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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의 빛과 그림자
지난달 26일 서거한 제13대 노태우 대통령(1932년 12월 3일~2021년 10월 26일, 대통령 재임 1988년 2월 25일~1993년 2월 25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독특한 족적을 남긴 대통령입니다. 먼저 지적할 것은 그가 재임 중 착공한 국가적 대역사(大役事)들입니다.
정부의 정책사업은 연속성을 지닙니다.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임기 내에 추진하는 사업도 있지만, 많은 경우 이전 정부에서 수립해서 추진하던 것을 이어받아 수행합니다. 노 대통령은 다른 정부였다면 임기 내에 하나를 하기도 벅찼을 5대 국책사업들을 착수해 추진한 대통령입니다.
그중 일부는 임기 중에 완공했고, 나머지는 후임 정부에서 완공됐으며, 인천국제공항 확장사업처럼 아직도 추진되는 사업도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 인프라의 골격을 갖추었다면, 노 대통령은 거기에 살을 입히고 기름을 친 대통령입니다.
경부고속철도, 인천국제공항, 서해안고속도로, 분당·일산 신도시 주택 200만호, 새만금방조제 건설 등이 그것입니다. 땅과 하늘의 길을 활짝 열어 선진국 도약의 발판을 구축한 것과 지금도 최대의 민생이슈인 부동산 대책의 원형도 그 안에 있습니다.
경부고속철도 서울~대구 간 1단계 사업(1992년 착공~2004년 완공)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에 버금가는 대역사였습니다. 착공 초기 부실시공과 공사비 앙등, 경제성 문제가 한꺼번에 제기되면서 사업은 난항의 연속이었습니다.
고속철도는 오늘날 전국을 반의 반나절로 연결한 여객운송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공사 초기 필자는 부끄럽게도 서울~대전 구간만 건설해 시험운행 한 뒤, 대전 이남은 단계적 건설을 하자는 주장에 동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종도 인천국제공항건설 사업(92년 착공~2000년 기본시설 준공~2001년 공식 개항~현재 5단계 확장공사 진행 중)은 대한민국이 항공분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임을 보여 준 사업입니다. 인천공항은 한국의 관문공항을 넘어 세계 굴지의 공항으로 우뚝 섰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사업(1990년 착공~2001년 준공)과 새만금방조제사업(1991년 착공~2009년 준공)은 전두환 정부가 호남 민심을 달래기 위해 계획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 사업은 진척이 지지부진하던 중, 김대중 정부에 와서야 공사예산을 집중 배정해 마무리되었습니다.
준공까지 18년이 걸린 새만금사업은 담수호의 수질악화를 막기 위해 바닷물을 드나들게 함으로써 반쪽사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새만금호 수상에 설치된 태양광패널이 새똥패널 논란에 휩싸여 있듯이 노 대통령 재임 중 착공된 사업 중에서 현 단계에선 유일한 실패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운구차가 30일 영결식에 앞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으로 향하고 있다.
이들 토목관련 사업을 하드웨어라고 한다면 소프트웨어적인 사업들도 있었지요. 취임 첫해에 치른 1988년 서울올림픽이 대표적입니다. 유치에서부터 추진까지 모든 준비를 전두환 정부에서 넘겨받았지만 완벽하게 치러냈습니다. 그것은 단군 이래 우리 민족이 치러낸 최대의 행사였지요.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한국은 경제강국의 저력을 보였고, 문화강국으로 국제무대에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올림픽 하면 필자에게 떠오르는 상념이 있지요. 올림픽이 아니었다면 전두환 정권은 경착륙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입니다. 1987년 시민항쟁 때 서울올림픽만 아니었다면 전두환 대통령은 7년 단임 약속을 깨고, 당시 파다했던 친위쿠데타를 결행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점에서 서울올림픽은 단순히 체육·문화행사로 그치지 않고, 민주발전에 큰 기여를 한 행사였다고 평가할만 합니다. 올림픽 유치에서 모든 준비에 이르기까지 공이 많았던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개막식에 초청되지 못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였다고 생각합니다.
1987년 시민항쟁의 결과로 노 대통령이 선언한 대통령직선제의 6·29선언은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의 체육관 선거체제를 용도폐기시킨 쾌거였습니다. 이 선언 역시 전두환 대통령 주도설과 노 대통령 주도설이 엇갈리지만 어쨌든 발표한 사람은 노 대통령입니다.
지금 이른바 ‘87년 체제’는 34년째를 맞아 다시 용도폐기의 필요성이 거론됩니다. 이 체제가 초래한 지역 이념 간 양극화 현상은 치유의 길이 보이기는커녕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대선은 양극화의 폐해가 극대화한 선거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외교는 시대의 기미(機微)를 알아내 사전·사후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인데 북방외교에서 노태우 정부는 기민했다고 하겠지요. 그 기미를 알아내 독일 통일을 이뤄낸 헬무트 콜 총리만큼은 아니어도 말입니다.
1990년 고르바쵸프 소련 공산당서기장의 개혁개방정책으로 동구권이 해체되기 시작할 무렵 소련 중국과 수교하고,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 선언을 체결한 것은 발빠른 대응이었습니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을 위한 남북고위급회담 취재를 위해 평양을, 이어 한·중 수교협정 체결을 위한 노 대통령의 방중 취재를 위해 북경을 각각 다녀오면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남북통일도 이뤄질 것처럼 자신만만해 하던 노태우 정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난 오늘 김일성 김정일이 가고, 김정은이 온 지도 10년이 넘었음에도 진전이 없는 남북관계에서 아직도 우리는 그런 자아도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봅니다.
노태우 정부 이후 정부들이 추진한 역사(役事)들을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완공한 청계천 복원사업, 또 대선공약사업으로 추진해 현재 문재인 정부로부터 사업의 타당성이 부정당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고작입니다.
나머지 대통령들은 인프라구축보다는 제도 개혁에 치중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실명제실시나 하나회해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자금법개정 등 제도개선에 기여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갈등의 확대재생산에 대한 기여가 못지 않았습니다. 남북관계 개선도 수차례 정상회담도 있었으나 유엔동시가입의 성과를 능가하는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른 정부의 방침은 합당합니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이 문상을 하지 않고, 여당의 당직자들이 영결식장에 불참한 것은 국가장의 취지를 퇴색시켰습니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는 조문을 가서 “빛의 크기가 그늘을 덮지는 못한다”고 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그늘'에 대해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런 말을 조문하는 자리에서 하는 것은 망자에 대한 예의는 아니고, 더욱이 치적인지, 범죄인지 구별이 안 가는 ‘대장동 사업’을 고작 자신의 최대 치적이라고 말하는 대선 후보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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