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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한수/김진태의원 용기있는 발언/트럼프 미 당선자 /박근혜대통령의 잘못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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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한수/김진태의원 용기있는 발언/트럼프 미 당선자 /박근혜대통령의 잘못은?

새벽이슬1 2016. 11. 18. 01:45

윤창중 "박근혜 대통령, 임기 채우는 것이 승리하는 길"

신의한수 485편

朴대통령, ‘성추행설’ 윤창중 대변인 美서 전격 경질

 

https://www.youtube.com/embed/qYVbpYzXKQQ

 

 

감동적인 김진태 의원의 발언

그래서 그런지 유력 논객들

대부분이 이 발언을 지금

SNS로 공유/리트윗하고 있다

정베 간 내용이나 감동적인

내용이라 다시 공유한다

뱅모

@bangmo

김진태의원은 앞으로 진실한

대한민국지킴이로 큰 인물이 될 것을 확신한다.

이번 시련을 통해 한꺼풀 벗는 느낌

[김진태의 의총 발언]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뉴데일리

『새누리호는

난파 직전이다.

난 그냥 여기서

죽겠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대통령 나가라,

당 대표 나가라

하지 않고 배와 함께

가라앉겠다.

애꿎은 선장을 제물로

바다에 밀어 넣어선

안된다』

나라의 기강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
절호의 기회였던 백남기 부검도 못하고

다음 주 ‘민중총궐기’ 때는 청와대가

좌익들에게 점령당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야당과 좌익세력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 줄건가?

그럼 사드배치 취소하고

북에 가서 빌고 연방제 통일 할건가?
그렇게 정신을 내주고 몸을 더렵혀서

무슨 후일을 도모하겠나?

그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다.
대통령 하야를 원하나?

아니면 식물정부를 원하나?

대통령을 그냥 덮고 가자는 게 아니다.

탄핵절차로 가자.
이럴 때 쓰라고 있는게

바로 헌법상 탄핵이다.

형사소추도 할 수 없는 현직 대통령을

더 이상 능욕하지 말고 탄핵절차를 진행하자.

물론 난 탄핵에 반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야당의원들은,

또 우리 새누리당에서

원하는 분들은 그렇게 하시라.

탄핵안이 통과되면

대통령을 새로 뽑으면 된다.

인정하겠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으면

대통령을 인정하라.
정하는 게 아니다. 당당하게 주장한다.

.
내가 박지원과 싸울 때는

윤리위 제소 도장 하나 안 찍어주던 분들이,

문재인 대북결재사건 때는 성명서 하나,

그 흔한 SNS 한 줄 안 올리던 분들이

지금 당 대표 물러나라고

엄청난 `전투력`을 보여주고 계신다.
그 결기를 야당에게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폭풍이 그칠 것이다.

문재인은 대북결재가 기억 안 난다고

버티는데 우린 왜 단 일주일을 못 버티나?

당이라도 살아야겠다고 발버둥치는 건 이해한다.
그렇다고 애꿎은 선장을

제물로 바다에 밀어 넣어선 안된다

트럼퍼 미대통령 당선자에 관한 견해

美IT기업, 트럼프에 정책요청서로 관계개선 타진

 

덴버신학교 정성욱목사님 글 한번 읽어 보세요.
~~~~~~~

많은 분들이 어떻게 트럼프와 같이 결함이 많은 사람이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는가 의아해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미국의 기독인들이 그를 지지하는 것에 대하여도 궁금할 것입니다. 물론 백인중심, 미국 신고립주의 등의 문제가 있으나 사실은 더욱 중요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고 특히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쟁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자질이나 성품을 떠나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정책을 비교한다면 이번 선거결과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힐러리는 극단적 낙태주의자입니다. 임신초기, 건강상의 이유, 부당한 임신 등의 경우 낙태가 가능하다는 것과는 달리, 출산직전까지 여성이 원하기만 하면 낙태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지지하고 출생 며칠전의 태아도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없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미국이 극단적 낙태국가가 되도록 한 것입니다. 수많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이것은 미국을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자식을 희생시키는 바알(몰록)숭배국가로 만드는 것이고 수천만명의 태아의 억울한 죽음이 하늘로 부르짖게 만든다며 힐러리를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둘째는, 힐러리의 동성애지지입니다. 오바마와 힐러리는 동성애 결혼법, 나아가 동성애 차별금지법을 전국적으로 관철시키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특히 동성애의 국제적 보편인권화를 위하여 동아시아에서 한국을 파트너 국가로 지목하여 한국을 최초의 동성애 결혼인정,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도록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힐러리의 절친인 루스 긴즈버그 대법관을 보내 한국의 법조계에 왜 동성애가 보편적 인권인지 한국이 국제적인 인권국가로서 동성애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설파하고 갔습니다.

셋째는 존슨 법률입니다. 60년대 만든 존슨법에 의하면 교회가 낙태문제나 동성애에 대하여 반대를 하는 순간 교회에 부여된 면세특권을 폐지하고 중과세를 할 수 있도록 하여 교회의 입을 막았습니다. 지난 50년간 공화, 민주를 막론하고 어느 대통령도 이에 대하여 거론하지 않았으나 기독교인도 아닌, 혹은 돌아온 탕자인 트럼프가 최초로 이법을 폐지하겠다는 정책을 약속했습니다.

그는 공화당 후보수락 말미에 ‘나는 미국의 건국에 교회가 한 기여와 헌신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는 그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바로잡고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언급을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보수 기독교인들은 그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볼 때는 이세벨의 영을 대항하는 예후와 같고, 불레셋에 싸움을 거는 삼손과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볼 때는 악한 세력에 대항하기에는 목사인 허커비와 목사 아들인 크루즈로는 약하다고 본 것입니다.

넷째는 세계정세입니다. 힐러리는 미국패권주의를 지지하며 러시아와 패권경쟁을 하고 일전을 불사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패권주의를 포기하고 각국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트럼프가 되면 미군철수를 한다라는 불안감이 증폭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국만 지목하였다기 보다는 전세계에서의 미군의 과대한 역할과 지출을 줄인다는 원칙을 피력하며 독일, 일본과 함께 한국을 사례로 든 것이므로 이 문제는 향후 미국의 동북아/한반도 정책 문제로 구체적인 조율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다만 이 문제는 한국과 같은 동맹의 약화문제로 연결 될 수 있어 그 때문에 한국에서는 트럼프를 염려하고 있는것이다.그러나 미리 걱정 할 필요는 없다.

정성욱교수(덴버신학교)


따져 봅시다. 박근혜 대통령이 뭘 잘못했어요?

독재했어요? 부정부패했어요? 해서 부정축재라도 했소? 아님 북한에 퍼주기라도 했소?

뭐 국정농단요? 농단하고 싶어도 하게나 했소? '의회독재'라는 말을 조선일보가 자주 썼는데, 어디 가서 청와대가 권력을 휘둘어요?

최순실이가 농단했다고요? 그러면 잡아다 족치면 될 거 아뇨. 최순실이가 처먹고 어디 가 뒈지거나 꼭꼭 숨기라도 했소?

...

옛날에 어느 대통령의 아들이 셋인데 그 셋 다 모두 그것도 추잡한 서민 울리기나 나랏돈 빼먹기 같은 파렴치한 죄목으로 엮었는데 그때 대통령 조사하라고 했나요?

측근 비리? 노무현 이명박 때는 전,현직 총무비서관이 굴비 엮이듯 붙들려가지 않던가요? 측근 발호의 압권은 김영삼의 아들 현철과 김대중 아들 "홍3 트리오'가 아니고 그 무엇이오?

그것에 비하면 최순실이가 무슨 부산저축은행 사건같이 무슨 피눈물 나는 서민들 돈이라도 빼먹었소? 아님 관을 끼고 대형 국책사업에 껴들기라도 했소? 있는 놈한테 돈 빼 먹었으니 파렴치한 건 아니잖소.

딸이 부정 졸업하고 부정입학했다고요? 그걸 대통령이 시키기라도 했소? 그랬으면 당시 교장 총장 담임 학과장교수 싸그리 잡아넣으면 돼잖소.

대통령이 기업에 돈 내라고 했다고요? 그것도 못합니까? 한류 사업 안 해도 돼요? 한복 한식이 한스포츠가 어땠어요?

국회가 일을 못하게 하는데 그거라도 대통령이 해야하잖소? 그래 기업에서 돈 받아다 대통령이 치맛폭에 감추기라도 했소? 착복이 아니잖아요!

경복궁 나가봐요. 젊은이 어린이 할 것 없이 남녀가 한복을 곱게 빼입고 활보해요. 첨에 난 중국 관광객인줄 알았소. 근데 한둘이 아닌 거요. 근처서 한복을 빌려준대요.

이겁니다. 잘 생긴 체형이 한복을 받쳐주니..그런 한복으로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고.. K사업이 어땠다고 이 난리요? 그건 20세기 새마을사업에 이은 21세기 한국알리기사업이요.

그래 삼성 현대차가 K사업에 내는 건 안 되고 아태재단이니 아름다운재단이니 하는 데 내는 건 죄가 없다는 거요?

뻔뻔하긴.. 돈도 800 중 750억이 현재 잔고로 있다건만.

대통령이 사과했죠. 그것은 옥에도 티가 있을까 하여 노심초사한 나머지 그런 일이 터졌으니 미안하고 죄송스럽다는거지 이전 대통령의 측근비리에 비하면 그게 상대라도 돼요?

문건 유출요? 완성본이 아니라고 하잖소. 여자 혼자 산다고 너무 그리 괄세마오. 불통이란 자기순수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과도 같은 거요.

어쟀든 최순실, 3인방, 안종범 다 족치시오. 대학교수라는 자가 왜 법을 어겨요. 싸그리 조져버려요. 대통령은요?

행정 등의 지시를 했지 범죄를 교사한 건 아니잖소. 물론 최순실과 3인방 따위를 사람이라 여긴 대통령의 무지가 참으로 딱하오.

자서전에서 그렇게 지혜와 평안 그리고 바름을 강조하시더니.. 청와대 올 때 3인방 등을 끊었어야 했는데.. 자네들 재목은 국회의원까지네 하면서..

제발 가만 좀 있습시다. 대통령이 법을 안 지켰다면 그 심판은 법대로 하면 될 거 아니요? 그렇게 미우면 탄핵하면 되겠건만. 저들 손에는 피 안 묻히겠다고..

조선일보가 오늘 김대중칼럼 통해서 대통령더러 대오각성해 혁신정치를 하라네요. 참 병 주고 약 주네요..그러면서 탄핵 받으면 죄인으로 남는대요. 어떤 것은 죄인 아닌가오? 좌파한테 나라가 넘어가 북한 아래 들어가면 더 큰 죄인이 되겠건만..

소뿔을 고치려다 소를 아예 죽이는 교각살우들 마시오. 김대중칼럼은 박근혜를 죽이려다 보수를 죽여서 다시금 '이전10년'시기로 되돌아 가는 게 두렵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대통령은

*북의 정은이한테 불법 비밀 송금한 것도 아니고,

*걸핏하면 지지자 모아놓고 야당 비난하면서 선거운동한 것도 아니고,

*국정원 동원해서 도청을 밥먹듯이 한 것도 아니고,

*피아제 시계를 덥썩 물고 좋아라 한 것도 아니고,

*자녀들 미국 뉴저지에다 아파트 사준다고 외교행랑에 현금 배달해서 외환관리법 위반한 것도 아닌데....

*왜 탄핵을 당하고 왜 하야를 해야하나?

*이것들 미쳐도 더럽게 미쳤네.

*광화문이 보수정권 타도 운동하는 곳인가?



2016.11.12일 간첩종북 데모대의

청와대 점령작전에 철저히 대비했나?

한성주 장군 "싱크홀 원인은 남침용 땅굴".. 그럼 서울시가 거짓말?

 

https://www.youtube.com/embed/OYbircQD00w

*대통령님 국가안보를 챙기시는 일엔 철저하게 임해 주세요. 대통령님을 지지하며 응원합니다.힘내세요 대통령님 010 5368 1782 땅굴안보국민연합의 한성주장군님의 외침에 귀를 기우리시어 대비하소서!

*최순실게이트건 뭐건 똥, 된장은 구분할 줄 알아야하는데..지금 최순실이 문제인가! 땅굴은폐해 왔던 박지원, 문제인, 박원순부터 소환조사해서 구속시키고 볼 일이지.. 이러다 야당에서 대권뺐고, 정계를 장악하면, 대한민국은 이제 정말 끝장나는 것이다! 제3의핵볕정책-- 진짜 두렵다.

 

 

 

좋은 향기(向基)

입은 하나이나 귀는 !!!

입은 하나이나 귀는 두개인 것은, 말은 적게 하고 듣는 편을 배로 하라는 것이며물고기는 언제나 입으로 낚이고, 사람도 입으로 문제가 되므로 항상 조심을 합니다.

겉모양의 항아리만을 보지 말고, 항아리 안에 있는 것까지 자세하게 보아야 좋으며겨우 맺힌 과일로는 장래 맛을 모름처럼, 말을 계속 듣다 보면 품성을 알 수 있습니다.

나쁜 말이 많이 들리면 빨리 귀를 손가락으로 막거나, 안 들리는 곳으로 피해야 좋으며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알 수 있음 같이, 사람은 그의 말과 행동으로 인품이 결정됩니다.

넷향기 이사장 : 최종찬 장로 올림 ( HP 010- 6361- 2625. 사☎ 02) 558- 2582 )

 

 

 

 

'부상당해 실려가는 경찰'


    [이제 국민이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언제까지 불순한 자들의 농간에 휘둘리고 놀아날 것인가?-

    우선 11/12100만 명인지, 26만 명인지 엄청난 사람들이 참가해

    서울 한 복판에서 벌였던 대규모 시위가 큰 사고나 불상사 없이

    끝난 것이 매우 다행스럽다.

    시위를 주도했던 좌파와 방송신문들은 100만 명의 인파가 박근혜의 퇴진을

    요구했다고 입을 맞췄지만, 북한 방송은 거기에 더해 “110만 명이 참가해

    박근혜 역도를 권력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범국민투쟁이 서울에서

    대규모로 전개됐다고 참가 인원을 부풀려 신나게 나발을 불어대고 있다.

    우리 경찰 측은 참가 인원을 26만 명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마이니치,

    아사히, 니혼게이자이, 산케이 신문 등은 기사에는 경찰 측과 데모대 측이

    주장하는 인원규모를 모두 소개(26, 100)했지만, 기사의 제목은 국가

    기관인한국경찰이 발표한 26만명이라고 뽑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언론은 모두 주최 측의 주장대로 100만 명이었다고 제목을 뽑았다.

    경찰은 참가한 사람들이 3.3평방m당 들어찬 밀도와 전체 면적, 그리고

    조밀한 지역과 허술한 지역을 고려해 산출하는 공식에 따라 인원을 파악

    하는데 비해 주최 측은 대충 어림잡고 몇 배씩 튀긴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겨레 경향 조선 동아 중앙 등 신문들과 특히 TV조선을 비롯한 종편방송들은

    기록적인 사람들이 몰린 촛불집회 현장에는 최순실 사태로 드러난 성난 민심을

    반영하듯 교복을 입은 중고등 학생, 어린이를 동반한 부모 등 일반인 참가자가

    많다는 등 하루 종일 젊은 학생들을 선동시키려는 보도에 열을 올렸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한 학생은닷새 후면 수능시험이지만 수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미래에 우리가 살아갈 사회이기 때문에 데모에 참가하게 됐다

    는 피켓을 들고 있었고 그것을 카메라에 담아 옮기는 방송사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 어른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스노자의 말을 옮기며 내 앞에 있는

    내 일부터 충실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한 마디 하기도 했다.

    옆에 있던 노인은 공부하는데 한시가 바쁜 학생들을 누가 집회에 동원

    했느냐“ ”이런 식이라면 자라나는 아이들도 망치고 나라도 망친다“.

    다음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또 저런 식으로 대통령을 몰아내려고 한다면,

    어떻게 민주주의가 유지되겠느냐고 개탄했다.

    전교조와 좌익교육감들이 언론계와 좌익선동꾼들과 더불어최순실 의혹

    악용하여 반정부 촛불난동에 주력세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의 경우 지난 11일 각 학교에 학생들의 집회 참여를 독려

    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 학생들을 망치고, 교육을 망치고, 정부를 전복시키려

    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학생 시국선언 관련 의사표현 및 단체행동에 관한 협조라는 제목의

    공문에는 학생의 의사표현 행위를 이유로 경고나 징계를 하지 말 것,

    의사표현 절차와 방법에 대한 생활 인권교육을 실시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노무현 때 통일부장관을 지낸 이재정은 북한의 김정일을 만났을 때 비굴하리

    만큼 아부아첨하고 돌아와서는 노무현 김정일의 대화록은 없다. NLL

    관한 것은 처음 듣는 얘기다. 내 양심을 걸고 말씀드린다며 국민을 속였다.

    그래서 시중에서는 거짓과 위선으로 똘똘 뭉친 성공회 신부 출신 출세주의자

    이며 천하에 믿을 수 없는 인간 말종으로 낙인이 찍힌 자다.

    11일 새누리당이 불참한 가운데 야당 3당만이 진행한 '최순실 게이트' 긴급

    현안 질의에서 야당은 수많은 의혹을 쏟아냈지만,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것들이어서 대규모 시위를 앞두고 터무니없는 의혹을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나올 정도였다.

    박 대통령에게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대포폰을 줬다”/“린다김, 정윤회,

    로키드마틴 측이 만났다“/”개성공단 폐쇄에 최순실이 관여했다“/”세월호

    사건 후 해경해체를 최순실이 지시했다“/”최순실이 민원 해결사로 조윤선

    장관을 임명했다“/

    최순실이 향 정신의약품을 대리 처방 받았다“/”통합진보당 해산도 최순실

    이 지시했다는 것이 사실이냐 하는 식으로 질의 했다. 아무 근거도 없고

    떠도는 소문인지 자기들 멋대로 지어서 질의하는 것인지, 한국 국회의원은

    저렇게 엉터리로 하는 것인지...참 한심하고 딱해 보였다.

    박근혜 정권 타도를 위한 민중총궐기에 대비해 좌파 교육감들과 야당들은

    나름대로 이처럼 열심히 사전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일에는

    시위를 주도했던 좌파세력과 방송신문 등 매스컴은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해

    하루 종일 선동에 열을 올렸다.

    방송 신문의 선동과, 전문 데모꾼, 골수분자들이 깃발을 들고 외치고 노래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저희들끼리 떠들고 걸어

    다니며 무엇을 사먹거나 춥지 않은 가을밤을 산책하는 듯한 분위기여서

    월드컵 때나 어느 축제에 온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광적인

    언론선동에도 많은 사람들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고 따로 논 셈이었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냉철하게 생각해 보자. 정부전복과 사회혼란 그리고

    어떻게든 남한을 적화시키려는 틈새를 만들려고 하는 적과 그 하수인들,

    , 정치권의 ▲▲▲, △△△, o o o, ◎◎◎, ●●●...명확한 반역 딱지가

    붙고 기록이 남아있는 자들과 누가 봐도 서슴치 않고 반역적인 언동을

    저지르고 있는 수 십명은 아예 따로 처리하기로 하고 버린 자식으로 쳐두자,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의 안정과 번영을 염원하는 애국인사들, 정계와 언론계,

    법원 검찰, 공직자, 경제인, 각계각층의 국민들은 이제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불순세력의 농간에 휘둘리고 놀아날 것인가?

    꼭 친북이 아니더라도 당리당략만을 생각하는 정치모리배들, 정권과 정치권을

    길들여 확실히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하며 萬世를 누리려고 드는 부패한

    언론권력들, 뭐가 뭔지 내용도 잘 모르면서 그들의 선동에 놀아나 술덤벙물덤벙

    깨춤이나 추며 이용만 당하는 순진한 사람들...이제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국민의 선택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법이 정해 놓은

    절차도 밟지 않고 대규모 시위로 끌어내린다면 반란이요, 정부전복이다. 그게

    무슨 법치국가이며 국제사회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현대국가인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야만의 짓이다.

    대통령의 잘못이 탄핵 사유가 된다면 탄핵에 붙여 법절차를 밟아야 한다.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는 것은 법절차를 따르는 合憲이지만 시위에 밀려

    물러나는 것은 헌법적 절차를 어기는 혁명적 사태다.

    야당은 정권 탈취할 야욕에 눈이 어두워 보이는 것이 없는가? 국가의 명예와

    국격은 생각지 않는가? 이제 국민이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언제까지 농간에 휘둘리고 놀아날 것인가? 나라를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http://blog.naver.com/wiselydw/220860855823

여고생들의 외침 "박근혜 하야하라"

 

 

 

 

김종필 “시사저널, 몰래 녹음해 왜곡·과장 보

도…어처구니 없는 내용, 법적대응할 것”

김종필 前 국무총리 자랑스런 육사인상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14일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 등의 일화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기사화한 시사저널 보도에 대해 “왜곡 과장 보도”라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김종필 전 총리 측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매체의 경영진이)며칠 전 고향 선배라고 찾아와서 시중에서 나도는 이야기를 농담 삼아 주고받았는데, 몰래 녹음까지 해서 왜곡·과장해 비열한 기사를 만들어 자기 신문에 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어 해당 보도 내용에 대해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라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날 시사저널은 지난 3일 김종필 전 총리와 청구동 자택에서 인터뷰를 가졌다며 장문의 기사를 게재했다.

시사저널은 김종필 전 총리가 박 대통령에 대해 “5000만 국민이 달려들어서 내려오라고, ‘네가 무슨 대통령이냐’라고 해도 거기 앉아 있을 것”, “하야는 죽어도 안 한다. 그 고집을 꺾을 사람 하나도 없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home/3/all/20161114/81326731/2?lbTW=c86b08f42fa5231ac9a8d79e79601a2#csidxe8b1cf838f24d28ab07ddf4fdfc8d3d

도상선 이상하다 했드니 ㅡㅡㅡ?

바로 이게 쓰레기 언론의 병폐다.

"시사저널"은 즉각 정정보도를 내고 사과해야 한다.
언론중재위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
노 정객의 말을 이렇게 오도하고 비밀 녹음까지 ㅡ
기레기의 폭거이고, 사이비 언론의 비행중 비행이다.
화가 난다.
책임없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김종필총재-대통령직 내놓으면 대혼란이 온다.정면돌파 위기를 넘겨야 대한민국이산다고말했다.

 

 

이 그림은 누군가 내게 붙혀준 그림이다.
오랜시간이 흘러 누가 붙혀준 것인지 기억이없다
나는 어렵고 힘들때마다 개구리를 보며 용기를 얻는다
황새가 개구리를 삼키려 하지만
개구리는 앞발로 죽으라 황새 목을 조르고있다
개구리야 포기하지말라
대한민국아 ! 너는 절대 포기하지 말라
너의 뒤에는 6000만 민족이 있다
    - 똥이 방에 있으면 지독한 오물 - 글 /靑山 한재서 똥이 방안에 있으면 지독한 오물되고 밭에 있으면 좋은 거름이 된다. 모래가 거실에 있으면 쓰레기 이고 공사장에 있으면 좋은 건축 자재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분수에 맞는 자리에서 일을하면 훈륭한 인물이 되고 욕심을 부려 과한자리에 가면 패가 망신 한다...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것이 아니다. 한 민족의 진로를 열어줄 인물 이어야 한다 모세가 이스엘 민족을 이끌고 홍해를 열어 제치고 건너 가드시,,,, 우리나라 정치인 중에는 대톨령 할만한 인물이 없다 지 배만 체우고,저들 패걸이만 살자고하는 오만 잡것들이 정치판 꾸중물을 일구고 있으니 나라가 이모양 이꼴이 아닐가,,,, 새 인물이 나와야한다. 필리핀 대롱령 "투테르 태"는 조그만 지방도시 시장이었다. 정책으로 아편쟁이를 총살 하겠다는 정강을 걸었다. 당선되었다. 당선이후 1600여명 아편쟁이 총살했다 그래도 그는 독재자소리 안듣고 필리핀을 재건해 가고있다, 그는 양복은 무릎이 불쑥 튀어나는 서민복에 오른쪽 뒷굽이 삐따다하게 낡아진 구두를 신고 대중국 시 진핑 당수와 어깨를 겨누고 중국군의 사열을 받으며,,, 우리나라에 정치판 오물을 싹 재거하고 우리민족을 이끌고 동해를 열어재치고 태평양 건너 가나안 평화의 땅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이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 입성할 자신이 없으면 대통령에 나서지 말라 민족도 불행하고 그대 자신도 불행해진다. 한번 실수는 하드라도, 두번 실수는 안된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것이다. 우리가 세상 이라는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같은 학생 일지라도 낙제를 하거나 유급을 해서는 안된다. 역사는 흐르고 전진한다 반복되는 하루, 반복되는 역사는 단 하루도 없다 두번의 똑 같은 밤도 없고, 두번의 한결같은 세상도 없다. 이 나라 젊은이 들이여, 이점을 명심하라. 국가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앞에 난간을 해쳐 보라 당신은 그 난간을 해치고 나갈수있다. 성서의 말씀은 고난 당한것이 내게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레를 배우게되었나이다(시/119 :71) 지금 잠을 자면 꿈은 꾸지만 지금 소망을 가지면 꿈을 이룬다 지금 나라를 위해 땀을 흘리지 아니하면 내일은 희망없는 나라로 전락하고 만다. 혁명은 피를 불러오지만 혁신은 피를 흘림이없이 혁명의 효과를 얻는다. 우리는 혁신을 하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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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글을 울이는 글 고맙습니다 靑山 한재서님! 환절기 건강하십시오. 2016.11.14. 아띠할멈.().

 

나라와 민족을 위한 1 · 2 · 3 기도

- 1일 2분씩, 3회 기도 운동 -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이유는 백성들이 타락해서가 아니라, 그 곳에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입을 다물고, 가슴을 치며,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울어야 합니다. 하루에 2분씩, 3번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대한민국의 주인 되시고 통치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 우리나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위기를 기회로 바꾸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대한민국을 지켜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불평하고 원망했던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소서.
- 대통령과 지도자들이 사리사욕으로 부정과 부패했던 죄악을 용서하여 주소서.
-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살아온 것을 용서하여 주소서.
- 교회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한 것을 용서하여 주소서.

대한민국을 버리지 않으시고 지금도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 나라를 흔들고 있는 정권(국가)의 악한 영은 이 땅 가운데서 떠나가라.
- 서로 정죄하며 분열케 하는 권세(지역)와 능력(사상)의 악한 영은 떠나가라.
- 국민을 혼미케 만들고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만드는 악한 영은 떠나가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 가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되게 하여 주소서.
- 한국교회를 깨워 주셔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다운 교회’되게 하소서.

 

★<<무서운 박지원>>

부산서구 국회의원 유기준작성
꼭!읽어보시고 퍼떨어주세요!

국회의원 박지원 비상하고, 이상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국회의원 박지원, 그는 일반인들의 상식을 뛰어 넘을 정도로 비상하고, 이상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자기 개인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부아첨 배신과 모반(謀叛)을 서슴치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태진아애인을 부인으로만들고 태진아에게 옥경이를소개. 불륜관계와 돈과 얽혀 있는 권력형 부정,부패,비리 등은

접어 두더라도 그에 관한 아름답지 못한 기록들은 얼마든지 있다.

아버지 큰아버지는 경찰에 사살 되었다.

그런 것들은 개인적인 문제라고 치자, 정말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국내정치, 남북문제, 안보문제, 더 나아가 국가의 운명이 걸려 있는 문제에까지 은밀하게 얽혀 있고, 깊숙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이는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정치적인 행적으로 볼 때 예사롭게 봐 넘길 일이아니다. 최근의 일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박지원 의원은 20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국민의당 소속 의원

전원의 이름으로 '5·18민주화운동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법률안'

이른바, '5·18 폄훼 방지법'이라는 것을 1호 법안으로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신문 방송 통신 각종 출판물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5.18민주화 운동을 비방 왜곡하거나 사실을 날조 하는 행위를 한 자는 5년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민주화운동기념곡으로 지정하고 5.18기념식에서 제창 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정부가 매년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행사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와 그 가족 및 유족 등과 협의해 개최 하도록 했다.

위 법안에 담겨 있는 의미가 참으로 묘하다.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자꾸 떠드는 자에 대해서는 징역이나 엄청난 벌금을 물릴테니까 앞으로 더 이상 떠들기만 해봐라, 그리고,5.18 행사 때 '님을 위한 행진곡'을 반드시 제창 토록 하고, 기념행사도 유공자와 유족 들이 하자는대로 하라는것이다.

말하자면~ "5.18에 대해서는 앞으로 입도 벙긋 하지 말고, 행사도 우리 맘대로 하겠으니 일체 간섭 말고 그냥 내버려 둬라"고 법제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5.18 광주사태에 대해서는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겠다고 협박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식의 법이 형식요건에 맞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그런 뜻에서 이 트윗을 법은 국민의 갈등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20대국회에서 서둘러 다루어야 할 문제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문제와 일자리 만들기를 위한 민생법안이다.

국민의 여론이 갈리고 갈등의 소지가 있는 법안부터 다룰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지원을 비롯한 국민의당 의원 전원이 20대 국회의임기가 시작되자마자 '5.18 폄훼방지법'을 1호 안건으로 들고 나온이유는 무엇일까?

지만원 씨가 500만 야전군 이름으로 착착 밝혀내고 있는 5.18 광주사태 진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주장이 시중에 설득력 있게 먹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가?

지만원 씨와 사진 분석 전문가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80년 광주사태 당시 사진찍힌 사람들의 대부분은 5.18 광주사태 때 특수를 띄고 북에서 파견된 자들로 광주 폭동현장에 잠입해 무기탈취, 국군과 주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 교도소 공격, 폭동 지휘 등에 동원 됐던 게릴라들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빠른 속도로 시중에 번져 가고 있다.

광주사태 때 현장사진과 북한의 당,군,정부 고위직에 있는 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대조한 것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같은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 사람들을 500명 가까이 찾아 비교해 놓은 것이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러나, 지만원 씨 등에 의해 광주사태 때 침투했던 북한 특수요원으로 지목된 사람 가운데 '나는 아니다. 억울하다'고 나서서 항의하거나 반증한 사람은 1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없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게 나요"하고 나온 사람이 남한에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고도의 특수훈련을 받은 북한 게릴라들이 광주를 짓밟고, 무정부 상태로 몰아갔던 것으로 추측된다는 것이다.

지만원 씨는 북한 사람으로 밝혀진 500명 가까운 광주사태 참가자 사진첩을 만들어 정부의 공식 발표와 수사를 압박하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광주사태가 북에 의해 저질러진 국가전복 폭동이었느냐, 김영삼 정부가 친북좌파의 압박에 못 이겨 광주사태를 뒤늦게 민주화운동으로 뒤집었느냐하는 피 튀는 싸움이 벌어지게 될것이다.

그리고, 민주화 성지라는 허명(虛名) 위에 세워진 정치세력은 떠내려 가고 말 것이다.

거기에 바로 국민의당을 총동원해 박지원이 서둘러서 '5.18 폄훼방지법'이라는 것을 1호 법안으로 대표 발의해 더 이상 광주사태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가지 못 하게 막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

그에게는 국가를 위해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정치기반인 5.18광주 세력이 어떻게 되느냐가 더 중요한 일이고,북한과의 은밀한 커넥션을 갖고 있으면서 안보국방과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것이 관심사일 뿐이다.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 했을 때였다.

박지원은 광주사태 진압과 관련해 호남 사람들이 원수처럼 여기고 있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 "우리나라에는 전두환 각하와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광주 진압작전은 정당한 행사였다"며

5.18 가담자들을 폭도로 몰았던 사람이다.

그 처럼 호남 사람들을 깎아내리고 대통령을 추켜 세웠던 사람, 5.18과 호남사람들을 밟고 일어 서려고 몸부림 쳤던 사람 박지원은 그 일로 해서 정부의 훈장을 받고 두 번씩이나 청와대를 방문 했었다.
그리고, 그일 때문에 호남향우회 모임에서 머리를 20바늘이나 꿰맬 정도로 몰매를 맞은 일도있었던 사람이다.

그렇던 그가 아무런 반성과 설명도 없이 호남의 수호신이나 되는 것 처럼 행동하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다.

박지원, 그는 왜 무엇 때문에 어떻게 해서 김대중의 충복이 됐는가?

어떻게 김대중과 김정일 사이의 비밀 메신저가 됐고, 지금은 이희호의 손발이 됐으며 호남의 수호신처럼 돼 버렸을까?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일까?,
국가의 안정과 국민 생활의 향상을 위해서 일까?

아니면,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남북대치 상황속에서 통일의 초석이 되기 위해서 일까?
아니면,대북 커넥션으로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잇속을 보기 위한 것인가? 당신의 본심은 무엇인가?

당신은 지난 2000년 8월 한국의 신문 방송 통신사 사장단 46명을 이끌고 평양에 가서 김정일에게 인사를 시키고 입에 자갈을 물렸던 사람이다.

지난 2013년 7월에는 '이희호 여사 경호법' 이라는 특별법을 만들었다. 이 여사의 부탁을 받아 이희호의 경호만큼은 법에 정한 10년이 넘어도 경호를 경찰로 넘기지 말고 계속 청와대가 맡도록 한 희한한 법이다.

한국언론사 사장들을 김정일에게 끌고가 입에 자갈을 물린 일이나 이희호 여사의 부탁이라고 해서 개인 한 사람을 위해 경호법을 고쳐 퇴임후 10년 이상이 된 대통령부인을 청와대 경호실에서 맡도록 법을 뜯어 고칠 수 있는 사람.
그는 자기의 잇속과 입신영달을 위해서는 적에게 우리의 언론인들을 끌고가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고,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이라면 그 개인을 위한 입법까지도 서슴치 않을 무서운 사람이다.


이 처럼 박지원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예측 하기 어려운 사람이며,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계와 의식 있는 사람들은 잠시도 방심 하지 말고 그의 모든 언어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그의 간교한 꾀와 요설(饒舌)이~이 나라에 무슨 변고(變故)를 가져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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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가 위험합니다.


나라가위태롭습니다.


월남 최후의 탈출자, 이대용 장군

살아있는 영웅,살아있는 귀감

 

1. 재월한국인 철수 및 안전확보

 

북월군이 파리휴전협정을 위반하고 북위17도선을 넘어 남침 총공세를 취하자 베트남공화국(남월)은 패망위기를 맞이했다. 주월 한국 대사관은 우리정부의 지시에 따라 1975년 3월말, 재월한국인 철수본부를 설치하고 육군 현역 준장이며, 주월 한국 대사관에 파견되어 경제협조실장(경제공사)직책을 수행하고 있는 이대용 공사를 재월한국인 철수본부장에 임명했다.


당시 재월한국인수는 외교관 21명, 외교관가족 59명, 농업사절단 20명, 의료사절단 21명, 수자원사절단 4명, 그리고 순수 민간인 1,009명이었다.
재월한국인 철수계획에 따라 1975년 4월 26일까지에 재월한국인 총수의 약 80%인원을 철수시키고 약 200명이 남아있었다.


이들 잔류 민간인 대부분은 개인재산처리가 잘 안되어 쉽게 떠나지 못하고 동분서주하면서 각종 부동산의 재산처리를 하고 있는 한국인들이었다. 한국대사관 가족전원은 이미 철수가 끝났고, 21명의 한국외교관 중 8명은 철수를 끝내고 13명이 남아있었으나, 미국 측과의 합의에 따라 이들 13명은 미국 대사관 책임 하에 미군 헬리콥터로 철수하겠금 되어있었다.

미국 국무장관 키신져는 소련 외무장관을 중간에 내세워 북월 정부 측과 비밀교섭을 해서 사이공에 투입된 미군이 미국 민간인과 미국대사관 직원들의 철수작전을 완료할 때까지는 사이공 외곽에 있는 북월 공산군이 절대로 사이공시내에 진격해 들어가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장을 받아놓고 있어, 미국 측은 상당히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헬리콥터에 의한 사이공으로부터의 미국인 철수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미국 측이 한국 대사관 직원 전원을 철수시키겠금 한-미 합의가 이루어져서 한국대사관 외교관의 마지막 철수 및 잔여 한국 민간인 철수도 보장된 상태였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했다. 1975년 4월 29일밤, 재월 미국인철수의 총책임자인 주월 미국 마틴 대사는 ‘지금 북월 공산군 대부대는 사이공 시내로 진격해 들어왔으며, 그 선두는 주월 미국 대사관 수백 미터 거리에 진격해 왔다.’ 라는 사실무근의 잘못된 첩보를 접하고 철수작전을 조기에 끝내기로 결심했다.

1975년 4월 29일 밤 20시 50분, 이대용 한국인철수본부장은 마틴 대사를 보좌하고 있는 베넽 공사를 만나서 주월 미국 대사관 별관마당에 집결하고 있는 한국 외교관 11명을 포함한 약 180명의 한국인들을 수시로 날아오고 있는 헬리콥터에 조속히 태워 철수시켜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베넽 공사는 상황이 위급하니 이대용 철수본부장만 자기가 지명한 미국 대사관직원의 경호안내를 받으며, 지금 당장 대사관 옥상의 헬리콥터장으로 가서 헬리콥터를 타고 떠나라고 했다. 한국인 전원의 철수지원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이대용 철수본부장은 이를 거부했다.
철수본부장이 부하직원과 한국 민간인들을 생사의 갈림길에 내버려두고, 혼자서 살려고 도망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어쨌든 한국인 모두를 철수시키겠금 어떤 대책을 강구해 달라고 간청했다.

미국측이 한국인들을 철수 못시키고 철수작전을 중단한다면 한국인들이 살아남을 길은 오직 하나 주월(사이공) 프랑스 대사관이나, 주월 영국 대사관에 긴급교섭을 해서 그들 대사관안으로 들어가는 길 뿐이었다. 프랑스나 영국은 북월 하노이에도 대사관을 설치하고 있어 남월, 북월 모두에게 대사관이 있는 상태임으로 사이공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이나 영국 대사관도 치외법권이 인정되어 북월 공산군이 절대로 침입하지 못하게 되어있었다.

이대용 철수본부장은 외교관 공사의 높은 직함이 있고, 프랑스 대사관이나 영국 대사관 고위층과 개인친분 관계가 두터움으로, 적극 노력하면 그 교섭이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지며, 그것을 위해 전심전력을 기우릴 수가 있다고 판단했다. 1975년 4월30일 새벽 4시 30분경, 미국 측은 한국인, 독일인, 기타 여러 나라 국민들을 버리고, 철수작전을 중단하고 떠났다.


이대용 철수본부장은 대사관 부하직원들을 데리고 어둠속에서 한국인들을 집합시키고 상황설명을 긴급히 하고, 대사관 참사관, 1등 서기관 등을 대동하고 이리저리 달려가 교섭 끝에 드디어 교섭이 성공되어 잔류 한국인 160여명을 치외법권 지역인 프랑스 대사관 병원에 대피시켜 안전을 확보하고, 이날 정오에 북월 공산군이 노도와 같이 사이공에 쳐 들어와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을 감행할 때 한국인은 한명도 피해 없이 모두 안전하게 생명을 보전할 수가 있었다.


2. 외국 외교관 앞에서의 의연한 사생관

1975년 5월 1일 오전 8시 30분경 주월 일본 대사관 와타나베 참사관은 우리나라 김동조 외무장관으로부터 이대용 철수본부장 앞으로 보내온 전문을 가지고, 프랑스 대사관 병원에 있는 이대용 철수본부장을 찾아왔다. 전날 일본 대사관 통신망을 통해서 이대용 철수본부장이 보낸 전문에 대한 본국정부의 응답전문이었다.

이 자리에서 일본 와타나베 참사관은, 북한 김일성 공산정권의 고위인사들은 점령군과 함께 이미 사이공에 들어와 있으며, 북월 공산 정권 및 프랑스 대사관과 교섭을 벌이고 있는 중이며, 곧 북한정권 인사들이 이곳으로 와서 이대용 철수본부장을 위시한 9명의 한국외교관을 데리고 북한으로 가게 될 것이니, 그리 알고 있는 것이 좋을 것 이라고 했다.


후진 공산국들은 국제법을 어기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에 이대용 철수본부장은 초긴장을 했다.
군인된 몸으로서 항상 간직하고 있는 사생관, 언젠가는 필연코 가야 할 죽음의 길, 이제 그 시기가 온 것이다. 가야 한다. 깨끗하게 가야 한다. 이 장군은 권총을 꺼냈다.


대한민국 육군 장군에게 지급한 38구경 5연발 리벌바 권총이다. 실탄 5발이 장전되어 있다. “와타나베씨 고맙습니다. 나는 북한에 불법으로 강제로 끌려가 대한민국 외교관으로서 명예를 더럽히는 것 보다는 확고한 국가관, 사생관에 입각해서 자결할 결심입니다. 북한공산요원들이 나를 끌고 가려고 이곳에 나타나면은 그들을 쏴 죽이고 나머지 한발로 자결할 것입니다.”

초긴장 상태에서 생사를 초월한 이 장군의 안색은 너무도 진지했다. 와타나베 참사관은 이 장군의 손을 잡고 자결할 생각을 말아 달하고 하며 울었다. 옆에 있던 이규수 참사관도 울고 있었고, 서병호 영사도 울고 신상범 서기관도 울고 있었다. “확고한 나의 이 결심을 아무도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어서 돌아가 주십시오. 와타나베씨” 한참동안 눈물로 만류하던 와타나베 참사관은 돌아갔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일까. 북한공산정권 요원들은 나타나지를 않았다.


3. 사이공 치화 형무소에서의 항거투쟁

베트남 공산정권 외무부는, 사이공에 잔류하고 있는 한국 외교관들에게 ‘1975년 6월 18일 오전 10시 사이공 탄손눝 공항에 나가서 태국 방콕으로 가는 국제적십자사 수송기를 타고 출국하라.’는 통보를 한국 외교관들에게 보내왔다.


한국 외교관들은 국제적십자사 사이공 지사장의 인솔 하에 사이공 탄손눝 공항에 제시간에 나갔으나, 수송기에 탑승하려는 직전에 권총을 찬 베트남 관리들이 나타나서, ‘남조선인들의 출국을 보류한다.’고 해서 한국외교관들은 출국하지 못하고 다시 시내숙소로 되돌아가는 사건이 있었다.

그 후에 초긴장이 감도는 우여곡절 끝에 1975년 10월 3일 베트남 공산정권의 안닝노이찡(安寧內政, 보위부)은 이대용 장군을 불법 체포하여 악명 높은 기요틴(단두대)까지 있는 사이공 치화 형무소에 투옥, 수감했다.

이대용 장군을 체포할 때, 베트남 공산정권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한국말로 읽어 내린 베트남 관리는, 김일성대학과 김책공과대학을 졸업한 ‘즈엉징 특(DUONG CHINHTHUC : 2004년 8월 현재, 그는 주한국 베트남 대사관 특명전권대사임)’ 이었으며, 그는 이대용 장군 앞에서 “성명 이대용, 직업 외교관, 베트남 혁명사업을 방해했기에 체포함. 1975년 10월 3일” 그리고 구속영장에 서명한 베트남 공산관리의 직책과 이름을 읽었다.

이대용 장군이 수감된 감방은 사형수나 장기수를 수감하는 격리감방이었다. 햇빛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열악한 감방이며, 방안에는 뻥 뚫려진 지저분한 악취가 진동하는 변소가 있을 뿐, 사방은 두터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식사는 하루에 아침, 저녁 두 끼이며, 점심식사는 없었다. 한 끼의 식사는 밥 한 컵 정도이고 반찬은 호박소금국 또는 라믄(베트남 야채)소금국 한가지뿐이며, 한 끼의 부식은 한 컵 정도였다. 이 열악한 급식 및 감방생활은 북한이나 소련의 정치수용소의 급식 및 감방생활을 연상케 했다.

1975년 10월 10일 베트남 공산정권의 안닝노이찡 요원들은 치화 형무소로 와서 이대용 장군을 신문했다. 한국말 통역은 체포당시의 통역인 ‘즈엉징 특’이 했다. 안닝노이찡 요원은 한국에 대해 원한이 사무치는 것인지 또는 이장군의 기를 꺾어버리려는 속셈인지, 언성을 매우 높이며, 남조선 박정희 집단은 맹호사단, 백마사단, 청룡여단 등을 베트남 침략군으로 보내 수많은 베트남 양민을 학살하여 천인공노할 큰 범죄를 저질렀다는 말을 길게 하고 “그대(이 장군)는 총살형에 해당한다.”고 큰소리로 외친 후 “그러나 지금이라도 과거를 청산하고 진보적 민주주의(공산주의)편에 가담해서 인민들을 위해서 일 하겠다면 과거를 관대하게 용서하고 인도적 대우를 해주겠다.”고 말하였다.

이대용 장군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반박했다.
“나는 유엔이 제정한 비엔나협정에 의하여 외교관 면책특권이 있으며, 따라서 베트남 정부는 나를 신문할 권한이 없고, 나는 답변할 의무가 없다.”고 말하고 “정치에 있어 이 지구상에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우방도 없다. 교전당사국이라도 외교관은 체포할 수 없으며, 국제법에 따라 모두 서로 본국으로 보내주어야 하는 것이다.”


국제법에 규정한 대로 유엔의 보호를 받는 이장군은 결코 베트남관리들의 신문에 응하지 않겠다고 확고한 발언을 거듭 강조했다.
베트남 안닝노이찡 요원은 “어쨌든 그대는 총살이다.”라고 윽박질렀다. 이대용 장군은 “총살, 총살하는데 할 테면 하라. 그 따윈 협박에 두려워 할 내가 아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그러나 총살하려면 유엔이 주동이 되어 국제규모재판소를 설치하여 국제재판을 한 후에 총살하여야 한다. 베트남 정부는 국제외교관인 나를 재판할 권리가 없다.”라고 못을 박았다.
안닝노이찡 요원과 이대용 장군은 평행선을 그으며, 언쟁만 벌이다가 국제법상 정당한 주장인데다가, 또 이미 나라 위해 죽을 각오가 확고히 되어있는 의연한 정신자세의 이대용 장군의 주장에 대항할 이론적 밑천을 잃은 안닝노이찡 요원은 하는 수 없이 “오늘의 신문은 이것으로 끝내겠소. 곧 2차 신문을 하러 오겠소.”하고 제1차 신문을 끝내버렸다.

한국 정부는 이대용 장군이 베트남 공산정권에 의하여 체포되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어디서 어떤 일을 이 장군이 당하고 있는지를 전혀 알 수 없어 애만 태우고 있었다. 고립무원 상태에서 무거운 안닝노이찡의 압박이 이 장군에게 가해지고 있었다. 안닝노이찡은 이 장군에게 일광욕을 금지시키고 있었다. 열악한 식사로 인해서 영양실조와 햇빛을 전혀 못 보는 상태에서 갖가지 병이 생겼다.

약 10개월간 단1초도 햇볕을 못보고 좁은 격리감방에 가둬놓으니 미칠 것만 같았다. 안닝노이찡은 이러저러한 갖가지 수단방법을 써서 이 장군을 굴복시켜 사상적 전향을 시키려고 애썼으나 모두가 허사로 돌아갔다. 이런 가운데 이 장군이 형무소측에 계속 항의했더니 실로 297일 만인 1976년 7월 27일에야 일광욕을 15분간 시켜주었다.

영양실조로 체중은 자꾸 줄어서 약 1년 만에 이 장군의 체포 당시의 체중 78kg는 46kg으로까지 내려갔다. 식물인간이 되어가고 있었으나 이를 악물고 참았다. 자살의 유혹이 수없이 찾아왔으나 “자살은 의지가 박약한 자의 행위다. 끝까지 투쟁하여야 한다.”고 자신을 격려하며 강철 같은 의지력으로 버텨나갔다. 한국 정부와의 연락이 전혀 되지 않고, 사이공 시내에 있는 교민과도 서로 소식을 알 수가 없는 상태에서 홀로 고독하게 베트남 안닝노이찡과 투쟁하고 있는 이 장군에게 수감되어...

1년 9일이 되는 1976년 10월 12일 깜짝 놀랄 기적 같은 소식이 들어왔다.
우리정부에서 백방수단을 강구하며 1년간 애써온 결과, 치화 형무소 간수가 우리 편을 들어 사이공에 있는 우리 교민회장의 편지조각을 이 장군에게 가져온 것이다. 극비로 이 쪽지를 보내니 이 장군의 건강상태, 북한요원으로부터 신문 받았는지의 여부, 특히 보안에 유의하면서 답신을 써 보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때부터 이 비밀루트를 통해서 이 장군은 어렵사리 가끔 한국 외무부 장관, 그리고 가족 또 때에 따라서는 한국 대통령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식은땀을 흘리며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면서 보내는 편지라서 그 횟수는 아주 적었다. 이 극비 통신루트로 인해서 우리 정부는 이 장군의 1년간의 필사적인 확고한 투쟁정신과 태산 같은 부동의 사생관, 국가관, 군인관, 애국심을 모두 파악하고, 박정희 대통령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이 장군을 구출하라고 정부 해당 각 부서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1977년 2월 음력 명절 때 치화 형무소에서는 모든 수감자들에 대한 가족, 친지 면회가 특별히 허용되었다. 외국인 수감자들에 대한 면회는 그 나라 교민회원들이 하도록 허용되었다. 치화 형무소에 수감된 약 5,000명의 수감자들은 모두 형무소 광장에 모여서 즐거운 약 2시간의 면회를 하며 가족, 친지들이 들고 온 음식을 나누어 먹고 대화를 나눈 뒤 나머지 각가지 차입품을 들고 형무소 감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유독 공산당에게 전향을 거부하고 있는 이대용 장군만은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1977년 9월3일 베트남 국경일에도 치화 형무소 수감자 전원에게 가족, 친지, 교민들에 의한 면회가 허용되었지만, 이대용 장군과 수일 후에 총살이 집행되는 와하우교 반공청년장교 5명만은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 후 해마다 음력 명절과 국경일에는 치화형무소 수감자 전원에 대한 가족, 친지, 교민들에 의한 면회가 있었으나, 이대용 장군 한 명만은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대용 장군이 안닝노이찡이 강요하는 소위 인민(공산주의자)편으로의 전향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어, 이 장군이 그들의 압박에 지치고 지쳐 굴복할 때까지 심적 고통을 끈질기게 가하는 수단의 하나로 면회금지를 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장군은 치화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한번도 면회를 못하는 진기록을 남기고 옥사(獄死)하던가 아니면 반송장이 되어 출옥하게 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훗날의 일이지만 이 장군은 치화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4년 7개월 동안 단 한번도 면회를 해보지 못하고 가지가지의 병에 걸린 몸으로 옥문(獄門)을 나서게 된다.
옥중(獄中)에서 ‘어떠한 칠난팔고의 험난한 가시밭길이라도 의연하게 극복하리라’는 철석같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이 장군이지만은 정신력과는 달리 신체는 자꾸만 허약해지고 있었다.


1977년 6월21일부터는 머리가 뜨끔거리면서 잠을 못 이루는 몹쓸 병을 앓기 시작했다. 6월24일 밤에는 거의 한잠도 못 이루고 꼬박 새우다가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정신력으로 극복해 보려고 이를 악물고 애를 썼으나 견디기 어렵게 몸이 쑤셨다. 6월 26일 오후부터는 40도의 고열이 온몸을 쑤시게 하며 감방의 천정이 거꾸로 되었다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면서 빙글빙글 도는 환각에 시달리다가 정신을 완전히 잃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3일간 식사는 손도 못 대고 물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6월 27일 형무소 당국도 거적대기 위에 누워서 펄펄 끓는 이 장군의 실신상태의 몸을 보고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형무소 본부에서 간부들이 몰려오고, 2명이 밤을 세워가면서 이 장군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6월 28일 오후에는 간수들이 여 의사와 여 간호원을 데리고 감방 안으로 와서 왕진을 하고 갔다. 그리고 병원에 돌아가서 여 의사는 알약을 20여알 보내왔다. 7월 1일이 되면서 고열은 가시고 미열만 계속되었다. 7월 4일이 되어서야 이 장군은 제대로 일어나 식사를 겨우 할 수 있었고 잠시나마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이 장군은 일어나서 런닝셔츠와 팬티를 갈아입으려고 벗었더니 많은 피가 끔직하게 뒷부분에 묻어있었다. 살펴보니 이 장군이 모르는 사이에 둔부 양쪽과 허리 뒷편에 각각 손바닥 크기의 커다란 상처가 나 있었다. 피부껍질은 모두 없어지고 시뻘건 살덩어리 위에 피가 엉켜있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을 1주일간 계속 앓으면 그렇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고열에 신음하면서 정신을 잃었다 차렸다 하며 조잡한 콘크리트 방바닥에 얄팍한 거적대기와 담요 한 장을 깐 채 고통을 이겨내려고 이리저리 몸부림치다가 그렇게 된 것일까 참으로 알 수 없는 큰 상처였다.
이런 가운데 이 장군은 가지각색의 잔병에 시달리면서 치화 형무소의 암흑터널 옥고(獄苦)의 세월은 아주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베트남 안닝노이찡은 계속해서 별의별 수단방법을 다 써가며 이대용 장군을 회유, 공갈, 협박했으나 모두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 장군이 수감되어 약 3년이 된 1978년 9월25일 드디어 북한 노동당 제3호 청사 통일전선부에 속해 있는 중견 간부중 빼어난 일꾼인 궁상현, 박영수(훗날 서울불바다 발언한 자), 한경수의 3명이 이 장군을 신문하기 위하여 평양에서 베트남으로 왔다.

그들 3명중 2명이 7일간에 걸쳐 이 장군을 직접 심문했다.그들은 민족, 혈연, 남북대화 문제들을 들고 나와 이 장군을 회유도 하고 공갈, 협박도 하면서 끈질기게 괴롭혔다. 그들은 이 장군이 사상적 전향을 하고, 북한으로 가겠다는 자의망명서(自意亡命書)를 쓰게 한 후 평양으로 이 장군을 납치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국제법에 의해서 외교관은 체포나 구금을 시킬 수는 없으나, 외교관의 자의(自意)에 의한 타국으로의 망명은 국제법이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장군이 북한에 끝내 가지 않겠다고 고집하면 극비리에 사상전향서를 이 장군으로부터 받아, 처자가 있는 서울에 보내주긴 하지만 북한의 극비 거물간첩으로 극비지령을 내려 이 장군의 북한 비밀간첩으로서 서울에 묻어둔다는 차선안(次善案)을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믿어졌다.

궁상현 일행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그들이 파놓은 함정으로 이 장군을 밀어 넣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헛일이었다. 이 장군은 안닌노이찡에 맞서 싸울 때와 똑같은 이론으로 외교관 면책특권을 내세워 북한 요원들이 국제 외교관을 신문할 권리나 자격이 티끌만치도 없고 국제 외교관인 이대용 장군은 그들의 심문에 답변할 의무가 전혀 없으니, 한마디로 답변하지 않겠다면서 시종일관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그들이 욕지거리를 하면, 이 장군은 이에 맞서 동등한 욕지거리로 대했다.하루는 궁상형이 “이 새끼”하며 이 장군을 때리려고 상의를 벗으며 일어나자, 이 장군도 “야, 이 새끼야, 때릴 테면 때려봐라” 더 큰소리치며 일어서서 그자를 태권도로 때려눕힐 자세를 취했다.나라 위해 이미 죽음을 완벽하게 각오한 이대용 장군은 태권도 유단자이며, 무서운 것은 티끌만치도 없었다. 궁상현은 덤벼들지 못하고 옆에 있는 자가 말려서 이 장군은 격투까지는 가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그들의 심문은 헛돌 뿐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투로 미루어 그들은 이 장군이 ‘자의망명서’를 써서 국제 신문기자들에게 공표하고 이 장군이 북한으로 망명 귀순하도록 공작하는 것이 아주 명확히 보였다.
1978년 10월 2일 아침 제6차 신문 때 북한 3호 청사 선임자인 궁상현은 저주스러운 눈길로 이 장군을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당신이 여기서는 말을 않고 있지만 어디 두고 봅시다. 다른 곳에 가서는 우리에게 말을 안 하고 못 배길 거요.”하고 협박공갈을 했다.

북월 하노이 같은 곳으로 북송 이감시켜 고문하겠다는 공갈이었다. 이 장군은 코웃음을 치며 “흥!”하고 씩 웃어버렸다. 서리 맞은 잡초들은 단숨에 시들어 가지만, 소나무는 서리 맞고 눈보라 쳐도 웅장하게 버텨나간다. 이 세상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소나무도 있는 것이다.

1978년 10월2일 오후 2시 제7차 신문이 시작되었다. 이 장군은 계속해서 초연하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꽤 시간이 지난 후 흰셔츠를 입은 자가 “왜 저렇게 외곬일까? 우리말을 왜 모두 적의(敵意)로만 받아들일까?”하고 체념하듯 말했다.선임일꾼 궁상현은 한참 동안 무엇인가를 떠들어 댔다. 이 장군은 딴생각을 하며 그자의 말에 정신을 쏟지 않았다. 그자는 갑자기 언성을 높이면서 “알갔소? 이세가지 중의 하나를 택하시오” 했다.


이 장군은 궁상현이가 말한 세가지를 귀담아 듣지 않아 무슨 말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묵묵히 앉아 있었다. 궁상현은 갑자기 큰 소리로 “좋소. 묵비는 중립이요. 중립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소. 여지껏 우리가 말한 것을 당신이 모두 시인한 것으로 해석하고 당신이 북반부 고향에도 한번 가보기를 원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끝내겠소. 가시오.”하였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었다. 그냥 나올 수가 없었다. 한마디 해야 했다. 여보시오. 어째서 묵비가 시인이요. 나는 여지껏 당신들이 말한 것을 하나도 시인하지 않고 또 죽어도 북한 땅에는 안 가겠소.”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이로써 북한 노동당 3호 청사 통일전선부에 속해있는 궁상현 일행에 의한 이 장군에 대한 신문은 1978년 9 25일 사이공 안닝노이찡 안가에서 시작하여 아무런 성과 없이 1978년 10월 2일 허탕으로 끝나버렸다. 이에 대한 문제는 북한노동당 3호 청사의 높은 간부로 있다가 대한민국으로 1980년대에 극비리에 귀순한 황일호씨의 증언에 의하여 모든 것이 사실로 입증되었다.

1978년 12월25일 베트남공산군이 대병력으로 캄보디아를 침공 1979년 1월 9일에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을 점령했다.이때 북한 김일성은 캄보디아를 지원하고 베트남 공산국과 적대관계에 들어갔다. 1979년 2월17일 중공군 대부대가 베트남 국경을 돌파 침공할 때도 북한 김일성은 중공편을 들었다.


이로써 북한 김일성 공산정권과 베트남 공산정권의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우리정부는 이대용 장군 구출 외교노력에 활기를 더하며 가일층 맹활동을 하였다. 이 결과 이대용 장군은 치화 형무소에서 1980년 4월 11일 석방되어 4월 12일 우리 정부가 보낸 아이젠버그 회장의 전용기를 타고 스웨덴 외무차관 리프랜드를 단장으로 하고, 스웨덴 외무부 비서실장 닐슨과 아이젠버그 그룹의 동경지사이사 겸 하노이 지사장 드웍씨의 안내 및 호위를 받으며 귀국했다.

이와 같이 이대용 장군은 1975년 4월에는 재월 한국인 철수본부장으로서 예기치 않았던 위기상황에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한국인 생명을 모두 구하고, 베트남 공산정권의 불법체포, 투옥 중에도 확고한 군인관, 공무원관, 사생관, 국가관을 가지고 국가기밀을 보호하며, 국가에 충성한 그 고귀한 정신은 국가 공무원, 또는 현역군인신분을 가진 장병들이 대대손손 만대에 걸쳐 이어받을 귀감이며 이대용 장군의 그 큰 공은 천추에 빛날 것으로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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