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민의 군대사랑
조금 오래된 기사지만, 지난 건군50주년 기념 특별기획 ‘육군'지에 기고했던 어느 기자의 기고문을 소개한다.
미국의 한 언론이 건국 200주년을 맞아 국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건국 200년 밖에 안 된 미국이 오늘날 세계 최강국이 되는데 가장 기여한 기관이나 단체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하버드, NASA, 마이크로소프트들이 아닌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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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남침 당시- 인민군의 포탄을 뚫고 고지를 탈환 중인 한국군 |
기자가 워싱턴에서 수학하면서 한 세미나에 참석해 교수와 학생들에게 그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은데 대해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고 했다.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미국은 존재할 수 없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며, 자신을 희생해서 나라의 이익을 지키겠다는 군인정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웨스트포인트는 나라를 세우고 부강하게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될 울타리 역할을 한 군의 상징이다”
베트남전에 무리하게 뛰어들어 결국 패배를 했고 막대한 경제적, 인적 손실을 당한 점을 지적했을 때, 무슨 그런 질문이 있느냐는 식의 답변으로 오히려 기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베트남 참전은 군의 결정이 아니다. 그들은 대통령, 국회의원, 정치인들이 내린 결정을 따랐을 뿐이다. 한마디로 국민의 명령을 수행한 것이다. 전쟁은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군수뇌부가 무능했거나 실수를 했을 수는 있지만 그들의 목표나 이념은 변함이 없었다. 국가이익 수호였다. 실수를 이유로 그들의 순수한 의도를 무시하거나 공을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미국 국민의 군대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일편단심이다. 미국 국민들은 부시정부의 정책에 대다수가 반대하는 분위기이지만 매일 몇 명씩 죽는 이라크에 여전히 아들들을 보내고 있다. 참전반대 촛불시위도 물론 없다.
위싱턴 알링턴 국립묘지 한국전 참전자 묘역 입구에 다음과 같은 현판이 크게 새겨져 있다. “미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생면부지의 나라,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침략으로부터 보호하는데 기꺼이 나선 아들과 딸들에게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하버드대학의 고풍스런 교내 교회 벽에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20여명의 하버드 학생의 이름이 동판에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미국은 한 도시에서 한 사람이 나올까 말까하다는 ‘미국의 희망'들을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한국전쟁에 내 보냈다”
한국전쟁 때 미24사단장이 포로가 되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아들을 참전시켰고 유엔군사령관 벤프리트 장군의 아들, 클라크 장군의 아들들은 전사했다. 워커 장군은 전방에서 전투중인 아들에게 훈장수여를 위해 가는 길에 한국군 트럭과 충돌하여 사망했다. 미국은 한국전쟁에 지도층 아들 140여명이 참전하여 30여명이 전사, 부상했다.
영국 왕실은 군인가족
영국의 지도층 자제가 입학하는 이튼 칼리지 졸업생 중 2,000여명이 1,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다. 엘리자베스 여왕 남편인 필립공은 해군중령으로 예편했고, 챨스 왕세자도 해군장교로 근무했으며, 그의 아들 장남 윌리엄과 차남 해리는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나왔다.
왕위계승 서열 3위인 해리왕자가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서 복무할 예정이라고 최근 발표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왕위계승 서열 4위인 이들의 삼촌 앤드류왕자(엘리자베스 여왕의 둘째아들)가 1982년 포크랜드전쟁에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는 지금 송파신도시 조성을 위해 성남지역에 있는 군부대 이전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 중 특전사령부의 경기도 이천지역으로의 이전계획에 대해 이천시에서 반발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지난 4월 20일 한 조찬모임에서 김문수 경기도 지사가, “중앙정부가 자치단체와 아무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혐오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군사시설을 받으라 한다”고 발언했다.
이런 사태가 일어난데 대해 중앙정부의 잘못이 크다. 먼저 국방부는 관련부처와 협의를 하고 국무총리에 의해 업무분담, 조정이 이루어져야 하고 현지 지방자치단체와 충분한 협의, 주민들에 대한 홍보를 했어야 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국방부의 큰 실책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실무적인 차원의 문제와는 별도로 도지사의 ‘혐오시설' 발언이 주는 의미는 매우 심각한 일이다.
대통령은 “군대 가서 썩는다”고 했다. 군대에 대한 고위 공직자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의 인식, 정서가 문제다. 지난날 군의 과오도 인정한다. 그러나 과오가 있었다고 해서 군 자체를 매도하고 천시하는 풍조가 있는 것은 망국적인 징조다.
한국 군부대는 혐오시설
군부대 이전 논쟁과 관련한 어느 중앙지 군사전문기자는 인터넷에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글을 올렸다.
“군부대는 주민들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끼치는 혐오시설인가?.....특전사는 우리 군의 최정예 전략부대이다......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동티모르 상록수부대, 이라크의 자이툰 부대에서도 모두 특전사가 중앙에 있다.....김지사나 해당 지역주민들이 반발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본다......하지만 도정의 최고 책임자가 공개석상에서 군부대를 ‘혐오시설'로 매도하는 것이 과연 지역주민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특전사는 반대 분위기가 강하자 부대원들이 최정예부대원으로서의 자부심에 상처를 입고 자괴감까지 느낀다고 한다”
위 글에 대한 댓글 29개 가운데 위 기자의 견해에 반대하면서 김문수 지사의 발언동기, 이천 현지주민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으나 기자의 의견에 동조하는 댓글은 10명(34.5%)으로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 정치인들에 의해 전쟁(전투) 지시가 내려지는 것이고 군대의 상관은 정치인들인데, 그런 정치인들이 군부대의 가치를 폄하해선 안 된다.
* 한낱 회사 하나의 공장증설(하이닉스) 건 하고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군부대 이전을 같이 취급하다니 언어도단이다.
* 특전사가 그 지역에 주둔하는 이유가 상당한 목적성이 강한 부대다. 서울공항과 특전사가 움직이는데 대해 반대한다.
* 군부대가 혐오시설이라면 그 안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은 혐오시설 종사자라고 할 수 있나? 우리는 비싼 세금을 들여 60만 명의 혐오시설 종사자를 먹여 살리고 있는건데...
* 제주도의 화순항 건설도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의 논리를 보면 대한민국에는 군이 필요 없는 것과 같은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 그 도에 거주하고 있는 군인과 군인가족들도 모두 도민임을 생각한다면 발언에 있어 조금 신중하지 못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 필수 불가결한 자주국방의 최소한의 억지력인 군부대가 이익단체 또는 소수 정당의 정략에 놀아난다는 것은 소탐대실이다.....이 나라의 시스템, 안이한 관료들, 군 수뇌부 더 나아가 ‘대한민국 사람들'의 총체적인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결코 망할 수는 없다
군 ‘혐오시설' 인식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매우 깊이 있는 국민적 인식이 존재한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위안이 된다.
지난 10여 년 동안 좌파정부가 나라를 경영해 온 과정에서 세계관, 역사관, 사회적 통념의 가치관을 뒤집어 놓고 국가적 권력기관들의 공권력을 와해시킨 것들 중에 가장 현실적으로 뼈아픈 일은 ‘국군의 무력화'이다. 적을 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국군의 필요가치는 사라진 셈이다.
김문수 도지사의 발언에 대해 국방장관이 4월 27일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고는 하나 어떤 매스컴에도 발표되지 않았고, 심지어 국방일보의 논설객들 중 어느 누구도 반론을 편 사람이 없었다.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주요 신문들도 사설 한 줄 안 썼다. 군인들은 몸을 부르르 떨 만큼 분개해야 할 일이고, 그런 감정이 군 지도부에 의해 온당하게 표출되었어야 했다.
1910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22일 오후 1시 창덕궁의 대조전에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다.
순종황제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칙(詔勅)을 읽어내려 갔다. “짐은 동양의 평화를 공고히 하기 위해 한.일양국이 친밀한 관계로서 서로 합하여 일가가 됨은 서로 만세의 행복을 도모하는 소이로 생각하고 이에 한국의 통치를 통틀어 짐이 매우 신뢰하는 대일본제국 황제폐하에게 양도할 것을 결정하였다”
대한제국도 미약하나마 군대가 있었지만 총 한방 제대로 쏘아보지 못하고 일본에게 먹혔다. 나라를 지킬 국민적 의지가 없었고 국민을 이끌 지도력이 부패, 무능했고 이로 인해 군대가 무력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100여 년 전 이 나라의 마지막 어전회의 망령이 되살아나려는가?
이 나라에는 좌파적 대표인물의 로고가 된 전태일 동상이 새로 난 청계천 한 가운데에 늠름하게 서 있고 철 따라 기념식을 하지만, 전국 어느 마을에도 나라를 지키다가 산화한 장병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가 없고 제대로 된 기념행사 하나 없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하지 않는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는 미국의 노포크 해군기지에서 행하고 있다. 6.25참전기념 행사, 베트남 참전기념 행사는 앞으로 모두 미국에나 가서 해야 할 것 같다. 혐오시설 안의 쓰레기 신세가 되었으니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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