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대구경북발전포럼 이사장겸 한국복지통일연구소 이사장으로 있는 박철언 전장관의 칼럼 '고독과 사랑과 방황의 가을'(포럼소식지 2009년 10월호)을 참고로 보내드리오니 일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고독과 사랑과 방황의 가을”
박 철언
한반도복지통일연구소 이사장
(사)대구경북발전포럼 이사장
가을이 깊어간다. 봄·여름에 만발했던 숱한 꽃들은 졌다. 가을이 열리는 9월에 코스모스가 피고 하늘이 열렸다. 그래서 9월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계절’인가 싶다. 높푸른 하늘아래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들길 따라 걸으면 하늘로 통하는 길을 걷는 듯 한 환상에 빠진다. 영혼이 맑아지는 것이다.
전남 영광출신의 67세된 시인이자 교수인 오세영은 「9월」을 노래했다.
(코스모스는/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 아스팔트가 /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 코스모스는 왜 /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
다형(茶兄) 김현승시인은 「가을의 기도」를 통해 가을에는 「기도」하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호올로「고독」해 지고 싶은 계절이라 하였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시인이자 작가이며 20세기 최고의 독일어권 시인 중 한사람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는 「가을날」에서 가을은 기도와 고독과 방황의 계절이라고 하였던가.
51세의 젊은 나이에 요양소에서 숨을 거둔 그는 유부녀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 호프(결혼하여 딸을 낳음)’ ‘탁시스’ 후작부인 ‘니케(임종할때까지 릴케를 도움)’ ‘에리카 미터리’ 양 등 다섯명의 여인과 깊은 사랑에 빠진다.
여행과 요양소를 오가면서 <가난과 죽음의 시> <말테의 수기> <사랑과 죽음의 노래> <두이노의 비가> <젊은 노동자의 편지> 등 베스트 셀러가 된 많은 깊이 있는 작품을 남겼다.
여기에 릴케의 시 「가을날」의 몇 구절을 소개하고 싶다.
(주여 / 때가 되었습니다. /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 했습니다 /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 들판위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 마지막 열매들이 영글도록 명하시어···· 지금 혼자인 사람은 / 오래도록 혼자로 남아서, 깨어나 / 길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 그러다가 / 나뭇잎 떨어져 뒹굴면 /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불안스레 / 헤메일 것입니다. )
10월 깊어가는 가을의 산사(山寺)에서 저녁 어스름에 마을을 내려다보면 추억에 빠지고 향수에 빠진다. 못다한 사랑이 그리워진다. 일몰(日沒)과 함께 종말을 느낀다. 이제는 평범한 삶에 젖어 아무렇게나 살고 싶은 충동에 젖는다.
황순원 작가의 아들이자 이미 71세가 된 황동규는 「시월」에서 ‘시월의 강물과 안개 속 찬비 그리고 석등(石燈)곁 밤 물소리, 목금 소리’를 읊고 있다
(내 사랑 하리 시월의 강물을 /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 이제는 홀로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창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 내리고 싶다. )
여러해 전 9월 중순 늦은 밤 필자(靑民)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주 잊어버려야하는 사람, 그러나 떠나버릴 수 없는 사람, 밤늦은 가을비에 추억과 회상에 젖어 몸부림 하였다 자작시 「가을비에 젖는 사랑」을 써 내려갔다.
( 자정을 조금 앞두고 /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 초저녁부터 후덥지근한 열기를 느끼며 / 나는 저 빗소리를 들으려 / 이렇게 앉아있었던 것일까 / 비가 오면 여름은 더 멀어지겠지만 / 내 가슴에서 그대는 식지 않은 채 / 이 가을 속으로 함께 가려나보다 / 아주 멀리 두고 싶었던 그대 / 그러나 아직 두고 올 수 없는 그대 / 스산한 가을비에도 젖을 수 있는 것은 / 그대와 내가 아직 이루지 못한 / 사랑이 남아 있어 / 우리는 이 계절을 함께 맞이하는 것이다 )
그리고 필자(靑民)는 깊어가는 가을 속에서 ‘저녁하늘의 황혼처럼 차오르는 그리움’ ‘마지막 도약을 위한 꿈’ ‘공연히 흐르는 눈물’을 주제로 「물안개 편지」를 띄우게 된다.
( 구월의 달력이 뜯겨나가고 / 휘어진 가지에 매달린 사과는 / 마지막 도약을 꿈꾸어 본다. / 그리움이 흘러온 강 건너 / 따뜻한 안개 떠오르면 / 어디선가 그대가 옵니다. / 한 걸음씩 무르익으며 / 지나간 여름이 바람으로 변해 / 나무에게로 달려갑니다. / 선홍색 성냥불이 이파리에 번지면 / 저녁 하늘의 황혼처럼 차오르는 그리움이 / 편지가 되었을 까요 / 안개 빛 추억 피어나는 가을 / 살며시 흔들리는 물결로 / 그대에게서 벗겨지는 아침 / 공연히 흐르는 눈물이 / 사랑은 모름지기 그런 것일까요 )
64세의 강원도 양구 출신 수녀시인 이해인은 가을엔 ‘사랑한다는 말을하며 흐르는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다’고, ‘서걱이는 풀잎의 이마를 쓰다듬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다’고 한다. 가을에는 ‘별빛 등에 없고 노래하는 숨은 풀벌레로 살고 싶다’고 한다. 가을에는 ‘그리움으로 붉게 익힌 가지 끝에 매달린 감’이 되어 당신에게 바쳐드리고 싶다고 하였다 (이해인의 시 「가을 노래」에서 )
가을은 역시 고독과 기도와 사랑의 계절인가 싶다. 그러나 가을은 외롭고 피곤한 긴 방황 후에 성숙을 다짐하는 시간들이 되어 우리네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준다.
(건국대 석좌교수·시인·변호사) (靑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