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서해중부해역에 위치한 서해5도는 백령도·대청도·소청도(백령도서군)와 연평도·우도(연평도서군)를 말한다. 연평도는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구성된다. 인천으로부터 백령도는 191Km, 연평도는 83Km 떨어져있고, 북한해안으로부터는 15~20Km의 지근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 섬들은 한국안보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군사전략도서이다. 특히 수도권(서울·인천)을 방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전초기지이다. 우리는 평시 이곳에서 북한에 대한 많은 정보를 획득하고 있다. 전시에는 이곳을 발판으로 서해북부해상까지 해양·공중통제권을 확장하여 평양을 바로 위협할 수 있다.
반면에 북한의 입장으로는 이 도서가 그들의 옆구리를 찌르는 비수가 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휴전이후 이 도서를 무력으로 점령하기 위해 주변의 육지와 도서에 막강한 전력을 배치하고 있다. 북한군사기지의 해군함정·전투기·지대함유도탄·해안포는 가히 위협적이다.
이에 대비하여 우리도 대응전력을 배치하고 있으나 도서의 크기가 작아서 대규모 병력이 상주할 수없다. 공군기지는 아예 없다. 해군함정의 모항인 평택기지도 멀리 위치하여 북한해군에 비해 불리하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이들 도서가 북한에 인접해 있는 것도 우리에게는 군사작전상 큰 약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까지 이 도서를 확고하게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다. 하나는 해상휴전선인 북방한계선(NLL)이 도서의 북쪽(동쪽)에 설정되어 있어서 비록 거리는 짧지만 어느 정도의 방어종심(防禦縱深)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해군이 NLL을 사력을 다해 한 치의 양보 없이 사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세계적으로 전투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해병대가 도서방어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해병들은 최악의 경우 옥쇄(玉碎)까지 각오하는 정신무장으로 철통같이 경계에 임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서해 5도를 지키는데 큰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2007정상회담선언에 남북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선언문의 제5항에는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해상휴전선인 NLL에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하여 남북이 공동으로 이용하고, 북한선박이 NLL을 가로질러 자유롭게 통과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상호간 군사신뢰를 구축하고 남북이 공동으로 번영하는 계획이라고 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는 해상휴전선인 NLL의 기능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해상정전체제의 기본인 NLL이 무력화되는 것이다. 북한이 그토록 요구해온 ‘NLL 재설정·무력화’에 굴복한 것이 된다. 참으로 어리석고 우매한 짓이다.
NLL은 1953년 8월 설정된 이후 지금까지 해상휴전선으로서 그 기능을 잘 유지하고 있다. NLL인접해역은 육지의 DMZ와 같이 비무장지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남북 상호간 선박과 항공기가 NLL에 근접하는 것을 통제하여 우발적 무력충돌을 막았다. 그래서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NLL은 현 상태로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남북한은 아직도 정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정전체제하에서 어떤 형태로든 NLL에 변형을 가져와 그 고유기능을 훼손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필자가 누차 코나스 칼럼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앞으로 무력충돌이 잦아지고 해상휴전선인 NLL이 무력화되어 정전체제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필자의 칼럼 『서해 NLL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2007.6.4)』『남북 공동어로수역은 분쟁수역이 된다(10.8)』『北은 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쉽게 합의했는가?(10.12)』참조).
NLL근해에서 조업하는 북한어선은 모두 군소속(軍所屬) 무장어선이라고 한다. 무장어선과 이를 통제하는 북한함정이 자연히 우리의 도서주변에 까지 접근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도서주변어장에서 조업하는 우리어선과 도서를 왕래하는 화객선(화물선·여객선)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많은 해군함정을 투입해도 서해5도 주변과 수도권 서측해역에서 북한함정의 도발행위를 차단할 길이 없다. 앞으로 우리해군의 해상작전 전반에도 큰 차질을 가져온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서해5도 주변에 있던 방어종심이 없어져 도서방어 자체가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상 방어가 불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서해5도를 과거보다 쉽게 무력으로 점령할 수 있다고 오판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이유로 재향군인회, 해군사관학교총동창회, 성우회, 예비역 단체 등은 정상회담 이전부터 ‘NLL 재설정·무력화’를 극구 반대했다. 정상회담 이후에도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연일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서해교전의 영웅인 고 윤영하소령(357고속정의 정장)의 부친은 "NLL은 영토선이 아니다"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10월 11일 재향군인회·성우회의 NLL관련 대국민 성명서 발표회에서 유가족 대표로 참석해 “우리 서해교전 전사자 유가족들은 한동안 우리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NLL이 영토선이 아니라면 왜 그토록 고귀한 생명들이 치열한 교전 속에서 그렇게 사라져야 했습니까? 왜 지금도 이 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불철주야 망망대해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까?”라고 절규했다.
사정이 이렇게 급박해지자 국방부와 해군은 "오는 11월에 예정돼 있는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NLL을 양보하거나 열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해에서의 해상통제권을 대한민국 해군이 완벽하게 장악해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정부가 북한과 NLL무력화에 합의한 상태에서 이런 언급을 하고 있어 국민은 정말 혼란스럽다. 국가안보를 송두리째 허무는 이런 합의를 주무부서에서 사전에 막지 못하고, 합의가 이뤄진 이후에 이런저런 말로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것은 '면피용'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요즘 예비역들이 모이면 한결같이 우리 군(軍)에는 "왜 싱글러브장군 같은 참 군인이 없는가"라고 개탄한다.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조국의 국가안위를 위해 "공동어로수역·평화수역과 북한선박 NLL통과 해주항로 설정을 반대한다"라고 말하는 군인이 정녕 없단 말인가. 지금도 NLL을 지키는 해군함정의 함교(조타실)에는 ‘전우가 사수한 NLL, 우리가 지킨다.’라는 표어가 크게 게시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주한미군인 싱글러브 소장은 1977년 5월 카터 미국대통령이 선거공약대로 주한미군 철수가 실천단계에 이르자 워싱턴 포스트(WP)지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카터 대통령의 계획은 곧 전쟁의 길로 유도하는 오판이다"라고 말하고 "카터 행정부의 주한 미지상군 철수계획의 결정이 2∼3 년 전의 낡은 군사정보에 입각하여 취해진 것으로 북한의 전력은 현저히 강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카터 정부의 정책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로 인해 그는 본국으로 소환돼 결국 주한 미8군사령부 참모장직에서 해임됐다. 남의 나라를 위해 그는 바른 말을 한 것이다. 그는 한국안보를 위해 일신을 희생한 참 군인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속에 오래 기억되고 있다. (konas)
김성만(전 해군작전사령관, 예비역 해군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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