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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2년의 숭고한 역사를 헛되게 하지마라! 본문

꼭 읽어야 할 칼럼

3.1운동 102년의 숭고한 역사를 헛되게 하지마라!

새벽이슬1 2021. 4. 1. 21:44

3 1 운동 102년의 역사 이 고귀한 피를 헛되게 하지 말라

 

3.1운동은 집회회수 1,542회, 참가인원수 202만3,089명, 사망자수 7,509명, 부상자 1만5,961명, 검거자 5만2,770명, 불탄 교회 47개소, 학교 2개교, 민가 715채나 되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투쟁했던 거대한 독립운동이다. (3.1 운동사 참조)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진 설움 가득한 외침은 또 다른 해외 식민지 국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중국의 5·4 운동, 간디의 독립운동에도 자극을 준 울림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있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3.1운동은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건립하는 것에도 영향을 주었다.

 

기미년 3월 1일 토요일, 그날이 밝았다. 날씨는 따뜻하고 청명했다. 33인의 민족대표는 ‘먼 길’을 떠나는 채비를 했다.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는 하루 전인 2월 28일 종단을 이끌 후계자를 정한 유시문(諭示文)을 발표한 데 이어, 이른 새벽 천도교 청년들을 소집해 마지막 훈시를 했다. 나는 지금 독립의 種子를 심으러 간다. 너희들은 3개 원칙(비폭력, 대중화, 일원화)을 끝까지 지켜라. 오늘의 동지가 내일 배신해 해를 끼칠 자도 있으니 매사를 성실히 참고 견뎌라. 우리 국권 회복에 대해서는 차후 세계 지도의 색채가 바꾸어질 때 각 열국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성취시킬 날이 올 것이다.

기독교 감리파 대표 이필주(1869∼1942)도 덕수궁 옆 정동교회 사택에서 영문을 모르는 식구들을 위해 마지막 가족 예배를 올렸다.

서울 중앙교회 전도사인 김창준(1890∼1959) 역시 거사의 길을 나섰다. 결혼한 지 1년밖에 안되는 어린 아내와 노부모의 생계가 걱정됐지만 ‘가정보다는 조국’이라는 불타는 애국심이 먼저였다. 이들 민족대표는 가족이 일제의 보복을 당할까 봐 3·1운동 참여에 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3만5000여 장의 독립선언서를 찍어낸 보성사 사장 이종일은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지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대로 일어나 오늘의 거사가 반드시 성공하기를 두 손 모아 빌었다. 이종일은 홀로 남겨질 어린 손녀(이장옥) 생각에 가슴이 아려왔지만, 성사(聖師·손병희)가 전날 민족대표들과의 최종 회합에서 “가족 생활비로 1인당 매월 10원씩 지불할 것”이라고 약속한 말로 위안을 삼았다. 종로구 경운동에서 이종일이 기도를 올리던 그 시각, 인근 북촌 계동의 중앙학교 운동장은 바닥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여기저기 전단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일찌감치 등교하던 학생들은 한 장씩 주워보고는 아연 긴장했다. 조선의 독립을 선포하는 독립선언서였다. 그때 교장 송진우가 숙직실에서 내려와 학생들이 서성대는 곳에 다가왔다. 전단 한 장을 주워 보더니만 빙그레 웃으면서 “너희들 공부 잘하라” 말하고는 의기양양하게 넓은 운동장을 횡단해서는 쏜살같이 사무실로 들어갔다.

 

송진우는 독립선언서를 처음 보는 척 시치미를 뗐으나, 이숙 등 중앙학교 학생대표들은 독립운동에 깊숙이 개입한 ‘교장 선생님’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교장 송진우와 교사 현상윤은 진작에 보성전문학교 졸업생 주익 등을 통해 경성 시내 전문학교 학생대표들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 행동대 조직을 구축하도록 지도했다.

 

학생조직은 후에 기독교 측 박희도, 이갑성 등이 가세해 중등학교 대표들까지 포함하는 조직으로 확대됐다. 거사 하루 전인 2월 28일, 학생대표들은 승동교회 예배당에서 최종적으로 독립선언서 살포, 거리 시위 등을 계획했다. 이에 따라 3월 1일 새벽 경성에서는 중앙학교뿐 아니라 10여 개의 공·사립중학교와 네댓의 전문학교 등지에 격문(檄文)과 함께 독립선언서가 뿌려졌다. 시내 곳곳의 집집에도 배포됐다.

 

오전, 중앙학교 학생들은 평상시와 같이 수업을 했다. 상급생들은 오전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술렁거렸고, 영문을 모르는 하급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현상윤이 가르치는 수업시간. 그런데 현상윤은 수업 내용과 관계가 없는 제1차 세계대전, 파리평화회의 전망, 민족자결주의 등등의 얘기로 한 시간을 채웠다. 그는 수업을 마치면서 영어로 “굿 찬스, 굿 찬스(good chance·좋은 기회)”라고 하면서 의미심장한 힌트를 주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조선요리점인 태화관. 을사늑약, 한일강제병합 등이 모의된 이 터에서 민족대표들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함으로써 매국적인 모든 조약을 무효화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자 했다. 독립운동의 ‘굿 찬스’ 시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독립선언서 배포와 군중 동원 행동대 역할을 한 학생대표들은 각기 맡은 반의 급장을 통해 탑동공원(탑골공원)으로 집결하도록 밀통했다. 낮 12시 정오를 알리는 남산의 午砲 소리가 집결 신호였다.

 

보안을 철저히 했던 때문일까, 경성 시내는 평소처럼 조용했다. 폭풍 전야의 고요함 같았다. 이윽고 종로2가의 탑동공원은 꾸역꾸역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학생들로 삽시간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중앙학교는 상급생에서 하급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학교가 텅 빈 바람에 이날로 예정된 졸업식은 취소됐다.

탑동공원의 팔각정을 중심으로 삼밭에 심 박히듯 학생들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1897년 조성된 탑동공원은 이전부터 크고 작은 집회와 행사가 열린 곳이자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였다.

 

 

한민족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공간이기도 했다. 경기대 건축학과 안창모 교수에 의하면 대한제국 시기인 1902년에 건축된 팔각정은 고종 황제가 천자국(天子國)임을 선포하는 제사를 지낸 환구단의 황궁우를 쏙 빼닮도록 지은 구조물이었다.

또 대한제국의 군악대가 공원 서편에, 대한자강회를 잇는 대한협회가 공원 동편에 자리 잡은 역사적 장소이기도 했다. 1969년 3월 발행된 한국은행권 오십 원 지폐 앞면에 팔각정 모습이 그려진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탑동공원은 조선이 당당한 자주국임을 대내외에 알리는 선언의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오후 1시 30분경. 약속 시간이 다 돼 가는 데도 민족대표인 듯한 사람들은 탑동공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바로 그 시각, 민족대표들은 탑동공원에서 불과 300여 m 거리의 태화관(서울 인사동)에 모였다.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후 민족대표들이 일경(日警)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탑동공원의 흥분한 학생·군중과 경찰의 충돌을 우려해 장소를 변경한 때문이다. 민족대표들은 무엇보다도 ‘비폭력’을 중요시했다.

 

요릿집 태화관을 민족대표들의 회합 장소로 선택한 데도 까닭이 있었다. 장안의 명물인 조선음식점 명월관의 지점인 태화관은 원래 조선왕조의 순화궁(順和宮) 터였고, 이후 이완용이 별장으로 사용하던 집이었다.

 

1905년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의 을사늑약 밀의, 1907년 7월 고종황제를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케 한 음모, 1910년 강제 병탄 조약 준비 등 대한제국을 능멸하고 없애는 행위가 모두 이 집에서 벌어졌다. 바로 여기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함으로써 매국적인 모든 조약을 무효화한다는 의지도 담겨 있었다. (신석호, 3·1운동의 전개·3·1운동 70주년 기념논집’ 참조)

태화관 주인 안순환 역시 범상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원래 궁내부(宮內府) 주임관(奏任官) 및 전선사장(典膳司長), 즉 궁중 연회의 최고 주방장을 지냈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벼슬을 사퇴한 그는 명월관과 태화관을 차린 排日사상가였다.

태화관 산정별실(山亭別室)에 자리 잡은 민족대표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이종일이 인쇄해온 독립선언서 100여 장을 훑어보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족대표 33인 중 29명이 참석하고 있었다. 길선주 유여대 정춘수 등 기독교 측 대표 3인은 지방 행사에 갔다가 경성에 늦게 도착해 이날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리고 김병조는 상해로 건너가 불참한 대신,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지 않고 2선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가기로 한 함태영이 참석했다. 해방되기 26년 전 맨 몸으로 투쟁하였던 3.1 정신 해방 6.25 동란 4.19 우리는 이 숱한 국난을 이겨왔다 헌데 지금 21세기 나라를 좀 먹는 종양이 생겨 나라가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되었다 이 종양덩어리를 도려내고 몸을 회복 시켜야한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들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온 국민의 적이다 죽은 자는 剖棺斬屍하고 산자 는 반듯이 撲滅하자 나는 망팔을 바라보는 무력한 촌노지만 정신만은 20대 젊은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어떻게 지켜온 나라인가 ! 피로 지킨 이 나라를 주사파 역적들이 분탕질을 치고 있다 우리의 민주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3.1정신 이어 받아 붉은 무리들을 척결하는데 우리 모두 궐기하자 산자여 ! 일어서자 !

2021 3.1

泉 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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