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교회>의 결정은 단순한 한 個교회의 결정이 아니다.
서경석 목사(서울조선족교회)
<사랑의 교회>가 서초동에 새 성전을 짓는다고 한다. 그동안 <사랑의 교회>는 한국교회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교회로 자리매김을 하면서 큰 부흥을 이루었고 이로 인해 건물이 협소해져 교회 옆 상가들을 전부 사용할 정도로 공간이 부족했었다. 이렇게 교회 공간부족으로 큰 고통을 받아 온 점을 감안하면 새롭게 성전을 짓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새 성전 건립의 절실한 필요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결정에 대해 적지 않은 실망을 하고 있다. 새성전 건축을 위한 땅값만 천3백억이고 건물신축 비용을 다 합하면 2천5백억원 정도가 들 예정이라고 한다.
<사랑의 교회> 규모에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지만 그동안 <사랑의 교회>를 한국교회 가운데 가장 본받을 만한 교회로 생각해 왔던 사람들에게는 대규모 건축계획은 큰 충격이 되고 있다. <사랑의 교회>가 하는 결정 하나 하나에는 항상 시대를 향한 바른 방향제시가 담겨 있을 것으로 생각해 왔는데 이번에 보니 最高, 最大를 지향하는 한국교회의 멘탈리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요즈음 한국교회는 국민들에게 가진 자를 위한 종교로 비쳐지고 있다. 특별히 초대형교회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하게 되면서 교회가 상업주의, 황금만능주의, 이기주의로 물들어 있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 이로 인해 교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추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랑의 교회>마저 상업주의, 황금만능주의, 이기주의로 치장한 “最高, 最大를 향한 길”로 들어서게 된 셈이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도 수많은 교회가 <사랑의 교회>의 뒤를 따라가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한국교회 전체의 이미지 추락이 될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심각한 위기적 상황에 놓여 있다. 이 상황에서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상업주의, 황금만능주의, 이기주의를 철저히 회개하고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교회가 될 것을 결단해야 한다.
最高, 最大를 향한 교회 간 경쟁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교회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한국교회를 대표해서도 안 된다. 작더라도 진정으로 예수를 따르는 교회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랑의 교회>는 한국최대의 교회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를 따르는 교회가 되기 위해 애써야 한다. 크기에 대한 생각을 처음부터 초월해야 한다.
그동안 사람들이 <사랑의 교회>를 본받으려고 애쓴 이유는 <사랑의 교회>가 크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랑의 교회>강단이 교회의 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사랑의 교회>는 새성전 건축에 대한 생각을 재고해야 한다. 지금 있는 곳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 교인이 넘치면 교인들 일부를 따로 떼어 교회를 분립하면 된다. 이미 여러 교회가 그렇게 해 왔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교인들의 이기주의에 편승해서 2천5백억원의 모금목표를 설정하고 이 돈을 조달하기 위해 강남의 부자교인들을 전부 끌어모으는 블랙홀이 된다면 그렇게 해서 건립된 <사랑의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될 것인가? <1%의 부자들을 위한 교회>가 되지 않겠는가? 또 강남의 부자들에게 포위되어 <사랑의 교회>의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얼마나 위축되고 억압당할 것인가?
<사랑의 교회>가 거액의 돈을 모금할 수 있다면 <사랑의 교회>는 그 돈으로 한국의 수많은 작은 교회들을 도와서 작은 교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작은 교회들이 부흥하게 해야 한다.
이 길이 작은 교회로부터의 교인의 수평이동을 통해 크게 성장한 초대형 교회가 작은 교회에 보답하는 길이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또 그래서 국민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고 또 그래서 한국교회 전체를 살려야 한다.
<사랑의 교회>는 이러한 핵폭탄 같은 결단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다른 많은 교회들도 <사랑의 교회>를 따라 그 길로 들어서게 해야 한다.
<사랑의 교회>의 결정은 단순한 한 個교회의 결정이 아니다. 한국교회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결정이다. 그래서 <사랑의 교회>는 자기교회 성도들만을 위한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사랑의 교회>는 공간부족문제의 해결이라는 작은 득을 취하기 위해 <사랑의 교회>를 향한 한국기독교인들의 크나큰 존경심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에게 개독교로 불려지고 있는 한국교회가 어떤 비상한 결단을 해서 지금의 위기상황에서 탈출하여 다시 부흥의 계절을 맞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사랑의 교회>가 처해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사랑의 교회>의 결정은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사랑의 교회>의 최종결론이 2천5백억원짜리 성전건축일 뿐이라면 한국교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김대중 선생에 대한 세 가지 아쉬움
김대중 전대통령을 떠나 보내는 國葬도 끝이 났다. 이제는 남은 사람들이 김대중 선생이 안 계신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이제부터는 김대중선생의 업적과 아쉬운 점들을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지난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너무 비극적이다 보니 노무현씨의 업적에 대한 과도한 美化가 있었다.
물론 언론의 잘못 때문이었지만 이러한 잘못된 美化 덕분에 요즈음 친노정당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故人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해주는 대목이다. 내가 애둘러 김대중선생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려는 이유도 김대중선생의 뒤를 잇고자 하는 분들이 처신을 잘 해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김대중선생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나는 평가한다. 그분이 있음으로 해서 민주화가 가능했고 또 그분이 있음으로 해서 남북화해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김대중선생에게 세 가지 허물, 내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첫째는 대통령직에 대한 집착이었다. 이 때문에 김영삼씨와의 후보단일화가 되지 못하고 노태우씨가 대통령이 되었고 김영삼씨는 3당합당을, 김대중씨는 DJP연합을 했어야 했다. 또 이 과정에서 우리국민은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고 지역주의는 더욱 심화되었다. 특별히 호남지역은 김대중선생의 볼모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대중선생은 훗날 김영삼씨에게 후보직을 양보하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셨다고 한다. 참으로 시원한 말씀이다.
그러나 김대중 선생이 대통령 임기를 마치신 후에도 대통령직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초월하지는 않으신 것 같다. 이 집착은 김대중선생을 계승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로 계속 이어졌고 이로 인해 호남사람들의 몰표현상은 더욱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김대중선생이 호남의 몰표현상을 원상으로 복귀시켜놓고 가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두 번째는 햇볕정책에 대한 집착이다. 우리 국민은 김대중선생이 햇볕정책으로 남북화해의 물꼬를 텄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이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거액의 뒷거래가 있은 것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을 하여 우리국민을 경악시켰을 때 김대중씨와 열린우리당은 북한에 대해 변변한 분노조차 표시하지 못했다. 나아가 김대중씨는 햇볕만으로 얼마든지 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고 강변했다. 그리고 김대중씨 지지자들은 북핵을 반대하는 것은 마치 전쟁을 택하는 것인 것처럼 왜곡선동을 했다. 나는 이때의 김대중선생의 잘못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국민은 김대중씨를 뒤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북핵폐기를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을 함께 써서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이명박정부가 탄생했고 지금도 이명박정부는 국제공조 하에서 핵폐기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김대중선생은 햇볕정책이 용도폐기 압력을 받는 것을 견디시지 못한 것 같다. 사실은 제아무리 북이 핵실험을 해도 남북대화의 물꼬를 튼 김대중선생의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는 것이었다. 북한이 하도 악해서 그렇게 된 것을 김대중 선생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또 햇볕정책의 완전 폐기도 불가능하다. 단지 햇볕정책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김대중 선생은 북핵폐기를 위해 이명박정부와 협력하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역할 분담도 하면서 이명박정부에게 힘을 실어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김대중선생의 햇볕정책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이러한 협력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생각된다. 나는 이점이 무척 아쉽다.
세 번째는 현재의 야당에 대한 집착이다. 이점은 당총재를 지낸 김대중선생으로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인 김대중선생은 먼저 나라전체를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國父로 추앙받으셔야 했다. 그러나 김대중 선생은 그런 생각은 없이 야당의 승리만을 생각하는 정파적 입장을 벗어나지 않으셨다.
사실은 김대중선생은 참 합리적인 분이셨다. 민주화운동 때에도 김대중 선생은 보수야?纛? 입장에서 민주화운동의 완급을 잘 조절하셨다. 김대중선생의 지도력이 없었더라면 민주화운동은 급진세력에게 휘둘려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또 김대중선생은 친북좌파들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도 열린우리당이 침묵하자 열린우리당의 침묵은 잘못이라고 말씀하신 분이셨다. 김대중선생은 이런 말씀을 계속하셨어야 했다.
그러나 김대중 선생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교원평가를 반대하는 전교조를 야단치지도 않으셨고 과격한 쟁의를 일삼는 민노총을 비난하지도 않았고 친북좌파가 FTA를 반대한다며 전남도청을 파괴할 때도 아무 말이 없으셨고 좌파들이 광우병 촛불시위로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을 때에도 침묵을 지키셨다. 이때 당연히 말씀하셨어야 했다.
반대로 김대중선생은 反이명박 연대를 강화하고 이명박정부를 맹공하는 일에는 앞장을 서셨다. 민주주의의 위기 이야기도 지나친 말씀이셨다. 왜 정파를 초월해서 옳은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정파적 입장에 매몰되어 계셨나? 왜 거의 돌아가실 때까지 그렇게 살으셨나? 호남사람들에게 민주당도 찍고 한나라당도 찍으라고 하셨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김대중 선생에게는 지역주의를 극복하실 수 있는 힘이 충분히 있으셨는데 유감스럽게도 김대중선생은 그 힘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왜 그랬나? 김대중선생에게 계속 정치에 대한 집착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노욕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점이 너무 너무 아쉽다.
김대중선생을 추종하는 분들이 선생께서 못 이루고 가신 일들을 이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데 햇볕정책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당근만으로 북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김대중선생의 허물을 계승하는 것이 된다. 그것이 아니라 못 이루고 가신 것을 마져 이루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