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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다음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되야하나? 본문
2020년 이후 다음 대통령은?작성자愚羊
우리는 지난 19대 대선에서 희미한 촛불 뒤에 숨겨진 어두운 그림자를 보지 못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아 ‘이게 나라냐?’ 하며 가슴을 치고 있다.
우리나라에 좌파가 얼마나 되나? 결국 우파가 문재인 좌파를 뽑은 셈이다. 보수우파 후보 3명의 난립, 그리고 문재인 득표의 87%가 20~50 세대의 몫이었다. 따라서 차기 대선에서 우파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첫째 단일후보 화, 둘째 50대 이하의 지지율 확보 없이는 불가하다.
다행히 어제 TV대담에서 야당 조경태 의원이 패권 정치가 아니고 국민을 위해 일 할 수 있는 후보로 단일화 할 필요성을 강조했고 안철수 대표도 단일화를 위한 신당 창단을 거론하여 정치권에서 국민들에게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의 서광을 비춰주었다.
앞으로 시민사회 단체를 위시한 국민들이 주마가편 식으로 단일화 행마에 채찍을 높이 들어야 할 것이다.
단일화가 대선의 필요조건이라면 남은 문제는 50대 이하의 젊은 층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후보를 선정하는 것이 충분조건 일 것이다.
11월 11일 조선닷컴이 전한 놀라운 뉴스는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지율은 24.7%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22.2% 이재명 경기도지사 18.4%를 꺾고 1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번 여론조사는 지역별 연령별 가중치를 주어 객관성을 기하였다고 한다.
연령별로는 윤 총장 지지율은 60대 이상(31.8%), 20대(25.5%)에서 높게 나타났고 50대는 24.4%, 30대는 19.6%, 40대는 18.4%로 집계됐다. 정치에 무관심한 계층으로 인식되고 있는 20대 층에서 높은 지지율이 나타난 것이 특이한 현상이다.
추미애가 드루킹 고발로 자충수를 뜨더니 또 윤석열 자충수로 시중에서 떠도는 추미애 장관 오래해야 한다는 얘기가 실감난다.
과연 보수우파의 차기 대선 주자는 누가 되어야 할 것인가? 한마디로 문재인과 노무현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정답 일 것이다.
2년 전에 쓴 글을 첨부한다. 2020.11.11.愚羊
문재인의 總體的인 不足/愚羊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기침을 시작하는 가 했더니 지난 한 해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물처럼 몰려오듯이 근 일주일째 뼈마디뿐 아니라 창자까지 쑤시는 감기 몸살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샤워도 못하고 이불 뒤집어쓰고 땀을 흘리기만 하다가 오늘 드디어 코피가 터지고 기침이 잦아들어 이 글을 쓰게 되어 다행이다.
‘ 文 대통령에게 부족한 것은 知 아닌 德“이란 12월 27일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이 쓴 칼럼 제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실제 상황과 동떨어진 이상한 얘기를 할 때마다 지적 능력이 모자라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무성하게 나온다....문 대통령은 과거 명문고를 나오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다. 직접 만나 보았을 때 지적 능력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충분하다고 느꼈다.”
이렇게 시작된 글을 읽고서 ‘아니 국내 최대 일간지 주필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나 하고 열을 받았다. 그렇다면 A4용지는 知는 있는데 치매설이 맞다는 소리인가? 명문 고등학교는 뭐며 사법시험은 뭐냐?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知이고 사법시험 준비하느라 육법전서 공부하는 것이 知인가? 내가 알기로는 고등학교 교육은 사회에 나와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초를 가르치는 것이고 知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졸업(卒業)을 Graduation이라고 하지만 Commencement라고 ‘시작’이라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知일 것이다.
孔子가 아낀 수재자 안회(顔回)는 知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스승의 질문에 ‘知者,自知也’ 즉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은 성탄메시지에서 "나의 행복이 모두의 행복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이것이야 말로 乙이 甲에게 하는 逆甲질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종복(從僕)이지 군주제의 짐(朕)이 아니다. 과연 법 정신을 알고 자신을 알고 있고 知가 있다고 할 수 있나? “국민 모두의 행복이 바로 나의 행복입니다” 라고 해야 할 것 아닌가? 주어와 목적어와 서술어가 뭔지 모르는 것이 知인가?
그러나 이런 의문은 양 주필의 다음 행에서 다소 오해는 풀렸다. 주필은 문 대통령의 문제는 지적 능력이 아니라 폐쇄성과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강한 敵對感을 지적하면서 오히려 知 보다는 德을 문제 삼았다.
문재인은 사법시험을 패스 한 이후로 주로 인권변호사 일에 종사해 왔다. 그러나 북한 2천7백만 자유 없이 억압 받는 주민들, 8만 미송환 국군포로, 10만 625납북인사들 그리고 최근 북한에 억류된 10여명의 대한민국 국민들과 과거 정권 관련자들의 보편적인 인권에 관해서는 한눈도 주지 않고 오직 편향되고 폐쇄적인 좌파 일변도의 인권에 몰두하고 있다.
知와 德을 겸비한 지도자였으면 오죽 좋으련만 德將이 못될 뿐 아니라 知將도 못되기에 대한민국은 큰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지도자에게 왜 知가 필요한가?
蘇光熙 전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人間의 生死는 자연의 攝理이지만 그가 사는 곳은 自然이 아닌 歷史世界이다. 자연세계는 번식본능이지만 역사세계는 ‘사유(思惟)’의 세계이다. 즉 분별하고 판단하는 세계이다.”라고 말했다. 인간도 자연 속에서 살고 있지만 유일하게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물질적 형이하학보다 정신세계를 더 강조한 것이다. 蘇 교수는 여기에서 국가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두 가지 덕목을 제시하고 있다고 나는 판단했다..
하나는 역사관이다. 지도자의 역사관은 필부와는 달리 참새가 아니고 독수리처럼 높이 날라 앞뒤로 멀리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과문인지 몰라도 문재인 역사관은 멀리로는 겨우 1919년 상해임정으로 모택동, 신영복,박노해,제주43사건과 세월호에 머물고 있고 광개토대왕 이순신,세종대왕 등은 찾아볼 수가 없다. 미래에 대해서는 더 한심하다, 중앙부서의 과장급이 한 달 뒤 국사를 걱정한다면 국가의 수장은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기해야 할텐 데 과거 적폐청산에 메달려 있고 미래는 오직 남북 위장 평회만 메달려 있는 것 아닌가? 경제도 기업 투자의욕을 살려 일자리 창출에 주력해야 하나 오히려 지난 한 해 3,500여개 기업을 해외로 내몰고 있는 것 아닌가?
더 한심한 문재인의 역사관은 등잔 밑이 어둡다고 현실 인식이다. 9.19 평양회담 부속 군사합의서의 주요 내용은 남북간 긴장 완화를 위해 우발충돌을 막기 위해 완충지대를 확충한다는 명목으로 GP도 철거하고 공중정찰도 못하고 서해 NLL 수역도 평화수역으로 만든 것이다. 그 바람에 살릴 수 있는 김일병의 목숨도 비행금지 때문에 놓쳤다.
그러나 우발 충돌은 누가 했는가? 남북한 상호인가? 남한이 군사협정을 위반하고 무력충돌을 일으킨 적이 있나? 북한은 휴전 후 무려 2,700여회나 무력 도발을 한 것이다. 심지어 서해교전 시에 지침으로 내린 남침한 적함을 사격도 못하고 선체로 밀어내라는 김대중의 교전수칙 때문에 윤영하 소령 등 6명의 해군 장병이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것이다. 우발충돌을 막으려면 북한의 소행을 더 감시 감독하여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북한의 장사포 등 공격용 화력과 전투 배치를 후방으로 물려야 해야 하나 적반하장 격이다. 이 역사관과 현실 인식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 발 뻗고 잘 수 있단 말인가?
둘째는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思惟力이다.
직위가 올라갈수록 판단해야 할 回數는 많아지고 深度는 깊어지고 視界는 넓어지고 時間的으로는 멀리 내다 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란 힘든 것이다. 특히 국가 지도란 말할 것 없다. 올바른 人生觀 國家觀 歷史觀 世界觀을 갖추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노력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임금도 경연(經筵)이라는 강론을 받았다. 연산군 같은 폭군은 경연을 멀리했지만 성종은 하루에도 서너번 씩 경연을 수행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보아 문재인에게는 올바른 판단할 수 있는 知가 총체적으로 부재하다고 본다..
서양의 유명한 철학자는 “인류의 역사는 惡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현실적으로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은 惡이고 善은 惡을 추방하기 위한 하나의 <이데아>로만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惡은 공격기재이고 善은 방어기재라는 뜻이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현실을 말하는 같다.
이 말에서 우리는 정치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정치 체계의 본성에 관한 올바른 理解와 수많은 세속적 경험을 통해 도달한 經綸, 이러한 것들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善한 意志 등과 같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문재인으로 부터 理解力과 經綸과 善한 意志를 기대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양상훈 주필이 쓴 칼럼의 제목은 “文 대통령의 부족한 것은 知 德을 포함한 총체적인 부족이다.” 라고 고쳐 써야 맞는 것 아닌가?
2018.12.30 愚羊
노무현의 '怨恨정치'- 대한민국의 역사와 체제에 대한 앙갚음.
아래는 ‘민족정론지’ 2006년 2월에 실린 故 조규석 언론인의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다만 제목을 '원한(怨恨)의 정치'에서 '원(怨)'의 정치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한恨'은 푸는 것이고 '원'은 갚는 것이다. '한'은 미래지향적이고 '원'은 과거 지향적이다. '한'은 주체가 자신이고 내 탓이고 '원'은 타인이고 외부 요인이고 네 탓이다. '한'은 긍정적이고 ' 원'은 부정적이다.
노무현이 송기인 신부와의 어느 술자리에서 자신이 대학을 나오지 못한 것에 대해 통분을 토로했다면 이는 기득권에 대한 원(怨)의 정서인 반면 과거 집안이 못살아도 독학으로 공부하여 대통령이 되어 '한'풀이를 했다고 기회 평등의 민주 사회에 감사하게 생각하면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 사고다. 박정희의 부친은 묘지기로 가난한 집안 형편은 노무현 보다 더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의 배고픔의 보리 고개를 없애려고 통일벼를 개발하고 산업화를 하여 재벌을 탄생시켰으니 미래지향적인 한풀이를 한 것이다.
노무현은 ‘怨恨의 정치’로 역사와 체제에 대해 앙갚음 하는가.(조규석)
“여러 시각과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노무현을 파악하는 키워드는 다만 두 가지- 그의 역사인식과 계급의식(계층의식이라고 해도 된다)이라는 게 개인적 판단이다. 그의 역사인식이 계급의식을 형성케 했는지, 계급의식이 역사인식의 연역적 근거로 작용했는지, 그 선후 관계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근현대사와 현실사회의 계층 구조에 대한 그의 인식· 의식을 규명하지 않고는 노무현 정권의 국정운영에 대한 분석과 평가 그리고 전망도 설득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가 오늘까지 토로한 숱한 어록 가운데 중요 대목으로 기록될 “친일파의 자손은 3대를 떵떵거리며 살고 독립 운동가 자손은 3대가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발언이야 말로 근현대사에 대한 그의 인식체계의 뼈대다. 근현대사에 대한 그의 인식이 부정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 그 발언의 포괄적 함의(含意)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자신은 물론 그를 포진하고 있는 권력핵심들이 우리의 근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인식하고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일이다. 해방이후 건국과정에서 부터 친미 우파세력이 득세하면서 민족 자주 세력이 좌절했고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 분단의 영구화를 가져 왔다는 것이다. “
”대통령 노무현의 역사인식과 계급의식은 기본적으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연유했는가.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되 우수한 머리와 불굴의 의지를 자산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젊은 날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시대와 사회에 대한 울분이야 말로 그의 정신세계 혹은 사상체계 형성에 기본 자양이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가 정신적 사부(師父)로 모셔 왔다는 송기인 신부와의 어느 술자리 에피소드 하나가 이를 상징적으로 전해 준다. 술김에 호머의 오디세이 구절을 막힘없이 읊었고 이에 감탄하는 송 신부에게 ’...이런 내가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세상‘에 대해 통분(痛憤)을 표출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를 ‘기득권과 反기득권의 대결구도’로 파악하고 있다는 송 신부 앞에서 나온 그런 통분은 두 사람 간 유대(紐帶)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인간 노무현의 불우한 여건이 근현대사의 잘못된 전개 결과로 잘못 짜여진 계급 구조 때문이었다는 인식을 정신적 사제(師弟)가 단단하게 공유하고 있었음을 알려 준다.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위원장 자리에 송 신부를 앉힌 사실로서 노무현의 근현대사 인식과 계급의식은 말 그대로 골수에 사무쳐 있음을 내외에 거듭 확인시켜 준 셈이다.
그의 이와 같은 역사인식과 계급의식은 결국 건국이념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와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로 연결됐을 것임을 추정하기 어렵지 않다. 두렵게도 우리는 현실에서 이를 확인하고 있다.
여기서 (재작년에 칼럼을 통해 간략히 소개했던) 한 일본 신문의 기사 내용을 다시 떠 올리게 된다. 일본의 유력지 산케이 신문은 국회의 탄핵 소추 직후 노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바로 '한(恨)의 정치'라고 해설한 기사를 크게 게재했었다. “서민적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정치 스타일의 이면에는 학력 콤플렉스를 포함해 자신의 과거로부터 가져온 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한이 있는 것 같다. 노무현 정치는 그래서 좋게 말하면 약자 중심을 위한 '사회개조의 이상주의'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콤플렉스에 의한 '한풀이 정치'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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