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불법 방북(訪北)해 현재 북한에 머물고 있는 한상렬(60. 목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이 지난달 22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명박이야말로 천안함 희생 생명들의 살인 원흉"이라 말한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다.
기자회견 전문(全文)은 '충격' 자체다. 천안함 침몰의 주범(主犯)을 찾아가 국제조사단의 천안함 조사결과를 뒤집고, 책임을 우리 정부에 돌렸다. 그는 천안함 침몰사건을 "이명박식 거짓말의 결정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천안함 사건은) 한·미·일 동맹으로 자기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미국과 (지방)선거에 이용하고자 했던 이명박 정권의 합동 사기극일 수 있다"고도 말했다.
친북(親北) 지향이 분명한 그의 돌출행동은 무단 방북이 확인된 직후 충분히 짐작됐다. 그럼에도 목자인 그에게 일말의 '양심'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천안함 사건의 진짜 원흉 앞에서 피해자에 화살을 겨눴다.
포털 등에서 해당기사를 접한 네티즌들은 "내려오지 말고 그냥 살아라" "영구 추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수단체들은 "대한민국을 배신한 한상렬을 입국 즉시 구속하라"며 고발장까지 접수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청와대 관계자는 "(한 고문이 발언한) 내용을 확인 후 필요할 경우 입장표명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승인 없이 무단 방북한 그에게 응당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왠지 공허하다. 그의 친북·반이명박 행보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북한을 두둔하면서 '이명박=살인 원흉'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신념에 찬 발언일 수 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하면서 김정일에 대해 "남녘 조국, 남녘 동포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의 어른을 공경하는 겸손한 자세, 풍부한 유머, 지혜와 결단력, 밝은 웃음 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 것에서 맹목적 김정일 '찬미'는 확인된다. 친북주의자에 둘러싸여서 활동했던 그에게는 당연한 반응이다.
또 "북녘 조국은 진정으로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며 "이번에도 전쟁 위기감 속에서 평화 의지가 분명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데일리NK 평양소식통 등에 따르면 당시 북한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반공훈련' 등 준전시상태를 유지했다.
한 술 더 떠 한 고문은 "북녘은 주체사상을 기초로 핵무기보다도 더 강한 3대 무기를 지니고 있다"라고 말했다. '3대 무기'는 ▲일심단결의 무기 ▲자력갱생의 무기 ▲혁명적 낙관주의의 무기라고 했다. 북한이 매체 등을 동원해 주장해온 그대로다.
과거 국내 친북·반미활동 현장에서 그의 모습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002년 '효순·미선 사건 범대위' 공동대표, 2006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인권대회 반대를 위한 한반도 자주와 통일을 위한 국제평화원정대 단장, 2008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 등
그의 활동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북한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인 '외부소식' 차단을 위해 북한 정권의 대리인 역할도 자임하기도 했다. 2004년 6월 그는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자유북한방송'에 찾아가 "6·15시대를 맞이해서 남북 서로 간에 친남(親南)-친북(親北)해야 하고 고무 찬양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 친북·반미(反美)활동에 앞장서왔던 그에겐 이번 북한 방문은 '물 만난 고기처럼' 해방감을 만끽하게 했을 수도 있다.
북한 매체 등에 따르면 그는 방북 기간 평양 모란봉제1중학교를 방문해 8년 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효순·미선양의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연출했고,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 목사인 그는 북한의 칠골·봉수교회에 찾아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 일요예배도 참석했고, 북한 종교인들과의 간담회도 가졌다.
알려지다시피 북한엔 종교의 자유가 없다. 칠골·봉수교회도 대외선전용에 불과하다. 꾸며진 무대와 동원된 관객 앞에서 한 고문은 '6·15정신' '우리민족끼리'만 외쳤다. 김정일의 '꼭두각시' 놀음에 장단 맞춘 꼴이다.
기자회견 말미에 한 고문은 천안함 사건을 두고 이명박 대통령에 "회개하여 새롭게 시작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은 정작 한 고문 자신에게 필요한 고언(苦言)으로 보인다. 자신의 정치·사상적 지향으로 명백한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주범의 손을 들어 준 그에게 도덕적 책임까지 묻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앞서 지난 6월 12일 평양 도착성명에서 한 고문은 "남북관계를 파탄시킨 이명박 정권의 반통일적 책동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목숨 걸고 왔다"고도 말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최소한 그는 '도덕적 목숨'만큼은 평양에 두고 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