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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촛불의 타락, 그 정체성

새벽이슬1 2008. 7. 6. 19:59
광화문 촛불의 타락, 그 정체성
[2008-07-05 21:57:01] 인쇄
자유 기고자 이영훈

25년 전쯤 읽었던 책이다. 대학가 서점에서 손에 잡혔던 ‘가스통 바슐라르’가 쓴 ‘촛불의 美學’이었다. 광화문 촛불시위를 보면서 그 당시 마지막 학기, 시간에 쫓기면서 밤늦게까지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촛불은 제살을 태우며 타는 불꽃이다. 내면의 세계로, 利他의 세계로 옮겨 붙은 불꽃은 영감이 되어 詩篇과 같이 美學을 노래했다”고 감평하고 싶다.

철학자의 명상을 빌리지 않더라도 촛불하면 대개 ‘저 멀리 오두막집에서 비치는 등잔 불을 연상케 하며 평화, 외로움과 상존하는 고결함 그리고 희생’으로 表象할 수 있으며, 弱하지만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경외감마저 배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필자는 최근 광화문 근처로 출퇴근을 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소란스런 나라일로, 잊고 있었던 촛불의 영감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늘상 해오던 것처럼 수지행 좌석버스를 오늘은 탈수 있겠지 하고 퇴근길을 재촉했건만 허탕친지가 근 두 달여가 되어간다. 시위가 격해짐에 따라 세종로로 접근하기 조차 막막했다. 도대체 촛불집회가 뭔가? 라는 오기가 발동하여 장벽을 헤집고 군중 속으로, 구호 속으로, 그들의 의식세계로, 숱한 날들을 넘나들었다.

수많은 군중과 깃발, 구호와 그리고 촛불의 군상을 이해하는 데 너무나 난해했다. 처음엔 순수하게 와 닿다가도 자고나면 언론의 상반된 보도를 접하게 되거나 시위 집단의 속살을 한 꺼풀씩 들여다보게 될 경우, 더없이 혼동케 만들었다.
미국산 쇠고기의 졸속 수입협상이 국민건강 주권론을 위배했다는 주장이 여론의 지지를 받고서 비정규직 문제, 공기업 구조조정 반대 등 물밑 숨겨진 온갖 국정현안이 서서히 떠오르게 되었고 ‘대통령 퇴출’ 구호쯤은 똥개 이름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외쳐 됐다.

이유야 어찌됐건 간에 처음 시작된 청계천 ‘촛불 문화제’는 어느 정도 시민들의 공감을 얻은 것만은 사실이다. 굳이 쇠고기 문제만 아니더라도 새정부가 인수위때부터 가볍고 오만하게 비친 행동이 국민들의 반감을 불러온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시민운동의 범위와 목적과도 부합되지 않는 측면이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촛불의 순수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했다. 시위대의 조직력과 구호의 성격, 폭력성, 카드섹션 등 대량의 시위용품 등은 잘 훈련된 집단의 준비된 계획에서 연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이를 눈치챈 시민들은 차츰 발길을 끊고 있었지만 ‘산자는 따르라’는 운동권의 요구처럼 남은 자들은 끝장을 보려고 작심한 듯 했다. 애초부터 이들은 정부가 국민여론을 받아들여 제도권에서 풀어주기를 바라는 기대치는 갖지 않은 듯 했으며, 촛불의 이름을 빌어 쿠데타라도 일으키려는 태세로 정부를 굴복시키려고 대드는 것처럼 험악해 보였다. 국가권위에 대한 존중이나 예의, 시민의 불편을 끼친데 대해선 미안해 하거나 배려하는 미덕은 찾아볼 수 없었다

6월10일 이후부터는 도로점거에서 밤샘 폭력시위로 점철된 곳은 수도 서울 광화문 일대였다. 시위의 양상은 6.15가 다가오면서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일천만 시민들이 살아가는 서울의 중심지가 적게는 불과 몇 수천, 많게는 몇 만여명의 시위자들에 의해 점령당해 그들의 말대로 해방구가 되어 버린 셈이다. 법치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무정부 상태로 몰아가려 했고 그 과정에서 폭력 행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심지어 시위대가 심야에 깨부순 조선일보사 회전문에 쓰여진 ‘김정일 동지만세’라는 글귀에서나 시위를 이끌어가는 선동가의 전력 등에서 순수 시민운동의 규범을 찾아 볼 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정부가 이 지경까지 이르도록 사태를 방치하는데 대해 의아해 하는 국민들이 많았을 것이다. 서투른 국정운영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촛불 문화제’가 국민 지성의 힘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잘못 믿은 순진함에 있다고 본다, 시위대의 손에 든 거짓의 촛불에는 평화, 고결함 등 그 어떤 가치도 담고 있지 않았다.

그러함에도 촛불로 위장한 자들로부터 국민도, 정부도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 당국은 두려움마저 느낀 것 같았다. 타락한 촛불은 더 이상 국민저항의 상징이 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이제 광화문의 촛불은 유령의 꼬리불이 되어 버렸다, 그 정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대목에 와 있으며 晩時之歎이지만 치안당국도 시위 주동자들과 함께 법치를 무너뜨린 점에서 응분의 책임을 묻는 것이 마땅하다

그야말로 촛불은 혼자 어둠을 밝힐 때 그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군중 속에서가 아니라 단독자로서 바람도 없는 창가에서 그을음도 남기지 않은 채 타다가 아무 말 없이 사그라질 때 가치가 있다. 오늘도 자기 내면에서 타오르는 촛불을 성찰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다수 국민들을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 촛불의 생명력과 美學이 담겨져 있다고 보며. 종교의 의식으로 거짓의 촛불을 정화하기엔 때늦지 않았을까?

독립신문 http://www.independ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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