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김정일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 萬人이 불행해야 하고, 남한은 萬人의 행복을 위해 대통령이 희생하며 最善을 다하는 곳이다.
청와대의 국수식사와 김정일의 곰발바닥요리...이명박 대통령의 개인재산 헌납과 김정일의 비밀계좌 수십개...
<굶주림에 눈이 뒤집힌 人民들이 사람고기를 먹을 때, 김정일과 같이 곰발바닥요리를 먹었다고 자랑하는 남측 인사들... 그들도 김정일 세력이 斷罪되는 날 함께 단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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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복)은 쌍으로 오지 않고, 禍(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는 말과 같이 우리 집에는 화가 겹쳐서 들어왔다. 누이동생이 죽은 후에 그 죽음은 어머니를 거쳐 우리 집안 전체로 이어졌다. 굶어 죽은 아내와 아이를 붙들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마을사람 누구 하나 도와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도 굶기는 마찬가지인 처지에
도움을 바랄 수 없는 처지였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머리를 고여 드릴 베개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는 베갯속을 꺼내 절구질을 힘겹게 하여 도토리가루 2백g, 옥수수가루 한 줌을 넣어 죽을 쑤어 먹다보니 베개 하나도 남기질 못했으니 정말 우리 집안에 지옥문이 열려도 단단히 열렸던 1994년이었다.
형님네 집에서는 군대에 갔던 조카가 집으로 돌아왔다. 굶어죽어가는 가족들을 보면서「이 세상, 개 같은 세상」이 한마디를 했다는 이유로 군 보위부에 잡혀간 후 소식이 없다. 나는 찬장 서랍에 있는 쥐약봉지를 꺼내 들었다. 평양시 용성구역에서 쥐약을 식구에게 먹이고 자기는 목을 매 자살한 ○○이가 떠올랐다. 그럼 나도?? 아이들과 함께 죽는 것이 났지 않을까? 그러나 범도 제 새끼는 안잡아 먹는다는 말이 생각나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끈질긴 목숨은 이어져갔다.
막내딸 ○○이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는 변소에 가겠지 생각하고 혼미상태에 빠져 있는데, 얼마 후 막내딸이 방긋이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아버지, 아 -하세요』딸애의 고사리 같은 작은 손에는 쌀알 20여개가 손에 쥐어져있었다.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니 저 건너편 돼지우리 옆에 볏짚이 있는 것이 기억나 가서펼쳐보니 벼 알 몇 개가 있더라는 것이다. 딸애는 그 벼 한 알 한 알을 손톱으로 까서 모아들고 나를 깨운 것이었다. 아빠 이걸 잡숫고 일어나세요. 나는 딸애의 그 말에 심한 죄책감을 느끼며 그 귀여운 딸애를 붙들고 하염없이 울었다. 어린 딸애가 이 미련한 애비보다 났구나!
딸애의 屍身에서 나온 비닐봉지 그날 밤. 나는 아이들을 살려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종전에 죽기만을 기다리던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무슨 짓이든 다 해보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그날 밤 누워서 생각해보니 어느 아파트 1층집에 강냉이종자를 매달아 놓은 것이 생각났다. 나는 해매던 끝내 그 집을 찾아냈다. 조용히 다가가 옥수수종자를 움켜쥐었다. 먹이를 눈앞에 둔 야수의 흥분으로 내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의 그 쾌감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이것이 내 일생 처음으로 하는 도적생활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어디에, 무엇이든 손이 닿는 대로 훔쳐내어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도적무리가 되어버렸다. 이때부터 우리 세 식구는 빌어먹고, 훔처먹고, 주워 먹으면서 신성천~고원, 원산~단천 등지로 방랑하면서 인간 삶의 고통과 처절함을 몸소 체험했다. 인민이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직접 목격하면서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과 같음을 깨달았다. 마침내 길 위, 고원에서 맏딸이 죽었다. 순천역 쓰레기장에서 막내딸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막내딸의 屍身(시신)을 집에 옮겨와 보니 그의 가슴속에서 비닐봉지가 발견되었다. 거기에는 배 껍질과 배송치, 명태껍질, 돼지뼈 한 개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나를 만나면 함께 먹으려고 먹고 싶은 것도 참고 건사했을 딸애를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울고 또 울었다. 나는 양지바른 산기슭에 딸애를 묻어놓고 그 비닐봉지를 얹어 주었다. 그때 내 막내딸의 나이가 1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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