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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당선> 세계질서 변화 예고..다극화.진보 추구
다자간 협력체계 구축-금융자본 규제 전망
오바마 시대는 세계 질서의 일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역대 정권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미국 중심의 패권주의와 신보수주의 정책이 퇴조하고 유럽연합(EU)과 아시아 각국과의 동반자적 협력을 강조하는 다자간 외교와 진보적 경제 질서가 도래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외교안보적 패권주의는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외교 지도력을 추락시켰으며, 오바마 당선인은 누구보다도 이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가져왔다.
따라서 향후 오바마정권은 수십 년간 지속돼온 미국 주도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 유럽과 일본 등 우방들과 보폭을 맞추고 동맹국은 물론 협력이 가능한 국가들과 손잡는 다자주의적 세계질서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당선자는 이른바 '악의 축' 국가들과의 대화도 강조해왔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도 만날 수 있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그의 생각은 앞으로 미국의 외교력을 과시하기 위한 적대적 국가들과의 정상회담으로 구체화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 각국 정상들이 미 대선 결과가 나오자 일제히 유럽과 미국 간의 동반자 관계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미국 주도의 외교 무대에서 뒷전에 밀리곤 했던 유럽이 더 이상 종속적인 역할에 머물지 않고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EU 순회의장국인 프랑스의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교장관은 "이제 세월은 변해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면서 "EU는 더 이상 부수적인 역할에 그치기를 바라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의 협력이 중시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이 지역에서 공화당에 비해 미-일 동맹보다는 미-중 협력을 중시해왔다. 그러나 미국이 인권 문제나 위안화 절상문제, 시장개방 문제 등을 본격적으로 제기할 경우 중국과 오히려 심각한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는 시장중심주의가 쇠퇴하고 시장에 대한 규제와 수정을 요구하는 진보적인 경제질서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올 들어 전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을 마비상태로 몰아넣은 국제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가 오바마 정권의 일차적인 과제다.
금융 산업의 투명성과 책임을 강화하는 개혁을 바탕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의사결정에서 개발도상국의 참여를 확대하고, 신용평가기관들의 책임성을 높이고자 하는 EU의 새로운 금융질서 청사진도 오바마 정권과 코드를 같이하고 있다.
자유무역의 원칙도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당선자는 미국이 세계 각국과 맺거나 추진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으며 미국 자동차 산업과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오는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는 오바마 시대를 맞아 이 같은 국제 경제 현안들을 다루는 최초의 무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바마 당선자는 이곳에서 세계경제 질서의 재편을 요구하는 강대국들 간 이해를 조정하는 역할을 처음으로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오마바 의 생애
소년에게 10대 시절은 누구나 힘든 시기다. '버락(Barack)'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소년도 그랬다. 그는 하와이의 명문 사립 푸나후 스쿨의 몇 안 되는 흑인 학생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처럼 부자도 아니었고, 부모와 떨어져 외조부모의 손에 자라고 있었다.
아버지는 케냐 출신 하와이 유학생이었다. 수업을 같이 듣던 17세의 백인 처녀 앤(Ann)과 사랑에 빠져 마우이섬으로 도망가 그를 낳았다. 하지만 두 살 때 아버지는 집을 떠나 하버드대로 유학을 떠났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케냐로 돌아가 버렸다.
소년은 학교에서 아버지가 '케냐의 왕자'라고 허풍을 쳤다. 이후 교통사고 후유증을 치료하러 요양차 하와이에 온 허약하고 초라한 아버지를 보고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어린 시절 그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살았다. 어머니는 그가 여섯 살일 때 인도네시아 유학생 롤로(Lolo)와 재혼한 뒤 그를 데리고 자카르타로 갔다. 어머니는 새벽 4시면 그를 깨워 영어 공부를 시켰다. 언젠가는 미국 주류사회에 들어가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오바마는 "나는 인도네시아 아이이자 하와이 아이로, 흑인 아이이자 백인 아이로 자랐다. 그 과정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고교 시절엔 '아버지 없는 흑백 혼혈'이라는 출신 배경 때문에 정체성 고민에 빠져 마리화나와 코카인에까지 손을 댔으나 결국 극복했다.
교환학생으로 뉴욕 컬럼비아대학을 다닐 때는 '수도승' 같은 생활을 했다. 하루에 4.5㎞씩 달리고 일요일에는 금식을 했으며 삶의 기록을 남겼다. 책도 많이 읽었다. 수업이 없거나 공부를 하지 않을 때는 걸어서 도시 이곳 저곳을 다녔다. 이때의 생활은 그의 지적 수준을 급속히 향상시켰다.
그는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한 뒤 컨설팅 회사에 취직했다. 승진도 했고 비서도 생겼으며 은행의 잔고도 제법 쌓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관용과 평등을 지키고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 편에 서라." 그는 결국 빈민을 위한 지역활동을 하러 시카고로 떠났다.
이후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일리노이주 상원의원과 연방 상원의원으로 성장하면서 전형적인 정치인 코스를 밟는다.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진보적 미국과 보수적 미국이란 없다. 미합중국이 있을 뿐이다"라는 명연설을 하면서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2006년 그는 미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담대한 꿈'을 실현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연설할 기회가 있으면 빠지지 않았고, 민주당 동료 의원들이 도움을 요청하기만 하면 발벗고 나섰다. 참모인 데이비드 액설로드(Axelrod)는 "지지자들은 늘어났지만 그 역시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는) 확신하지 못했을 겁니다" 고 말했다.
그는 종종 선배 정치인들에게 자문했다. 가장 신뢰한 사람 중 한 명이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지낸 톰 대슐(Daschle·2005년 은퇴)이었다. 톰은 "머뭇거리는 그에게 저는 단호하게 말했죠.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가 오리라는 생각은 버리라고. 상원에 오래 있을수록 '그 표결에서는 왜 찬성했나?'따위의 질문에 변명할 게 많아진다고요" 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친한 친구들과 보좌관들을 불러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데 대해 떠봤다. 대선 출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사람 중엔 성공한 흑인 친구들이 많았다. 한 친구는 "아직 미국은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준비는 안됐어" 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면 내가 죽을 때까지 그럴 거야. 내가 그런 선입견에 도전하겠어" 라고 답했다.
2001년 오바마는 한 인터뷰에서 부모 얘기를 꺼냈다. "그 분들은 이 나라에서 제 이름이 성공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제게 아프리카 이름 '버락'을 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가 더 큰 미국 이야기의 일부라는 것과 제가 이전에 이 땅에 왔던 모든 이들에게 빚지고 있음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버락은 이제 그 빚을 짊어진 채 더 큰 미국을 위해 백악관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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