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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안주머니에 몽둥이를 넣고 다닌 대법관 본문
<번제물(燔祭物)이 된 변호사> 재판에 앙심을 먹은 사람이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질러 일곱 명이 타 죽었다는 신문 기사가 났다. 사십 년 가까이 변호사를 해서 그런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법의 근처에 다가오는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분노와 증오의 불을 가지고 있었다. 그 불이 자살로 자기를 태우기도 하고 남을 태우기도 했다. 알려지지 않은 그런 사례를 무수히 보아왔다. 내가 잘 아는 선배 변호사가 갑자기 사무실을 옮기고 우울해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는 강직한 재판장이었다. 그와 군대에서 함께 훈련을 받을 때 옆에서 지켜봤지만 너무 반듯한 사람이었다. 그가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이런 하소연을 들었다. “내가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으러 나간 사이에 누가 와서 불을 지른 거야. 소방차가 여러 대 출동했는데 자칫하면 빌딩 전체에 불이 붙을 뻔했어. 십년 전에 민사사건을 맡았던 의뢰인이 와서 그랬는데 도대체 왜 그랬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소송을 할 때 어떤 불만을 얘기했던 사람도 아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어. 그런데 말도 하지 않고 갑자기 와서 불을 지르니까 황당한 거야. 그래서 사무실을 옮겼어. 계속 되돌아보고 반성해 보는데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 그와 의뢰인의 내면은 전혀 다른 세계에 있을 것이다. 부산에서 변호사를 하다가 서울로 옮긴 후배가 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어느 날 법정으로 들어가는 데 두 놈이 나타나 갑자기 양쪽에서 팔을 잡더니 나를 달랑 들고 사무실로 가는 거에요. 사무실에 그 놈들이 가져온 석유통이 있더라구요. 그 놈들이 사무실 바닥에 석유를 뿌리고 일회용 라이터 불을 켜는 거에요. 정말 불을 지르려고 하는 거였지. 내가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죠. 자기네 뜻대로 선고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까 나한테 앙심을 품은 거에요. 그때 만정(萬情)이 떨어져서 변호사 사무실 문을 닫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경찰에 도움을 청했더니 수사과장이 나보고 당신 아직도 검사인 줄 알아? 하고 비웃더라구요.” 그런 게 변호사업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광주의 한 변호사는 의뢰인이 집행유예를 받게 해서 성공한 것으로 알고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며칠 후 의뢰인이 와서 그 변호사의 허벅지에 칼을 박아넣었다. 왜 무죄가 선고되게 하지 않았느냐는 이유였다. 변호사만 그런 게 아니었다. 사무실 앞 복도에서 쇠파이프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부장검사도 있었다. 나와 잘 아는 대법관이 이런 하소연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내 판결에 불만을 품은 놈이 계속 협박을 하면서 나를 괴롭히는 거야. 온통 행동이 제약되는 거야. 퇴근할 때도 대법관 차를 타고 아파트까지 가서 주차장에 내리면 그때부터 집의 문까지는 주위를 살피면서 도망치듯 달려가야 해.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화가 나더라구. 그리고 그놈과 맞부딪치면 싸우려고 양복 안주머니에 몽둥이를 휴대하고 다녔어. 대법관이 대낮에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그 놈과 땅에 뒹굴면 체면이 말이 아닌 거지.” 나도 그런 고통이 수없이 많았다. 편집증을 가진 여자의 이혼소송을 맡았었다. 변호사는 당사자의 요구대로 상대방에게 악랄하게 할 수는 없다. 변호사로서의 태도와 갈 길이 있는 것이다. 그게 편집증 환자에게 피해망상을 일으켰다. 상대방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결탁했다는 오해였다. 이십 년간을 지독하게 시달렸다. 워낙 확신을 가지고 덤비니까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말을 믿었다. 편집증 환자들은 포기나 타협이 없었다. 집요하게 끝까지 갔다. 심지어 대법원에서도 뭔가 내게 잘못이 있으니까 그 여자가 그렇겠지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 외에 테러의 위협을 받기도 하고 죽으라는 종교적 저주를 받기도 했다. 억울했다. 변호사는 도둑놈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나는 안다. 실제로 도둑놈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나름대로 땀흘리는 지식노동자가 되려고 했다. 변호사를 산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일리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말을 나는 싫어했다. 법의 창녀가 되지 않으려고 결심했다. 변호사는 고용된 양심이라고 토스토엡스키는 말했다. 양심은 내게 나타난 하나님의 소리다. 그곳에 돈의 신인 악마가 들어오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그래도 악마들이 수시로 다가와 괴롭혔다. 그러나 그분이 내 마음에 계시어 내 힘이 되는 때에 어떤 괴로움도 견딜 수가 있었다. 어떤 희생이라도 할 각오가 생겼다. 나는 그 때에 적의 어떤 허물이라도 용서할 수 있었다. 그분을 의지하는 나는 완전과는 심히 먼 거리였지만 그래도 조금은 선에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게 구원이고 부활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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