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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상소문 외

새벽이슬1 2022. 8. 27. 10:59
[만물상] 최고의 상소문

명령을 거역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선조의 분노는 여러 기록에 나와 있다. 출정 명령을 듣지 않자 삼도수군통제사 이 장군을 “한산도 장수”로 낮춰 부르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편안히 누워만 있다”고 했다. 투옥한 다음엔 “임금을 속인 자는 반드시 죽게 돼 있다”며 “형벌을 끝까지 시행하겠다”고 했다. ‘장하(杖下)에 죽는다’는 말이 있다. 끝까지 매를 때리겠다는 것은 끝내 죽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구명 운동이 시작됐다. 이 장군의 종사관을 지낸 정경달(丁景達)이 조정에 달려가 외쳤다. “이순신의 전쟁 능력은 예를 찾을 수 없습니다. 싸움을 미루는 것은 전술인데 어찌 죄입니까. 그를 죽이면 나라가 망하는데 어찌 하시렵니까.” 대놓고 “임금이 틀렸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고 막힌 가슴을 뚫어주는 시원한 발언이지만 임금의 분노에 기름을 부어 구명은커녕 이순신을 오히려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선조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우의정 정탁(鄭琢)이 상소문을 올렸다. “이순신은 큰 죄를 지었지만 성상께서는 극형을 내리지 않고 인(仁)을 베푸시려는 일념으로…이순신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아보시려고… 생명에 대한 임금의 어진 뜻이 죽을 죄를 진 자에게까지 미치니 감격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임금의 속 좁은 뜻과 반대였다. 정탁도 알면서 그런 것이다. 성인군자로 추켜세우니 임금은 어쩔 수 없었다. 문제아에게 “잘한다, 잘한다” 하면 잘하는 때가 있는 것과 같다.
▶상소문은 이순신을 깔아뭉개는 문장으로 이어진다. “용기로 치면 원균에게 미치지 못하고 남의 공로를 탐내서 제 공로로 만들어 속였기 때문에 이순신이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이순신의 작은 공적 몇 가지 열거한 다음 “무릇 인재는 나라의 보배이므로 주판질하는 사람까지 재주가 있으면 아껴야 하는데 장수의 재질을 가진 자를 오직 법률에만 맡길 수 있겠느냐”고 호소했다.
▶정탁의 상소문은 거의 사실이 아니다. “하얀 거짓말”이라고 할까. 선조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거짓말에 마음을 돌렸다. 이순신을 죽이면 졸장부라는 말이니 선조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소문이 이순신을 살렸다. 결과적으로 나라를 구했다. 정탁의 상소문은 최고의 상소문으로 꼽힌다. 결과만 대단해서가 아니라 염라대왕의 마음도 바꿀 수 있는 완벽한 설득의 기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상소문 초고가 국가 보물에 지정될 것이라고 한다. 아직 보물이 아니었다는 게 오히려 의외였다.


[만물상] 줬다 뺏는 기초연금

지난 7월 25일 청와대 근처에서 어르신 다섯 명이 멍석을 깔고 절을 했다. 기초연금 도입 2년째 되는 날이었다. 흰색 한복 차림 노인들은 '도끼 상소(上疏)'를 낭독했다. '내 말이 틀리면 도끼로 내 머리 치라'는 게 도끼 상소다. 두루마리 상소문엔 '대통령은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라는 걸 알고 계신지요. 40만 노인도 삼복더위에 삼계탕을 먹고 싶습니다'고 쓰여 있었다. 거기서 600m 떨어진 곳에 대한민국 대표 삼계탕집이랄 수 있는 음식점이 있다.
▶매달 25일 소득 하위 70% 노인 454만명 통장으로 10만~20만원의 기초연금이 입금된다. 그 가운데 기초생활수급 대상 42만명 노인들은 다음 달 20일 원래 받아야 할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에서 20만원을 토해내야 한다. 정부 논리는 기초연금만큼 소득이 새로 생겼으니 '보충성의 원리'에 의해 같은 액수를 생계급여에서 빼고 준다는 것이다. 이러는 바람에 소득 8분위 중 가장 가난한 소득 1분위 노인들이 평균으로 치면 소득 3분위보다 기초연금을 5만원 이상 적게 받는 결과가 생긴다. 최빈곤층이 혜택을 되레 덜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OECD 최고 노인 빈곤율과 최고 노인 자살률의 나라다. 지금의 노인층은 대한민국을 선진국 문턱까지 끌어올리느라 애쓴 세대지만, 국가 복지가 많이 부족한 데다 세태 변화로 자식들 부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2014년 7월 도입된 기초연금제도는 노인들 생활 안정에 상당한 도움을 줬다.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최극빈층 노인들은 억울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반면 중산층 노인들은 꼬박꼬박 기초연금을 받고 있어 노인 집단의 계층별 소득 격차는 더 벌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여러 복지 제도가 한꺼번에 도입되다 보니 상식에 맞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 수 있다. 이런 모순이 지적되면서 야당들은 20대 총선에서 이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일부 의원은 6월 말 개정 법안을 발의했다. 이번 국감에서도 말이 나오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선 최대 28조원 든다는 아동수당 신설을 거론하고 있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 해결엔 8000억원이 든다. 하루하루 근근이 먹고사는 빈곤 노인들은 집단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조직력도, 의사소통 통로도 갖고 있지 못하다. 복지를 하더라도 정밀한 복지를 해야 한다. 그래야 투입한 예산에 걸맞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돈 들여 복지를 시행했는데 많은 사람에게 반감(反感)을 불러일으키는 거라면 복지가 지향하는 '사회 통합' 목표와도 거꾸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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