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지키자 ! 대한민국!

노벨평화수상자 "유누스 그라민 은행 총재 본문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

노벨평화수상자 "유누스 그라민 은행 총재

새벽이슬1 2007. 4. 8. 07:12
2006 노벨평화상 수상 … 유누스 그라민 은행 총재
 ...인물칼럼

2006 노벨평화상 수상 … 유누스 그라민 은행 총재 [중앙일보]

`복지제도가 빈자들의 빈곤 탈출 더 어렵게 해`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뽑힌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 아래는 유누스 총재가 중앙일보 독자에게 전하는 친필 사인 .강욱현 기자
관련링크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무하마드 유누스(66) 총재는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인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창안해 빈민들의 가난 탈출을 도운 공로로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뽑혔다.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600만 명을 넘으며, 그 가운데 58%는 가난에서 벗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이미 9월 초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된 그는 상을 받기 위해 18~21일 서울을 방문했다. 그를 두 차례 만나 그라민 은행의 성공 신화를 직접 들어 봤다.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 소감은.

"노벨 평화상과 서울평화상을 같은 해에 받게 됐다. 그 덕분에 빈민을 대상으로 한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인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널리 알릴 수 있게 돼 무척 기쁘다. 그라민 은행의 영업 방식이 각국에 퍼지고 있지만 여전히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은행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나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 누구나 담보 없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날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선정을 예상했는가.

"사실 노벨 경제학상을 먼저 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노벨 평화상 선정위원회가 나의 업적을 먼저 알아준 것 같다. 경제학자로서 솔직히 노벨 경제학상에도 관심이 많다. 미국 밴더빌트대에서 계량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방글라데시에서 평생 교수 생활만 할 줄 알았다. 미국에서 같이 공부한 한국 친구들은 대부분 귀국해 지금도 경제학 교수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방글라데시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해 나는 교수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한국은 빈곤에서 벗어나 친구들이 편하게 교수 생활을 계속하는 것 같다."

-그라민 은행을 시작한 계기는.

"1976년 치타공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중 인근 농촌 마을인 조브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처음 알게 됐다. 이곳 빈민들은 대나무 의자를 만드는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 종일 일해도 겨우 50페이샤(약 20원)를 벌 뿐이었다. 이들은 담보가 없어 일반 은행에선 돈을 빌릴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고리대금업자로부터 재료비를 빌린 뒤 그 이자를 갚는 데 돈을 다 쓰고 있었다. 너무 딱해 보여 이들에게 나중에 돈이 생기면 갚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줬다. 이것이 그라민 은행의 작은 출발이다."

-정식 은행으로 키우기까지 힘들었을 텐데.

"이들에게 계속 돈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 봤다. 은행에 찾아갔는데 담보 없이는 빈민에게 돈을 빌려줄 수 없다며 문전박대를 했다. 그래서 내가 모든 위험을 안고 보증을 섰다. 정부와 중앙은행, 그리고 대부분의 은행이 나를 비웃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79년까지 500여 가구에 도움을 줬다. 그리고 83년 교수직을 버리고 그라민 은행을 공식 발족했다."

-오히려 정부와 기존 은행이 빈곤 탈출의 걸림돌인가.

"모든 빈곤이 개인의 게으름이나 무능 때문인 것은 아니다. 정부의 정책과 제도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 나라의 복지 제도는 빈곤층의 가난 탈피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 복지 제도는 빈곤층을 계속 가난하게 하는 것으로, 문과 창문을 모두 봉쇄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돈이 있어야 자영업을 하며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활 의지가 생긴다."

-빈곤 탈출의 기준은 무엇인가.

"매년 대출자를 대상으로 생활 수준을 조사하는데, 다음을 빈곤 탈출의 기준을 삼는다. 우선 모든 식구가 하루 세 끼 밥을 먹어야 한다. 비가 새지 않는 집에서 살아야 한다. 위생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깨끗한 물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취학 연령이 넘은 아이들 모두가 학교에 다녀야 한다."

-그라민 은행의 이자율은 어떠한가.

"대출 상품은 크게 네 가지가 있으며 각기 이자율이 다르다. 일반 대출은 연 20%의 이자를 받는다. 그런데 주택 대출은 8%만 받는다. 주택은 인간이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학비 대출은 5%다. 공부는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다. 공부하는 동안에는 돈을 갚을 필요가 없고, 졸업한 뒤 벌어서 상환하면 된다. 그리고 거지에게도 대출해 주는데 이자율이 0%다. 그들에게도 자활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일률적으로 계산할 수 없지만 방글라데시 일반 은행의 대출 이자율을 15% 정도라고 봤을 때 우리 이자율은 6~7%포인트 낮은 편이다."

-그라민 은행의 대출 상환율이 99%나 된다는 사실에 다들 놀라는데.

"외국 금융권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비법을 알려 달라며 문의가 쇄도했다. 그들에게 자료도 제공했고 일부는 직접 와 우리의 대출 제도를 보고 가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의 평가는 '금융 차원에선 연구 대상이지만 비즈니스 차원에서 일반 은행에 적용하기 힘들다'였다. 쉽게 얘기하면 일반 상업은행으로선 위험이 대단히 크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 은행은 76년 설립 이후 3년만 빼놓고 계속 흑자를 내고 있다. 지난해 흑자 규모는 700만 달러였다."

-그라민 은행이 여성의 인권 신장에 큰 역할을 했다는데.

"방글라데시는 전통적인 이슬람 국가로 여자의 권리가 거의 없다. 여자가 돈을 빌리러 은행에 오면 창구에서 '남편과 상의했는가'라는 질문이 나오기 일쑤다. 남자 빈민보다 여자 부자가 돈을 빌리기 더 어려울 정도다. 내가 그라민 은행을 설립하기 전 방글라데시의 일반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사람 중 여성의 비율은 1% 미만이었다. 나는 그라민 은행을 설립하는 동시에 여자도 돈을 빌릴 권리가 있다는 캠페인을 했다. 덕분에 82년 그라민 은행의 여성 대출자 비율이 처음 50%를 넘었다. 그런데 현재는 대출자의 96%가 여성이다."

-빈곤 탈출과 여성 대출 증가와는 어떤 관련이 있나.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선 여성에게 대출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다. 이슬람 국가라 술은 먹을 수 없지만 다양한 유흥 문화가 있어 남자들은 돈을 빌리면 노는 데 쓴다. 그러나 여자는 가족을 위해 돈을 쓴다. 가족들에게 옷을 입히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 돈이 남으면 저축하거나 빚을 갚는다. 남자들처럼 유흥에 빠지지 않는다."

-한국의 새마을 운동과 그라민 은행의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자주 비교되는데.

"방글라데시에서 새마을 운동을 많이 배워 갔다. 그라민 은행과 새마을 운동은 기본적으로 출발점이 농촌이란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그라민 은행은 밑에서부터 올라온 상향식 방식이고, 새마을 운동은 위에서 내려온 하향식 운동이라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 일부에서는 그라민 은행을 정부 은행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일반 상업은행이다."

-한국의 빈곤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서울평화상에 선정된 뒤 한국의 빈민 현황을 자료로 본 적이 있다. 수치상 한국은 이미 빈곤에서 탈출한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세계 최강 대국인 미국보다 절대적인 숫자에서 빈민이 훨씬 적다. 한국은 지금이라도 미국보다 앞서 당당하게 빈곤 탈출을 선언할 수 있는 나라다."

-마이크로 크레디트 제도가 전 세계 어디까지 확산할 것으로 보는가.

"이젠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없는 나라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내전을 치른 코소보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슬람 국가처럼 금융 규제가 많은 곳에서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정착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북한 주민만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같아 아쉽다."

강병철 국제부문 기자<BONGER@JOONGANG.CO.KR>
강욱현 기자

◆ 그라민 은행 운영은 …

'마을'이란 뜻의 그라민 은행은 담보로 잡힐 것이 전혀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에게만 돈을 빌려준다. 돈을 갚지 않는다고 월급을 압류하거나 법적 책임을 묻지도 않는다.



이 은행은 출범 이후 3년만 빼고는 모두 흑자를 냈을 정도로 경영 실적이 좋다. 올 6월 기준으로 방글라데시 전역에 2185개 지점에 1만8151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 거대 은행으로 성장했다. 대출금은 전액 저축으로 조달하고 있다. 예금의 약 65%는 과거 그라민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저축한 돈이다. 소액 대출을 통해 가난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돈이 다시 가난한 사람들을 돕도록 선순환되는 것이다.

비결은 신용에 있다. 대출자가 제때 돈을 갚지 않거나, 은행이 실시하는 훈련 프로그램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으면 더 이상 돈을 빌리기 어렵다.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섯 명이 조를 짜야 대출이 가능하다. 조원 중 한 명이 대출을 받으려면 조원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대출금을 상환할 때도 조원 모두가 연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 유누스 총재는 …

무하마드 유누스는 1940년 방글라데시(당시엔 영국 식민지) 동부 치타공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금 세공인이라 경제적으로 유복하게 자랐다. 방글라데시의 다카대 경제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69년 미국 남부 명문대인 밴더빌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72년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자 귀국해 국가계획위원회에서 잠시 공직 생활을 했으며, 그해부터 치타공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계량경제학을 가르쳤다. 74년 대홍수 이후 방글라데시가 더욱 빈곤해지자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에 빠지게 된다. 76년 빈민에게 돈을 빌려준 것을 계기로 그라민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83년 교수직을 버리고 그라민 은행을 공식 출범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