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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없는 기업은 있어도 기업없는 국가는 없다"

새벽이슬1 2009. 1. 8. 16:04

김문수 지사, "국가없는 기업은 있어도 기업없는 국가는 없다"
趙甲濟 현대사 강좌, "균형발전은 下向평준화"
金成昱   
이날 문화일보 강연장은 복도까지 청중들이 밀려들어 대만원을 이뤘다.

 『위에 있는 것을 끌어내리는 하향평준화는 공산주의(共産主義) 방식이다. 아래에 뒤쳐져 있는 것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발전(發展)해야 한다.』
 
 노무현 정권 5년을 풍미했던 소위 「지역균형발전론」에 대한 김문수 경기도 지사의 견해이다.

 

金지사는 1일 서울 문화일보 강당에서 열린 「조갑제의 현대사강좌」에서 『공무원 청사를 서울서 빼간다고 지역경제가 발전한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과천 정부청사도 경기도에 있지만, 업무효율을 위해 중앙에 모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金지사는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엽니다」라는 제목의 이날 강연에서 『대한민국은 지난 반세기 최악의 조건에서 세계 최고 분야를 수없이 키워냈다』며 『앞으로도 세계 1등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뛴다면, 30년 내 반드시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미국 쇠고기 먹고 누가 배탈 났나?』>
 
 金지사가 국가도약을 위해 강조한 핵심 메시지는 『규제를 풀라』 그리고 『법치를 세우라』는 것이었다.
 
 그는 법치주의(法治主義)와 관련, 지난여름 촛불 난동(亂動)의 예를 들었다.

 

그는 스스로 1986년 인천 5`3사태로 4시간 데모를 한 뒤 2년6개월의 실형을 살고 나왔다고 말한 뒤, 『그런데 최근엔 「청와대 쳐 들어가겠다」며 100일 넘게 광화문 앞에서 데모를 해도 아무도 집어넣질 않더라』고 말했다.
 
 또 『미국 쇠고기 먹고 누가 배탈이 났느냐? 들여오기도 전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는데 100일을 데모하더니, 요즘은 주동자(主動者)들을 잡아넣는다니까 그것을 가지고 다시 난리』라며 「법치확립」을 강조했다.
 
 金지사는 또 『유영철은 여자 21명을 성폭행하고 토막 내고 죽이는데 아직까지 교도소에서 살아 있다』며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회개하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만, 그 사람 손에 죽은 힘없는 사람, 약한 사람은 살릴 길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죄 없는 사람을 죽인 사람 중심으로 법을 운행할지, 죄 없이 죽은 약한 사람을 중심으로 법을 운행할지 고민해 볼 문제』라며 사형제 폐지론에 대해서 비판적 인식을 보여줬다.
 
 <과도한 규제로 빠져나가는 기업들>
 
 金지사는 다양한 사례를 들며 과도한 규제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실제 규제로 인해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5년 연속 급감한 반면, 한국기업의 「海外직접투자액」은 5년 연속 급증했다. 이와 관련, 강연에서 金지사가 인용한 몇 가지 사례를 들면 아래와 같다.
 
 △삼성은 두바이에서 170층짜리 최고층 빌딩을 짓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선 허가를 못 받아 짓지 못했다.
 
 △롯데 그룹은 10월28일 중국 심양에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롯데월드, 백화점, 호텔, 상가 건설 등이 핵심이다. 왜 경기도에 투자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부지(敷地)도 공짜로 제공되니 안 갈수 없더라고 말했다.
 
 △석유화학회사인 STX는 최근 중국 대련에 30억 달러를 투자했다. 역시 같은 질문을 했더니 투자합의서 서명 후 1개월 만에 영업허가증이 발급됐고, 2년 만에 공장 착공(鑿空)에서 완공(完工)까지 마무리되니 안 갈 수 없더라고 말했다.
 
 △ LG전자는 중국 생산법인이 13개이고, 고용인원은 6만 명에 달한다.
 
 金지사는 『상하이시(市)는 32km짜리 둥하이(東海)대교를 2년6개월 만에 만들었지만, 우리는 규제가 많다 보니 18km짜리 인천대교를 4년4개월 목표로 만들고 있다』며

 

『중국은 「만만디」고 우리는 「빨리 빨리」라는 말이 실제론 뒤집어졌다』고 했다.
 
 그는 『전세계 大기업은 자유민주주의를 좋아하지만, 현실은 중국 인민공화국에 더 많이 가 있다』며 『실제로 세계 500대 기업 중 480개가 중국에 진출해 있지만, 대한민국엔 263개가 진출해 있다』고 말했다.
 
 金지사는 『2003년 상하이는 부산항에 이어 물동량 세계 4위였지만, 지금은 부산항의 2배, 전세계 1위로 부상하고 있다』며 『현재처럼 반 발 뒤에 서버리면 중국(산업)의 모든 것이 우리를 덮어버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역사에서 우리가 중국을 앞섰던 시기는 지난 30년 정도인데, 지금은 역사적인 大역전(逆轉)의 시기가 펼쳐지고 있다』며 『2~3년 내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 내 (순위가) 뒤집히는 물건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 수도권 규제개혁으로 U턴>
 
 金지사는 또 『일본 역시 수도권 규제개혁으로 해외기업이 U턴하고 있으며, 실제 HONDA가 30년 만에 국내공장을 신설하는 등 수도권 설비투자가 2002년 7.4% 감소에서 2005년 23% 증가로 변화했다』며 『제조업 일자리 역시 2006년 한해 만 2.3%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당신은 아직도 굴뚝산업을 말하느냐? 아날로그 시대를 사는 구닥다리냐? 이제는 「문화산업」의 시대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계최강 기술대국 일본이 구닥다리냐? 문화산업 한다며 아이들을 모두 다 「원더걸스」처럼 만들 수 있느냐?』며 『제조업을 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 어디서 먹고 살겠냐?』고 되물었다.
 
 金지사는 대표적인 수도권 규제사례로 광명시 소하동 가아자동차 공장을 들었다. 이 공장은 70년 8월 만들어진 후 71년 7월 그린벨트가 지정됐고, 이로 인해 공장 증축이 어려워져 반월 시화공장에 자동차 창고를 두는 불편을 겪어왔다.

 

金지사 표현에 따르면, 당시 관청에선 그린벨트 지정을 위해 조사할 돈도 없어, 선(線)은 적당히 그어졌다. 그러나 이후 37년간 공장 측이 아무리 사정해도 달라진 게 없었다. 관청에선 특혜시비에 휘말리는 게 두려워 잘못된 걸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金 지사는 『최근 들어서야 갖은 노력 끝에 「그린벨트 지정 이전 공장이 만들어져 있었다면, 그 그린벨트는 풀어야 한다」는 예외조항을 지방세법에 신설했고, 소하동 공장의 규제를 풀었다』며 『이로 인해 공장 측은 1년에 20억 이상 절약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법에 따르면, 수도권 공장은 증축(增築), 신축(新築), 이전(移轉)도 안 되는데 이 역시 2~3일 전 법을 통과시켰다』며 『이로써 기아자동차에는 연봉 5000만 원 이상 되는 일자리가 500개 이상이나 만들어졌고, 최(最)강성 노조인 기아노조 조차 내게 고맙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했다.
 
 <『국가 없는 기업은 있어도 기업 없는 국가는 없다』>
 
 金지사는 『대한민국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며 『기업은 국가(國家)경쟁력의 핵심이다』』『기업을 뛰게 하라』『친(親)기업이 애국(愛國)이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국가가 기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라며 『국가 없는 기업은 있어도 기업 없는 국가는 없다』『기업이 원하는 것을 공무원이 도와주는 행정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金지사는 북한문제와 관련, 소위 인도적 대북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헌법에 따르면, 북한은 대한민국,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북한주민이 굶어죽으면 대한민국이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2300만 북한 동포에 끝없는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며 『남조선에 자신들을 돕는 5천 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민주주의와 자유와 인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것이 위대한 통일의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의 "마이카 시대"를 비웃던 학자들
소위 전문가들의 북한예측은 머지않아 휴지통 속에 들어가 버릴 것 같다
金成昱   

 김문수 경기도 지사는 1일 조갑제현대사강좌 강연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마이카 시대」를 말했을 때,

 

 경제학자들은 입을 모아 비판했다』고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보니 그 내 노라 하는 학자들 주장이 다 틀렸다』는 말도 덧붙였다.
 
 현실(現實)은 이론(理論)대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변혁(變革)의 시기일수록, 예측은 더 크게 빗겨간다. 60~70년대 근대화 격변기에 비견될 상황이 김정일 이후 북한의 미래다.

 

 절대다수 소위 북한학자들은 「북한붕괴」나 「자유통일」 가능성 자체를 언급하기 꺼려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金지사가 30년 지나 『다 틀렸다』 고백하듯, 횡행하는 소위 전문가들의 북한예측도 머지않아 휴지통에 버려질 지 모른다.

 

북한동포가 죽어가는 현실(現實), 북한체제가 망해가는 현실(現實)과 동떨어진 썩은 논리, 죽은 분석이 너무 많은 탓이다. 아래는 이날 金지사의 강연 중 관련 부분을 정리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저력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보릿고개 넘어 소달구지에서 마이카시대로 진입했다. 고3때 교과서에 정권연장 위한 개헌은 잘 못된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때 마침 박정희 대통령 3선 개헌이 일어났는데,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반대 데모했다가 무기정학을 당했다.
 
 대학 가서도 박정희 대통령에 줄곧 반대했다. 서울 상대 재학 중에 박대통령이 「마이카 시대」를 말했다. 상대 교수들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이랬다.
 
 「자동차 산업을 할 기술(技術)이 없고, 시장(市場)이 없고, 자본(資本)이 없다. 만들어도 안 팔릴 것이다... 특히 자동차는 생명을 싣고 달리는 문명의 이기(利器)이자, 자칫하면 흉기도 될 수 있다.

 

이런 자동차를 메이드인 코리아로 만들면 누가 사겠는가? 더구나 영국도 자동차 산업이 기울어서 미국, 일본에 밀리고 있다.」
 
 대한민국 교수, 선생님들이 다 그렇게 말했다. 「마이카 시대니 뭐니 독재의 연장수단으로 국민을 혹하게 만드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정책」이라고.
 
 교수, 선생님들 말씀 들어보니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열심히 데모했다. 내 노라 하는 학자들이 하나같이 다 안 된다고 했는데 이것이 성공할 줄 알았나? 며칠 전에도 기아자동차 공장에 갔는데 그 생각이 났다.
 
 당시는 자동차(自動車) 산업도 반대! 조선(造船)도 반대! 방위산업체(防衛産業體)도 반대! 고속도로(高速道路)도 반대! 주류 모두가 반대했다.

 

독재 연장수단이다, 국민을 속이지 말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그 경제학자들 했던 말이 사실은 다 틀린 말이었다.》
 

 

 


 

     1. 高建, "푸른산 볼 때면
        朴正熙가 생각난다"
어떻게 해서든 가난을 극복하려는 무서운 집념이 절절하게
 다가오던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1974. 4. 5식목일 나무심기가 끝난후 관계자  일행과 식사를 하며

  푸른 산을 볼 때면 나는 朴正熙 대통령이 생각난다.
 朴대통령과의 첫 만남이 산에 나무 심는 일을 매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참 일에 열정을 불태우던 젊은 副理事官 시절,
 새마을 擔當官으로 있던 나에게 東大本山에 砂防事業을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東大本山은 月城郡 外東面과 蔚州郡 農所面 사이에 있는

 큰 산이다 .도꾜에서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 상공으로

 들어오다 보면 이 산이 제일 먼저 눈에 잡힌다.
 지금이야 녹화가 잘되어 푸르르지만 당시에는 헐벗은

 민둥산이었다. 이 민둥산이 울창한 일본의 산을 내려다

 보며  날아온 방문객에게 처음 비춰지는 한국의 산이라는  사실을, 朴대통령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방사업의

 設計者 겸 현장감독이 되어야 했다.
 현지에 가보니 동대본산은 정말 악산이었다.
 몇 년간 사방사업을 했지만 거듭 실패했다고 한다.
 비가 오면 흙이 곤죽이 되어 무너져 버리는 특수토질이라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방법, 저 방법 생각하다가 부산의 어떤 토목과 교수로

 부터 자문을 구했더니
 一般 砂防方式 안되고 ‘特殊砂防工法’을 써야한다고 했다.


  철근을 넣어 콘크리트 수로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대로 해 보았다. 정말 대성공이었다.
 
 청와대에 결과보고를 했더니
 대통령이 주재하는 경제동향 보고회)에 참석해
 그 내용을 직접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과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무가 꽤 자라난 일년 뒤에는 전국의 시장, 군수를

 현장에 모아 녹화교육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실적이 있어서인지 ‘第1次 치산녹화 10년

 계획’을 수립하는 막중한 과제가 내게 맡겨졌다.
 워낙 농림부가 해야할 일이었지만새마을 사업을

 추진하던 내무부가 그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두어 달 밤낮없이 매달려 계획을 만들었더니
 관계장관 회의에서 계획입안자가
직접 보고하라는

 대통령 지시가 떨어졌다.보고날짜가 잡혀졌다.
 
 차트사를 붙잡고 보고 전날 밤 한숨 안자고 일을 했지만
 보고시간 10시에 임박해서야 겨우 차트를 완성할 수 있

 었다. 정신없이 차트를 들러메고 청와대 회의장에 도착

 하니 보고시간은 이미 10분이나 지나 있었고 朴대통령을

 위시해서 총리, 장관 모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낭패스럽던 생각을 하면 몇십년 지난 지금도 등에

식은 땀이 난다. 당황스러운 속에서도 심호흡을 하고 보

고를 시작했다.조심스럽게 녹화10년 계획의 기본방향으로


 國民造林(국민조림),
 速成造林(속성조림),
 經濟造林(경제조림)의 세 원칙을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훔쳐보니 대통령의 눈빛이 빛나며 고개를 끄덕

 이고 계신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휴- 하고 안심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제서야 준비한대로 찬찬히 브리핑을 진행할 수 있었다.
 
 보고 중간 중간 대통령은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하셨다.
 하나같이 산림녹화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느껴지는 말씀

 들이었다.
 師團長(사단장) 시절의 에피소드도 이야기하셨다.
 部隊 巡視(부대 순시) 길에 플라타나스 가지를 지팡이 삼아  꺾어 짚고 다니다가  무심코 거꾸로 꽂아놓고 歸隊(귀대)하셨던 모양이다.
나중에 우연히 그 자리를 지나다보니 거꾸로 꽂힌 지팡이에서 싹이 돋았더란다. 나무의 생명력에 감탄을 했다 하시며 파안대소를 하셨다. 그때 웃으시는 대통령 입안에 덧니를

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뒤 지방국장으로 승진한 다음에는 대통령을 자주 뵐

 기회가 있었다.
 매달 한번씩 청와대에서 새마을 국무회의가 열렸는데
 이때 유일한 안건인 새마을사업 추진상황을
 주무국장으로서 보고 드리곤 했었다.
 모두 합해 21번 보고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박대통령이 새마을 사업에 대해 가졌던 열정은 잘 알

 려진 바이지만 ,매 회의마다 그 분이 우리 농촌과 국토에

 대해 가졌던 뜨거운 애정,
 빈곤했던 우리의 역사에 대한 한에 가까운 처절한 심정,
 그리고 貧困(빈곤)을 克服(극복)하여
 경제대국을 이룩하려는 결연한 집념에 숙연해지곤 했다.
  
 그뒤 나는 전남지사를 거쳐 行政首席(행정수석)이 되었다.
 1979년 1월 3일에서 10월26일 돌아가시기까지 열달 동안  바로 옆에서 대통령을 모셨다.
 이 시절에는 대통령과 首席秘書官(수석비서관)들과의 저녁 회식 자리가 잦았다.
 그전에는 잘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찬이 있었는데,
 이 시절에는 매주 한 번 이상이 될 정도였다.
 영부인이 돌아가신 뒤 외로우셔서 그러셨으리라 짐작한다.
 朴大統領은 저녁에 곁들여 飯酒(반주)를 드시곤 했다.

 막걸리 아니면 양주였다.
 막걸리도 특별한 것이 아니고 고향군에서 만든 일반 막걸

 리였고, 양주는 시바스 리갈이 고작이었다. 반주를 드시

 면서 옛 이야기도 자주하셨다. 그러다가 가끔 흥이

 나시면  '비탁' 칵테일을 만들어 돌리시곤 했다.
 
 비탁이란 맥주 한 병을 탁주 한 주전자에 섞은 朴大統領

 秘藏(비장)의 칵테일이다.
 비탁 칵테일을 '調製(조제)'하시는 대통령에게 옆에 앉았

 던 내가“조제는 제가 하지요”하니까
 “어이, 이 사람, 이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당신은 配合比率을 모르지 않나”하시면서 젓갈로 비탁을 휘휘 저으시고는 우리들에게 비탁 칵테일의 사연을 들려주셨다.
  
 일제하 대통령이 문경국민학교 선생이었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젊은 선생들이 ‘기린 비루’를 마시고 싶

 기는 한데 워낙 박봉이라 마음놓고 마실 형편은 못되었다 한다.그래서 추렴한 돈으로 비루(맥주) 두어 병을 사 탁주

한 말에 부어 함께 돌려 마시곤 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구미 상모리에 대농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지주 집에서 모내기를 할 때면 온 동네사람이 모두가 품앗이를 했다 한다.
이 때 마을 아이들과 함께 朴대통령도 따라 가곤 했었는데
그 때 지주 집에서 주던 밥과 반찬 맛이 어른이 되어서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특히 호박 잎에 얹혀진 ‘자반고등어’ 한 토막이 그렇게 맛있더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통령이 마음속에 간직한 가난한 시절에 대한 한과  어떻게 해서든 가난을 극복하려는 무서운 집념이 상대적으로 안녕하게 성장한 나에게도 절절하게 다가오던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뒤로 나도 비탁 칵테일을 몇번 만들어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해도 朴대통령이 만들어 주시던 그 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우리가 잘 살게 된 탓에 내 입맛이 변한 것인지, 배합비율의 비결을 몰라서인지, 아니면 그 둘 다 인지 알수 없다.
 
 
 편집자 주.

 고건 前 총리가 서울특별시장 재직시 박정희 前 대통령을

 회상하면서 쓴 글임

    2.박정희의 "마이카 시대"를 비웃던 학자들
               
      
소위 전문가들의 북한예측은
 
머지않아 휴지통 속에 들어가 버릴 것 같다
金成昱   
   
 김문수 경기도 지사는 1일 조갑제 현대사
강좌 강연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마이카 시대」를 말했을 때, 경제학자들은 입을 모아 비판했다』고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보니 그 내 노라 하는 학자들 주장이 다 틀렸다』는 말도 덧붙였다.
 
 현실(現實)은 이론(理論)대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변혁(變革)의 시기일수록, 예측은 더 크게 빗겨간다. 60~70년대 근대화 격변기에 비견될 상황이 김정일 이후 북한의 미래다. 절대다수 소위 북한학자들은 「북한붕괴」나 「자유통일」 가능성 자체를 언급하기 꺼려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金지사가 30년 지나 『다 틀렸다』
고백하듯, 횡행하는 소위 전문가들의 북한예측도 머지않아 휴지통에 버려질 지 모른다. 북한동포가 죽어가는 현실,
북한체제가 망해가는 현실(現實)과 동떨어진 썩은 논리,
죽은 분석이 너무 많은 탓이다. 아래는 이날 金지사의 강연 중 관련 부분을 정리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저력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보릿고개 넘어 소달구지에서 마이카시대로 진입했다. 고3때 교과서에 정권연장 위한 개헌은 잘 못된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때 마침 박정희 대통령 3선 개헌이 일어났는데,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반대 데모했다가 무기정학을 당했다.
 
 대학 가서도 박정희 대통령에 줄곧 반대했다. 서울 상대 재학 중에 박대통령이 「마이카 시대」를 말했다. 상대 교수들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이랬다.
 
 「자동차 산업을 할 기술(技術)이 없고, 시장(市場)이 없고, 자본(資本)이 없다. 만들어도 안 팔릴 것이다... 특히 자동차는 생명을 싣고 달리는 문명의 이기(利器)이자, 자칫하면 흉기도 될 수 있다. 이런 자동차를 메이드인 코리아로 만들면 누가 사겠는가? 더구나 영국도 자동차 산업이 기울어서 미국, 일본에 밀리고 있다.」
 
 대한민국 교수, 선생님들이 다 그렇게 말했다. 「마이카 시대니 뭐니 독재의 연장수단으로 국민을 혹하게 만드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정책」이라고.
 
 교수, 선생님들 말씀 들어보니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열심히 데모했다. 내 노라 하는 학자들이 하나같이 다 안 된다고 했는데 이것이 성공할 줄 알았나? 며칠 전에도 기아자동차 공장에 갔는데 그 생각이 났다.
 
 당시는 자동차(自動車) 산업도 반대! 조선(造船)도 반대! 방위산업체(防衛産業體)도 반대! 고속도로(高速道路)도 반대! 주류 모두가 반대했다. 독재 연장수단이다, 국민을 속이지 말라고 비판했다.그런데 그 경제학자들이 했던 말이 사실은 모두 다 틀린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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