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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지람의 5가지 유형 본문
부모들이 어린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꾸짖는 유형에 대해 이시형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첫째는 "다시 그런 짓 했다간 없어!"라고 말하는 '위협형'입니다. 무서운 벌이 앞에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예고함으로써 잘못된 행동의 반복을 막아보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네 동생을 좀 봐라! 넌 어째 이 모양이니"라고 말하는 '비교형'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수치감을 자극하고, 그럼으로써 분발을 촉구해 보자는 것입니다.
셋째는 "아니, 넌 어쩌자고 계속 이러니! 꽃병을 깨지를 않나, 시계를 망가트리지 않나"라고 말하는 '나열형'입니다. 어린이가 저지른 잘못을 나열해서 문제만을 계속 일으킨다는 것을 인식시키자는 것입니다.
넷째는 "잘 논다. 어디 좀 더 해보지!"라고 말하는 '조소형'입니다. 비웃어 주면 수치스럽게 생각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변덕형'입니다. 이것은 일관성이 없는 꾸지람으로 거의 똑같은 정도의 잘못인데도 기분이 좋을 때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기분이 좀 나쁘면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까지도 하는 변덕이 심한 경우입니다.
우리들은 아니, 멀리 볼 것 없이 바로 나를 보면 이런 다섯 가지 유형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자녀들에게 위협적인 말들을 하고, 어떤 때는 다른 아이들하고 자꾸 비교하고, 어떤 때는 몇 년 전 일까지도 다 끄집어내서 야단을 치고, 어떤 때는 또래들 중에서 네가 제일 한심한 것 같다는 식으로 수치심을 주고, 그리고 기분이 좋을 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기분 만 좀 나쁘면 아이들이 ‘봉’이라고 죽어라 야단을 칩니다.
만약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런 유형으로 자식인 우리들을 야단치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위협적으로 야단치신다면 하나님 앞에 나올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무서워서 다 도망쳐 다녀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가면서 야단을 치시면 이 세상에 야단 안 맞을 사람이 한명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과를 나열해 가면서 야단을 치시면 야단만 맞다가 우리의 인생이 끝날 것입니다. 우리에게 수치심을 주면서 야단을 치시면 우리는 고개 들고 이 세상을 살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만약 우리처럼 변덕스러우시다면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써졌다가 지워지고 또 써졌다가 지워져서 아마 생명책이 구멍이 낳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의 처소들에 붙어 있는 천국 시민의 명패가 수시로 바뀔 것입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끌고 왔습니다. 그들은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하고 질문을 던집니다. 질문을 던진 의중은 예수님께서 ‘돌로 치라’와 ‘치지 말라’중 양자택일을 하여 고소할 구실을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면 그 당시 사형 집행은 로마 총독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데 로마의 허락도 없이 사형을 집행하여 예수님을 범법자로 만들려는 것이며 또 예수님이 평소에 외쳤던 사랑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적인 사람으로 몰아가고자 하는 의도였습니다.
‘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는 레위기 20장의 율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준수하지 아니하는 자가 어찌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자신의 말을 통하여 스스로 자신의 허울을 보여 주고자 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율법 신명기 17장 7절을 인용하신 말씀으로 증인이 먼저 돌로 쳐야 하는데 그곳에는 증인이 있지 않았습니다. 증인이 있었다면 그 자리에 간음하던 남자도 끌려 왔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죄 없는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몰려 왔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그 자리를 슬쩍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여인에게 "다시 한 번 더 그러면 너는 돌에 맞아 죽을 각오를 해라"라고 위협적으로 야단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데 왜 너는 만날 그렇게 사느냐?"고 비교해 가면서 야단치지도 않으셨습니다. "네 죄가 이것 밖에 없냐"고 말하면서 간음죄 말고도 다른 죄들을 들추어내면서 야단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필 수많은 죄들 가운데 창피하게 간음죄냐"라고 말하며 수치심을 여기고 있는 여인에게 그 수치심을 유발해 가면서 야단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변덕스럽게 야단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정죄하지는 않으셨지만 여인이 자기가 지은 죄가 무엇인지는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꾸지람에 있어서 '사랑형'입니다.
잘못한 것을 깨닫고 앞으로 또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꾸지람의 가장 좋은 방법인 '사랑형'입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의 자녀들과 이웃들을 그리고 나 자신을 바로 잡아갑시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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