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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남침 우리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 본문
6.25 남침(南侵), 우리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이승만 대통령이 북한의 남침보고를 처음 받은 시각이 25일 오전 10시 30분이었다. 바로 그 시간에 나는 개성점령군 연대장과 좌담회를 하고 있었다.
최응표(뉴욕에서)
6.25 남침전쟁의 총성이 멎은 지도 어언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도 6월이 되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 이제는 감내할 수 없을 만큼 극으로 치닫고 있다. 격해진 분노(감정)는 증오(憎惡)로 변하고 그 증오가 다시 고통으로 이어지면서 6월은 점점 더 잔인해진다.
월남 작가 바오 닌은 그의 소설 <전쟁의 슬픔>에서 “손실된 것, 잃은 것은 보상할 수 있고,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누그러든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슬픔은 나날이 깊어지고,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며 전쟁의 아픔과 패망의 처절함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6.25 남침전쟁의 상흔(傷痕)을 그대로 안는 채 흘러온 70년, 아직도 6.25 남침의 실상(實像-진실)이 아닌 허상(虛想-거짓)으로 가득 찬 우리역사의 아픔은 그보다 100배는 더 크고, 더 고통스럽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40분에서 5시 사이에 무력 남침하는 인민군을 처음 보았고(북한군의 남침은 25일 새벽 4시에 시작), 오전 10시 30분 경에는 서부전선 침공의 주력부대인 북한군 제6사단 (북한군 최정예부대인 방호산 부대) 15연대장과 좌담회까지 가졌던 직접 경험자이면서 북한 남침의 최초 목격자의 한 사람으로서 6.25 70주년을 맞으며 느끼는 나의 분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6.25 남침 선봉부대는 팔로군(중공군) 출신의 조선족으로 편성된 부대들이었고, 중국의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훈련과 전투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들이었다. 그래서 김일성은 이들을 남침의 최선봉에 세웠던 것이다.
북한군 제6사단 15연대는 개성(開城-6.25 전에는 개성은 남한 땅) 시내로 제일 먼저 쳐들어온 연대다. 바로 그 연대장과 개성시내 한복판에서 좌담회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신을 15연대 연대장이라고 소개한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첫 마디는 “나는 팔로군(八路軍)입니다”였다. 당시 개성 송도중학교 학생이었던 나는 그 말의 엄청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개성시내에 들어올 때까지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었는데 개성시내에 들어와서 우리 병사들이 개죽음을 했다.” 며 울분을 토하는 것이었다. 북한이 6.25 남침전쟁의 주범임을 증명해 보이는 중요한 대목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북한의 남침보고를 처음 받은 시각이 25일 오전 10시 30분이었다. 바로 그 시간에 나는 개성점령군 연대장과 좌담회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서울시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건국의 진실(가치)’과 ‘6.25 남침전쟁의 진실(실상)’만 제대로 가르치면 잘못 교육받은 중 고등학생들의 생각은 백 퍼센트 바뀐다고 확신한다.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을 등에 업고 38산을 넘어 남침(南侵)할 때 그의 목표는 8월 15일 부산에서 공산통일 대축제를 열기 위해 전쟁을 최 단기간에 끝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3년 하고도 24일, 1129일 간 이어지면서 양측 합쳐 600만 이상의 인명피해와 엄청난 물질적 손실은 물론, 전 국토의 초토화와 인성(人性)마저 완전히 파괴해버리는 대 참극을 낳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엄청난 역사의 격난(激難)과 질곡(桎梏)의 세월을 헤치고 세계문명국가의 일원이 되는 데는 성공했지만, 문창극 선생의 말대로 오늘의 우리 됨을 있게 한 뿌리인 대한민국의 가치에 대한 고마움을 국민들 가슴에 심는 기초적인 일에는 실패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자유대한민국’이 ‘조선 인민공화국’으로 추락하게 되는 비극의 원인이다.
몇 년 전 박동운 교수는 “우리는 지금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는 말을 해 모두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점잖게 말해서 ‘사회주의’지 사실대로 말하면 인류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악의 공산주의의 아류(亞流)인 ‘김일성 전체주의’로 가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국가적, 역사적 적폐(積幣)는 文정권 들어서서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 원조는 오로지 자기 영달과 가문의 영광을 위해 거짓 인생을 살고 간 김대중의 흑심(黑心)이 남긴 유산과 그 DNA를 이어받은 민주당과 현 집권세력에게서 찾아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진 민주당 10년 동안 국가와 민족과 역사에 끼친 해악(害惡),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나. 모든 인간악은 정치악에서 나온다고 한 루소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악(적폐)은 민주당에서 나온다고 해서 누가 감히 시비를 걸 수 있나. 그대들은 역사를 잊을 수 있겠지만, 역사는 결코 그대들을 잊지 않는다는 역사의 엄중함은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김정일의 핵개발 동조자에서부터 대변인까지, 국회를 공산혁명 교두보로 만들어 이석기 시대를 열어준 이적죄(利敵罪), 전교조의 反 국가적 행위를 법적으로 보장해줘 대한민국 교육현장을 공산이념 세뇌 교육장으로 전락시킨 죄, 두 차례의 연평해전과 천안함 피침 사건에서 보여준 민주당 정권의 상식 밖의 행태, 기무사령부를 동원해 국보법 폐지공작을 벌인 반역죄, 김정일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수단으로 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가짜 만들기 공작에 국정원과 MBC 방송까지 동원한 국가반역죄.
김현희를 가짜로 만들면 김정일은 테러범이라는 오명에서 순간적이나마 벗어날 수 있지만, 대신 대한민국이 테러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그걸 노리고 저들은 그런 끔찍한 공작을 꾸몄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2002년 대선에서 병풍(兵風)으로 온 국민을 정신착란에 빠뜨리고 나라 전체를 태풍 속으로 몰아넣었던 김대업의 사기극은 민주당의 작품이었다. 사기, 협박, 공갈, 무고, 명예훼손, 거짓말의 대명사 김대업, 이런 희대의 사기꾼을 민주당은 의인(義人)으로 둔갑시켜 친북정권을 창출해 냈고, 그 후유증이 오늘의 국가위기를 가져온 것이다.
한두 번 소개한 적이 있지만, 여기서 다시 떠오르는 것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쥴리어스 시저’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한 토막이다. “사람들이 행한 죄악(罪惡)은 그 사람이 죽은 뒤에도 살아있지만, 선행(善行)은 그 사람의 뼈와 함께 무덤에 묻히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이보다 더 실감나게 표현한 문장은 없을 것이다.
영원히 살아 후세(後世)를 이끌어갈 이승만과 박정희의 선행은 그들의 죽음과 함께 땅에 묻히고, 김대중과 노무현의 죽음과 함께 땅에 묻혔어야할 악행은 여전히 살아서 후세들의 미래를 죽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는 말이다.
거짓말, 사기, 협잡, 공갈, 선동, 공작, 날조 범도 586 종김 완장부대 그늘 속으로만 가면 의인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도 되고 출세가 보장되는 물구나무세상, 이제는 아예 대놓고 <청와대를 주석궁으로>, <대한민국을 인민공화국>으로 바꿔치기하는 데까지 왔다.
그런데도 국민들의 생활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흥청망청 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우리 속담처럼, 청와대와 집권 민주당을 틀어쥐고 점령군처럼 행세하는 586 완장부대는 물론이지만, 보다 못지않게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것은 사리분별을 못하고 그저 즐겁고 편하게만 살자는 생물학적 충동에 취해 사는 영혼 없는 국민들의 생활자세(정신상태)다. 4.15총선 결과가 보여준 그대로다.
이런 꼴을 보자고 숫한 우리젊은이들과 자유세계가 하나 되어 피 흘려 이 나라를 살려낸 것은 아니지 않는가. 6.25남침전쟁의 의미와 그 교훈이 이렇게 무참히 망가져도 제대로 된 저항, 제대로 된 분노를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은 또 하나의 6.25남침을 당하는 것 같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저항의 바탕은 분노인데, 분노할 줄 모르는 국민에게 저항의식이 있을 리 있겠는가.
우리는 무엇보다도 6.25 남침전쟁과 같은 처절한 과거가 전해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어떤 형태의 국가미래의 그림도 그릴 수가 없다. 시간의 흐름과 이념의 쓰나미 속에 약효가 다 바랬다고 하지만, 그래도 6.25 세대가 얻은 교훈은 값진 것이다. 그 교훈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다.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그 과거를 되풀이 하는 저주를 받는다.”고 한 산타야나 교수의 경고를 떠올릴 때마다 우리의 미래가 무서워진다. 6.25남침 70돌을 맞으며 느끼는 산타야나의 경고가 주는 공포는 그래서 더 전율을 느끼게 하고 잔인해진다.
6.25 남침 70돌을 맞으며 특히 기억해야할 것은 김대중, 노무현의 후예들에게 ‘북핵 위기’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북한의 핵위협 앞에 노출된 채, 포로 신세가 된 것은 김대중이 키우고, 노무현이 대변인 노릇을 충실히 해낸 덕에 마침내 북한이 ‘핵보유국’이 된 위력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자유우파 진영 어디에서도 책임을 묻자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모두가 살찐 돼지가 된 것일까?
만일 자유우파정부 대통령이 김대중처럼, 북핵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했다면, 586을 중심으로 한 청와대 완장부대와 민주당은 과우병난동과 박근혜 탄핵 촛불난동보다 몇 백배는 더 큰 국가적 소동을 일으켰을 것이다.
이제 6.25 남침 70돌을 맞으며 되새겨야할 일은 지나친 자유와 방탕 속에 잊혀진 6.25남침전쟁의 교훈을 되살려 새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자는 것이다. 바로 대한민국이 사는 길이다.
우리가 6.25 남침전쟁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교훈은 ‘힘’ 바로 ‘국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 자체 힘이 없어 남의 힘을 빌려 나라를 지켜야 했던 뼈아픈 과거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자주(自主), 자조(自助), 자립(自立)정신이 우리의 시대정신이 될 때, 국가의 힘은 스스로 강해진다는 것, 역사의 귀중한 교훈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세상의 ‘이치(理致-사물의 정당한 도리)를 깨달은 것이 그 두 번째 교훈이라 할 수 있다. 힘이 없어 낙동강까지 쫓겨 갔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미국과 유엔의 희생적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여러분이 자유와 풍요를 만끽할 수 있겠는가?
이웃이 있어야 한다. 정직한 이웃이 있어야 한다. 정직한 이웃을 가지려면 자신부터가 정직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그런 정직한 이웃을 가진 덕분에 살아남아 세계경제대국을 이루었다. 하지만 자신부터가 정직하지 못한 데다 불량한 이웃을 가진 북한은 세계를 상대로 구걸하면서도 300만 이상을 굶겨 죽이는 거지국가로 추락했다. 천국과 지옥을 가른 열쇠는 바로 정직한 이웃에 있었다. 이것이 6.25남침전쟁이 주는 냉엄한 역사의 교훈이다.
세 번째 교훈은 국가지도자는 언제나 현장에서 과감한 결단과 용기로 현장을 지도해야 한다는 것. 이승만이 그랬던 거처럼.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소낙비에 대비해 항상 국민이 쓸 수 있는 우산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 준비가 부족했던 탓에 6.25남침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는가. 신생국 입장에 그럴 수바께 없었지만.
6.25 남침 70돌에 기억해야 할 것은 첫째, 독버섯에 사랑의 물을 준다고 절대로 식용버섯이 되지 않는다는 것. 둘째, 이승만, 박정희 정신에 길이 있다는 것. 셋째, 프랑스의 대표적 지식인 사르트르의 말처럼, 힘은 힘으로만 제압할 수 있다는 것. 넷째, 국가지도자부터 정직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다짐해야 할 것은 6.25남침전쟁에 참전했던 어느 통역장교의 말처럼, 6.25 남침전쟁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약해지면 언제라도 다시 겪을 수 있는 산 역사라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들이 사실로 받아들여질 때, 6월의 분노는 스스로 누그러들고 아픈 기억은 치유와 희망의 기억으로 바뀔 것이다.
2020. 6. 25.
6·25전쟁의 비참한 장면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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