권의 총체적인 공세가 윤총장으로 쏠리는 과정에는 꼼수와 겁박이 촘촘히 교직(交織)되어 ‘식물총장’ 만들기에 큰 몫을 했다.
추미애의 검찰 길들이기는 끝내 역풍을 만난다. 전국 검사들의 심상찮은 집단행동이 검란(檢乱) 조짐으로 번졌다. 정권과 검찰의 정면대결. 더 깊이 파고들면 딱히 대통령과 검찰총장 충돌이라는 초유의 볼품사나운 모습에 민심이 크게 출렁거렸다. 민심의 물살은 빨랐다. 대통령 지지율이 물구나무섰다. 이와중에 대통령은 나타나지 않았다. 언론은 일제히 대통령이 나서라고 촉구했다. “대통령이 추미애 뒤에 숨었다”는 냉소적인 논평이 쏟아졌지만 대통령은 안보였다. 대통령의 사리판단을 얕잡는 소리가 무성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씨조선’(李氏朝鮮)을 끌어들이느냐는 핀잔이 있을 법하나 권력세계의 음(陰)과 양(陽)은 금석(今夕)을 넘나드는 불변의 생태(生態)이기에 몇 줄 옮겨본다.
“諫(간)은 難事(난사)요 奸(간)은 樂事(낙사)”란 옛말이 있다. 임금에게 목숨걸고 직언하는 충신이 있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솔깃한 말만 올리는 간신배가 있으니 諫하는 자가 많은 시대는 나라가 융성했고 奸하는 자 많았을 때는 조정이 쇠락했다는 것이다.
과연 문대통령 주변의 풍속도는 어떨까?
구중심처 깊은 속사정을 알 길은 쉽지 않다.
훗날 ‘문재인시대’의 시말서(始末書)는 나올 수밖에. 충신과 간신을 꿰뚫는 안목도 대통령의 덕목이기에 ‘덕불고(德不孤=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란 가르침이 생긴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문대통령이 재가한 법무부징계위원회의 윤석열 ‘2개월정직’ 징계가 서울행정법원에서 뒤집혀진 이후, 집권당 안팎에서 사법쿠테타라는 격양된 목소리와 함께 윤석열탄핵론이 기승을 부렸다. 이치에 닿지않는 주장에 언론은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성난 민심은 윤석열을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1순위로 밀어올리는 ‘돌출’(突出)을 연출했다. 돌출이 자리잡으면 대세로 진화하는 법. 각본없는 돌출이야말로 손때 묻지 않은 해맑게 표백(漂白)된 민심의 현주소가 아니겠는가.
‘탄력받은 윤석열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 초라한 ‘문재인’ 1331일의 성적표
아무튼 새해 아침이다. ‘문재인정치’ (2017.5.10. ~ 2020.12.31.) 1331일의 성적표는 초췌하다.
지구촌을 덮친 코로나 천재(天災) K방역의 허실논란은 잠시 접기로 하고.
문대통령의 골든타임은 인재(人災)에 의해 허망하게 소진됐다. 나라를 소용돌이의 한복판으로 몰아넣은 조국(曺國)사태와 윤석열 퇴출프로젝트 소동으로 금쪽같은 시간을 허공에 날려 보내지 않았는가.
일련의 유고(有故) 책임은 오롯이 오판으로 일관한 대통령의 몫이다.
신년백두 문대통령은 집무실 침실 머리맡 그 어디에 반드시 있기 마련인 비장의 비망록(備忘錄) 속에서 미처 온전히 살피지 못한 중요 현안을 맑은 영혼으로 뜨겁게 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도탄에 빠진 ‘민생’을 건져 올려야 한다.
국면전환용 수박겉핥기 소폭 인사개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릇된 정책의 틀을 송두리째 바꾸는 막바지 승부수를 던져야 할 시간이다. 정권의 심장을 향한 저잣거리마다 가득한 군상들의 삿대질 가운데 우리의 폐부를 찌른 목소리가 있다. “나라가 니꺼냐”는 절규다. 짧은 외마디 어섯글자에 농축된 소름돋는 분노의 폭발이다.
차라리 벼랑끝으로 내몰린 야수(野獸)의 앙칼진 포효를 닮았다. 오늘 ‘독재’라는 단어는 막힘없이 유통되는 문정권의 상징적인 대명사다.
문대통령의 임기마감도 멀지 않다.
권력의 사유화에 취한 ‘세도정치’(勢道政治)의 한바탕 춤사위도 시들해지는 모양새다. 주류 언론들이 권력누수현상을 다루기 시작했다.
아니 벌써 네임덕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리는 흔적들이 없지 않다.
달도 차면 기우는 이치인 것을 무슨 수로 가로막겠는가.
■ 대통령님 목놓아 실컷 울어보시구려
권력의 하산(下山) 길은 비좁은 비포장도로와 흡사하다. 돌맹이도 많고 흙먼지바람도 일 것이다. 업보(業報)의 돌개바람이 몰아닥칠지도 모른다. 문대통령은 퇴임 후의 새 둥지를 경남 양산으로 잡았다.
문대통령의 귀향길과 퇴임 후의 삶이 온전할 것인지를 놓고 길흉(吉凶) 양론이 슬그머니 기지개를 켜는 눈치다.
이 나라 대통령사(史)에는 참담한 얼룩이 깊게 각인돼 있다.
집권가도에 흩뿌려진 공과를 가리는 민초의 매서운 눈썰미는 초롱초롱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결코 외롭지 않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문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중의 한 사람일 수 있을 것이다. 문대통령은 하늘처럼 떠받드는 속칭 ‘대깨문’ ‘문빠’들의 열정적인 지지의 함성에 갇혀 가끔 자신을 분실(紛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은 마음의 창문이라 했다. ‘인간문재인’의 눈매는 서글서글하고 착해 보였다. ‘대통령문재인’의 눈빛은 달랐다. 오만의 티가 눈가에 묻어있다. 입술의 매무새는 수용(受容)보다는 배타(排他)의 심술이 일렁거리고 있음을 놓칠 수 없다.
문대통령은 공수처가 당신의 안위를 챙겨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심리를 떨쳐버려야 한다. 민심의 위력은 공수처를 능히 압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대통령은 2018년 10월 성바오로 교황으로부터 ‘티모테모’라는 세례명을 수여받은 독실한 천주교신도다. 운명의 행방은 천주의 뜻에 맡기되 임기종반을 ‘고해성사’의 심경으로 정진할 것을 바랄 뿐이다.
의혹투성이 ‘울산시장’과 ‘월성원전’에 얽힌 대통령의 입장을 진솔하게 밝혀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극적인 감동의 한마당을 펼친다면 진정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통령의 용기에 박수가 터질지 모를 일이다.
석양 노을빛이 서산으로 기운다. 흐느낌을 닮은 산사의 혼종(昏鐘) 소리 길게 번질 때면 성당의 종소리도 은은히 울린다. 제아무리 지독한 무법자, 무신론자도 원초적인 감상에 젖는다. 사람의 눈물보다 보배로운 순결무구(純潔無垢)한 것은 없다.
대통령님! 성당고해소(告解所) 깊은 곳. 무릎꿇어 새벽기도와 함께 ‘5·10’취임사(초심)를 껴안고 목놓아 실컷 울어버리시구려. 길이 보일 것이외다. 가슴이 후련해질 것이외다.
2021월 1월 18일
국가원로회 鄭 在 虎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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