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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순간만 잡고 별이 되지 못했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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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순간만 잡고 별이 되지 못했나?

새벽이슬1 2021. 3. 23. 09:51


그들은 왜 순간만 잡고, 별이 되지 못했나
[아무튼, 주말] 2000년 이후 떴다가 사라진 ‘별의 순간’ 2022년 윤석열은?


2017년 1월 18일 오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광주광역시 조선대에 강연하기 위해 등장했다. 유엔 총장으로 10년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1주일여 지난 시점이었다. 그런데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80% 이상은 어르신이고, 학생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의 방문에 항의하려고 시위를 벌인 학생 10여 명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반 전 총장 캠프에서 일한 A씨는 말한다. “캠프 내 일부 사람은 총장님이 대학서 강연하면 구름처럼 학생들이 몰려들 거라고 주장했지요. 현역 유엔 사무총장 때면 몰라도, 정치판이라는 링에 오르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요. 대학 강연은 보류하고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고 의견을 냈는데, 결국 체면만 구겼지요. 별의 순간을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로 올라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언급하며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표현했다. 김 위원장은 14년 전인 2007년 3월에도 언론 인터뷰에서 “인간에게는 살아가는 동안 ‘별의 순간’이 하나 있는데, 그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고 기회를 놓치면 역사의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밖에 없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확신을 갖고 정치에 덤벼들어야 한다”고 했다.

별의 순간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절정의 인기를 잡는 상황을 의미한다. 2000년 이후 특정 정당에 몸담지 않고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찍은 사람으로 범위를 좁힐 경우, 별의 순간을 잡은 사람은 정몽준(2002년), 고건(2007년), 안철수(2012년), 반기문(2017년) 4명 정도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그 ‘순간’만을 잡았을 뿐, 별이 되지는 못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별의 순간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물었다.

① 2002년 정몽준

2002년 8월, 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대선 여론조사에서 처음 1위를 차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한축구협회장으로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민주당 대선 후보 노무현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새 인물의 등장을 원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인기가 치솟았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46.8% 대 42.2%로 졌다. 대선을 불과 25일 앞둔 날이었다.

당시 정몽준 후보의 대변인이던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은 “별의 순간을 잡았을 때 곧바로 은하수를 만들어 뿌려야 했는데, 막판에 타이밍을 놓치면서 실패했다”고 했다. 그는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방식에 대해 양측이 처음 합의했음에도, 캠프 내부에서 수정을 요구하면서 시점을 잃은 게 패착이었다고 했다. 김 전 대변인은 “당시 싸움은 프로(민주당) 대 아마추어(정 후보 측 국민통합21)의 대결과 같았다.

노무현 후보는 선거를 전문으로 하는 세력이 받쳐줬는데, 우리 쪽은 민주당에서 온 사람, 정 후보가 경영하는 현대그룹에서 온 사람 등이 뒤섞이면서 적군과 아군(彼我)도 제대로 구별되지 않았다. 정당 진용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니 이기기 어려웠다”고 했다. 이종근 전 데일리안 논설실장은 “인기를 기반으로 대권을 거머쥐려면 정치에 대한 스토리가 필요한데, 당시 정몽준 후보는 월드컵 말고는 감동을 준 적이 없고, 정치철학이나 스토리를 보여주기엔 기간이 너무 짧았다”고 분석했다.

② 2007년 고건

고건 전 총리는 2004년 무렵부터 2006년 초반까지 대선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기간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무난히 일했고, 노 대통령 탄핵과 대연정 제안 등으로 피로감이 커지자, 그의 안정감에 호감을 보낸 국민이 많았다. 하지만 이후 지지율을 계속 떨어졌고, 대선을 11개월 앞둔 2007년 1월 말 그는 출마를 포기했다.

당시 고 전 총리를 도운 김덕봉 전 국무총리실 공보수석은 “중립 지대를 새롭게 만들려고 했는데 정당의 뒷받침 없는 상황에서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가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시절 노 대통령은 그를 총리로 임명한 것에 대해 “실패한 인사였다”고 발언했다. 그러자 여권 지지자가 대거 등을 돌렸고, 지지율이 떨어졌다.

김 전 수석은 “최소한 원내 교섭단체 규모의 정당 지원이 있어야 그런 상황이나 공격에 대한 방어가 가능했다. 정당 지원 없이 대선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고 느꼈다”고 했다. 고 전 총리의 정체성이 모호한 것도 문제였다는 지적도 있다. 차재원 전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은 “고 전 총리는 보수 진영에서 국회의원과 총리를 했다가 진보 진영에 와서 서울시장과 다시 총리를 하다 보니, 국민이 정체성이 뭔지 의문을 가지면서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③ 2012년 안철수

안철수 현 국민의당 대표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던 2011년부터 대선 후보로 거론됐다. 이후 그의 대선 출마 여부는 늘 뉴스의 중심에 있었다. 대선을 석 달여 앞둔 시점에 ‘새 정치’를 내걸고 공식 출사표를 던졌지만 실패했다. 당시 캠프에서 활약한 B씨는 “안 후보의 정치 근육이 작았다”는 표현을 썼다. B씨는 “기업 경영을 잘하니까 국가 경영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고, 후보의 능력이 다소 떨어지면 캠프에 있는 참모의 능력이라도 좋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인사는 “대선은 1년 이상 준비해야 하는데, 공식 출마 선언을 하고 캠프가 제대로 가동된 것은 두 달여에 불과했다. 안 후보가 대선을 제대로 준비하려고 했다면 그해 4월에 치른 총선에 먼저 나와 정치판을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태일 전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업 경영이나 운동처럼 직업에는 그 나름의 평가 기준이 있는데, 정치도 마찬가지”라며 “안 후보가 당시엔 정치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치가 요구하는 평가 기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④ 2017년 반기문

2016년 12월 3주 차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보면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의 지지율은 23.3%로 전체 1위였다. 다음해 1월 그가 총장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자, 인천국제공항에는 환영 인파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스텝이 꼬였다. 반 전 총장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승차권을 사려고 했는데, 발매기에 현금 2만원을 한꺼번에 넣다가 구설에 오른 것이다. 반 전 총장 캠프에 몸담았던 A씨는 “나이도 많고,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왔기에 굳이 지하철 귀가라는 장면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는데, 그를 돕던 외교관 출신 인사들이 적극 권했다가 망신을 당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후 반 전 총장은 대학 강연에 나섰지만 ‘겨울방학에 학생도 없는데 무슨 대학 강연이냐’는 핀잔도 들어야 했다. A씨는 “유력 대선 후보가 나타나면 사방팔방에서 다양한 사람이 모여들어 각자 의견을 내는데, 이를 잘 판단해내는 게 후보의 능력”이라며 “탄핵으로 예정보다 반년 이상 빨리 대선이 치러지게 되면서, 반 전 총장이 정치를 익히고 판단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결국 스스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캠프 인사는 “정치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치보조금을 받는 정당이 필요한데, 입국 전에는 당장 영입할 것 같던 보수 진영 인사들이 머뭇거렸다. 정당 지원 없이 나서다 보니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 역시 정치 근육이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차재원 전 국제신문 부장은 “유엔 사무총장 재직 시절에는 어딜 가나 환영하고 받들어 모시지만, 정치판에 들어오는 순간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정치라는 것이 얼마나 험하다는 것을 각오하고 와야 하는데, 거기에 대한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⑤ 2022년 윤석열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대선을 1년여 앞두고 별의 순간을 잡았다. 그가 별이 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은 “권력욕을 바깥으로 완전히 드러내면 인기가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며 “정치에 대한 수련이 돼 있어야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 텐데 아직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성공 여부를 예단할 수 없다”고 했다. 최병묵 TV조선 해설위원은 “지금까지 별의 순간을 잡은 사람들이 실패한 것은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놓고, 혼자 고고한 척, 정치권은 구태로 봤기 때문”이라며 “법조 출신 엘리트들은 대개 ‘머리’로만 정치를 하는데,

윤 전 총장은 이런 전철을 밟지 않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윤 전 총장은 대부분이 모범생인 법조 엘리트와는 달리 10여 년 동안 고시촌에 있으면서 후배들 술도 사주고 이런저런 것을 겪었다. 특히 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치받으면서 자기 영역을 개척했기 때문에 예전 후보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근 전 데일리안 논설실장은 “윤 전 총장이 여권과 대립하면서 맷집이 생겼는데,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말의 일관성이 있는지, 정치인으로 협상과 조율 능력이 있는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창렬 기자 202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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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가도 나서는 윤석열, 그의 충암고-서울대 인맥은...

‘충암고-서울대’로 구축된 윤석열의 ‘전방위 인맥’ 대해부


윤석열 전 검찰총장/김지호기자
윤석열(61) 전 검찰총장(이하 직함 생략)이 정치 행보를 본격화하면서 ‘윤석열 인맥’에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월간조선》은 정국의 핵(核)으로 부상한 윤석열의 인맥을 파헤쳐봤다. 미리 밝혀두는 바이지만, 이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윤석열과 ‘두터운 친분’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윤석열이 쌓아온 이력과 취재를 기반으로 파악한 광의(廣義)로서의 인맥이지, 그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간주하는 게 아님을 밝힌다.

핵심은 ‘충암고·서울대’ 인맥

윤석열 인맥의 핵심은 크게 충암고, 서울대 인맥으로 나뉜다. 윤석열은 충암고(8회)와 서울대 법대(37회)를 졸업했다. 이중 충암고는 그간 ‘바둑·야구·연예인’ 학교로 잘 알려져 있었다. 충암고 동문들을 잘 살펴보면 법조계는 물론 경제계, 학계, 언론계, 군(軍) 등 다양한 분야에 포진해 있다. 이들이 윤석열 대선 가도(街道)에 어떤 역할을 할지 알 순 없지만, 그가 사실상의 정치 선언을 한 이상 예의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윤석열이 대권에 도전할 경우, 가장 취약한 분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경제다. 그렇다면 윤석열이 대선에 출마했을 시 경제 참모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취재를 통해 향후 윤석열에게 경제 관련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인물, 두 명을 꼽을 수 있었다. 이들은 아직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아 이 기사에선 부득이 익명 처리했음을 일러둔다.

윤석열과 친분이 있는 한 재계 인사는 기자와 만나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윤석열의 경제 인맥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나.

“굳이 따진다면 전직 교수 A씨를 들 수 있다.”

- 생소한 이름이다. 윤석열과는 어떻게 연결돼 있나.

“학연으로 연결돼 있다. A씨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국제 금융계에서는 이름이 알려져 있다.”

-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모 투자회사 대표인데 미주(美洲)와 중동 등지에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A씨가 굴리는 돈의 액수가 엄청나다. 학자 출신이라 거시경제는 물론, 미시경제에 대한 이해도 또한 깊다는 평가를 받는다.”

- A씨가 국내에서도 활동하나.

“당연하다. 국내 모 대기업 회장과 친분이 두텁다. 그 대기업 회장이 한때 구속됐다가 풀려난 적이 있는데, 회장이 A씨에게 향후 그룹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자문한 적이 있다. 그만큼 국내외 경제계·재계 인사들과 깊은 교감을 나누는 인물이다.”

전직 경제 부처 국장 출신의 한 인사는 A씨와 함께 국제 금융계에서 M&A 전문가로 활동 중인 B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B씨는 노무현 정부 시절, 고위 경제 관료를 지낸 인사의 친척이다. 그는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MBA를 마치고, 현재 미국과 홍콩의 투자 자문회사 대표로 있다. B씨 역시 윤석열과 학연으로 연결돼 있다. 전직 경제 부처 국장의 말이다.

“B씨는 해외에서 투자 자문회사를 운영하면서 상당한 재력을 갖췄다. 몇 년 전 국내 모 금융회사가 베트남 증권사를 인수할 때, 중간에서 역할을 했던 인물이 B씨다. 대기업 M&A에도 많이 참여했었다. B씨의 장점은 발이 넓다는 건데, 국내 코스닥 상장사 대표들은 물론, 정치권 인사들과도 친분이 깊다.”

이들은 경제뿐 아니라 외교 부문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두 사람을 잘 아는 이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A씨와 B씨 모두 해외에서 오랫동안 일했기 때문에 ‘순수 국내파’라고 할 수 있는 윤석열의 깊이와 폭을 넓혀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와 금융계 인맥


옥경석 대표이사, 조재민 전 KB자산운용 대표이사, 서명석 유안타증권 경영고문
이름이 잘 알려진 대기업의 임원급 중에서 윤석열 인맥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은 누굴까. 우선 옥경석(63) 한화정밀기계 대표이사와 이기흥(58) 신한생명 DB마케팅그룹 부사장을 들 수 있다.

옥경석 대표이사는 충암고(6회)와 건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옥경석 대표는 삼성전자 출신으로 2016년 한화그룹에 전격 영입된 케이스다. 옥경석 대표는 김승연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2018년 한화 화약·방산 통합 부문 대표이사에 발탁됐고, 2020년 9월부터 한화정밀기계를 이끌고 있다. 이기흥 부사장은 충암고(11회)를 나와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헐트국제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고, 2020년 7월 신한생명 DB마케팅그룹 부사장에 선임됐다.

금융권에서는 조재민(59) 전 KB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이 있다. 충암고(10회)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뉴욕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 주요 자산 운용사 CEO로는 최연소(47세)로 KB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조 전 사장은 2013년 KTB자산운용 대표로 갔다가 2017년 다시 KB자산운용 대표이사로 컴백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2000년 마이다스에셋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래 20년간 자산 운용사 사장을 지내 ‘업계 최장수 CEO’란 별명도 얻었다.

서명석(60) 유안타증권 경영고문도 금융권 인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서명석 고문은 충암고(9회)와 서강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1986년 동양증권에 입사해 2014년 동양증권 대표이사 사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14년 10월 동양증권 사명(社名)이 유안타증권으로 바뀌면서 공동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김군호(55) 에프앤가이드(fnguide) 대표도 충암고(9회)와 홍익대 경제학과, 연세대 대학원(경영학 석사)을 졸업했다. 에프앤가이드는 현재 주식과 채권, 펀드에 대한 성과평과와 분석, 기업의 재무, 가치평가 등 수천만 건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금융정보업체로 성장해 코스닥에 상장(上場)됐다.

윤석열의 학계 인맥에는 정재호(61)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와 박종구(63) 초당대 총장, 그리고 유지상(59) 광운대 총장 등이 있다.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종구 초당대 총장, 김경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조선DB
‘중국통’으로 알려진 정재호 교수는 윤석열의 충암고 동기로 서울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정재호 교수와 윤석열은 2년여 전까지만 해도 친한 고교 동기 예닐곱 명이 만든 모임에서 자주 얼굴을 맞대던 사이다. 윤석열은 검찰총장에 부임한 뒤엔 이 모임에 자주 참석하지 못했지만, 정재호 교수 등 나머지 멤버들은 이따금 모임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정 교수는 미국 브라운대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미국 미시간대 정치학과 조교를 시작으로, 홍콩과학기술대 교수, 홍콩 성시대(城市大) 연구위원을 역임한 뒤, 1996년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박종구 초당대 총장은 충암고(4회)를 나와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종구 총장은 학계뿐 아니라 관계(官界), 재계(財界)와도 연결돼 있다.

박종구 총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 공공단장을 시작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2차관을 지냈다. 박 총장의 선친은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1901~1984) 회장이다. 박종구 총장은 박인천 회장의 막내아들(5남)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그의 형이다.

2018년 취임한 유지상 총장은 충암고(10회)를 졸업하고 서울대 전기공학과에서 학·석사, 미국 퍼듀대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관계 및 외교ㆍ안보 인맥

관계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김경욱(55)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다. 김경욱 사장은 충암고(13회)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국토교통비서관에 발탁됐으며, 문재인 정부 들어 새만금개발청 차장, 국토교통부 기조실장, 제2차관에까지 올랐다.

2020년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고향인 충북 충주에서 출마했으나, 고배(苦杯)를 마셨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업무 능력을 높이 평가했던 공무원 중 한명이다. 두 사람은 국토교통부에서 2년가량 호흡을 맞췄다.

종편 채널 등에 자주 출연해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논평하는 홍현익(62)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도 충암고(7회)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 이원석 전 대검 기획조정부장, 이종석 헌법재판소 재판관
군(軍) 인맥으로는 김영식(63) 전 제1야전군사령관(육사37기)과 김용현(62) 전 합참 작전본부장(육사38기)을 들 수 있다. 김영식 전 사령관은 ‘작전통’으로 1군사령부 작전처장, 육군 15사단장, 5군단장, 항공작전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김 전 사령관은 충암고 6회 졸업생이다.

충암고 7회인 김용현 전 본부장 역시 ‘작전통’으로 분류되는 장성이다. 현역 시절 육군본부 비서실장, 1군사령부 작전처장, 육군 17사단장, 수도방위사령관 등 핵심 요직을 거쳤다.

광범위한 법조 인맥 중 잘 알려지지 않은 핵심은?

법조계 인맥의 핵심은 단연 한동훈(48)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과 윤대진(57) 사법연수원 부원장이다.

윤석열이 이 두 사람만큼 신임하는 검사는 이원석(52) 수원고검 차장검사라고 한다. 이원석 검사는 윤석열 총장이 평소 조언을 구하는 후배로 알려져 있다. 이원석 검사는 중동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199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27기로 수료했다.

이원석 검사는 2019년 7월 윤석열이 검찰총장이 됐을 때, 대검 기획조정부장에 임명됐다. 기획조정부장은 대검 핵심 보직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검 기조부가 검찰 전체의 두뇌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이 이원석 검사를 얼마나 신임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원석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과 여주지청장 등을 지냈는데, 공교롭게도 윤석열이 거친 보직이기도 하다.

법원 쪽에서는 이종석(61)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눈에 띈다.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종석 재판관은 윤석열과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다. 법대 재학 시절 같은 반으로 서로 막역한 사이였다고 한다.

두 사람의 법대 동기인 한 법조인은 “이종석 재판관이 조용한 성격에 모범생이었던 데 반해, 윤석열은 활달한 성격에 술도 잘 마시고 친화력이 뛰어났다”며 “서로 어울리지 않는 성격인데도 죽마고우처럼 친하게 지내왔다”고 전했다.

2006년 4월, 윤석열 당시 대검 중수부 검사는 현대차 부채 탕감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와 이성근 산은 캐피탈 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종석 재판관이 당시 이 사건 영장전담 판사였는데 이 재판관은 ‘범죄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종석 검사는 윤석열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며 “윤 검사도 업무에 관한 부분이니 잘 이해해주리라 믿는다”고 말해 두 사람의 오랜 우정을 드러내 보였다.

충암고(7회)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석웅(62) 변호사는 ‘추미애-윤석열’이 격돌했을 때 윤석열의 법률 대리인을 맡았다. 이석웅 변호사는 윤석열의 고교와 대학 선배다.

정치평론가 C씨는 나름대로 충암고-서울대 인맥을 체계적으로 분석해봤다고 한다. C씨는 “비(非)명문고 졸업생들의 특징은 어떤 목적의식이 생기면 단번에 뭉치는 경향이 있다”며 “충암고-서울대 인맥도 본격적인 대선전에 접어들면 다탄두 조직으로 탈바꿈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다탄두 조직이 어떤 의미냐’고 묻자 D씨는 “말 그대로 요소요소에서 ‘윤석열 붐’을 일으키는 작지만 강한 점조직 형태를 뜻한다”고 답했다.

조성호 기자 월간조선 2021.03.21.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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