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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공작원, 90년대 청와대 근무-이게 나라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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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공작원, 90년대 청와대 근무-이게 나라냐?

새벽이슬1 2021. 10. 16. 10:06

☞ "北공작원, 90년대 청와대서 5~6년 근무"-고위층 탈북자 증언

“北공작원, 靑근무후 월북… 시민단체 여러곳서 암약”

5년간 北정찰총국 대좌 지낸 탈북자, BBC 인터뷰서 증언

북한 정찰총국 대좌(대령급) 출신의 고위 탈북자 김국성(가명)씨가 “1990년대 초반 북한에서 직파한 공작원이 (남한) 청와대에 잠입해 5~6년간 근무하다 무사히 복귀한 적이 있다”고 11일 영국 BBC가 공개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1990년대 초반은 노태우(1988~1993년), 김영삼(1993~1998년) 정부 시절이다.

북한 간첩이 남파돼 활동하고, 국내 주요 인사들을 접촉·포섭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우리 청와대에서 수년간 일하다 북으로 돌아갔다는 폭로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는 “(지금도) 북한 공작원들이 남한의 구석구석 중요한 기관들은 물론이고, 시민사회단체 여러 곳에서 맹활약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북 공작원 90년대 초 청와대 근무 관련 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북한 정보기관에서 30여 년간 일했고, 특히 2009년 2월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창설한 대남·해외 공작업무 총괄 지휘 기관인 정찰총국에서 5년간 대좌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4년 탈북해 국내에 정착한 뒤, 국정원 산하 기관에서 일하다 수년 전 퇴직했다고 한다. BBC는 “그가 폭로한 모든 내용을 검증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신원은 확인했으며 일부 주장이 사실과 일치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①“청와대에서 북한 공작원이 일했다”

김씨가 청와대에서 남파 간첩이 근무했다고 밝힌 시기는 1990년대 초반이다. 그 무렵 북한 권력 서열 22위의 남파 간첩 이선실이 국내에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을 조직, 395명의 사회 지도층을 입당시켰다가 발각된 사건도 일어났다.

김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내가) 직접 간첩들을 육성하고 남파했다”며 “(이들이 남한에서) 공작 임무를 수행한 것이 여러 건”이라고 했다. 그는 또 “(청와대에서 일하다) 북으로 복귀한 공작원은 (위조 달러 사업을 하는) 조선노동당 314 연락소에서 근무했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BBC는 “김씨가 개발한 북한의 대남 전략 목표는 ‘남조선 정치의 (북한) 예속화’였다”고 했다.

 

노동당 창건 76주년 강연회장의 김정은 - 김정은(가운데)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10일 평양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열린 당 창건 76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왼쪽부터 당 조직비서 조용원, 김정은, 당 비서 박정천. /조선중앙TV 연합뉴스

②천안함 폭침 김정은이 직접 지시

김씨는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 김정은의 ‘특별 지시’라고도 주장했다. 그는 “천안함이나 연평도 작전에 (내가 직접) 관여한 적은 없지만…”이라면서도 “(둘 다) 김정은의 특별 지시에 의해 공작되고 이행된 군사 성과”라고 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2011년 이전부터 북한의 군사작전을 지휘했다는 뜻이 된다.

김씨는 또 “1997년 귀순한 황장엽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암살 역시 김정은이 직접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5월 한국으로 망명한 북한 관리를 암살하기 위한 테러 대책반을 구성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면서 “극비리에 황장엽 선생을 테러하기 위한 TF팀이 꾸려졌으며 내가 직접 (암살 작전을) 지휘, 공작을 수행(했다)”이라고 말했다. 황장엽 암살은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김정은에 대해 “자신이 ‘전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라고 평가했다.

③북, 마약 생산 기지 만들어

김씨는 조선노동당 산하 작전부와 해외정보기관인 35실, 대외연락부 등에서도 일하며 김씨 일가의 통치 자금 마련을 위한 사업에도 관여했다. 그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의 혁명 자금이 바닥을 보였는데, 내가 세 명의 외국인을 북한에 데려와 마약 생산 기지를 만들어 운영했다”면서 “얼음(필로폰 지칭 은어)을 달러로 만들어 김정일의 혁명 자금으로 바쳤다”고 했다.

노동당 작전부의 무기 수출 사업 역시 중요한 자금원이었다. 그는 “북한은 특수 소형 잠수함, 반잠수함, 유고급 잠수함을 아주 첨단화해 잘 만든다”면서 “북한 관리가 이란 총참모장을 불러들여 판매할 정도”라고 했다. 또 “북한은 장기 내전을 치르고 있는 국가들에 주로 무기와 기술을 판매했다”고도 했다.

④장성택 숙청 이후 탈북

BBC는 김씨가 2014년 북한을 탈출한 이유와 관련, 그가 숙청된 장성택의 측근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BBC에 따르면 김씨는 김정은의 고모(장성택의 아내)에게 받은 벤츠를 몰고 다녔고,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씨가 장성택 측근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김씨는 “(2013년 12월 장성택의 처형 소식을 듣고) 놀란다는 표현을 떠나 경악했다”면서 “내가 더 이상 북한에서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그는 BBC 인터뷰에 응한 이유에 대해 “북의 동포를 독재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내가 한국에 온 이후 북한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0.01%도 바뀐 것이 없다”고 했다.

 

▲... BBC 인터뷰

북한의첩보 기관 정찰총국에서 5년간 대좌(대령)로 근무했던 김모씨가 10일(현지시간) 공개된 영국 공영방송 BBC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에 북한에서 파견한 직파공작원들이 근무하고 무사히 북한으로 복귀한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 BBC 화면 캡처> © 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북한의첩보 기관 정찰총국에서 5년간 대좌(대령)로 근무했던 탈북민 김국송(가명)씨가 10일(현지시간) 공개된 영국 공영방송 BBC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에 북한에서 파견한 직파공작원들이 근무하고 무사히 북한으로 복귀한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그것이 1990년대 초다.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5~6년 근무하고 무사히 복귀해서 들어와서 314 조선노동당, 314 연락소라고 있는데 거기서 근무했다"며 "그렇게 북한이 북파공작원이 남한의 구석구석 중요한 기관들 물론이고 시민사회단체 여러 곳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씨는 정찰총국 외 노동당 산하 작전부, 35실과 대외연락부 등에서 30년간 일하며 주로 대남업무를 담당했다고 말했다. 또 북한에서 자신의 책임 중 하나가 한국에 대응하는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BBC는 30년 동안 김 씨는 북한의 강력한 첩보 기관에서 "지도자의 눈과 귀, 두뇌" 역할을 하며 최고위층으로 올라갔다면서, 그가 평양의 고위 장교가 주요 방송사와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또 김 씨는 인터뷰에서 북한 당국이 항상 개입설을 부인해온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과 관련해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찰총국 일정한 간부들 속에서는 비밀이 아니고 통상적인 자랑으로 긍지로 그렇게 알고 있는 문제"라고 했다. 그러한 작전은 상부의 지시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BBC는 김 씨의 주장을 독자적으로 확인할 순 없었지만, 그의 신원은 확인했다고 전했다. 또한 런던 주재 북한 대사관과 뉴욕 주재 북한 공관에 연락해 입장을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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