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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사용 설명서

새벽이슬1 2022. 6. 20. 07:59

최근 지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요즘 정치판에서 핫 이슈가 되고 있는 '아빠 찬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나와 말 상대가 되었던 사람은 갑자기 목소리 톤이 올라가면서 얼굴이 벌갠 채로 공정치 못한 사회적 모순과 갈등의 대표적인 양상이 바로 아빠 찬스라고 한껏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 아빠 찬스를 써먹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개탄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와의 대화는 교회의 문제로까지 비약되었습니다. 어느 교회의 중책을 맡고 있는 장로이기도 한 그는 요즘 기독교인들은 자기가 필요할 때만 주님을 찾으며 하나님을 이용해먹는 종교적 바리새인들이 너무 많아서 그들의 신앙 행태를 보면 주님이 빨리 오셔서 심판해야 한다고 교회의 회개를 촉구하는 그의 목소리는 매우 힘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어느 것 하나 틀린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그리고 묘한 뒤틀림이 내 안에서 솟구쳤습니다. So what? 도대체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내가 그와의 시선을 피해 먼 산을 바라보며 지나는 말투로 말을 툭 던졌습니다. "나도 아빠 찬스를 쓰는데... 나도 내 필요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할 때가 많은데..." 나의 말끝에 그의 안색이 변하며 '당신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라는 질책이 담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갑자기 경색된 분위기를 깰 요량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후에 나는 내 힘으로 되는 게 없다는 걸 알고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등을 비비며 살아왔으니까요. 항상 내가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만이 믿음으로 누릴 수 있는 기회(찬스)들을 나는 적절히 이용해왔으니까요."라고 말하자 그는 무슨 말뜻인지 알 것같으면서도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그럴 테지요... 이번엔 내 쪽에서 말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찬스'는 아빠가 있는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고, 또한 그 아빠가 죽은 아빠가 아니라 현재 살아있는 아빠로서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을 가진 자녀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아빠가 있음에도 아빠 찬스를 이용하지 않는 자녀가 있다면 그는 바보이든가 아니면 그 아빠를 명목상의 아빠로만 인정할 뿐 자신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아빠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아빠 찬스를 이용해먹지 않는 것이겠지요. 문제는 이 아빠 찬스의 적용이 원칙과 본질에서 벗어난 적법치 않는 것이냐 하는 것인데, 이것은 차후 문제입니다. 우선적으로 아빠 찬스는 아빠가 있는 사람에게만 그리고 그 아빠가 능력이 있는 아빠일 때만 적용되는 것이니까요.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자녀로서 그 하나님을 내 삶 속으로 끌어들여 나의 약한 부분을 보완하고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그 아버지의 힘을 아주 적절히 이용하여 내 앞에 전개된 문제들을 잘 해결해오고 있습니다. 뭐라구요? 마치 알라딘의 마법 램프처럼 하나님이 필요할 때만 호출하는 신앙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라고요?Why not? 안 될 것 있나요? 왜 그러면 안 되나요? 내 아버지인 하나님을 나의 행복을 위해 이용하면 안 되는 건가요? 그리고 솔직히 하나님이 내 필요를 채워 줄 수 없는 분이라면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찾게 될까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이 가장 분노하시는 때는 이스라엘의 자체적인 죄보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이방 신들을 찾을 때입니다. 하나님께 나오면 그 모든 필요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기에 간절히 오라고 부르시는 아버지의 음성 듣기를 거부하는 불순종의 자녀들을 바라보며 애태우고 있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같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처럼 아버지 하나님은 죄 중에 있는 우리들을 책망하고 심판하시기보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탕자의 귀환을 귀히 보시기에 문 밖에 나와 사면을 보며 우리를 부르십니다.

 

 

아버지는 자식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합니다. 평소엔 불순종만 하다가 지가 필요할 때만 아버지 앞에 찾아와 자신이 받을 상속금만 요구하는 그 자식이 미우면서도 아버지는 자식의 요청을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아들의 필요가 항상 아버지인 자신에게로부터 흘러나와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네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를 어떻게든 이용해도 좋으니 나를 떠나지 말고 내 곁에 있어다오~"라고 말씀하시며 기꺼이 자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내주시는 분입니다.

 

 

세계적인 남성 듀엣 Simon & Garfunkle의 유명한 노래 'Bridge over trouble water'(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은 매우 복음적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이 험한 세상 죽음의 강을 건너는 다리가 되어 이 다리를 밟고 우리가 죽음에서 생명의 부활로 옮겨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주님 자신이 친히 그 십자가의 다리가 되어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인도하십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 예수를 이용한다는 표현이 듣기 거북한가요? 그렇담 '예수를 사용한다'는 표현으로 바꾸겠습니다. 왜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예수를 우리 삶에 끌어들여 사용할 생각을 안 하는 걸까요? 아비는 자식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빠 찬스를 쓰든 또는 자신이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짓밟고 지나가든 기뻐할 것입니다. 예수를 이용하세요. 우리 삶 속에서 예수가 그 필요를 채워주시도록 항상 의지하고 이용하세요.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니까요.

 

 

지금 제 큰 아들은 부산의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아직 그의 설교를 들어보지 못했지만, 그는 분명 설교가 시작될 무렵 능청스럽게 아버지인 나를 팔아 자신의 설교에 이용해먹으려 할 것입니다. 안 봐도 비디옵니다. "제가 부산에 오니 갑자기 저희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시어 원로 목사가 되셨지만 아버지도 목사가 되시기 전 부산에서 해기사 훈련을 받고 항해사로 배를 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다, 부산 하면 과거 선원생활을 하셨던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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