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사람 =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그녀의 미모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커리어 우먼을 소개하면서 외모부터 거론하는 것은 실례다. 하지만 중국의 대표적 여성 앵커 양란(楊瀾.39)을 말할 때 뛰어난 미모를 빼놓을 수는 없다. 유창한 영어는 그녀의 세련미를 더욱 빛나게 했다. 그녀는 부자다. 양광미디어투자그룹을 창립해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양란은 중국에서 둘째로 기부를 많이 했다. 거액을 선뜻 내놓아 문화재단을 만들고, 시간을 쪼개 각종 홍보대사로 활약하고 있다. 양란은 중국의 젊은 도시여성이 선망하는 커리어 우먼의 표상이다.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北京) 최대 호화 쇼핑몰 건물(동방플라자)에 있는 양란의 사무실을 찾았다. 한국 언론과의 첫 인터뷰였다. 양란은 인터뷰 내내 겸손하면서도 당당했다. 그녀는 "여성이 사회에 기여하면 아시아 국가들이 쉽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녀는 9월 서울서 개최되는 '세계여성포럼'(MBC 주최)에 중국 대표로 한국에 온다.
-당신을 중국의 오프라 윈프리나 바버라 월터스로 비유해도 될까요.
"(웃으며) 난 나 자신이고 싶어요. 나는 양란이에요.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뜻이지요. 난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가벼운 토크쇼를 좋아해요. 그렇다고 경박한 것은 아니죠. '여인천하(Her Village)'라는 프로에서는 여성의 독립, 인생과 직업세계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눠요."
-앵커에다 사업과 재단 운영까지 하는 일이 엄청난데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어떻게 사는지도 몰라요(웃음). 해결책도 없어요. 매일 투쟁하듯이 사는 거지요. 중요한 일을 우선적으로 하고 나중에 할 일을 정하는 게 그나마 비결이랄까요."
-부와 명예, 그리고 미모까지 갖췄는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뭔가요.
"너무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기부나 자선사업 등의 사회적 기여를 외면할 수가 없어요. 어제도 녹화를 4개나 한 뒤 빈곤퇴치운동 친선대사로 유명인사들 모임에 초대받아 갔지요. 중요한 일이라 '시간이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없지요. 가정생활도 중요하죠. 여성은 가정의 중추예요. 이 모든 것을 다루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죠."
-수퍼우먼처럼 들리네요.
"(손사래를 치며) 아닙니다. 주위에서 도와주니까 가능한 일이죠. 여성이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면 주변의 도움이 필요해요. 내가 해외출장을 가면 부모님이 아이들을 돌봐줍니다. 남편[우정(吳徵)]은 나의 미국 유학 시절 상하이(上海) 본사를 베이징으로 옮겨갈 때도 항상 날 따라왔어요. 번창하던 사업의 본거지까지 옮겨가면서 말이에요. 두 아이도 공부를 잘해 학교에 불려가는 일이 없으니 고마울 따름이죠. 축복이지요. 난 수면에서 춤만 추면 되는 빙하 같아요. 물 위에 보이는 것은 10%지만 수면 아래 있는 90%는 알려져 있지 않죠."
-중국 첫 오락프로 '정다 버라이어티쇼(Zheng Da Variety Show)'의 사회자로 인기를 누리다 갑자기 미국 유학을 떠났는데….
"사실 그 프로의 인기는 대단했어요. 매회 2억여 명이 시청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때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어요. 중국은 그때 개방되지 않아 내가 믿지 않는 것을 말해야 하는 게 고통스러웠어요. 제작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것도 불가능했고요. 난 새로운 세계를 찾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었겠는데요.
"다들 미쳤다고 했지요. 젊고 아름답고 유명하고 돈도 잘 벌고….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버렸으니까요. 나는 내 두 다리로 서고 싶었어요. 중국 속담에 '하늘에서 고깃덩이가 떨어지는 것을 기다린다'는 말이 있는데 그걸 믿지 않은 거죠. 컬럼비아대에서 국제정치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는데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생활방식을 이해하게 됐다는 점이에요."
-귀국 후 달라진 게 있었나요?
"보다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싶어 홍콩으로 갔지요. 그곳의 봉황TV에서 PD 역할까지 하면서'양란 탐방록(Yang Lan one on one )'을 진행했지요. 중국 최초의 일대일 심층 인터뷰였는데 인기를 끌었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 잭 웰치 전 GE그룹 최고경영자, 영화배우 니콜 키드먼 등 450여 명의 세계적인 명사를 소개했어요. 그보다 한 해 전인 2000년에 남편과 함께 중국 최초의 다큐멘터리 위성채널인 선(SUN)TV를 창립했지요."
-다큐멘터리로 성공하기는 어려웠을 텐데요.
"손해를 엄청나게 봤어요. 남편이 밑빠진 독에 물붓듯 돈을 쏟아부었지만 계속 적자가 나 2004년 할 수 없이 회사를 팔았지요. 회사를 운영하는 동안 수백 시간의 다큐멘터리 프로를 제작했는데 그중 성공한 것도 일부 있어요. 환관 출신으로 명나라 최고의 제독이자 해양 탐험가인 정허(鄭和)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전 세계 히스토리 채널에 방영됐지요."
-어려움이 컸겠네요.
"그 4년 동안 너무 고통스러워 밤잠을 제대로 못 잤지요. 고생은 했지만 큰 교훈을 얻었어요. 열정만으론 부족하고 경영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죠. 남편은 내가 군인처럼 행동한다고 했어요. 군인은 전장에서 장렬히 죽지만 사업가는 빠져나갈 곳을 찾으며 춤추는 댄서라는 거예요. 나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었는데 남편이 끌어냈어요. 이후 경제지를 인수하고 온라인 출판과 잡지 발간 등 멀티미디어 그룹으로 키워나갔죠. 싱가포르와 영.미 회사에 분산투자했는데 성공해 그룹이 발전할 수 있었죠."
-사회 기부가 혹 네트워킹을 위한 것은 아닌가요?
"난 계산하지 않고 남에게 베풉니다. 주면 편안하고 밤에 잠도 잘 와요. 뭔가 좋은 일을 하면 기분이 좋으니까요.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행복하기 때문에 주지요."
-회사 수익의 51%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요.
"우리 부부는 평소 은퇴하고 나서 사회에 재산을 환원하자고 했어요. 돈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아섭니다. 2년 전 중국의 유명한 화가이자 절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는데 유산 때문에 가족 간에 싸움이 벌어져 너무 안타까웠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은퇴 후나 죽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더라고요. 중국에 박애주의를 알리고 중국 시민사회 건설을 돕자는 취지로 문화재단을 만들었지요."
-당신이 중국 여성 중 부자 3위라고 하던데요.
"그렇지 않아요. 중요하지도 않고요. 대부분의 돈이 주식 형태로 있어 현금 보유량을 보면 그다지 부자는 아닙니다."[지난해 인민일보는 그녀의 재산이 8억5000만 위안(약 1035억원)으로 '자수성가형 여성 부호 3위'라고 보도했다.]
-여성으로서 성공 비결이 있다면.
"(웃으며) 난 성공하지 못했어요. 여성이 성공하려면 외부에다 큰소리로 알려야 해요. 내가 언제 진정으로 행복한지에 대해 남편에게 내놓고 말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말하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마지막으로는 그냥 버티는 것이에요. 무조건 버텨야 해요. 누구에게나 고통과 어려움이 있잖아요. 그때도 버티는 것뿐이에요. 하하하."
-혹 남편이 당신의 인기에 대해 질투하지는 않나요.
"그런 일은 없어요. 내가 이룬 것은 우리가 함께 이룩한 거니까요. 아시아 남성은 대체로 가부장적이어서 아내가 남편보다 유명하면 부부 사이가 안 좋을 수 있지만 제 남편은 모든 것을 잘 이해하는 가슴이 넓은 남자예요."
-당신을 모델로 삼는 여성도 많을 텐데요.
"중국이든 한국이든 성공을 매우 편협하게 정의하는 것 같아요. 성공은 돈이나 권력, 영향력 등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말도 안 돼요. 인생의 성공은 우선 자신에게 진실하고 진정으로 믿는 일을 하며 정열이 있어야 해요.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이 성공적일 수 있어요."
-아시아 지역 여성들과 함께하고 싶은 일은 있나요.
"세계여성포럼에서 우선 중국의 전문직 여성들의 삶을 알릴 겁니다. 그리고 공동의 토픽인 여성들의 지속적인 발전, 자아실현을 위한 사회와 가정의 지원 시스템에 관해 논의하고 싶어요. 여성 해방은 지구상의 대단한 이슈예요. 어떻게 하면 여성이 행복하고 여성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죠. 재능이 뛰어난 아시아 여성들이 사회에 기여한다면 모든 아시아 국가가 사회 발전을 쉽게 이룰 거예요."
문경란 기자<MOONK21@JOONGANG.CO.KR>
양란은 이런 사람 …
◆중국의 간판 앵커
1990년, 대학 4학년 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중국 최초의 오락프로(Zheng Da Variety Show) 진행자로 선발돼 파격적인 진행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매회 2억 명이 시청했다. 미 유학 이후 2001년 중국 최초의 심층적 대담 프로인 '양란 탐방록(YangLan one on one )'을 시작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탁신 태국 수상, 헨리 키신저 미 전 국무장관, 영화배우 니콜 키드먼,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 등 전 세계 유명 인사 450여 명을 대담했다. 도시 전문직 여성을 타깃으로 한 토크쇼 '여인천하(Her Village)'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대회를 홍보하는 '올림픽페스트송'이란 프로를 진행하고 있다.
◆멀티미디어 창립자이자 프로그램 제작자
2000년 중국 최초의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인 선(SUN)TV를 창립했다. 이후 '양광멀티미디어 투자매체'를 세워 전자 책과 경제지 출간, 모바일.게임 미디어 등 멀티미디어로 발전시키고 있다. 지난해 중국 인민일보는 그녀를 "벼락부자 외에 자수성가로 성공한 중국 여성 갑부 3위"라고 보도했다.
◆영향력 있는 여성 지도자
베이징외국어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미 컬럼비아대에서 저널리즘과 국제관계학 석사를 했다. 유창한 영어실력도 그녀의 자산이다. 2001년 '중국의 영향력 있는 여성 10인', '아시아의 여성 엘리트 12인'으로 뽑혔으며 2002년에는 '올해의 중국 여성기업가', 2004년엔 '중국의 파워 여성 100인 중 톱'으로 선정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2005년 700여억원을 선뜻 내놓고 양광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앞으로 수익의 51%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환경보호.교육.헌혈단체의 홍보대사를 맡아 기금을 모으는 일에 앞장서고 있으며 베이징 올림픽대회 홍보대사로서도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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