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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은 정치의 꽃이다. 투표일을 정점으로 만개(滿開)했던 불꽃 공방은 점차 시들고 정치의 휴지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대통령 당선자와 취임 초 대통령은 ‘허니문’을 즐기고 패배자들은 숨을 고르면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게 된다.
한국 대통령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제왕적’이라 불린다. 더구나 이명박 당선자는 이승만 대통령 이후 가장 압도적 표 차(530만표)로 당선됐다. 호남을 제외한 전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더구나 임기 말의 노무현 대통령은 바닥인기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 당선자는 상당기간 거칠 것이 없어야 당연하다.
- ▲ 이명박 당선자가 지난 12월 19일 밤 한나라당사에서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 그러나 내년 4월 9일 총선까지 110일간은 ‘대선 2라운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기간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크게 보면 거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내년 1월 벽두부터 수사를 시작할 특별검사 정국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다. ‘이명박 특검’과 ‘삼성 특검’ 두 가지다.
- ‘이명박 특검’이 이미 검찰이 이 당선자에 관해서 무혐의 처분을 내린 BBK사건에 대해 무엇을 새로 밝혀낼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이 당선자는 “특검을 몇 천 번 한다 해도 새로 밝혀질 것이 없다.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대통합민주신당과 이회창씨 측은 “대선을 다시 치르게 될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누가 특별검사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는 이처럼 첨예한 갈등의 벼랑 끝에 서게 된다. 새 대통령이 일하는 데 ‘과거’의 발목을 자꾸 잡아서야 되겠느냐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에게 부담이 될 것이다. 한나라당은 당장 선거 다음날부터 노무현 대통령에게 국회에서 통과된 이명박특검법을 거부해 달라고 요청했다. 강재섭 대표는 지난 12월 20일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을 놓고 무슨 특검이라든지 이런 식으로 해서 다시 청문회를 하는 것과 비슷한, 다시 후벼파는 것은 분열의 정치요 아주 저급한 정치”라고 했다. 특검이 발진한다고 하더라도 이 당선자를 소환조사할 경우 대외 이미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당선자의 “BBK를 설립했다”는 육성 동영상이 선거 막판에 공개되면서 검찰의 수사 결과를 믿지 않는 여론은 상대적으로 더 높아진 상태다.
- 어찌됐든 진실을 요구하는 민성(民聲) 또한 큰 것이 사실이다. 특히 대통합민주신당과 이회창 후보 측은 특검마저 이 당선자에게 면죄부를 줄 경우 “쓸데없는 정치 공세로 새 정부의 걸림돌이 됐다”는 책임을 뒤집어쓰면서 총선에서 초토화될 가능성이 있다. 총선 부활을 노리는 친노(親盧)세력을 대변해야 할 처지인 노무현 대통령도 특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결국 노 대통령과 대통합민주신당, 이회창 후보 측은 특검에 상당한 무게중심을 둘 수밖에 없다. 이 당선자와 예비 야당 세력은 이명박 특검을 둘러싸고 제2의 진검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특검 대상이 BBK뿐만이 아니라 도곡동 땅과 다스 지분 등 재산 누락 신고 혐의, 상암동 DMC 특혜 분양, 자녀 위장취업에 의한탈세 의혹 등까지 포괄하고 있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 이명박 특검은 과거 다른 특검보다 수사기간을 단축시켜 이 당선자가 내년 2월 25일 취임하기 전에 수사 결과를 내놓게 된다. 이 당선자가 기소되더라도 취임할 수 있고, 취임한 뒤에는 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통설이다. 헌법 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법률적으로 이 당선자가 그만두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제는 특검이 이 당선자의 위법 혐의를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게 밝혀내서 기소할 경우 그 정치적 부담과 정치 공세를 견뎌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특검이 이 당선자를 기소하지 못하면 일부 도덕적 문제가 새롭게 드러난다 할지라도 특검은 이 당선자에게 ‘보약’이 될 수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장은 “지난번 검찰 수사 때와 마찬가지로 특검에서도 이 당선자의 혐의가 말끔히 벗겨질 것”이라며 “그럴 경우 이 당선자의 정치적 기반은 더욱 탄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