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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수 베드로 순교 이야기 본문

꼭 읽어야 할 칼럼

강남수 베드로 순교 이야기

새벽이슬1 2020. 4. 29. 09:07


강남수베드로 애국·순국열사 삼오제에 그분 뜻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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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수 베드로가 단식하던 텐트

 

순국 순교로 마감한 거룩한 삶

329일은 감남수 베드로 열사가 나를 찾아와 순국의 결심을 말한 한 달째 되는 429일이다. 오늘은 단식 24일로 순교하고 5일 장을 치른 후 3오제가 되는 날이다.

그러나 강남수 베드로 형제가 40년간 다닌 화곡2동 천주교회가 단식기간 동안 너무 많은 박대를 했기 때문에 가족들은 한이 맺혀 삼오제를 않기로 했다고 한다.

강남수베드로 형제와 교회를 40여년을 같이 다닌 이충호 형제의 말에 의하면 강베드로 형제는 성당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었다고 했다. 미사가 끝나면 언제나 교우들에게 점심 대접을 해서 강베드로 아는 분들은 후덕하다고 칭찬을 했다고 한다.

강베드로 형제가 40년을 다닌 성당이고, 성당을 건축할 때에  경찰 박봉으로 3자녀를 키우며 성당 건축기금도 수천만 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강베드로 형제가 단식을 하자 안면몰수하고 외면해 버렸다. 강베드로 형제가 40여년 동고동락한 교우들이 등을 돌리는 것이 제일 마음이 아프다고 했고 신자들에게 단식장을 가지 못하게 하는 신부와 사목회장에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강베드로 형제가 성당 주차장 한 구석에 천막을 치고 단식기도를 하자 신부 사목회장이 나가라고 요구를 했고 교인들을 통해 나가라고 강요하다 안 되니 경찰과 구청직원을 불러 퇴출시키려 했다. 사목회장이 2차례에 걸쳐 퇴고장을 들고 와 퇴거를 요구하다.그래도 거부하자 법원에 강제퇴거요구서를 제출하여 법원에서 퇴거하지 않으면 하루 200만원 벌금을 내라는 퇴거 강제 명령서와 1천만 벌금을 부과했다. 그래서 단식 18일 만에 병원으로 옮겼으나 강베드로 형제가 치료를 거부해 다시 집에서 단식 6일 만에 순교했다.

화곡2동 성당에서는 장례예식장을 찾는 사람이 없어 대수천에서 대수천 지도신부님께 장례 미사를 부탁 드렸더니 장례 미사는 본당신부가 하는 것이라고 하시며 본당신부에게 연락해 마지못해 장례미사를 했다. 그런데 11시에 장례미사를 한다고 해놓고 갑사기 9시에 교인 몇 사람 데리고 와서 장례미사를 하고 갔다. 그리고 제대로 된 연도한번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장례예식장은 쓸쓸했다.

전국에서 개신교 목사님 장로님 신자들과 불교 스님들도 찾아오는데 신부와 수녀들은 찾아오는 분이 한사람도 없었다.

천주교가 사제들은 사랑대신 미움을 화해대신 저주를 용서대신 증오로 천주교회를 망쳐가데 이를 막기 위해 신자가 사제들을 위해 숭고한 순교를 했다.

대수천에서는 강남수베드로 형제의 순교정신을 바탕으로 모질고 사악한 정치사제들 퇴출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리고 화곡2동성당 신부에 대해서는 서울교구청과 교황청에 파문요구서를 제출하여 사랑·용서·화해 대신 미움·증오·저주하는 사제들 사제복을 벗기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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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수 베드로의 간절한 기도

 

애국으로 점철된 인생

평생을 경찰로 헌신한 강베드 형제는 좌경화되어 가는 나라와 천주교를 바로 세우기 위해 순교 결심하고 24일간의 단식 끝에 순국·순교했다.

강베드로형제는 천주교 박해 때 안성에 숨어들어 옹기를 짓고 살던 옹기마을 순교자 5대손으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단국대를 졸업하고 경찰에 입신하여 평생을 경찰로 헌신했다. 특히, 김신조 사건 당시에는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강베드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을 너무 잘못해. 그리고 좌경화된 천주교에 경종을 울려줘야 한다며대통령과 정치사제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걸고, 교회 앞에서 단식으로 순교했다.

 329일 나에게 순교결심을 밝혔다. 내가 말렸지만 이미 가족들에게도 의사전달을 했다면서, 자기결심을 철회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마음이 아팠다.

평생 경찰에서 나라를 위해 헌신해 오다 말년에 천주교와 나라를 위해 단식으로 인생을 마감하겠다는 절절한 애국심과 깊은 신앙심에 감동했다. 그의 순교 결심을 들으니, 문재인 대통령과 정치사제들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마지막 인사라며 건강을 찰 챙겨 반드시 문 정권을 퇴치하고, 천주교를 바로 세워달라는 유언 같은 말씀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위로할 말씀이 없어 형제님의 숭고한 정신으로 천주교를 잘 지키는 등불로 삼겠다고 위로해드렸다. 온종일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단식 중에 매일 찾아가서 단식을 말렸더니, 강베드로는 몸은 고통스럽지만 정신은 맑다고 했다.

강베드로 형제는 순교자 가정에서 태어나 순교자의 책을 많이 읽었고 문정권 이후 위기의 나라와 좌경화되는 천주교를 보면서 순교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시 태어나면 두 번 다시 단식 안겠다면서 단식할 때 먹고 싶은 유혹이 심해도 하느님과의 약속이라 지켰다고 했다.

아버지를 의지하고 사는 딸 아네스가 돌아가시면 혼자 사는 내가 누굴 믿고 사느냐고하자 너는 너의 삶이 있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삶이 있으니 놓아달라. 그리고 아버지가 가더라도 슬퍼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라.”>며 의연한 대도를 보였다.

 아네스는 결국 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것이 최선이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밤에 아버지 병원으로 모실게요. 난 아버지랑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요하니 아니다. 이제 끝났다. 그러지 말거라하셨다며 딸 아네스는 눈시울을 적셨다.

  강베드로는 돌아가시기 전날 딸 강아네스에게 나는 하나님에게 가는 것이니 너무 너무 행복하다. 슬퍼하지 말고 춤을 춰달라, 나를 살리려고 병원에 데려가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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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가장, 정말 멋진 아버지

 강아네스는 이렇게 아버지를 기억하며 그리워했다.

 “아무리 나이가 드셨어도 삶에 대한 애착은 누구나 있는 것인데. 아버지는 연세 드셔서 무릎이 조금 아프신 거 말고는 건강하셨다. 이도 튼튼하고 좋으셨다. 아버지가 워낙 강건하신 분이라 100살까지는 거뜬히 사실 분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나의 기둥이셨다. 광화문 집회에 갈 때나 애국 활동하러 아버지가 가실 때도 모시고 같이 다녔는데. 아버지랑 같이 다니는 것이 너무 좋았다. 아버지는 항상 주위에 베푸는 분이셨다. 그러시면서도 절대로 생색내거나 하는 법이 없었다. ‘생색내려면 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나는 멋있는 우리 아버지를 의지하고 존경했다. 어려서부터 궂은일이 있거나 고민이 있을 때 아버지에게 얘기하면 다 해결해 주시는 멋진 가장, 정말 멋진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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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베드로의 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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