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은 천심(天心)이 그대로 반영된 것 같다. 여당에 과반수 의석을 확보해주기는 하되 공천 과정에 있었던 전횡에 대해 응징을 하듯 겨우 과반수가 되었고 공천의 주역들에게는 낙선의 고배를 안겨주었다. 보수성향의 의석이 한나라당(153석) 외에 한나라당보다 보수성향이 더 분명한 자유선진당(18석), 친박연대(14석), 친박 내지 보수성향 무소속(10여석)을 합쳐 200석에 육박하되 개헌의석인 3분의 2는 넘지 못했다.
한편 통합민주당의 친북좌파성향 의원들이 궤멸되고 지도부가 붕괴되었다. 수도권에서 당선된 통합민주당 후보들 대부분은 친북좌파가 아닌 온건진보 성향이다. 참고로 북한인권단체연합회가 선거 직전에 발표한 북한인권 ‘적대적’ 후보 20명 가운데 4명(김효석, 백원우, 최재성, 이상민)만 빼고는 모두 낙선하였다.
주요언론은 이런 결과를 상세히 분석보도하면서도 ‘보수의 승리’라는 표현은 피하고 있지만, 실은 ‘보수의 진보 제압’이요, 조용한 보수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에 손학규 정동영 한명숙 김근태 유인태 등이 수도권에서, 장영달이 호남에서 줄줄이 낙선한 것은 하나의 이변이었으며, 임종석 오영식 이인영 우상호 등 과거 386주사파 출신이 모조리 떨어져 나간 것은 그들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친북적 행각을 해왔던 인물들이 그렇게 빠짐없이 걸러졌는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국민은 이제 확실하고 단호하게 친북좌파 성향의 정당이나 인물들을 배격하고 있다. 지난 20년의 좌경풍조와 아직도 각계에 도사리고 있는 좌파세력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눈물겹도록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송이 얼마나 오랫동안 좌파세력에 의해 휘둘러지고 있었던가!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얼마나 좌파적이고 반(反) 대한민국적인 시각에서 씌어져 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좌파의 위험성에 대해 이렇게 깊숙하게 깨우치게 된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이 때 우리 보수들은 앞으로 전개될 보수정치권의 이합집산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한국사회에 보수주의 정치가 확고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하겠다. 국회에서 보수성향 의석이 200석이나 되지만 이를 관통하며 또 통합시킬 맥을 형성시키는 것은 이제부터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보수의 세력화를 위해서는 첫째, 실용과 실리를 찾기보다는 원칙과 기준을 세워가야 한다. 그동안 좌파세력이 강조한 단어들이 평화 민족 상생 실사구시(實事求是) 같은 것이었으나 진실성이 없었다. 보수의 정착을 위해서는 이와는 다른 단어들이 필요하다. 맹목적 평화가 아니라 잘못의 시인과 용서, 무조건적 상생이 아닌 보편적 가치의 공유, 실사구시니 실용보다는 의(義)의 추구가 강조되어야 한다.
둘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다. 보수세력은 흔히 잘난 것은 내세우고 가진 것을 뽐내지만 봉사가 적었고 희생이 없었다. 높은 사람의 봉사와 가진 사람의 희생이 도처에서 느껴지도록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셋째, 인정이 있고 소탈한 멋이 있어야 한다. ‘보수적 인물’이라는 평은 대개 고집이 세고 멋이 없고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어려운 일이지만, 보수주의도 사랑으로 해야지 율법으로 해서는 안 된다. 따뜻한 마음이 없는 보수, 사랑의 실천이 없는 보수는 저 혼자 잘난 데 불과한 것이다.
한국사회는 1987년에 민주화 명예혁명을 이룩한 후 지난 20년 동안 좌파의 도전에 시달려 결국 정권을 내주고 적화(赤化)의 위험 선상까지 갔었다. 그러나 다시 정권을 되찾고 안정의석을 확보했으며 일종의 ‘보수 득세’를 맛보고 있다. 이 때가 바로 중요하고 예민한 시기이다. 독주(獨走)해서도 안 되고 방심(放心)할 때도 아니다. 묵묵히 보수혁명의 진군을 계속해야 할 뿐…. (2008. 4. 10. 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