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2008년 3월호)
- 이명박 정부 탄생과 한국의 보수 운동 -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좌파 정권은 준엄한 심판을 받았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 언론은 ‘진보의 시대’가 가고 ‘보수의 시대’가 성큼 다가 왔다고 썼다. 기세등등했던 노무현과 그를 추종하는 ‘386 좌파 정권’이 무너지고 ‘보수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보수의 시대’가 성큼 다가 왔다고 말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진보’를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정당하게 ‘보수 정권’으로 불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진보의 시대’가 흘러갔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더욱 알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은 자체적으로 정권을 창출했다고 하기보다는 노무현 정권의 실패에 힘입어 탄생했다는 해석이다. 비록 국민의 다수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우리 국민이 ‘보수화’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의 실패로 탄생했다면 ‘보수’의 승리는 한번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이명박 정권은 진정한 ‘보수 정권’의 탄생을 저해하는 역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과연 ‘보수 정권’인가 ?
이명박 정권은 ‘보수 정권’인가 ? ‘진보 정권’이 아닌 것이 ‘보수 정권’이라면 이명박 정권은 ‘보수 정권’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을 ‘보수 정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가치’나 ‘이념’보다는 ‘실용’을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핵심 실세라는 이재오 의원 등의 생각과 걸어온 과정은 ‘보수’와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수호하고 북한의 공산압제정권을 종식시키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북한의 세습 독재정권과 적당히 타협해서 분단 현상을 고착화시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중요한 척도인 대북(對北)정책에 대해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애매한 말로 일관했다. 이 대통령은 3월 11일에 “남은 북에 대해, 북은 남에 대해 주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서로 존중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언급은 헌법 제3조 영토 조항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니 놀라울 따름이다. 헌법 제3조야말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키고자 하는 ‘보수’와 북한 정권과 적당히 타협해서 위장 평화를 지키려는 ‘진보’를 가르는 척도이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일 때는 북에 대하여 새 정부에 대해 긴장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사실상 햇볕정책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니, 좌파들이 은연중에 퍼뜨린 ‘도덕적 등가성’(moral equivalency) 논리를 그대로 받아 드린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최소한 경제정책만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보수’ 성향이라고 말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재계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을 환영하고 나섰다. 금산(金産) 분리 완화, 공정거래법 완화 등 재계의 숙원을 풀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조치는 주로 대기업 집단에 이로운 정책이라는 점이다. 대운하 사업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임기 중 최대 국책사업으로 내세우는 것도 주의해서 볼 부분이다. 역사의 유물인 내륙운하를 새삼스럽게 건설하겠다는 것부터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 부분은 일단 접어 두기로 한다. 대규모 토목공사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경제정책은 케인즈류(類)의 좌파 정책인 것이다. 대운하 사업을 ‘뉴딜’이라고 내세우는 것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노무현 정권은 수도 이전이 ‘뉴딜’이라고 했으니, 기가 막힌 닮은꼴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환율 개입을 강조하는 강만수 재경부장관의 경우도 생각해 볼 문제다. 바로 그런 반(反)시장적 사고(思考) 때문에 김영삼 정부는 파탄에 이르고 말았는데 말이다. 강만수 장관보다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재경부장관이 보다 시장친화적이었다는 생각이 드니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북한 공산정권에 대해 유화주의(appeasement)를 지속하기로 결정한, ‘개념 없는 정권’일 뿐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공화당이나 영국의 보수당 같은 ‘보수 정권’이 아니다. 천박한 중상주의를 추종하는 ‘개념 없는 정부’라는 말이다.
‘도덕’을 말할 수 없는 이명박 정부
이명박 정부를 ‘보수 정권’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도덕성에서 낙제점을 받은 채 출발한 정권이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원래 도덕적 가치를 강조한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자신을 보수주의자로 규정한다. 반면 리차드 도킨스 같은 무신론자(無神論者)는 자신을 당연히 진보주의자로 부른다. 진보주의자들은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때그때 시류(時流)에 부응하는 ‘시대정신(Zeitgeist)’이 중요하다고 본다. 가정, 교회, 공동체, 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보수’의 영역이다. 낙태와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는 생명존중 운동도 ‘보수’의 영역이다. ‘도덕’과 ‘윤리’는 원래 ‘보수’의 영역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는 중요한 아젠다를 ‘진보’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한국에서 ‘보수’가 대중의 마음을 잡지 못하는 것은 이와도 관련되어 있다. 이명박 정부가 ‘보수 정권’이라면 ‘보수’는 이명박 정부 때문에 또다시 더러운 덧칠을 하는 셈이다. 이명박 정권은 모처럼 탄생한 ‘비(非)진보 정권’의 한계를 잘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무리해서 밀어붙인 정부조직 개편, 인수위원회의 어설픈 영어 공용어 정책, 숭례문 화재를 통해 드러난 아마추어리즘, 각료와 청와대 수석 비서관 지명자들의 병역 문제, 부동산 투기 혐의, 표절 시비 등으로 인해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는 취임 초에 50% 미만으로 추락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취임하기도 전에 지지도가 50% 미만으로 추락한 예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아마도 우리 국민은 이명박 후보를 찍은 것이 아니라 정동영 후보를 찍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권의 초라한 출발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따른 반사적 이익으로 탄생한 정권으로서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다. ‘보수 정권’이라는 이명박 정부가 이런 사정에 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당내 경선 때부터 이런 저런 구설수가 많았고, 대선 중에는 위장전입과 위장취업 등으로 큰 곤혹을 치렀다. 특히 자식을 자기가 관리하는 건물에 위장으로 취직시켜서 급여를 지급한 부분은 증여세를 이탈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다. 뒤늦게 밀린 세금은 한꺼번에 내는 소란을 떨었지만, 그런 문제는 미국 등 선진국 같았으면 후보를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안이었다. 게다가 도곡동 땅 과 다스 소유 문제 등 석연치 않은 문제가 많이 있었다. 막판에 터진 BBK 동영상 사건은 이명박 후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좌파 정권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더 큰 목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그냥 넘어 갔고, 이명박 씨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당선 후 시작한 특검이 BBK와 도곡동 땅 등에 대해 무혐의로 결론을 내렸다고 하나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한 수사 결과를 ‘100% 진실’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권이 ‘도덕’을 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며, 도덕을 말할 수 없는 정부는 그 자체로서 대단히 취약한 존재인 것이다.
한국의 ‘보수’는 왜 취약한가 ?
한국의 ‘보수’는 지난 1997년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반세기 동안 여당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보수주의는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의 보수주의는 권력에 무임승차해온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쉽게 말해서 과거의 권위주의적 정권의 우산 아래 있다가 이 우산이 벗겨지니까 그대로 힘없이 무너졌다는 말이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권위주의에 편승했고, 권위주의는 6․25 전쟁에 무임승차해 왔다. 6․25 전쟁은 한국민에게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었고, 그 덕분에 보수 우파는 어렵지 않게 정권을 장악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보수 우파 정권은 민주적 정당성 측면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았고,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서서히 사라져 감에 따라 ‘보수’는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1993년에 들어선 김영삼 정부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에 기초하면서도 보수 우파의 정치적 아젠다를 함께 추구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과 그 주변의 이념적 불명확성과 어설픈 포퓰리즘으로 말미암아 천금 같은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 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선언하고, 좌파 교수 한완상을 부총리로 임명하고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북으로 돌려보냈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를 지지한 보수층을 취임 첫날 배신한 셈이다. 그런 김영삼 대통령도 재임 후반기에 들어서 북한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하게 됐다. 북한의 잠수함이 침투하는 등 북한이 달라진 것이 전혀 없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 중 황장엽 씨 망명 등으로 국내의 친북 좌파 세력을 척결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이런 기회를 그대로 보냈다. 게다가 멀쩡한 경제마저 망쳐서 정권을 내놓고 말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보수 세력의 한 축인 김종필 씨를 소외시켜서 결국 그가 자민련을 만들어서 이탈하도록 했다. 보수 세력은 분열하고 말았지만 이회창씨는 ‘개혁’이란 헛된 구호에 사로 잡혀 있었고, 그러는 동안 ‘DJP 연합’이 이루어 져서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됐다. 얼마 후 김종필 씨는 떨어져 나오고 김대중 정권 후반기부터는 노골적인 좌파의 치세가 시작됐다.
드디어 홀로 서기 시작한 ‘보수’
김대중 정권 후기에 본격적으로 마각을 드러낸 좌파는 노무현을 앞세워서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재창출하는데 성공했다. 이회창 후보는 촛불 시위에 초라하게 참석함으로써 좌파가 파놓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한나라당은 맥없이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을 뿐더러 ‘대선 비자금’이라는 엄청난 후유증을 남겨 ‘보수’는 ‘부패한 도둑놈’이라는 인상을 국민 뇌리에 깊이 새겨 놓았다. ‘보수’의 자충수(自充手)는 계속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시도한 어설픈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도는 역풍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절멸 위기에 서있던 한국의 보수 세력은 ‘애국세력’으로 다시 살아났다. 이번에는 비로소 자력(自力)으로 일어난 것이다. 예비역 장교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국민행동본부는 장외 투쟁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키는 운동을 시작했다. 닥쳐오는 위험을 느낀 국민들은 2004년 4월 총선에서 다 죽어가던 한나라당을 살려냈다. ‘애국운동’이란 이름의 보수 시민운동이 태동했고, 살아있는 권력인 좌파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보수 논객이 지면을 장식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보수 필진이 세(勢)를 과시했다. 무엇보다 노무현 정권이 국민을 무시하는 노골적인 좌경 정책을 추구함에 따라 민심의 추(錘)는 오른 쪽으로 기울었고, 그리하여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
‘보수’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
그러나 이 같은 보수 시민운동을 보고서 ‘보수’가 우리 국민의 코드로 잡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 국민의 마음 속에는 ‘평등’이란 진보적 코드가 깊이 박혀 있다. 한국민은 부자를 존경하기보다는 무조건 질투하는 경향이 있다. 이마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는 없을 것이다. 또한 한국민은 부(富)와 관련해서 대단히 위선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입으로는 평등과 희생 같은 고상한 말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너나없이 재산 증식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강남 좌파’ ‘BMW 좌파“라는 말이 그런 성향을 잘 나타내 준다. 전교조 교사가 자기 자식을 조기 유학 보내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보수’는 근본적으로 ‘이미지 문제(image problem)´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따듯한 보수(compassionate conservatism)’ ‘인간의 얼굴을 한 보수(conservatism with human face)’ 같은 용어를 쓰는 것도 ‘보수’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다. 여론 조사를 하면서 당신이 ‘보수’냐고 물어 보면 그렇지 않다고 답하지만, 정작 속으로는 재산권 보장과 낮은 세금 등 보수 아젠다를 지지한다. 부동산에 대해 높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동산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인데, 이들이 부동산을 갖게 되면 당장 생각을 바꾸게 된다. 이처럼 위선적인 국민을 상대로 ‘보수’와 ‘진보’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묻는 여론조사가 현상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선 ‘보수’에 대한 선입견이 좋지 않은데, 그것도 당연한 결과이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보수’라고 하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마가릿 대처 전 총리 같은 인물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포괄적으로 긍정적 이미지를 주는 보수 정치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반석에 올려놓은 인물이지만 장기집권과 인권침해라는 ‘원죄(原罪)’ 때문에 긍정적 이미지를 주지 못한다. 게다가 지난 20년 동안 교육 문화계를 장악한 진보 좌파는 ‘보수’를 ‘부패한 기회주의적 집단’으로 덧칠 해 놓았다.
‘보수’라서 취약한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많은 것은 이명박 정부가 ‘보수 정권’이라고 보는 것은 또 하나의 근거 없는 ‘보수 폄하’일 뿐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를 ‘보수 정권’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보수’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에는 ‘보수’라는 이념과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 대통령 및 그의 측근, 그리고 이들과 사적(私的) 연고를 가진 사람들이 정권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점은 노무현 정권에선 좌편향 코드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 권부(權府)를 장악했던 것과는 비교가 된다. 이명박 정권은 ‘이데오르기 중심’으로 모인 집단이 아니라 ‘사적인 모임(crony)’ 성격이 짙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는 내각의 구성부터 도덕성에 큰 흠집을 입었다. 몇몇 장관 지명자들의 언동(言動)은 시중의 ‘아줌마’나 ‘건달’ 수준에 불과했다. 도덕성 결여, 결과 지상주의, 그리고 지적 공허성(空虛性)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이를 두고 ‘보수의 한계’라거나 ‘보수의 문제’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도덕성 논쟁은 ‘보수’만의 문제는 아니다
도덕성 논쟁은 좌파 집권세력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되었었다. 진보 좌파 세력은 입으로는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그런 주장을 소리 높여 하는 인물들은 부유할뿐더러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민들이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게 된 데는 그 같은 좌파의 위선이 폭로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권에서 주로 문제가 됐던 인사는 정권의 핵심 인사가 아니라 이들이 필요에 따라 차출한 인물들이었다. 진보 좌파 정권의 핵심 인사들은 최소한 부동산 투기를 할 여유는 갖고 있지 않았으며, 그들은 그러한 자신들의 처지를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문제가 됐던 인사는 장상 씨, 장대환 씨 등이었다. 이들은 국무총리로 지명되었다가 위장취업과 부동산 과다보유 등의 이유로 낙마했다. 하지만 장상 씨나 장대환 씨는 결코 진보 좌파가 아니었다. 그들은 좌파 정권에 의해서 공직에의 초래를 받고 나왔다가 인사검증이란 덫에 걸려 넘어 졌을 뿐이다. 오히려 장상 씨나 장대환 씨의 코드는 노무현보다는 이명박에 가까울 것이다. 장상 씨와 장대환 씨가 당했던 시련은 지금 이명박 정부의 첫 내각이 당했던 것과 비슷하다. 위장전입, 병역면제, 부동산 투기 의혹, 표절 등 고위직 인사청문회를 열기만 하면 나오는 단골메뉴가 이명박 정부 첫 내각에서 다발적으로 터진 것은 당연하다. 여하튼 이명박 정부의 고위급 인사는 노무현식 진보에 실망해서 보수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사람들에게 환멸을 가져다주었다. 대북(對北) 강경론자로 알려진 교수가 통일부장관에 임명되었으나 정작 그는 군대를 가지 못해서 총 한방 쏘아 본 적이 없고, 그의 부인은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었다고 하니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의 친구나 되는 듯이 전태일 씨를 존경했다고 말했던 노동부장관의 부동산 보유 목록은 노동자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 역시 보는 사람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논문을 표절했니 어떠니 하는 논의가 일어난 장관과 수석비서관의 경우도 말할 나위가 없다. 대학 교수로서의 자격도 의심받을 사람들이 자기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면서 장관과 수석비서관을 하겠다고 나선 형상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보수’이냐 ‘진보’냐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잘 나가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회주의적 성향, 몰(沒)가치성, 무(無)도덕성의 문제일 것이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노무현 정권에 비해서 그런 사람들이 인사청문의 대상이 되는 직위에 기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마치 그것이 ‘보수의 문제’로 보였을 뿐이다.
‘보수’라는 명칭을 싫어하는 ‘보수’
진보 세력은 5공-6공 세력을 ‘수구 독재권력’으로 몰아붙이면서 자신들을 ‘진보’라고 불렀다. ‘진보’라는 용어 자체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어서 대중에게 매우 친근하게 들렸다. 더구나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은 자신들이 권위주의 세력을 타파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한국에서 ‘진보’는 명분을 등에 없고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진보’의 공격 앞에 ‘보수’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진보’의 주장을 공박할 만한 이론 무장도 되어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자신 있게 ‘보수’라고 내세우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 경제위기 상황이 터져서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사태가 발생했고, 결국에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다. 한국의 ‘보수’는 경제도 못 챙기는 ‘바보’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 자기를 들어내 놓고 ‘보수’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권이 광적(狂的) 증상을 보여서 국민의 지지를 잃어버리고 나서부터다. 우리나라에서 ‘보수’라는 용어에 자부심을 갖자고 처음 주장한 사람은 아마도 박근 전 유엔 대사일 것이다. 박근 씨는 2002년 봄에 ‘한국의 보수여, 일어나라!’라는 책을 펴냈다. 박 대사는 이 책에 “어용 보수, 기생 보수, 눈치보수는 가라!”라는 부제(副題)를 달았다. 그럼에도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는 또 패배했다. 이 후보는 노무현 후보에 대해서 색깔론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오히려 촛불시위에 초라하게 참석해서 좌파 세력에 정당성의 무게를 실어주는 큰 실책을 범했다. ‘보수’라는 단어는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자존심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의 좌파 정권에 반대한다는 시민단체들도 한결 같이 무슨 ‘자유주의’니 ‘선진화’니 개념 정의도 어려운 어색한 영어인 ‘뉴라이트’라는 명칭을 달고 있다. 2004년 탄핵폭풍이 불자 한나라당의 이른바 개혁성향 의원들은 자기들은 이제 ‘중도’를 하겠다고 무릎을 꿇고 맹세했으니, 참으로 비굴한 군상(群像)들이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도 이명박 씨는 “이념은 필요 없는 것‘이라고 했고, 박근혜 씨는 자기가 ‘중도’를 하겠다고 했다. 이명박 정권도 출범 첫마디가 “이념 대립은 필요 없다”는 입장이었다.
보수 시민운동의 한계
지난 10년 동안 ‘시민단체 전성기’라는 말이 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진보 좌파 시민단체의 관계자들이 정부 요직에 대거 진출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진보진영에는 그런 시민단체가 많았는데, 이들은 이슈 창조 능력과 미디어 동원 능력을 갖고 있었다. 사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시민단체라고 해서 많은 회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개의 경우 교수나 변호사를 대표로 세우고 간사라고 부르는 전임직원 몇 명이 운영하는 것이 시민단체다. 진보 시민단체의 간사들은 그들의 제기하는 아젠다로 혜택을 입는 계층과 동질감을 갖고 있었기에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었다. 이런 단체 출신 인사들은 김대중 정부에서 제도권으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순수성과 자발성을 상실하고 정부의 전위대 같은 역할을 하다가 노 정권과 같은 길을 걸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후 드디어 보수 시민단체가 생겨나서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예비역 대령들이 주축이 된 국민행동본부, 김진홍 목사가 발족시킨 뉴라이트 전국연합, 교수들이 세운 바른사회 시민회의 등이 그러하다. 그 외에도 탈북자 단체, 애국적 혈기가 충만한 젊은이들이 만든 자유개척청년단 등 숫자로 보면 결코 적지 않은 보수 단체가 있다. 그러나 이중에서 회비로 운영할 수 있었던 단체는 국민행동본부 뿐이었다. 몇몇 단체는 목적과 자금 출처에 대해 의구심을 일으키기도 했다. 정작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보수 단체들은 심각한 회의에 빠져 있다. 나름대로 정권 창출에 가장 기여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새 정권의 과실을 나누는데 있어서는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과 아스팔트에서 싸웠던 사람들은 새로 들어선 ‘보수 정권’이 강남 땅 부자 정권인데 대해 허탈해 하고 있다. 보수 시민운동은 운동을 하는 사람과 그로 인해 혜택을 입는 계층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초래한 또 하나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현상이야말로 이명박 정권이 ‘보수 정권’이 아님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일 것이다.
‘문화전쟁’에 무관심한 보수
비록 좌파 정권이 물러났다고 하나 우리 사회의 문화적 하부구조는 여전히 진보 좌파의 지배 하에 있다. 문화예술계, 출판계, 교육계, 방송 등 국민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여전히 진보 좌파의 지배 하에 있다는 말이다. 문화적 하부구조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좌우 이념 대립을 흔히 ‘문화전쟁’이라고 부르는데, 정작 보수 진영은 이에 대해 모르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안다면 탤런트 출신을 문화부장관에 임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화전쟁’은 전형적인 이념 전쟁이고 가치 전쟁이다. 이념 대립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면 ‘문화전쟁’에서 스스로 백기를 드는 셈이다. 한국의 ‘보수’가 ‘문화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우선 책 시장을 지켜야 하는데, 이런 문제를 느끼는 보수 인사들이 별로 없다. 한국의 ‘보수’들은 도무지 책을 읽지 않는 것이다. 반면 진보 좌파들은 나름대로 치열하게 읽고 토론하고 쓰고 있다. 최소한 20년 동아 이런 추세가 계속돼 왔기 때문에 정권이 5년 동안 그들을 떠났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교과서에서 논술 교재에 이르는 방대한 도서 출판 영역을 진보 좌파가 장악하고 있는 탓으로 젊은 세대는 그들이 영향권 안에 있다. 이런 현상은 대중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이념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보수층 인사도 별로 없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한국의 ‘보수’, 어떻게 다시 태어나야 하나
이명박 정권은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다. 또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급속한 좌경화를 차단해서 시간을 조금 벌어 주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보수’는 이렇게 생긴 기회의 시간을 이용해서 환골탈태(換骨奪胎) 해서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해야 할 것이다. 우선은 도덕성을 갖춘 다음 세대 ‘보수 세력’이 사회 많은 분야에서 앞장서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 김종필 씨 등은 한국의 ‘보수’를 한없는 나락(奈落)에 빠져들게 한 장본인이다. 이제는 그런 과거에서 자유롭고, 도덕과 윤리로 무장되어 있으며, 보수이념과 가치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한 사람들이 정치 사회 문화 언론 등 각계의 리더로 나서야 한다. 노무현 시절에 시청 앞 광장에서 애국의 깃발을 높이 들었던 사람들의 후속 세대는 좀 더 정교하고 나아간 시민운동을 벌여야 한다. 정치도 중요하지만 문화 교육 미디어 등 각 분야에서 반듯한 보수 이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는 젊은 세대에 한국의 보수주의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학 캠퍼스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들을 교육하는 아카데미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으려면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얼마 전에 타계한 윌리엄 버클리 2세는 모교인 예일 대학의 좌편향을 보고 ‘예일에서의 신과 인간’(God and Man at Yale)이란 책을 펴내고, 1955년에 보수 가치를 지향하기 위한 ‘내셔날 리뷰’(National Review)지(誌)를 창간했다. 1980년에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버클리의 꿈이 실현되었으니 책을 낸지 30년, 잡지를 창간한지 25년이 지나서야 결실을 맺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보수’가 서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인내와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인내와 세월도 필요하지만 이런 활동을 하는데 적잖은 돈이 든다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나는 지난 10년 간 좌파 정권 기간 동안 방관자로 구경하고 있었던 재계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그 동안 한국의 재계는 애국운동이나 보수운동을 도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급진 좌파단체를 지원했다. 말하자만 적군을 지원한 것이다. 물론 보험 드는 셈치고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재계가 앞장서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주의를 수호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건강한 보수’를 키울 것이다.
독립신문 http://www.independent.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