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자 ! 대한민국!
부패(腐敗)를 산책(散策)하며 본문
올 겨울은 유별나다. 마치 우리나라가 시베리아로 변해버린 느낌이다. 주말에도 강추위가 계속되었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두툼하게 옷을 입고 산행에 나섰다. 산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그대로다. 지난 여름 태풍 곤파스에 쓰러지고 부러진 나무 위로 흰 눈이 상처를 어루만지듯 소복이 쌓여 있다. 눈 덮인 산길을 걸으면서 나의 마음은 지난 주말의 대법원 판결을 더듬는다. 특히 강원도지사에 대한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일시 도정에 공백이 생기고, 또 그 복잡한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슬그머니 화가 치민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지사직을 잃은 사람은 지방선거 전 이미 고등법원에서 정치부패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 사람이 당당하게 지사에 출마한다고 선언하고 당은 그에게 공천을 주었다. 아무리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다고 하지만, 무슨 사상범도 아니고 정치부패로 유죄판결을 받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또 그런 사람을 태연하게 공천을 주는 정당은 도대체 어떤 정당인지, 극심한 혼란에 빠졌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 나를 힘들게 했던 일이 또 있다. 하나는 왜 대법원은 그 사건에 대해 판결을 하지 않고 미루는가. 유죄면 유죄, 파기면 파기, 빨리 결정을 해줘야 훗날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인데 대법원은 침묵했다. 대법원은 기록만 검토하고 법률적 판단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시간은 넉넉히 있었다. 나는 아직도 당시 대법원의 침묵을 이해할 수 없다. 대법원은 지금 강원도정의 공백과 도민의 고통에 대해 어떤 책임감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다른 하나는 당시 언론과 시민단체의 태도였다. 정치부패로 유죄판결을 받고 있는 사람이 출마하겠다고 나서고, 또 당이 그런 사람을 공천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도대체 어떤 언론이나 시민단체도 정면으로 이를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하여도 사소한 부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만 가지고 시민단체들이 벌떼처럼 덤벼들어 낙천․낙선 운동을 벌이고, 언론들은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이를 대서특필하여 그 정치인의 생명을 선거도 하기 전에 질식시켜버리지 않았던가. 그 사이에 세상이 어떻게 변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길이 없었다. 이제 정치부패는 우리 사회에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인지, 눈길을 산책하며 나는 정치부패를 둘러싼 이 문제에 관하여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흔히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보수는 부패에 친하고, 진보는 그런 보수를 공격하는데 능하다는 말이다. 보수정권이 계속되는 동안 부패는 제도화되었고, 자칭 진보세력은 이를 효율적으로 공격하여 마침내 집권에 성공하고 10년의 진보정권시대를 열었다. 보수의 부패를 공격한 진보세력의 전위는 이른바 진보시민단체였다. 그러나 그 10년의 집권기간 동안 진보세력은 부패하고 말았다. 오죽하면 평생 재야로만 일관해온 김지하 선생이 그 부패한 진보세력을 향해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을까. 여기에서 부패한 진보세력은 직접 정권을 잡은 엘리트들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과 함께 보수의 부패를 공격하는데 앞장선 진보시민단체들까지 총체적으로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렇지 않고서야 부패한 사람이 도지사에 출마하고, 공당이 그런 사람을 공천하는 일에 대하여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입을 다물 수 있단 말인가. 보수는 부패에 친할지 모르지만 부패가 밝혀지면 부끄러워할 줄은 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우리사회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부패가 밝혀져도 부끄러워할 줄을 모른다. 오히려 정치보복이니 무어니 하며 큰 소리를 친다. 여기에 더 가관은 자칭 보수를 내세우는 언론들도 그들의 배짱에 기가 질려서인지, 아니면 부패에 대한 원죄가 있어서인지, 진보의 부패를 공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우리사회의 한 단면이다. 두 시간에 걸친 가벼운 산행을 마칠 때까지 나의 상념은 부패의 언저리를 맴돌았지만 또렷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렇다. 사람이나 사회나 이론으로는 명쾌하게 정의할 수 있지만, 실체로 들어가면 모순에 가득 차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부패의 문제도, 보수와 진보의 문제도 그럴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는 모두가 부패를 부끄러워할 날이 오겠지, 눈에 젖은 등산화 끈을 풀면서 나의 생각은 거기에서 멈추었다. 2011. 1. 31 이 인 제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 국회의원회관 327 호 | 대한민국국회 | 이인제의원 Tel : 02-788-2953, E-mail : ij@assembly.go.kr |
'시사-논평-성명서-칼럼.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좌익혁명전사 양성소 전교조 교장 만든 서울시 교육감.. (0) | 2011.02.18 |
---|---|
무상복지의 허구성-서울대 박지향교수 (0) | 2011.02.07 |
복지 포플리즘 (0) | 2011.01.15 |
4대강 개발을 죽자고 반대하는 이유? (0) | 2011.01.10 |
좌파에 후원 반대한다. (0) | 2011.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