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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읽어야 할 칼럼

“월가(街)를 휩쓴 반지의 유령 ”

새벽이슬1 2008. 11. 20. 09:11

“월가(街)를 휩쓴 반지의 유령 ”


                                     오 정 인(소설가)


  미국은 지금 일종의 병목현상(Bottleneck)이다.


북한이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했다. 미국으로서는 6자회담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굴욕적 사태다.

야심찬 북구의 전사(戰士) <푸틴>의 러시아는 구소련의 민족 분활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빼들고 <그루지아>를 침공했고, 이란의 핵문제는 단 한가지도 해결된게 없다. 아프카니스탄도 중동문제도 그 외에도 골치 아픈 문제들은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무엇보다 짙은 안개속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深淵)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미국의 경제대란이 미국과 주변국을  강타하고 있다.

한국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신장 위구르와  티벳 독립의 유혈사태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무사히 마친 중국은 오히려 담담한 관망으로 침착하게 버티고 있다.

미국의 힘든 눈빛에도 중국이 달러 대출의 우호적 손길을 거부했다.

오히려 지구촌이  달러에만 너무 의지할 이유가 없다는 듯 유럽연합의 유로화와 같은 아시아화를 얼핏 던지는 태도다.


자타가 공인하는 패권대국이라 할수 있는 미국은  자존심의 상처를 숨긴채 속수무책으로 보인다.

어느것 하나 섣불리 손을 댈 수 없다.

미국 대선이 바로 두달 후로 코 앞에 다가 와 있기 때문이다.


세계최고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던 원동력이라고 믿었던  절대반지가 반란과 같은 히스테리를 부리는 유령으로 돌변한 듯 하다.


그러나 나는 현재의 이런 미국의 상황을 미국경제의 붕괴라던가 완벽한 파산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래서 병목현상으로 표현했다. 병목현상은 치유나 회복이 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좀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한다면 새로운 판 구조의 크나큰 변동을 향한 서막(序幕)일 수 있다고도 본다.

이 드라마의 제작자들, 누구에겐가는 이 위기가 새로운 질서로 변환하기 위한 포석으로 숨겨둔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

그 찬연한 신세계적 두려운 새벽의 마지막 짙은 어둠일지도 모른다.

클라이막스, 혹은 마지막 반전(反轉)은 새로운 판 구조의 지각변동,

전혀 다른 차원으로의 세계를 향한 변화, 그  전환점일 것이다.


일부 새로운 신(神)들에 의한 의도적 씨나리오의 돌연변이 일수도 있다. 신(神)은 결코 자비롭지 않다는걸 인간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 신(神)들에 연관된 인간들의 고통은 어느기간 동안은 극한점까지 갈 것 같다.  그 전환의 진통, 최극점에 가장 잔혹한 플룻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으로 다가가는 조짐도 얼핏 보인다.

미국대선 전? 아니면 대선 직후?

이미 은밀히 예비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어느곳의 전쟁과 같은...이스라엘과 이란? 아니면 한반도?.

아니라면 급격한 빈곤등, 이번 미국경제의 붕괴사태 이후, 다른 이유에서도  무수한 생명이 어디에선가에서 파괴될 수도 있을것이다.


이미 파멸되어가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 그 이후의 그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현대의 새로운 신(神)들은 인류에게 생명의 가장 중요한 , 아니, 유일한 가치는 돈이라고 세뇌했고, 금융이라는 고도의 비열한 기술로 화려한 거품을 만들어 맹목적 주술에 걸린 맹신적 신도를 국적을 초월해서 거느릴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어느듯 통제불능의 경제형태를 바벨탑처럼 쌓아 올렸고 그리고 이제 그 탑이 한꺼번에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파괴의 잔혹한 먼지더미 속에 인류 전체의 존엄성은 찾아 볼수 없다. 소수의 획득자들은 그 처절한 다수의 폐허의 잔해를 그들 소수의 축제를 위한  피의 제단으로 삼아 불사조처럼 살아남아 더욱 찬란하게 비상 할 것이다. 비인간적인 약육강식의 법칙.


“탐욕의 병”이라는 제목의 중앙일보 문창극 주필의 글을 읽었다. 정신의 결여에 대한 통절한 우려에 동감한다.

그러나 그 글에 인용된 <아널드 토인비>의

“문명은 타살되어 몰락하는게 아니라 자살하는것”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지만 시대차이가 있어 개인적으로는 약간 수정하고 싶다.

오히려  <자살처럼 위장된 타살(他殺)> 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 일어나고 있는 미국의 경제위기, 7천억 달러의 공적자금 투입에 반대하는 미국의 국회와 그 이유들을 보면 .

미국 경제학자 <루비니> 교수의

“이익은 사적(私的)으로 독점하면서 손실은 사회화 한다. ”라는 말이 미국과 한국등, 오늘의 정확한 상황일 것이다.


미국위의 초국적 현실이익 지배세력이 있다.

미국으로보이는 그들이 미국을 벼랑아래의 파도속으로 완전히 던져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늙은 용을 물리친 새로운 인간상인 <지그프리트>왕자를 만들어 세울 것이다. 그에게 영웅의 월계관을 씌워 주는 깜짝 쑈를 진행 할수도 있다. 그리고 그의 손에 푸른  칼날을 갈게 할수도 있을것이다. 그는 낡은 모든 질서를 허물고 모든 전쟁에서 이기는 승리의 전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인류가 격는 파산과 빈곤의 고통이 깊고 크다면, 그 고통만큼, 아니 더 이상의 산(山)같은   부(富)를 축적하는  소수의 지배적 세력들 , 그 현대의 신(神)들이 더욱 찬란한  자본의 성을 쌓으면서 존재 한다는 모순을 지적한 말이다.


돈이 인간의 신앙이며 유일하고도 전적인 가치가 된 약육강식의 법칙 하에서 지구의 경제는 이들 극소수 현대의 신(神)들인 초국적 현실이익세력의 지배하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모든힘을 지닌 그들의 압력으로 규제는 점점 더 완화되고, 제어장치가 사라진 시장에서 자본의 생산력화(化)로, 세계화와 총자본주의화로 다국적기업에 장악된 세계경제의 파생상품 극대화와 ,살벌한 다국적 기업사냥, 각종 거품펀드들, 투기적 부동산 시장이 불러온 구름같은 거품으로 초극대화된 위험이 마침내 유령의 히스테리와 같은 통제 불능의 폭력화 상태로 치닫게 된것이다.

폭력은 더한 폭력을 부른다.


절대반지의 분노, 혹은 처절한 응징일지도 모른다.

문주필의 글처럼 정신이 결여된 탐욕의 결과 일 수 있다.


경제활동과 인간의 삶을 분리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삶의 방식과 가치관 부분에서 이제 한번쯤 스스로 우리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과연 사람에게 돈만이 종교이고 최고의 가치이고 유일한 가치인가?

우리의 가슴에서 어느새 화석으로 굳어가고 있는 인간다운 가치인 정신과 영혼의 회복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나서 현실적인 문제도 풀어 나가는게 좀더 품위있는 인간으로서의 순서가 아닐까?


물론 한국역시 미국의 현 경제사태와 이미 연계된 부분이 많은 편이고 그 부정적 영향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해도  한국은  현재의 경제 현실에서 나름대로 새로운 전환 ,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

수많은 경제 용어와 그 용어의 프레임에 갇힌 편협된 이론만이 능사가 아니다.


무조건 규제완화 일변도 보다는 어느정도의 제어장치는 오히려 필요하다.

한국정부는 실패한 미국경제에 맹목적 답습으로 가는 우매함을 버리고 오히려 미국의 경제대란을 거울삼아  아주 재빨리 더 현명한 해답을 찾아 내야 할 것 같다.


나는 요즘의 미국경제 대란을 보면서 다시 130여년전에 <바이로이트> 축전극장의 완성기념으로 초연되었고, 지금까지도 매년 여름마다 그곳에서 공연되는  <바그너>의 17시간짜리 오페라<니벨룽의 반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마지막 4막의 < 신(神)들의 황혼>을.


인간적으로는 약점이 많은 <리하르트 바그너>, 그러나 그는 역시 위대한 천재였다. 그리고 예언가이기도 한 것 같다.


차가운 심장, 끝없는 탐욕의 부(富)와  세계를 지배할수 있는 절대권력을 지닌 반지를 찾이하기 위한 끝없는 배신과 폭력. 투쟁과 유혹, 그리고 비정함과 잔혹함.


물론 19세기 유럽이라는 격동의 시대적 상황과 <바그너>자신의 개인적 정치성과 사상과 그 변천 등으로 28년이나 걸리는 긴 시간동안 작곡된 오페라의 배경은 따로 설명이 되겠지만,

<바그너>는 이 <니벨룽의 반지>에서  오로지 부와 권력을 위해 인간적 가치를 희생 시키는 비정한 사회는 결국 몰락하게 된다는 걸 그때 이미 시사했다.


신의 우두머리 <보탄>의 사생아인 <지그프리트>는 용으로 상징되는 낡은 시대를 물리치는  미래의 인간상이다. 두려움 없는 용기로 용을 찌르고 반지를 찾은 <지그프리트>는  얼마간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질서와 승리의 영웅이 된다.

그러나 <지그프리트>는 유혹에 이기지 못하고 인간적인 약점으로 <기비홍>성에서 술에 취한채 사랑에 빠지고, 배신당해 폭행당하고 불에 타게 된다. 그 불은 강을 태우고 세계를 지배하는 <보탄>과 신(神)들이 사는 <발할라> 성에 옮겨 붙어져 <보탄>의 성(城)을 태우고 신(神)들은 마침내 멸망한다.  이 내용이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의 마지막 4막 < 신(神)들의 황혼>이다.

<보탄>을 위시한  신은 곧 국가, 권력, 폭력, 탐욕적인 부(富), 부패, 낡은 질서 등을 의미했다.

그래서 결말은 증오, 기만의 혼란에 의한 절망과 파괴로 끝맺었다.

그리고 17 시간짜리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바그너>는 애초에는 오페라의 마지막을 해피앤딩으로 하려고 했었던 모양이다.

처음의 구상은 낡은 구태의 용을 찌르고 반지를 쟁취한 승리와 새로운 미래의 영웅 젊은 <지그프리트>는 인간적인 약점을 이기지 못해 배신과 사랑의 유혹에 빠져서  술 취하고 ,폭력에 의해 죽지만 ,그의 실제 아버지이면서 신의 우두머리인 <보탄>에게 반지를 돌려준다,

절대반지를 쥔  <보탄>은 살아남아 전혀 새로운 질서의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 왕으로서 통치 해 가는 것으로 했다는 것이다.  해피앤딩이다.

그런데 <바그너>는 28년이 지난후 오페라의 마지막을 애초의 해피앤딩이 아니라  <보탄>과 신들의 성인 <발할라>성까지 다 불타 버리는 절망적 장면과 장송곡으로 채웠던 <신들의 황혼>으로 결말을 내어 버린 것이다.


나는 미국대선과 그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세계를 지배하는 다국적 현실이익세력의 모습과 <지그프리트>와 <보탄>의 모습을 잠시 오버랩 해 볼 수 있었다.


오페라의 결말은 그렇더라도, 현실의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는 이번의 실패요소로 인해  새로운 진화를 하던지,아니면  전혀 다른 판 구조의 새로운 세계로의 문을 두드릴수도 있을 것이다.


서두에 나는 미국이 심각한 병목현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로 발 앞에 다가온 가장 선결문제인 미국의 대선이 그 이유라고 했다.


병목현상은 치유되고 회복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들의 황혼>과는 물론 다르다.

그러나 세계를 지배 할 힘을 지닌 반지의 의미는 다시한번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현실에서도 절대반지의 제왕은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세계현실 지배세력들인 그들에게 권고하고 싶다.

지구촌 정치, 군사, 언론 ,경제적 질서에서 절대 권력인 그 반지의 의미는 소수의 탐욕을 위한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존엄을 바탕으로 한 모두의 행복과  평화를 위한 것이 될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고.


우리는 이웃이고 인간다운 가치를 아름답게 간직하면서 함께 살아 갈 동시대의 사람들이지 않는가?


탐욕이 부르는 것은 전쟁이고 배신이고 기만이며 폭력 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교만이고 살해이다. 너무도 적라나한 동물적 약육강식이 더 이상 지구촌 최선의  법과 상식이 되어서도 안된다.


이제 탐욕의 최면에서 깨어나서 보다 더 고결한 인간적 가치로 돌아가야한다.


하루빨리 반지의 유령이 덮고있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의 암운(暗雲)이 걷히기를,

갈팡질팡하는 대한민국의 경제에도 새로운 회생의 생명력이 산소처럼 싱싱하게 스며들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2008년 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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