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준 이명박의 7대 행적을 밝힌다.
1. 하이 서울 장학사업
- MB는 서울시장 재임시절 경기 불황으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들이 연간 만명 가량이나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울시가 장학금을 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었지만, 이들이 좌절하고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막아 줄 사회 안전망을 예비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해 서울시 SH공사에서 아파트 분양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장학기금을 만들어 지원했다. 이 장학금은 본인과 교장선생님과 가정만 아는 장학금이다. 학비가 없어서 공부하지 못하는 중,고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자신의 봉급을 전액 청소원자녀 장학금으로 사용토록 하였다.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학자금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차 상위 계층과 부모님의 파산 등으로 갑자기 빈곤층이 된 고교생들의 학비 지원을 위한 것으로 교육지원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진 학생들을 위하여 마련된 것으로 매년 1만 8천여명의 혜택을 보고 있다.
2.삶의 목표를 제시하는 ‘노숙자 일자리 찾아주기’
일용직근로자 합숙소에 살았던 경험이 있는 MB의 ‘노숙자 일자리 찾아주기’는 최근 언론을 통해 가족과의 재회, 삶의 의욕고취 등 성공적인 복지정책의 사례로 재조명되고 있다. 서울시 전체의 노숙자를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해 일을 할 수 있는 노숙자들에게 수 차례의 정신교육을 통해 근로현장에 투입하고, 이후 1000만원을 저축하면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배려를 통해 근로의 목표를 설정해 주었다. MB는 서울시장 재직시 노숙자들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다.
3.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중증치매 노인을 위한 요양원’
흔히들 MB의 서울시장 성과를 ‘청계천복원’ ‘버스 준공영제’ 등 큰 사업만을 기억한다. 그러나 MB의 기본적인 관심은 서울의 어려운 곳, 어려운 사람들에 있었다. MB는 2002년 말 수십년 전에 살았던 달동네를 찾았다. 달라진 것 하나 없는 동네를 둘러보던 중 바깥에서 문이 잠긴 단칸방에서 사람 소리가 들려(MB ‘아마 젊은 부부가 아침에 일하러 나가면서 밥 한 그릇 떠놓고 문을 잠그고 나간 것 같다’고 판단하고) 문을 뜯어보니 노인 한 분이 계셨다. 저 소득층 중증치매 노인에 대해 현황파악에 나섰지만 통계조차 없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그는 공무원들에게 가구마다 일일이 조사를 해 형편이 어려운 가정 1320세대의 치매 노인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요양원을 준공하고 이들을 전원 입원시켰다. 시설과 의료진은 최고 수준이었다. 이외에도 맞벌이부부를 위한 지원사업과 장애인 택시사업 등 드러나지 않는 복지사업도 말없이 진행해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생산적인 복지는 가장 절망적인 극단의 사람들에게 재활과 삶의 의지를 북돋아주는 것이어야 하고, (그들을 보듬으려는) 사회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이명박이 서울시장 퇴임 직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복지정책에 대한 소신이다.
4. 일자리 창출, 월급받는 일자리가 소원이던 MB
월급쟁이가 꿈이었던 일용노동자 출신 MB는 직원 98명의 중소기업을 열사의 사막에서 동토의 시베리아까지 세계와 경쟁하며 직원 16만8000명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신화의 주인공이다. CEO 서울시장으로 행정능력을 검증받은 MB가 재임시절 마지막으로 한 일도 서울시 노숙자들에게 일자리를 준 일이다.
5. 서울시 빚 3조 해결사MB
서울시장 재임시절에도 예산의 ‘편성-집행-결과평가’ 단계를 민간 기업시스템과 같은 방법으로 개선해 예산의 11%를 줄이고, 일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해 철저한 심사시스템을 구축, 재원의 배분과 투자효율성을 높여 예산 낭비요인을 줄이는 등 기업의 경영마인드를 시정에 접목시켜 5조원에 달하던 서울시 부채를 3조원이나 줄였다. 이처럼 늘어만 나는 국가빚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은 MB이다.
6. 노점상 , 서민의 생계대책 해결의 리더십 MB
MB는 청계천 복원공사 과정에서 반대하는 상인들을 공무원들과 함께 무려 4000번 넘게 만났다. 청계천 양쪽에는 22만명의 상인과 600개의 단체가 있었고 이들의 이해관계는 모두 달랐다. MB 자신은 물론이고 고위 공무원들이 현장에 직접 가서 분노한 상인들의 질타를 온몸으로 감내했다.
정부도 정보기관도 10년, 20년, 30년 장사하던 노점상을 설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야당 서울시장이 할 수 있는 것은 만나서 설득시키는 일 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었다. 그는 힘이 아닌 원칙과 진정성으로 격렬히 저항하던 상인들을 설득시켰다. 모두 4270번을 만나 협의를 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민원을 최고책임자가 4000번 이상을 만나 설득시킨 예가 없었다.
7.서민을 위한 버스 전용차선제
2004년 7월 1일, MB는 많은 이들의 반대와 우려를 물리치고 건국 이래 최초로 서울의 대중교통체계를 전면 개편했다. 서울시가 추진한 개편안은 버스의 간지선(幹支線)제, 중앙차선제, 지하철 환승을 위한 교통카드시스템 등이었다. 이를 위해 버스의 준공용제, 첨단 IT기술을 활용한 신 교통카드 발급 등이 도입되었다. 아울러 이 안은 버스개혁을 통한 대중교통의 활성화 및 이에 따른 승용차 이용의 수요관리를 통해 보다 나은 도시교통 형성, 서민들의 교통비 부담 경감 등을 지향하고 실시되었다.
MB의 대중교통체계 개편은 1년 후‘세계대중교통협회(UITP)에서 교통혁명에 비견하며’우수정책 인정‘을 해 주는 등 세계적인 호평을 받게 된다.교통체계 개편안과 버스의 준공영제 실시는‘버스수송분담율’의 저하와 업체수익 중심의 구도를 시정해 난폭운전, 정류소 무정차통과, 불규칙한 배차간격 등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대중교통환승센터 설치는 대중교통 수단간 갈아타기를 용이하게 해 최단거리와 시간으로 목적지 통행을 가능케 했다. 그리고 편리한 환승을 위해 도입된 중앙버스전용차로제는 버스 이용 속도를 증가시킴은 물론이고 정시성과 안전성까지 담보(擔保)했다. 저공해 LNG 버스와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 등의 도입도 도심환경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차원의 시도였다.
이로 인해 서울시민들은 교통체계 개편 1년 후 81.8%의 만족도를 나타냈다. 이는 2004년 6월의 58.2%보다 훨씬 증가한 내용이다.(녹색교통운동의 2005년 6월 서울시 교통체제 개편 1주년 조사 참조) 또한 버스공제조합 서울지부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시점의 개편 전 대비 버스사고 41.2% ㆍ 사망자 수 61.5%ㆍ 부상자 수 41.2% 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버스 통행당 요금도 17% 줄었다.
환승무료 시민혜택도 연 2천억 원 등으로 조사됐다. 한 사람이 한 달간 출ㆍ퇴근 시 각각 한 번 환승을 하게 되면 이전보다 54000원의 교통비를 줄인다. (휴일 외출 유무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 이와 같은 수치는 가족 구성원의 숫자가 많을수록 크게 증가하게 된다. 이는 MB 의 교통체계 개편안이 서민을 위해 정교하게 기획된 정책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서울에서 시작된 버스 준 공영제도는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서 확대되어 시행되고 있다. 서울. 경기. 인천 통합 환승시스템이 전격 실시되어 2500만 수도권 시민들의 교통비 가계 부담을 덜어 주고 있다.
국가경영 시대 CEO 는 역시 MB이다.
우리는 글로벌 지식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과 물자, 자본이 국경의 벽 없이 오가며 단일시장 경제를 이룬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글로벌 경제전쟁의 와중에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은 어떠한 길을 가고 있었는가?
우리는 지난 10년의 힘든 퇴보의 시대를 빨리 끝장내야 한다. 앞으로 현대사회는 국가간도 통상무역을 잘하여, 잘사는 국가로 UP그레이드 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국가통치시대’가 끝나가고, ‘국가경영시대’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이 시대정신은 역시 MB이다.
MB! 그가 성공한 CEO 경영기법을 이제 대한민국 국정에 이식시키고자 한다. 이명박과 함께 하는 <국가경영시대>는 ‘한반도 대운하’의 성공과 함께 전 세계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이름을 드높여 꿈의 4만 불 시대의 ‘강한 대한민국’을 이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