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채
- 1951년 전북 고창 출생
- 명지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 1978년 MBC 공채 PD로 입사
- 현 MBC 시사교양국 특임3CP 국장
- 2008년 1월~현재 MBC 공정방송노동조합 위원장
두 개의 MBC 노조
MBC에는 두 개의 노조가 있다. 이근행 ‘PD수첩’ CP차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MBC 노동조합’과 정수채 시사교양국 국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MBC 공정방송노동조합’이다.‘MBC 노동조합’은 1996년 10월 설립됐다. 민주노총 소속으로 전체 MBC 사원 1740명 가운데 약 800명이 가입돼 있다. 일반 사원부터 부장 대우 이하까지가 가입 대상이다.
‘MBC 공정방송노동조합’은 2007년 11월 ‘선임자 노동조합’이란 이름으로 설립됐다가 올 1월 명칭을 바꿨다. 한국노총 소속으로, 보직 간부를 제외한 부장급 이상만 가입할 수 있다. 현재 부장급 이상 간부 200여명 가운데 58명이 가입돼 있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128명이 있었는데 최근 탈퇴자가 크게 늘었다.
현행 노동법은 동일 사업장 내 복수노조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MBC 공정방송노조’는 가입 대상이 기존 노조와 겹치지 않는다는 점이 인정돼 설립이 허용됐다. KBS에도 2007년 10월 ‘KBS 공정방송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지난 1년간 MBC는 바람 잘 날 없었다. 지난해엔 ‘PD수첩’ 광우병 왜곡 보도로 홍역을 치렀고 올 상반기 ‘MBC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와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자 김미화씨 교체 문제로 진통을 겪었다. 이명박 대통령 측근의 비리 의혹에 관한 보도가 의도적으로 누락됐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일부 기자가 2주 넘게 제작 거부를 하기도 했다. 안팎에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말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MBC 내부에서 “MBC는 좌편향 방송을 당장 중단하고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가라”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MBC에서 30년 넘게 일한 ‘골수 MBC 직원’의 목소리였다. 현직 MBC 구성원이 자사의 보도에 대해 ‘우파적 시각’으로 비판한 건 처음이다.
내부를 향한 이 첫 비판의 칼날을 세운 사람은 정수채(鄭壽采·58) ‘MBC 공정방송노동조합(이하 공정노)’ 위원장이다. 그는 MBC 시사교양국 부국장을 거쳐 현재 시사교양국 국장을 지내고 있는 MBC 핵심 간부 중 하나다. 1978년 12월 MBC 공채 PD로 입사해 주로 시사교양국에서 문화·예술 관련 프로그램 수십 편을 만들었다. 2007년 11월 ‘선임자 노조’ 설립을 주도했고 지난 1월부터 공정노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정 위원장의 시사교양국 국장이란 직무는 ‘정지’ 상태다. 지난 5월 ‘방송개혁시민연대(이하 방개혁)’ 출범식에 참석해 “방송 개혁의 종착지는 MBC다”는 내용의 축사를 한 게 문제가 됐다. MBC 경영진은 인사위원회를 열고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MBC를 음해하고 있다”며 정 위원장과 최도영 MBC 공정노 사무국장(라디오 CP)에 대해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정 위원장은 6월 30일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지난 6월 12일 서울 여의도 MBC 방송센터 근처에서 남색 야구모자를 눌러쓴 정 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징계에 반발해 삭발한 머리를 감추기 위해서라고 했다. 인터뷰 전날 MBC는 정 위원장의 징계 재심 신청을 기각하고 3개월 정직을 확정했다. 정 위원장은 “더 이상 저 사람들(MBC 경영진)과 각을 세우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그의 입에선 MBC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어떻게 지내나. “5월 중순부터 MBC 방송센터 3층에 있는 노조사무실로 출퇴근하고 있다. 정직 처분이 내려진 후엔 방송 관련 일은 아무것도 못 하게 돼 특별한 업무가 없다. 아침 10시쯤 노조사무실로 출근해 대외 관계 업무 처리하고 저녁 6시쯤 퇴근해 사람들 만나고…. 바쁘지 않으니 이제 싸울 일만 남았다.”
‘MBC 공정방송노조’는 부장급 이상 간부 사원들의 복지를 위한 ‘선임자 노조’로 출발했다. 어떻게 시작된 건가. “2007년 11월에 나와 최도영 사무국장을 비롯한 4명이 ‘선임자 노조’를 만들었다. 처음엔 ‘분기별 퇴임식’을 ‘연말 퇴임식’으로 변경하자는 안과 ‘임금피크제’ 반대를 주된 이슈로 삼았다. 실제 작년 6월부터 10월까지 경영진과 단체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에 임금피크제 폐지 협상을 더 진행할 수가 없어 중단했다. 그리고 올해 2월 MBC 보도의 공정성과 경영 상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MBC 공정방송노조’로 이름을 바꿨다.”
노조 설립 땐 복지를 내세웠다가 지금은 MBC의 편파성과 신뢰도 추락을 지적하는 쪽으로 활동 방향이 변했다. 왜 변한 건가. “그럴 만한 과정이 있었다. ‘선임자 노조’ 때 MBC의 방만한 제작비 운영 관행만 줄여도 임금피크제를 폐지하고 사원 복지를 희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회사 경영 상태를 들여다보니 ‘노조가 제대로 감시했다면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싶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MBC 광고 판매율은 갈수록 떨어지기만 하고 작년엔 영업적자만 350억원을 냈다. 그런데 사측은 사원들 수당 깎아서 ‘흑자 1억원 냈다’고 발표했다. ‘도대체 MBC가 왜 이렇게 됐나’ 고민하다가 지난 2월 설문조사를 했다. ‘지금의 위기가 어디서 온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사원들 생각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결과를 보니 문제는 사측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노영(勞營)방송, 시청자와 광고주를 끌어당기지 못하는 MBC의 신뢰도 추락에 있었다.”
지난 2월 선임자노조 조합원 118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경영진 경영평가 및 미래 관련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6%가 “현재 MBC는 불공정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응답자 가운데 70% (복수응답)가 “뉴스데스크의 시청률 부진은 ‘회사의 신뢰성 상실’에 있다”고 답했다. 이 설문조사는 당시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MBC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최초의 ‘내부 비판’이었기 때문이다.
방만 경영이 결국 MBC 노조의 문제라는 건가. “우리가 노조를 하는 이유가 뭔가. 경영을 감시하고 비판하자는 것이다. 외주제작사가 드라마 한 편 만들면서 협찬 끼고 제작비를 물쓰듯 쓰면 방송국이 이를 제어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다. 제작비를 그렇게 많이 쓰면 시청률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MBC 시청률은 바닥을 기지 않나.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안 된 거다. 노조위원장 출신 최문순 사장(현 민주당 의원)이 부임하는 것을 보고 ‘어, 우리 노조 출신이 사장이네?’ 하는 식으로 노사가 밀월을 했고 노조의 경영 감시 기능이 완전 마비됐다. 아무도 사측의 경영에 대해 뭐라 하지 않고 있다.”
방개혁 출범식에서 “방송 개혁의 종착점은 MBC”라고 말했는데, 무슨 뜻인가. “MBC처럼 노영방송, 편파방송이 뿌리깊은 곳이 없다는 얘기다. MBC가 좌편향 방송이라는 것은 일반 사람들도 다 안다. 문제는 변화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MBC 한 해 제작비가 2000억원인데 이 가운데 10분의 1만 줄여도 200억원이 절약된다. 이건 올 1분기 MBC 영업적자 규모에 해당한다. 편당 제작비 5000만원인 프로그램에서 출연료 500만원 받는 연예인 1명씩만 줄여도 비용이 10% 줄어든다. 바로 그런 노력을 하라는 건데 노조가 전혀 관리감독을 안 하니 이런 관행이 개선되질 않는다. 좌파 성향 노조의 입김으로 좌편향 방송을 하며 노영방송 체제만 더 굳건히 다지고 있다.”
KBS와 SBS의 사정은 좀 나은가. “그렇다. MBC만의 독특한 문제다. KBS는 작년 1분기에 적자가 350억원이었지만 올해 1분기는 적자가 150억원으로 줄었다. 이병선 사장이 취임해서 200억원이나 절약한 거다. 어떻게 했을까. 단적인 예로 KBS1 아침드라마 ‘TV소설’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KBS는 그 자리에 ‘인간극장’ 재방송을 넣었다. 통상 편당 제작비가 5000만원인데 앉아서 그냥 하루 5000만원 번 거다. 일주일이면 3억원이고 한 달이면 12억, 1년이면 140억, 바로 답이 나온다. 그런데 MBC는 그게 왜 안 되나. 괜한 자존심, 1등주의 때문이다. 요즘같이 경기 어려울 때는 2등주의로 가도 되는데, 그걸 안 한다.”
실제 MBC의 올해 1분기 영업적자는 250억원에 달한다. 전체 방송시간 점유율도 지난해 16%에서 올해 13%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SBS와 KBS의 점유율은 각각 14%에서 15%, 13%에서 15%로 올라갔다. MBC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은 SBS 8시 뉴스에도 뒤처진 지 오래다.
이번에 징계를 받게 된 이유가 ‘해사 행위’였다. MBC에 몸담고 있으면서 내부 조직을 비판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얼마 전 서울대 교수 124명이 반정부 시국선언을 했다. 거기에 대해 우파 교수들도 ‘자제하라’고 했고, 총장도 ‘124명이 서울대 전체 교수 목소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총장이 시국선언한 교수 124명을 징계했나?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거다. 내가 나서니까 사람들이 그러더라. ‘MBC에는 좌파만 있는 줄 알았더니 아니네요.’ 이게 민주주의다. 하지만 MBC는 노조와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이건 우리 회사의 목소리가 아니다’라면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MBC는 공정노의 방개혁 참여와 MBC 일산제작센터 비리 고발 모두 명예훼손이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도둑질하면 도둑질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자식이 제대로 된 자식 아닌가? 온 가족이 같이 도둑질해야 올바른 건가? 그런 가족이 제대로 될 수 있나? 한 사람이라도 똑바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말을 했다고 내가 MBC를 배반하고 폄하하고 무시했다는 건가. MBC 일산제작센터 관련해선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니 곧 밝혀지겠지만 허위사실이면 법적으로 고발하면 된다. 하지만 MBC는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 공정노 간부에게 징계만 내렸다.”
MBC 일산제작센터 비리 의혹은 공정노가 성명서를 통해 밝힌 뒤 방개혁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불거졌다. 성명서는 △MBC가 방송용으로 분양 받은 땅 4만9000여㎡(약 1만5000평) 가운데 3분의 2를 대기업에 넘겨 부당 시세차익을 올렸고 △시공사로부터 부당한 로비를 받았으며 △시대에 맞지 않는 특정회사 VCR를 대량 구매하면서 수의 계약했다는 등의 의혹을 담고 있다. MBC는 이에 대해 모두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공정노 활동을 하며 회사에서 엄청나게 시달렸을 것 같다. “지난 2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나니 시사교양국 후배들부터 눈을 부라리더라. 거의 질식하기 직전까지 사람을 압박했다. 방금 입사한 새파란 신입 PD가 30년 선배한테 인사도 안 하고 노골적으로 빳빳하게 쳐다본다. 그래도 석 달은 버텼다. 그런데 5월에 방개혁 출범식에 나갔더니 ‘정수채 국장 파면청원 릴레이 합시다’라는 대량 문자가 사내에 쫙 돌았다. 그 문자가 나한테도 왔다. 파면청원 온라인 서명운동까지 벌어졌다. 사내 게시판에 축사 동영상이 계속 올라오고 MBC 노조 사무실도 그 동영상을 틀어놨다. 더 이상 시사교양국 사무실에 들어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게 바로 인격살인이고 명예훼손이 아니면 뭔가.”
정직 처분으로 가장 크게 잃은 게 뭔가. “회사는 내 마지막 프로그램 연출권을 박탈했다. 그게 가장 아쉽다. 지난 6월 5일 80분짜리로 방송된 에너지특집 ‘두 바퀴로 가는 세상’은 내가 두 달 전부터 구상해 기획하고 촬영하고 제작한 마지막 작품이었다. 그 방송에서 아파트 자전거에 이름 달아주기, 못 쓰는 자전거 수거해 불우청소년에 갖다 주기 캠페인도 벌였다. 그런데 공정노 활동이 알려지면서 시사교양국 사람들이 ‘정수채와는 프로그램 할 수 없다’고 했고 때마침 정직 결정이 내려지면서 연출권을 빼앗겼다.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연출자로 들어갔다. 내가 다 만들어놓고 ‘큐’ 사인만 못 했는데, 나중에 보니 엔딩 크레디트에 내 이름도 없더라. 그래도 기획·제작을 모두 내가 했는데 이름은 넣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현 MBC 노조는 공정노가 너무 편향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우리가 사내에서 또 다른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했을 땐 적어도 기존 노조와 같은 길을 가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현재 노조가 하지 못하는 경영 비판이나 보도 비판을 하겠다는 목적이었다. 우리의 정치적 성향은 그 사람들(MBC 노조)이 만든 것이다.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이 이분법적으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것 아닌가. 자기들은 왜 민주당 논리와 똑같이 가나? 노조위원장이라는 사람이 (6·10 시위 때) 서울광장에 가서 정세균 대표 인터뷰하며 ‘투쟁’ 외치는 이유는 뭔가? 우리를 정치적이라고 하는데, 애초에 노조가 출범할 때는 어디든 복지 노조로 출발한다. 그러다 중간에 이념적인 것도 넣고 정치적인 것도 끼워 넣어야 최초의 목적(복지)을 달성할 수 있는 거다.”
- ▲ 지난 2월 미디어법 입법에 반대하며 집회를 연 MBC 노조.
MBC의 좌편향이 문제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언론사가 정치색을 갖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가. “나는 언론사에 특정한 논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은 다르다. 신문은 자기가 보고 싶으면 보고 안 보고 싶으면 안 보면 된다. 돈 내고 자기 의지 따라 보는 거고 선택에도 가변성이 있다. 하지만 방송은 공공재(公共材)이고 국민의 전파다. 정보도 무작위적으로 쏟아진다. 그런 매체는 국민에 대해 중립적인 책임감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 직후 KBS에 찾아가 ‘방송 덕 좀 봤다’고 한 말이 뭘 뜻하겠나. 방송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거다. 그러니 특정 집단의 목소리가 들어간 편파·불공정방송 하면 안 되고 국민에게 떳떳해야 한다는 것이다. MBC가 지금의 스탠스에서 조금만 우측으로 몸을 틀어도 이렇게까지 문제 제기 안 한다.”
방송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내용을 편집하기만 해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던데. “편집의 파괴력 정도가 아니다. 자막 한 개만으로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MBC는 지난 대선방송 때 정동영 민주당 후보 발언마다 연예 프로그램처럼 자막까지 달아줬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만 나오면 이상하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게 만든다. 농담 같지만 이게 바로 불공정 방송의 힘이라는 것이다. 이번 시위 때도 시위대의 창과 경찰의 방패, 이 가운데 경찰이 시위대를 방패로 내려치는 영상만 반복해서 내보내지 않았나. 편집 과정에서 특정인의 주장을 조작하거나 거두절미 해버리기도 쉽다. 사람들은 방송을 보고 바로 분노를 느끼고 눈물을 흘리고 화를 낸다. 그게 방송이다. 이른바 감성과 동시성의 힘이다.”
정 위원장은 ‘PD수첩’ 광우병 쇠고기 의혹 보도의 편집·왜곡 사례에 대해선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PD수첩 얘기는 하지 말라”며 “그건 이미 다 끝난 세상이고 그것까지 언급하면서 치사하고 비겁하게 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MBC에서만 30년을 보냈다. 청춘을 다 바쳐 일한 직장인데 ‘정직’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 같다. “그걸 말해 뭣하겠나. 뭐에 딱 맞아서 머리가 텅 빈 느낌이었다. 나야 이제 한 달만 하고 나가면 되지만 MBC 사람들은 이제 ‘다른 말’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됐다. 일도 없고 월급도 없는 상태가 수개월 간다면 누가 버티겠나. 우리 조합원이 5월에 128명이었는데, 사측과 노조의 압박이 계속되니까 한 달 만에 58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지금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선배, 거기서 나와!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 하는 탈퇴 회유가 이어지고 있다. 회사가 올해 명예퇴직자 목표를 160명, 안식년 휴가 대상을 70명으로 잡았는데 이런 공포분위기 속에선 아무도 나설 수가 없다.”
- ▲ MBC 경영과 보도의 편파성을 지적한 공정노. 왼쪽에서 세 번째가 정수채 위원장. / photo 조선일보 DB
그래도 30년간 몸담은 직장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은 남다를 것 같다. MBC에서의 30년은 어땠나. “MBC에서의 30년? … 솔직히 다 좋았다. 행복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직장이 어디 있나. 웬만하면 개인이 하고 싶은 거 다 존중해준다. 나도 문화·예술 등 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 다 했다. ‘역사의 고향’ ‘명화의 고향’ 하면서 시사교양과 인연을 맺었고 ‘TV 문화기행’에서 천경자 화백 다큐멘터리로 호평도 받았다. 우리 방송 역사 최초로 스포츠경기가 아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현장 생중계도 했다. IMF 땐 ‘실업의 고통 함께 나눕시다’ 특집 방송을 하며 보람도 느꼈다.”
MBC의 현실을 ‘내우외환’이라는 말로 표현들 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이대로 가면 MBC는 결국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MBC는 변화를 두려워한다. 진보적인 척하지만 가장 보수적이다. 미디어법 처리 문제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교체 문제만 봐도 그렇다. MBC가 왜 그렇게 극구 반대할까? 다 자기 밥그릇 지키려고 하는 거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동네에 우물이 있는데 그 우물을 판 지가 엄청 오래된 데다 물도 마르고 인구도 늘어났다. 그러면 우물을 새로 파든지 그 우물을 더 깊게 파거나 모터를 달든 해야 한다. 그런데 MBC는 우물을 딱 움켜쥐고 ‘너희는 늦게 온 놈들이잖아. 대기업 신문사 못 들어와. 우리만 먹어야 해’ 그렇게 얘기한다. 그러면 우물 물도 모두 마르고 사람도 찾지 않아 결국 몰락한다.”
MBC가 민영화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나. “8월에 구성될 새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이 결정할 문제다. 민영화가 되든 공영방송으로 남든 MBC는 바뀌어야 한다. MBC가 민영방송 된다고, 재벌이나 신문사가 민영방송 몇 개 만든다고 방송시장이 다 현 정권 입맛대로 되나? 그러면 SBS가 이명박 정권 1년6개월 동안 정부에 장악됐나? 그건 아니지 않나. 공영방송으로 간다면 KBS처럼 확실히 감사를 받아야 지금 같은 노영방송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MBC는 지금처럼 노조가 임원을 평가하고 국장 해임권을 갖는 ‘상향평가’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거다. 이른바 ‘좌파보수’의 단적인 모습이다.”
본인을 ‘내부고발자’라고 생각하나. “그것보다는 회사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사람이라고 봐 달라. MBC 구성원들의 비판 의식은 조직 안에서 완전히 무뎌진 상태다.”
앞으로의 계획은. “정직 3개월 처분에 대해서 계속 싸울 것이다. 다음 주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징계 구제신청을 할 예정이고, 법원에도 정직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낼 거다. 2주간 파업한 기자들은 감봉 처분 받고, 노조 의견에 반대한 사람은 정직이라니 지나치게 부당하다. 앞으로의 내 진로에 대해선 별 얘기가 다 나오더라. 정권에 줄대서 방문진 이사로 간다, 한나라당에 입당해 정치한다…. 다 헛소리다. 난 그냥 집으로 갈 거다. 가서 푹 쉴 거다. 하지만 앞으로 MBC 바로 세우기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나서겠다. 이게 내 인생 2막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