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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좌파'의 실패와 앞날

새벽이슬1 2008. 1. 20. 23:14
[新보수 탄생] Part 2 ‘운동권 좌파’ 왜 실패했나
Part 2 운동권 좌파의 실패와 앞날
노무현 정권 출발이 위기의 시작 실정에 실정 거듭, 좌도 우도 외면
10년 만에 역(逆)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김대중·노무현을 거치면서 좌측에 머물던 권력의 시계추가 마침내 우로 이동한 것이다. 운동권 ‘좌파’ 정권은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세월’로 남긴 채 권력의 전면에서 퇴각했다.

▲ 지난 12월 5일 광화문에서 열린 검찰 규탄 촛불집회.
‘좌파’세력의 위기는 5년 전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좌파’는 낡은 정치(냉전·독재)세력에 대해 새 정치(평화·민주)세력이 승리했다고 자축했다. 하지만 아무도 노무현 정권이 5년 동안 실정(失政)을 거듭해 ‘좌파’세력 전체를 구렁텅이로 몰고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돌이켜보건대 ‘리멤버 12·19’는 ‘좌파’ 위기의 시작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좌파’정권이 이룩한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권에서 남북관계가 대폭 개선됐고 4대 사회보험 체계를 정비해 사회안전망을 대폭 강화시켰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권익이 증진되고 권력기관이 상대적으로 중립화되었으며 돈 안 쓰는 정치풍토도 확립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기억하는 국민은 별로 없으며, 심지어 진보성향의 국민조차 ‘좌파’ 정권을 외면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좌파’정권은 스스로의 정체성(identity)을 확립하는 데 실패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를 지칭한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형용모순적 표현이 이 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정책 면에서 그들은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었다. 그 결과 좌우 양측에서 협공(挾攻)을 받았고 어느 쪽의 지지도 얻지 못했다.(때문에 필자는 좌파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지만 제목으로 주어졌기에 따옴표를 붙여서 사용한다.)

김대중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4대 부문(재벌·노동·금융·공공) 개혁을 밀어붙였다. 이것은 처음에는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절박성 때문에 저항을 덜 받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좌우 양측에서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장지상주의를 선호하는 우측에서는 정부가 보다 더 많이 그리고 빠르게 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지 않는 점을 불만스러워 했다. 우파 입장에서 볼 때 정부가 추진한 빅딜이나 기업에 대한 노동자 정리해고 자제 압력, 출자제한, 부채비율제한 등은 모두 시장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정부에 대해 과도한 관치(官治)의 청산과 대폭적 규제완화를 주장했다.

반면 좌측은 김대중 정권이 재벌은 빨리 혁파하지 않으면서 구조조정의 모든 부담을 기층민중에게 전가시키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들이 볼 때 이 정부의 개혁정책은 사회안전망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부문에 대한 구조조정만을 강행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보였다. 결국 김대중 정권의 개혁정책은 좌우 양측으로부터 정반대의 이유 때문에 협공을 당했다. 우측은 과소시장으로, 좌측은 과잉시장으로 이 정권의 개혁을 비판했던 것이다.

노무현 정권도 사정이 비슷했다. 그들은 동반성장, 균형성장을 위해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우파는 출자총액제한제, 금산분리정책, 행정수도 이전 및 국토균형발전, 수도권 규제 등에 대해 반시장적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한·미 FTA 추진과 비정규직 보호법안 통과에 대해서는 좌파가 반노동자적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반발했다. 이런 상태에서 경제라도 호전되면 좋으련만 재임기간 중 성장은 신통찮았고 그나마도 고용 없는 성장으로 나타났으며, 사회적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되고 말았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시장경제와 복지사회 간의 조화를 꾀한 ‘제3의 길’ 노선에 입각해 노동당의 장기집권을 이끌었다. 하지만 한국의 ‘좌파’정권은 ‘한국적 제3의 길’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그들은 스스로를 정체불명의 괴물로 만들어 좌우 모두로부터 외면받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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