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공정방송노동조합
‘너무 큰 모자’
정연주 사장의 일생에서 경영은 고사하고 소규모 조직의 관리경험조차 없었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그의 이력이다. 그런 정연주 씨가 인쇄매체 논설주간에서 하루아침에 한국 최대의 공영방송사 CEO로 임명된 것은 애초부터 코미디 수준이었다.
2003년 당시 이사 중에 한 분이 정 사장에게 묻는다. ‘한겨레에서 KBS에 오시니 어떻습니까?’ 이 인사성 질문에 대한 정연주 사장의 대답이 향후 그의 사장 행각을 예고하는 시금석이라고 생각된다. ‘한겨레에 있을 때는 몸은 편했지만 머리가 무척 바빴는데, KBS에 오니 머리는 편해졌지만 몸이 무척 바쁩니다.’ 좌중이 말없이 실소하는 이 대목에서 KBS사장이라는 자리는 정연주 씨에게 ‘너무 큰 모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향후 그의 행각이 웅변으로 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후안무치한 펜 놀림으로 KBS의 사장자리를 따낸 그의 경영능력과 경영성과는 과연 몇 점짜리였을까?
고의 적자?
KBS에 있어서 정 사장의 5년은 한마디로 무능경영의 극치이다. 그가 KBS에 입성한 다음해인 2004년은, 사장 취임 후 첫 경영 성적표가 나온 해였다. 결산 결과는 참담했다. KBS사상 최악인 638억 원 적자였다. 이는 IMF 구제금융 시기인 1998년에 기록했던 적자 580억 원을 58억 원이나 초과한, 공사 창립이후 사상 최대 규모였다. 전반적인 경기침체에 따라 광고시장이 위축됐다고 하지만 MBC, SBS는 각각 656억 원과 359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유독 KBS만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원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다.
KBS이사회에 보고된 적자의 원인을 보자. 첫째, 수입 전망치를 무시하고 광고수입 목표를 책정해 사실상 적자 예산이 편성된 것과 같은 결과라는 점. 둘째, 팀제 전환 등에 의한 제작자율화 분위기에 따라 일선 제작 책임자들의 제작비 여과기능 저하로 인한 제작비 증가부분이 크다는 점. 셋째, 긴축 예산안을 예산 편성에 반영하지 않는 등 예산팀의 부실한 예산관리 등이었다. 결코 경영 상 있을 수 없는 무책임한 일들이 KBS내에서 발생한 것이다. 정 사장 스태프들이 얼마나 무능하고 아마추어들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낸 분석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보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KBS사상 최악의 적자에 대한 실체적 진실과 그 귀책사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짚고 가야 한다.
경영진이 실제 어떻게 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2004년도 매출수입은 2003년도보다 1.6% 감소했음에도 집행된 방송제작비는 2003년도보다 13.9% 증가했다. 2003년도 대비 광고수입이 7.2% 감소했기 때문에 2004년도 적자는 누가 보아도 필연적이었다. KBS이사회와 예산팀, 그리고 광고팀에서는 수입이 줄어 적자가 예상된다며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수차례 건의와 경고를 했다. 그러나 정 사장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고의로 적자를 낼 요량이었거나, 긴축 시 반발할 특정세력을 의식한 결과일 수도 있다. 자신을 사장으로 보쌈해 온 세력에 대한 ‘보은의 돈 잔치(?)’였는가? 수입이 감소한다는 수차례의 경고음이 울렸음에도 어떻게 제작비는 막무가내로 늘어만 갔는가? 적자의 책임은 무능한 최고경영자인 정 사장에게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제작비 원 없이 써 봤다!’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방송제작비는 이후에도 매년 늘어만 간다는 점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2005년도는 2004년도에 기록된 사상 최악의 적자를 의식해 전년 대비 7.7%의 제작비 감축이 이루어졌으나, 2006년도는 전년 대비 무려 15.1%나 증가하였다. 이것을 2003년도 기준으로 볼 때, 2006년도 매출수입은 6.6% 증가한 반면 방송제작비는 무려 21%나 증가한 수치이다. 광고수입이 1.4% 감소하는 상황에서 어찌 가당키나 한 경영인가?
오로지 방송제작비만이 성역처럼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죽하면 ‘제작비! 원도 없이 써 봤다’는 전설 같은 소문이 PD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었을까. KBS의 방송제작비는 수입과 관계없이 늘어만 간 것이다.
‘머리는 편한 사람’, 정연주!
광고수입과 예산규모와 관계없이 왜 방송제작비는 계속 늘어만 갔을까? 팀제 실시이후 방송제작비 관리통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은 명백한 증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책임은 정 사장에게 귀결된다고 하는 것이다. 최고 경영책임자는 마땅히 수입에 따라 지출을 통제해야 하는 것이 경영의 ABC이다. 그런데 최고경영자가 수입은 불문한 채 지출(방송제작비)은 통제하지 않고서 ‘제작 자율화와 프로그램 수준 유지’ 운운하며 둘러댈 일인가. 그 적자가 어디 한두 푼인가? 정 사장 재임 중 제작이 연이어졌던 대하사극의 제작비를 보자. 그가 입성하기 전인 2003년 ‘무인시대’의 주당 평균 제작비는 3억2천만 원이었다. 그러나 정 사장이 부임한 2004년 ‘이순신’의 제작비는 물경 58%나 급등한 5억1천만 원이다. 물론 출연진 규모와 등급 차이 등 이유야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 적자가 이미 발생했고 앞으로도 적자가 예상됐다면 다른 어떤 부문에서 무슨 수라도 썼어야만 하지 않았을까?
누적 적자 1,500억 원
정 사장은 입성 이후 과거에 과납한 법인세 등을 서둘러 환급받는다. 환급금은 2005년도에 556억 원, 2006년도에 374억 원이다. 이는 과징 관행을 끊은 성과이고 KBS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몇몇 직원의 수년간에 걸친 끈질긴 문제제기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다. 환급 소송을 주도했던 한 사원은 정 사장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최종심인 대법원까지 간다면 총 2,000억 원 규모의 과납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는데도, 정 사장이 발등의 불인 적자를 모면하려고 중도에 화의함으로써 결국 KBS에 1,100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이 환급금을 제외한 정 사장 경영의 결산표를 보자. 2004년도는 638억 원 적자, 2005년도는 20억 원 흑자, 2006년도는 132억 원 적자, 2007년도는 310억 원 적자(추정), 2008년도는 439억 적자예산 편성! 5년간 누적적자가 1,500억 원!
참으로 참담하다. 이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일반 기업이라면 ‘직장폐쇄’를 해야 할 결산표는 아닌가? 공기업이므로 용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준조세인 ‘수신료’를 내는 국민이 두렵지 않은가? ‘수신료’와 ‘디지털 전환비용’ 운운하며 앙탈만 부릴 일인가? 타 방송사는 해마다 흑자 기조인데, 왜 유독 KBS만 연속 적자인가? 우리가 타 방송사들보다 임금을 더 많이 받고 있는가? 사장은 잘못이 없는데 직원들이 일을 잘 못하기 때문인가?
기회 있을 때마다 정 사장은 이러한 대규모 적자의 원인이 ‘구조적’인 문제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무능력 때문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정말 능력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신입사원을 사장자리에 앉혀도 정연주보다 더 잘 하겠다.’는 7천 사원의 비아냥거림은 왜 듣지 못할까?
무능경영의 대명사, 정연주!
‘동지 여러분!’으로 출발한 정 사장의 이념적 편향성은 ‘한국사회를 말한다’, ‘인물현대사’ 등과 같은 프로그램에 투영된다. 그는 KBS프로그램을 ‘이념교육의 도구(?)’로 삼아 이념 갈등을 유발하였다. 충격과 혼란에 빠진 KBS에 대한 전통적 지지층은 서서히 KBS를 외면하기 시작한다. KBS는 대국민 신뢰를 상실하고 이념적 편향성 시비에 휘말린다. 그 결과 광고주들이 KBS를 외면하게 하는 결과를 자초한 것이다. 매출액 대비 방송제작비 집행률이 2003년 35.3%에서 2006년 39.4%로 증가했으나, 매출액 대비 광고수입률은 54.9%에서 50.0%로 감소한 수치가 이 분석 결과를 웅변으로 입증하고 있다.
정 사장의 경영혁신 능력은 또 어떤가. 개혁은 말 뿐이었다. 정 사장 같은 무능한 사람은 개혁의 대상이지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는 오히려 난맥상만 심화시켰을 뿐이다. 팀제 실시 이후 국장급(?) 팀장직위 수는 189개로 오히려 크게 증가하였고, 부장급(?) 직위에 해당하는 선임팀원직위 수는 380개로 이미 과거 부장급 직위 정수를 넘어선지 오래이다. 부사장도 한 명 더 앉히고, 본부장도 두 명 더 늘렸다. ‘앙시앙 레짐’의 부활을 넘어선 개악임에도 그는 이러한 행보를 개혁이라는 틀에 넣고 있다. KBS의 인건비 비중이 매출대비 38%에 이른다. 일반 기업의 경우라면 벌써 망했을 수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사장은 경력기자, 경력PD 등 경력사원 모집에 혈안이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멀쩡한 지역방송국은 공사 기구표에서 이름만 지웠지 인원과 장비는 대부분 그대로 남아 오히려 텅 빈 건물을 관리하느라 해마다 막대한 유지관리비만 쏟아 붓고 있는 실정이다.
정 사장이 입성한 후 KBS에서는 사건·사고가 유난히 증가한다. 공금횡령 사건을 보자. 대구의 모 PD가 1,600만 원, 광주의 모직원은 12억 원, 모 기자는 2,000만 원을 횡령하고 모두 면직되었다. 뿐만 아니라 모 지역총국장은 법인카드로 퇴폐업소에 출입하였고, 모 PD는 해외 취재에 가족을 동반했다. 또한 제작보조요원에게 2억 원에 달하는 시간외실비를 부당하게 지급하기도 했다. 누군가가 KBS를 복마전이라 일컬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일들이 크든 적든 KBS 누적적자 경영에 한 몫을 한다는 점이다.
몇 년 전, 일본 NHK의 회장인 에비사와 씨는 직원의 4억 원 대 횡령사건이 발생하자 스스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NHK뿐만 아니라 BBC에서도 이런 사건 하나만 터져도 CEO는 부끄러워 용서를 빌며 자리를 떠난다. 정 사장이 BBC를 사나흘 방문하고 와서 BBC의 모든 것을 다 파악한 듯 틈만 나면 입버릇처럼 BBC를 자랑스레 들먹였다. 언필칭 ‘테돌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연주 사장은 세계 유수의 방송사인 NHK, BBC 수장들의 용기와 염치, 그리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배우지 않았다. 참으로 낯 두껍고 뻔뻔하다.
덮어버린 원천세 과오납금, 20억2천만 원
지난해 12월, 정 사장은 외국영화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과오납한 원천세 20억2천만 원의 환수를 포기하기로 경영회의에서 결정했다. 환수 가능성 유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KBS에서 어찌 20억2천만 원이라는 국민의 혈세를 쉽게 포기해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KBS가 과오납으로 날려버린 국민의 혈세는 총 48억2,500만 원이다. 이중 28억3백만 원은 환수시효 10년 만료로 이미 물거품이 되었으나 나머지 20억2천만 원은 정말 아깝다. 수신료로 환산해 보자. 총 200만 가구에 달하는 수신료를 버린 것이고, 그중 80만8천 가구의 수신료는 환수의 실효성이 없고, 해외의 배급사가 협조하지 않는다며 포기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정연주 사장이 인지한 시점인 2006년부터 2년간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이 문제를 추궁하자 환수하도록 하겠다며 은근슬쩍 위기를 모면한 후 직무를 유기한 것이다. 적자에 허덕이는 회사는 단 돈 1,000원도 아껴야 한다. 그런데 자그마치 20억2천만 원이다. 이런 경우 정연주 사장을 직무유기나 배임죄로 다스릴 수는 없는 것인가? 이제부터 고민해 볼 일이다.
환수 노력을 하여도 실익이 없다는 의견을 받아들인 결과인데, 이것은 국민의 혈세인 ‘수신료의 가치를 생각한다’는 사람이 보일 태도가 아니다. 끝까지 노력하여 단돈 1,000원이라도 남는다면 포기하지 않고 추진해야 하는 것이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사 사장이 보일 태도가 아닐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국민이 불쌍하다.’ 그리고 이런 사장을 어찌하지 못하는 우리는 국민께 사죄해야 한다. “국민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정연주 5년 성적표, ‘퇴출!’
정 사장의 경영 성적표가 이미 ‘퇴출’로 드러난 상황에서도 그는 임기를 채우겠다고 한다. 실로 섬뜩한 모습이다. 이제 임기를 얼마나 남기고 있는지 아무도 가늠할 길이 없다. 그런데 그가 남은 기간 동안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불안감이 그치질 않는다. 얼마 전 자신의 최측근을 해외지사 사장으로 파견한 인사 발령은 앞으로 있을 불가측성에 대한 신호탄에 불과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선거에서 국민은 정권교체가 아니라 체제교체를 선택했다. 그런데 정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오만한 권력에 대한 비판’ 의지를 천명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퇴출’을 기대하지 말라고 새 정부에 보내는 경고일까? ‘퇴출’을 막아달라고 그의 추종자들에게 던지는 테제일까? 아니면 언론인으로서 초지일관한 그의 선택적 언론관인가?
누군가에게서 보았듯이 ‘오기’일 수도 있다. 그 ‘오기’는 종종 재앙을 수반하기에 앞날이 걱정이다. 그는 퇴임 며칠을 앞두고도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결코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A PD의 징계 결정을 보류한 사례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은가.
아무리 온정적인 잣대로 평가해 봐도 정연주 사장은 진작 물러가야 했을 사람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마지막 남은 애정을 바탕으로 충고한다. ‘정연주 사장은 이제 그만 KBS를 떠나라.’
아름다운 퇴장의 타이밍은 이미 놓친 지 오래지만, 그리 추한 모습은 아닌 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한번쯤은 남아있다. 어느 시인은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했다. 우리는 지난해 정 사장이 역주행으로 KBS에 입성하던 그길로 아름답게 퇴장하기를 바란다. 정말로 그가 퇴장하는 추한 뒷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2008. 2. 1.
KBS공정방송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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