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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김정은의 독재를 봤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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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김정은의 독재를 봤다.

새벽이슬1 2018. 4. 29. 21:52






“트럼프에게 노벨상” 외치는 美군중들…노벨상 수상, 과연 꿈일까?


세계는 김정은의 실상을 봤다.

 

김정은은 어떤 사람일까? 그는 역시 할아버지 김일성 특성(trait)을 닮았다. 김일성은 6·25의 동족상잔을 주도했다. 세계에서 온 기자들은 68년 전 한국전쟁 당시의 역사를 염두에 두고 왔을 것이다. 당시 유엔은 한국전을 참전했고, 지금도 안보리 15개국이 만장일치로 북한제재를 통과시켰다.

 

역시 김정은은 와일드카드를 들고 나왔다. 물론 미북 정상회담이 곧 있을 예정이니, 그 때 어떤 카드를 들고 나올지 모른다. 4·27판문점 회담에서 나온 그는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적의가 넘쳤다. 그러나 문재인 씨는 그 앞에서 평화를 구걸했다. 처칠은 ‘평화는 강자의 특권이다.’라고 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북핵은 ‘美·北’에 넘기고 대북 지원 앞세운 남북 정상회담〉이라고 했다. 동 기사는 “이번 회담은 오로지 북핵 폐기를 위해 열린 회담이었다. 누구나 그렇게 기대했다. 북핵 폐기가 되지 않으면 무엇을 합의해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나온 합의문을 보니 비핵화 문제는 마치 마지못한 장식용처럼 맨 마지막 항에 단 3문장으로 들어가 있다.”라고 했다. 동 신문 황대진 기자는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운만 뗐다.

 

동 신문 공동취재단 최연진 기자는 〈(남북 정상 환담·내용은) 金 ‘우리 때문에 새벽잠 안 설치시게 하겠다.’ 文 ‘발 뻗고 자겠다.’〉라고 했다. 동 기사는 “김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다. 실향민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도 오늘 우리 만남에 기대를 가지고 있을 것을 봤다.’”라고 했다.

 

김정은은 웃으면서 공포, 전투 이야기를 했다. 대한민국과 유엔은 살상 핵무기,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제제를 강행하고 있으나, 김정은 여전히 전쟁 이야기로 시작했다. 6·25 전쟁이 아직 한반도에서 끝나지 않았음을 실감이 나게 한 대목이다.

 

그 전쟁의 경험은 스탈린(1879.12.18.~1953.3)에서 시작한다. 스탈린은 1924년 1월 21일 레닌이 죽고 실권을 잡았다. 당시 김일성은 12살이었다. 그리고 그가 한반도에 나타난 것은 33살이었다.

 

레닌, 스탈의 경험은 1905년 1월 9일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에서 시작한다. 농민의 봉기, 학생의 데모, 정치적 암살 등이 이뤄졌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내세우고, 그들은 주요 인사를 암살했다. 당시 스탈린은 26세였다. 그 주동자들은 레닌, 스탈린 같은 18~24세 정도의 청년들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젊은 층은 나이든 주요 인사들을 죽이고, 짜르는 청년들을 죽였다. 그날은 아비규환이었다.

 

이들이 1917년 러시아 혁명의 평행이동을 하면 30세 초반이었다. 인간백정 스탈린이 진짜 등장한 것이다. 김일성은 12살 때 1924년을 맞고, 소련으로 잠입했다. 그게 배운 것은 지금 북한에서 하는 무자비함 그 자체였다. 김정은 자기 할아버지에게 그걸 배고 배웠다. 그의 지금까지 행적으로 봐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당시 ‘프롤레타이 독재’에서 ‘독재’는 다른 말로 폭력(violence)이었다(V. I. Lenin. The Essential Lenin, Ernst Fisher and Franz Marek(ed), New York: The Seabury Press, 1972, p.82). 스탈린에게 폭력은 살상이었다. 6·25 동족상잔은 그런 것이었다.

 

김정은은 세계 언론이 보는 앞에서, 다시 폭력을 꺼냈다. 그는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지식인은 그에게 답을 줘야 한다. 조선일보 윤평중 칼럼은 2월 23일〈‘평화는 강자의 특권이다.’〉라고 했다.

 

동 칼럼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처칠(1874~1965)은 외톨이었다. 나치를 강력 비판해 정치적 퇴물로 여겨졌다. 당시 영국은 체임벌린(1869~1940) 총리의 유화(宥和) 정책이 득세했다. 히틀러에게 굴욕적인 양보를 거듭한 뮌헨협정(1938년 9월)으로 체임벌린은 ‘우리 시대의 평화’를 이룬 정치가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처칠은 평화를 구걸한 뮌헨협정은 휴지조작에 불과하다고 외쳤다. ‘평화는 강자의 특권이다.’는 게 그의 확신이었다. 1939년 9월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하자 처칠의 혜안이 입증되었다.”라고 했다

 

민주노총은 박근혜 대통령을 폭력으로 끌어내렸다. 그 때 지식인들은 무엇을 한 것인가? 조선일보 김윤덕 문화1부장은 〈‘지식인으로 나는 죽어 마땅하다’〉라고 했다. 동 칼럼은 “정권이 바뀌고 KBS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그(이인호)는 ‘KBS가 노조의 권력 놀이터가 될 것’이라 일침을 놓은 뒤 칩거에 들어갔었다. (3·1절 오후) 찻잔을 매만지던 노 학자가 깊은 한숨 끝에 내놓은 탄식이 서늘했다...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나는 죽어 마땅하다. 나라가 이 지경되는 걸 막지 못한 죄, 국민의 역사 인식이 잘못돼 가는 걸 막지 못한 죄, 지식인들이 앞장서 나라 파괴하는 걸 막지 못한 죄..배웠다는 사람들, 머리로만 살아온 자들이 우리 앞 세대가 온몸으로 피땀 흘려 일군 나라를 망치고 있다...서울대 교수로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필란드·러시아 대사를 지낸 그가 개탄한 ‘망국의 근원’은 역사 왜곡이다.”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지식인은 스탈린 3대 왕조체제를 어떻게 대할지 결정할 시기가 왔다. 부노(父老)들은 체제가 무너지면, 그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다. 이들은 세계가 주시하는 현실을 바로 볼 필요가 있다. 세계 언론인들은 김일성 손자 김정은을 똑똑히 봤다. 대한민국은 지금 북한의 호전적 태도와 핵 앞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시기가 온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진실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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