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트는 광장 (7)
불꺼진 국회
예산안 강행처리라는 폭풍이 휩쓸고 간 국회의 모습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나는 회관 나의 방에서 자괴감에 빠진 채 모니터로 폭력이 난무하는 그 볼썽사나운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우리 의회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 이런 것일까, 아니면 낡고 병들어서 이런 것일까. 내가 국회의원으로 일한 20여 년 동안 거의 해마다 반복되는 이 지겨운 모습을 언제쯤 보지 않을 수 있을는지 참담한 마음이 든다. 하물며 국민의 마음은 어떨 것인지 두려울 뿐이다.
국회는 적막하다. 민심이 모여 용광로처럼 끓고 있어야 할 국회에 불이 꺼진 것이다. 민심은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거리를 맴돌고 있다. 야당은 그 민심을 잡겠다며 광장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농성을 하는 모양이다. 불교계는 현 정부와 여당을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수준을 넘어 아주 부정해버리고 있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가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을까. 여당도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는지 여기저기서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먼저 길거리로 나간 야당에 물어보자.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안건에는 예산뿐만 아니라 수 수 백건의 민생법안이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여야간에 별 이견이 없는 법안들이다. 여당과 합의하여 이 민생법안들을 먼저 처리한 뒤 싸움을 했어도 해야 하지 않았는가. 민생법안들을 볼모로 잡고 예산이라는 정치투쟁을 하였다는 비난을 어떻게 면할 수 있겠는가. 결국 국민에게 타격을 주고 그 부담을 정부 여당에 전가하여 이득을 보겠다는 과거의 얄팍한 수법을 언제쯤 버릴 것인지 묻고 싶다.
예산안과 쟁점법안들도 그렇다. 반대하려면 집요하고 치열하게 투쟁하면 된다. 국회에서 밤을 새워가며 토론하고 대안을 제시하면 될 것이 아닌가. 야당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국민에게 전달하는 언론이 있는데,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상임위부터 원천봉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야당의 합리적인 주장을 수용하지 않고 그래도 수적 우세를 가지고 예산이나 법안을 밀어붙인다면, 국민의 여론이 악화되고 결국 여당은 선거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의회민주주의의 순리이다.
그러므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간 책임의 절반 이상을 야당 지도부가 져야 한다. 여당이 아무리 국민의 질책을 받아도, 야당의 그런 빈약하고 타락한 리더십으로 국민에게 무슨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야당 또한 여당과 함께 국민 앞에 사죄하고 당장 국회로 돌아와야 한다. 돌아와 민의의 전당에 불을 밝혀야 한다.
다음으로 우왕좌왕하는 여당에 물어보자.
예산을 통과시켜야 할 절박한 처지에 있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야당이 타협에 의해 모양 좋게 통과시켜주지 않고, 흉한 모습으로 강행처리하도록 하여 정부 여당에 타격을 주려는 야당의 전략을 여당이 꿰뚫고 있었으리라는 것도 짐작이 간다. 하지만 여당은 끝까지 의회주의를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최후까지 야당을 설득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무한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노력이 있었는가. 동료의원인 나도 왜 여당이 갑자기 군사작전을 하듯 그렇게 서두르는지 알 수 없었다. 국민은 무슨 속사정이 있어 그렇게 밀어붙이는지 더욱 몰랐을 것이다.
거기에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정부가 설계하지 않은 사업의 예산까지 끼워 넣었다는 점이다. 단순한 증액이 아니라 신규사업 예산을 추가하는 일은 보통 신중해서 될 일이 아니다. 예산은 국민의 피와 같이 소중한 돈이 아닌가. 국회에서 몇 몇 의원이 즉흥적으로 주장한다고 하여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강행처리라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이런 편법이 판을 쳤다니, 국민들은 허탈하고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무원칙한 여당의 리더십으로 어떻게 난국을 헤쳐 나갈 것인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
낡고 병든 의회주의를 다시 살려내는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길거리로 나간 야당도, 우왕좌왕하는 여당도, 국민의 힘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자신에겐 아무 잘못도 없는 듯이 길거리로 나가 큰소리치는 야당부터 스스로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보기 바란다.
여당 또한 치열한 자기 성찰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2010.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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