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5천 년 역사를 다 이야기할 자격은 내게 없습니다. 그러나 해방을 맞은 1945년 이후의 한반도 역사에 대해서만은 나에게도 발언권이 있습니다. 지난 70년 가까운 세월을 이 겨레와 함께 이 땅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젠 노병이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기에 한 마디 하는 것뿐입니다.
대한민국은 이승만이 세웠고 이승만이 지켰습니다. 이승만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박정희는 가난하여 굶주리던 이 백성이 밥술이나 먹게 만들었지만 자기가 가꾼 나무의 열매는 맛보지 못하고 비명에 갔습니다. “장면이 좀 더 집권할 수 있었으면 나라의 경제가 좋아졌지 않았을까”라고 희망적으로 그의 집권했던 시절을 돌이켜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마 그것은 불가능한 꿈이었을 겁니다.
전두환‧노태우는, 민주화의 열망 때문에 불가피했던 혼란과 무질서를 어느 정도는 정리하는 일에 성공하였고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하여 국위를 선양하기도 하였지만 ‘비자금’ 문제로 오늘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습니다.
김영삼‧김종필이 민정당을 찾아가 ‘3당 통합’이라는 엉뚱한 꿈을 실현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로 인하여 민주화의 주체 세력이던 야당은 공중 분해되고, 김대중 ‘유아독존’의 예기치 않았던 독무대가 도래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는 김종필과 손을 잡고 그의 오랜 이념적 갈등과 사상적 의혹을 일단 청산하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을 뿐 아니라 노벨 평화상까지도 차지하여 한 시대의 ‘세계적 위인’이 되었지만 ‘햇볕 정책’이나 ‘김정일 예찬론’이 결국 대한민국 안에 ‘친북‧종북’ 세력을 양산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체불명의 민주공화국이 되었습니다.
노무현은 김대중이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당부를 받고 청와대의 새 주인이 되었으나 좌충우돌하는 특이한 성격 때문에 아마도 정체불명의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이명박은 노무현에게 반감을 가졌던 막강한 민중의 힘으로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17대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본디 정치적으로는 ‘정신박약아’라 “나는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고 다만 중도실용주의자입니다”라고 중얼거리며 축 늘어진 깃발 하나를 들고 왔다 갔다 하다가 임기가 끝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런 판국에 대통령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해방 후의 우리 역사를 옳게 파악할 수만 있으면, 그리고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갈 수만 있으면, 그는 박정희 못지않은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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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128주년을 맞이한 배재학당 동문회 축하연에 다녀왔습니다. 나의 친구이자 동생격인 박동선 회장이 ‘자랑스러운 배재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 자리에 초대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나의 축사는 그 순서지에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았지만 집행부의 강요에 못 이겨 마이크를 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끌려나가다시피 그 자리에 선 나는 “배재인들이여,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배재학당 출신이라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모두가 자랑스러운 배재인이 되는 것이오”라고 잘라서 말했습니다.
그것은 나의 진심이었습니다. 3.15 부정선거에 분개하지 않은 한국인이 어디 있었으며, 4.19에 감격하지 않은 한국인이 어디 있었습니까. “이 사람들아, ‘부정선거’라니, 그게 말이 되느냐!” 이승만 자신이 국무회의에서 비분강개 하였습니다. 그는 4.19가 터지고 1주일도 안 되어,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는 한 마디 남기고 경무대를 떠나 사저인 이화장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나 이집트의 무바락이나 리비아의 카다피나 시리아의 알 아사드와 비교해 보세요. 도대체 이승만이 해방을 맞은 조국 땅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가 좌우합작을 추진하던 여운형에게 “노”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가 남북 협상을 시도하던 김구․김규식에게 ‘안 되오’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대한민국의 오늘의 민주화와 경제적 번영은 이승만이라는 한 위대한 지도자의 땀과 피와 오늘 이 땅에서, 김일성은 숭상하고 김구는 우러러 본다면서도, 이승만은 밟으려 하는 이 악당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입니까.
배재학당의 동문들 뿐 아니라 지각 있는 국민은 모두 들고 일어나, 우남 이승만의 동상을 광화문 네거리에 세워야 할 것 아닙니까. 그가 1948년에 나라를 세웠고, 그가 1950년에 나라를 지켰기에 오늘 번영한 대한민국이 존재하는데 왜 그는 미국의 조지 워싱턴이나 중국의 손문같이 국부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가.
김일성이 억지로 세운 북의 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에 침투한 그 세력의 앞잡이들이 그대로 있는 한 이승만은 마땅한 역사의 제자리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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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해방을 맞은 것은 1945년, 지금부터 68년 전입니다. 김일성이 적화통일의 야욕을 품고 남침을 감행하여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진지도 어언 63년, 유엔군이 달려와 국군과 손잡고 그 침략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피를 강처럼 흘리며 싸웠습니다. 그리고 인민군과의 휴전협정을 체결한지도 만 60년이 되었습니다.
김일성의 적화통일 야욕은 인민군으로 하여금 남침용 땅굴을 여러 개 파게 하였고, 대한민국의 속을 뒤집는 만행만을 골라서 해가며 꾸준히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대남 간첩활동은 더욱 활발해지고, 김일성이 죽으면 좀 나아질까 했더니 그의 아들 김정일은 더욱 악독스럽게 굴었습니다. “저 놈이 죽으면 북한 동포들에게도 자유의 서광이 비치려니” 생각했더니, 웬 걸, 그의 아들놈은 정말 철없이 덤비는 바람에 전 세계가 놀라 자빠졌습니다. 핵무기를 만들어 가지고 제 말 듣지 않는 나라들은 죄다 불살라 버리겠다니 한반도가 세계의 화약고가 되었습니다.
‘오바마‧시진핑 회담’을 앞두고 갑자기 “한번 만나 이야기합시다”하기에 우리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즉시 이에 응했으나 중국과 미국의 정상회담이 북에 유리할 것 없이 끝나자, “우리의 만남도 끝냅시다”라고 한 마디 던지고 그들은 그냥 떠나버렸는데, 정치권은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겁니까.
정치인들, 제발 입 조심해요. 꼭 같은 그림을 함께 보면서 왜 뚱딴지같은 소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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