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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대통령에 독설 쏟은 YS 본문
이북 노다지라는 DJ, 가서 사는 게 최선`
전·현직 대통령에 독설 쏟은 YS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전·현직 대통령들에 대해, 현재의 경제
위기 상황에 대해, 그리고 MB와 박근혜와의 관계에 대해. 모두 독설이었다.
거침이 없었다.
늘 그랬듯, 하고 싶은 말을 있는 그대로 발설했다. 팔순이 넘은 나이지만 목소
리는 1시간20분 내내 또렷했다.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를 중앙
SUNDAY가 인터뷰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29일 중앙SUNDAY 전영기 편집국장과 인터뷰하고 있다.
‘극세척도’라고 직접 쓴 휘호는 내년엔 ‘호연지기’로 바뀐다. 벽에 걸린 사진은
1954년 3대 국회 첫 등원 때 연설 모습.
1월 마지막 주말, 바깥바람은 매서웠지만 상도동 7-6번지 응접실을 비추는
햇살은 따사로웠다. 29일 오전 11시 정각. 김영삼(YS·81) 전 대통령이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검게 염색한 머리에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있었다. ‘응접실이 너무 좁지 않으냐’
고 묻자 YS는 “내가 가진 게 이 집밖에 없어서…”라며 허허 웃었다. 옆에 있던
김기수 비서실장도 “설날 세배할 땐 앞사람 엉덩이에 얼굴 박기 일쑤”라고
거들었다.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는 시작됐다.
-나라가 위기다. 10년 전 외환위기를 경험하셨는데 지금 위기를 어떻게 보는지.
“10년 전에는 외환위기가 올 거라고 우리 경제 학자나 관리 그 누구도 예측을
못 했다. 어떻게 전문가들이 그렇게 몰랐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 지금은 온 세계에 한꺼번에 위기가 닥쳤다.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진
않는다. 최소한 내년은 넘어갈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미국 대공황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나.
“대통령과 정부·국민 모두가 어떻게든 극복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나가는 길
밖에 없다.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상황을 좀 안이
하게 보는 것 같다는 점이다. 지금은 절대 그럴 때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가 30% 안팎이다.
“대통령이 너무 독주한다, 옆사람 말을 안 듣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자기를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과 대화를 좀 해야 한다. 그 사람
들이 전부 등을 돌렸다.
내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니는데 이 대통령 얘기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
아예 관심이 없는 거다. 어제 저녁에도 전직 장관 30여 명과 저녁을 먹었는데
한~마디도 이 대통령의 얘기를 안 하는 거다. 다들 이 대통령을 밀었던 사람
들인데.”
-왜 그럴까.
“일부러 얘길 안 하는 것 같다. 운동하러 나가도 예전엔 대통령이 잘해 주길
바란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단 한 명도 그런 얘기를 안 한다. 참 놀랄
일이야.”
“글쎄… 문제는…. (한참을 뜸들이다가) 정치는 법 이전에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카리스마가 부족한가.
“제가 그런 얘긴 안 했다.”
-카리스마는 어떻게 해야 생기나.
“억지로 생기는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지.”
YS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화제를 바꿔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대해 물었다. YS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돈 주고 평화 산다’는 논리 말 안돼
-난국 극복을 위해 DJ와 힘을 모을 생각은 없나.
“김대중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제일 좋은 방법은 이북에 보내는 것이다. 이북이- 노다지 나오는 곳,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북에 가서 살도록 하는 게
- 최선이다.
김정일에게 5억 달러 갖다 주고 구걸해 회담을 했지 않나. 그 뒤에 김대중·노무현 둘이 14조원 갖다 주고 솔직히 우리가 얻은 게 뭐냐. 전부 이북의 이익을 위한 것 아니었나. 그런데 이북이 이제 와서 사람 못 들어온다고 하고…. 참 애들 말마따나 웃기는 얘기지.”
-DJ 논리는 돈을 줘서라도 한반도 평화를 사야 한다는 건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북은 한국과 전쟁해 이길 수 없다. 미국이 여기 있는- 한 절대 못 이긴다. 외환위기 때도 김대중이 협력했으면 극복 가능했다. 노동법
- 개정도 그렇고, 한국은행법도 그렇고.
- 기아자동차 문제를 크게 문제 삼으려 했을 때도 그 사람이 기아에 가서 ‘내가
- 사수하겠다, 국민 기업이다’며 못하게 했다. 외환위기에 책임을 지라면 김대
- 중이 최소한 60%는 져야 한다.”
-93년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고 했는데.
“오늘 처음 말하는 건데 그때 그 말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원리대로 하면- 옳은 말 같지만 남북은 전쟁을 했던 사이고 이후에도 계속 경쟁관계에 있다.”
-요즘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가 한창이다.
“나는 노무현이 깨끗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맨 자기 변명 아닌교. 잘못한 게- 있으면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김대중은 1년 반 동안 내 뒷조사를
- 얼마나 해댔는지. 철두철미한 보복이죠.”
-그래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점 한 가지씩을 꼽으라면.
“두 사람 다 장점을 생각해 본 적 없다. 아, 장점이 하나 있긴 하다. 김대중- 거짓말 잘하는 거. 노무현은 평하고 싶지 않다. 내가 픽업해 정치시켰는데….”
-2004년 클린턴 도서관 개관 때도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들이 한자리에 모이니까 국민이 아주 편안해했다. 우리도 그런 게 필요하지 않나.
“그런데 전두환과 노태우가 법적으로 대통령인가. 대통령 자격이 박탈된 사람- 들이다. 광주 사람들 죽이고 몇천억원 걷어들인 것 가지고 대법원에서 결정해
- 감옥에 가지 않았나.
- 내가 한 게 아니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하지 않도록 돼 있다.”
-그러고 보면 전직 대통령 모두를 안 좋아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이승만 박사는 건국 대통령으로 인정해야 할 거다. 남한 정부 수립이- 조금만 늦었어도 상당한 혼란이 있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18년을 했는데 쿠
- 데타를 했지 않나.
- 나는 어떤 이유로도 쿠데타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본다. 마지막 죽음도 비참
- 했고. 그런데 국민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경호실에 있던 전두환이 또 쿠데타를
- 해 정권을 잡아 박정희 미화하는 일만 해서 그런 거다.”
-1975년 박 전 대통령과 독대했을 때 나눈 얘기를 무덤까지- 가져가겠다고 했었는데.
“야당 총재 때 정상 회담 하자고 해서 청와대에 갔는데, 오전 10시쯤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먼저 내가 부인이 총에 맞아 돌아가신 걸 위로하는 말을 했어요.
- 그때 창밖의 나무 위에 새가 와서 앉더라고. 그가 이렇게 말하는 거야.
- ‘총재님 저걸 보십시오. 제가 저 새와 같은 신세입니다’라고. 그러더니 바지 오른
- 쪽 앞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데 내가 정이 많아서, 대통령 선거
- 해야 한다고 날짜까지 정해 갔는데 심하게 얘길 못 하겠더라.
- 그때 그가 ‘난 물러납니다. 선거합니다’ 그러면서 이 얘기는 비밀로 해 달라고
- 부탁해 약속을 지켰는데 결국 박정희가 그것도 속여 먹었다.”
“북한, 기아 때문에 멸망할 것”
-김정일 국방위원장 관련 정보는 좀 듣나.
“우리 국정원이 참 한심하다. 내가 5년간 봐서 아는데 미국이 주는 정보가 가장- 정확하다. 그런데 김성호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 가서 김정일이 이빨 닦는 것
- 까지 알고 있다고 말했는데, 세상에 우리 집에서도 내가 이빨 언제 닦는지 아는
- 사람이 한두 명에 불과한데 그런 거짓말을. 진짜 한심하다.”
-거짓말인가, 실언인가.
“아주 거짓말이지. 그 정도 알고 있으면 이북을 전부 알고 있다는 얘긴데.”
-이 대통령이 먼저 화해 제스처를 내밀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별로 의미 없는 얘기다. 만나자고 만나지는 게 아니잖은가. 나 때는 김일성이- 먼저 보자고 했는데 실제 만났으면 상당한 양보를 받았을 거다. 근데 김대중과
- 노무현은 전부 양보만 하고, 그 꼴이 뭐냐.
- 시간이 얼마 걸릴진 모르지만 북한은 기아 때문에 멸망할 거다. 북한 생기고
- 인구가 반으로 줄었지 않나. 저게 과연 존립할 수 있는 나라인가. 최근 김정일
- 사진도 전부 합성한 거다.”
-하나회 숙청할 때는 대단했다.
“그렇다. 무서운 힘을 갖고 한 거다. 하나회 숙청 안 했으면 김대중·노무현이- 대통령 못 했다. 80년대 중반 국회 국방위원 20명이 육군본부 회식에 초대
- 받아 갔다가 육군 참모차장한테 모조리 두들겨 맞았다.
- 당시 여야 원내총무도 국방위원이었다(당시 여당 총무는 이세기, 야당 총무는
- 김동영 의원). 그런데 아무도 말을 못 했다. 그만큼 군인이 무서웠다. 군인들이
- 정치하는 대표적인 예를 든 건데, 하나회가 청산되지 않았으면 쿠데타를 얼마나 더 했을지 모른다.”
-아침마다 아버지 김홍조옹께 문안인사 드렸는데(김옹은 지난 9월 30일 별세).
“60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매일 오전 6시면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도 정치- 얘길 좋아하셔서 어떤 때는 30분도 통화하곤 했는데 돌아가시기 직전엔
- ‘야야, 춥다. 조심해라’는 말밖에 안 하시더라. 별로 춥지도 않을 때였는데….”
-김현철씨는 전화 자주 하나.
“그놈은 전화 안 해, 허허. 1주일에 한 번쯤 들른다.”
1시간20분간의 인터뷰가 끝나자 YS는 “식사나 같이 하자”며 바로 옆 식당- 으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자리에 앉아 그는 두 손을 모으고 대표 기도를
- 했다. “저희가 모든 일에 감사하게 하시고, 이 나라와 민족을 굽어살펴 주소서.
- 난국을 헤쳐 나갈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멘.” 식사는 잡곡밥에 시래깃
- 국이 나왔다. YS는 식사 도중 “우리 명순이, 우리 명순이” 하며 부인에 대한
- 애정을 표시했다. 하지만 손명순 여사는 끝내 보지 못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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