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제 민주당 대선 후보
과거 경선불복, 국민 걱정 끼쳐 무조건 잘못”
- 16일 민주당 후보자 지명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최종 확정된 순간, 이인제 후보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대권 3수(修)만에 정당 경선을 통해 후보가 처음 된 것을 감격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이 후보는 이번 경선에서 56.4%를 득표했다. 16개 광역시·도 중 경남·북, 제주를 제외한 13곳에서 이겼고, 여론조사에서도 56.7%를 얻는 등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투표율이 8.7%에 불과해 흥행엔 실패했다.
이 후보는 이날 후보수락 연설을 과거 ‘경선 불복’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했다. 그는 “10년 전 독자 출마로 비판을 받았고, 5년 전 민주당을 떠난 일로 국민과 당원에 상처를 줬다. 허물과 과오를 성찰하고, 내 판단보다는 국민의 마음을 따르겠다”고 했다.
- 이 후보는 “국정을 파탄시킨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는 한나라당을 꺾을 수 없다”며 범여권의 단일후보가 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비쳤다. 그는 “어머니의 땅 호남을 넘어서 지지기반을 충청·경기 등 서부벨트로 확대하고, 불모지 영남에서도 30% 이상 지지를 받겠다”고 했다. 또 햇볕정책 계승, 7% 경제성장과 60만개 일자리 만들기, 첨단산업 대특구 5개 신설,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등을 공약했다. 다음은 이 후보와 일문일답.
―후보단일화는 어떻게.
“앞으로 한달 안에 이명박 후보를 이길 후보에게 국민 지지가 쏠릴 것이다. 신당 (정동영) 후보로는 이길 수 없다. 민주당 후보가 돼야 하는 이유를 한달 간 알리겠다.”
―단일화 방법은.
“국민의 심판이 선행할 것이다. 정당·후보간 만남은 마무리 단계에서 하는 것이다.”
―문국현 후보와도 같이하나.
“단일화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실체가 뭔지, 누군지 잘 모르겠다.”
―과거 경선불복과 탈당에 대해 사과했는데.
“10년간 얻어맞으니 억울해서 항변도 했었다. 그러나 누명 쓰고 감옥에 있어 보니, 국민걱정 끼친 게 무조건 잘못이라는 걸 느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관계나, 당내 화합 방안은.
“김 전 대통령의 말을 듣고 소화하면 되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조순형 의원은 큰 지도자이므로 대의를 위해 역할을 해 줄 것이다. 모두가 힘을 합치고 외부 인사도 영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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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출신으로 88년 정계 입문… 대선 3번째 도전
● 이인제는 누구
배성규 기자
- 16일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인제(李仁濟) 후보는 이번이 세 번째 대선 도전이다.
1997년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선 노무현 후보에게 진 뒤 탈당하는 바람에 ‘경선불복’의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이후 5년간 와신상담 끝에 이번에 민주당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다. 경선 초반만 해도 대세론을 형성했던 조순형 의원에게 밀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특유의 조직력과 돌파력으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이 후보는 1948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경복고·서울대 법대를 졸업, 1979년 사법고시(21회)에 합격한 뒤 대전지법 판사를 지냈다. 1988년 13대 총선(경기 안양갑) 때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안양에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 후보는 88년 5공 비리 청문회에서 송곳 같은 질문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더불어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으로 14대 의원, 노동부 장관, 경기도 지사를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뛰어난 언변과 다부진 외모로 ‘YS의 정치적 아들’로 불렸다. 1994년 김 전 대통령이 “깜짝 놀랄 세대교체를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46세에 일약 대선후보 반열에 올랐다.
그는 97년 신한국당 경선에선 이회창 후보를 꺾을 ‘YS계의 대표주자’로 부상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닮았다는 ‘리틀 박정희’ 이미지로 지지율도 급상승했다. 그러나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패하면서 정치적 시련이 시작됐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 신한국당을 탈당, 국민신당을 창당했다. 대선에서 492만표(19.2%·3위)를 얻었지만, ‘배신자’’경선불복자’라는 멍에도 썼다.
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국민회의에 입당, 차기 주자로서 입지를 굳혔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도 초반 ‘대세론’을 형성했지만, 노무현 후보 돌풍에 밀리자 중도사퇴하고 탈당했다. 이후 자민련, 국민중심당에 입당하는 등 ‘정치적 유랑’ 생활을 하다 지난 5월 민주당에 복당(復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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