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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마 고은은 간첩이었다. 본문
색마 고은은 간첩이었다!
ㅡ 전 안기부 직원 글 ■ 예로부터 세계 어느 나라나 간첩이라 하면 대부분은 극형에 처하는 것이 상도덕(?)이다. 핵무장을 하고 있는 주적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극형을 서슴지 않았다. 국정원이 손발을 묶인 문재인 때는 흉악한 간자들이 득실거려 여의도를 활보하고 이따금씩 인공기가 휘날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민주노총을 비롯 창원ㆍ진주, 전주, 서울, 제주 간첩단 등 전국적으로 깔린 스파이들이 북한 노동당 지시대로 '총회장 김정은 님에 대한 흠모심을 바탕으로 윤석열놈 배격하는 기운 지속적으로 고조되게 하자'라며 윤석열 정부에 이르러서도 대놓고 반정부 투쟁을 벌렸다. 서훈과 박지원 치하에서 숨죽이고 있던 국정원의 수사망이 물때를 만나 그물을 조이고 일망타진의 신호탄을 쏘았다. 북한 공작원과 해외에서 접촉한 민노총을 압수수색하고 오열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하지만 자칫 설건드려 황장엽이 폭로한 5만 명이 넘는 간첩들이 문빠와 개딸들을 선동하여 전국적으로 봉기한다면 자유대한민국은 존망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퇴로를 막혀 선택지가 없는 문재인과 이재명의 처지에서는 그들 남파간첩들이 생명선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한때 국가의 흥망을 가를 정도로 첩보전이 가장 치열했던 곳은 중동이었다. 이스라엘과 수차에 걸쳐 전쟁을 치른 아랍의 맹주는 이집트로 인구 1300만의 수도 카이로는 세계 최대의 국제 첩보도시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이고 지금도 쫓고 쫓기는 닌자들의 세상이 할리우드 영화처럼 펼쳐진다.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되던 그 해 필자는 안기부에서 이집트 국가대표팀 사범으로 카이로에 파견된다. 비동맹 외교가 절실히 필요하던 때, 대한민국은 7명이 근무하는 총영사관으로 이집트와는 미수교국이었지만 이스라엘과 치른 4차 중동전 당시 김일성은 100 명의 조종사를 보내 혈맹관계를 맺음으로써 28명의 직원이 상주한 북한 대사관은 꽃피는 봄날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런 비동맹외교의 수장격인 이집트에서 첩보를 입수한다며 젊은 혈기로 공명심에 들떠 설치다가 그 나라 정보기관의 함정수사에 빠져 기밀서류를 주고받는 현장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되었던 순간, 그때까지의 짧지만은 않은 일생이 스로우 모션으로 돌아가는 활동사진처럼 눈앞에 떠오르던 기이한 경험을 한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꿈같았지만 현실이었다. 극형에 처해진다 해도 이미 다 각오한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인생 포기였다. 일각이 여삼추인 상황에서 오직 기댈 수 있는 것은 하늘뿐이었다. 속수무책의 상태에서 삶에 대한 의지는 산산조각이 나고 마음은 자연히 비워질 수밖에 없었던 그런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하늘은 결코 나를 버려두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한참 뒤에야 알게 된 일이었지만 지금도 후진국 수준인 이집트로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코리언 하나 죽이는 것보다는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더 좋았을 터. 본부에서는 서울에 나와있는 미 CIA 거점장에게 구원 요청을 하고, 마침 미 8군 사령관 임무를 다한 존 위컴 대장이 카이로로 날라와 몸값을 흥정한 끝에 200만 불 요구액 중 50만 불을 깎아 미국이 선 결제하고 덕분에 가족과 함께 강제추방되어 서울에 돌아올 수 있었다. 차가웠던 카이로 감방의 추억은 해마다 겨울이 되면 온몸에 소름으로 다가온다. 돌아온 직후 당시로선 석방 경위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딴에는 신분노출을 끝까지 하지 아니하였다고 공치사라도 들을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해외파견 요원 교육이 있을 때마다 중앙정보부 창설이래 실패 사례 1호라며 손가락질을 받게 된 것이 유일한 대우였다. 그나마 본부의 공작금 지원도 없이 자비로 뛰었다며 혈기를 아껴준 몇몇 선배들이 노신영 부장에게 선처를 호소하여 잘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서른다섯 살 때의 일이었다. 바로 몇 년 뒤, 레바논이었던가?, 외무부의 도재승 서기관이 납치되었다가 10만 불의 몸값을 치르고 석방된 사건이 연일 사회면 톱뉴스로 다루어지는 것을 보고 만감이 교차하였다. 이후 필자는 은인들을 만난다. Mr. Delaynee 미 CIA거점장도 만났고, 구출조 실무를 맡았던 팀장도 만나 고마움을 표하고 나름대로는 신세를 갚았다. 20여 년 뒤, 한국인을 부인으로 둔 그 실무 팀장은 CIA 거점장으로 부임하였다. ■ 박근혜를 탄핵으로 몰아붙인 2016년 10월부터 대한민국의 조ㆍ중ㆍ동은 좌파의 불타오르는 촛불 앞에 타들어 갈새라 새벽닭이 울기 전 박근혜를 세 번이 아니라 열 번도 부정한 갈릴리 바닷가의 시몬이었다. 조선의 주필이라던 김대중을 위시한 무늬만 우파인 언론인들은 탄핵반대를 절규하며 태극기를 든 물결을 틀딱들의 아우성이라며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좌파언론에 뒤질세라 오히려 앞장서서 주도했다. 눈길을 준 것인 양 단상에 오른 조갑제와 정규재도 5 1 8 말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며 그 많은 북한특수군이 어떻게 왔겠느냐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지만원을 매도하던 때, 곱다란 용모에 패기라고는 전혀 있어보이지 않았던 유근일과 조우석만은 초지일관 정의로운 강골 언론인으로 민초들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 오늘은 그중 평론가 조우석의 이야기다. 우회하지 않고 정곡(正鵠)만을 콕콕 찌르는 조우석은 얼마 전 스카이데일리(SKYeDAILY)에 '너무도 끔찍한 시인 고은의 시 세계'라는 칼럼을 실었다. "슬그머니 문단에 복귀하려던 시인 고은(90)에게 죽비가 쏟아지고 있다. 5년 전 논란이 됐던 성 추문과 관련해 아무런 사과도 없이 신작 시집을 펴내자마자 돌연 판매 거부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예스 24 등 인터넷 서점 게시판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가 어떻게 시를 쓰나'는 비판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중략... (조우석은 여기서부터 곧바로 고은의 시 세계를 송곳으로 찌른다.) 괜한 의혹이 아니다. 고은이 누구던가. 그는 1987년 좌파 문학의 총본산이던 민족문학작가회의 재창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게 작가회의란 이름으로 명칭을 슬쩍 바꾼 지금도 사정은 변함없다. 그는 백낙청의 지원 아래 민족문학ㆍ민중문학을 해 지금 문단의 지배적 그룹의 여전한 대부(代父)다. ... 중략 ... (이 대목에서 조우석은 총 4001편으로 구성된 방대한 고은의 대표작 '만인보萬人譜'를 물어뜯는다.) 즉 현대사는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짓밟힌 사건들로 이루어졌다는 노무현식 인식의 연속이 만인보다. 때문에 좌익 인사는 무한 칭송의 대상인 반면 우익진영 인사는 먹칠하는 식의 엉터리 이분법으로 시작한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부터 그는 내리친다. '하와이 막일꾼 동포들의 돈을 마구 거둬들였다. 명문대학 학위도 척척 받으며 이승만 옹 가는데마다 동포들 당파를 만들었다 갈라섰다. 그 놈의 영감 땡감' < '만인보' 18권 '석낙구' 편> 이따위가 시라고? 그런 질문이 나올 판인데 부국 대통령 박정희에 대해서도 그는 왜곡ㆍ저주로 일관한다. '일본 육군의 모범장교였다. 천황의 금시계를 받았다. 좌익이었다. 좌익을 팔아넘긴 우익이었다. 기구한 육군 소장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만인보' 11권 '박정희' 편 > 반면 좌익 인물에 대해서는 무조건 숭배를 하는데 심지어 좌익의 애인까지도 덩달아 칭찬한다. 일테면 남로당 박헌영과 그의 애인 주세죽을 포함해 최창익ㆍ허정숙 커풀, 김삼룡ㆍ이순금 커플 등 10여 명을 나열한 뒤 이렇게 대놓고 찬양하는 시 '주세죽'<'만인보' 18권>도 있다. '붉은 사람들... 그 동백꽃들. 그들은 한국 사회주의 혁명동지이고, 혁명부부였다.' 역겹다. 구역질이 난다. 조봉암의 애인을 찬양하는 시 '김이옥'<'만인보' 10권 >은 또 뭔가. '조봉암의 애인 김미옥은 아름다웠다. 강화도 부농의 딸, 경성여고보 졸업, 이화여전 음악과에 다녔다.' (조우석이 아니라도 누구나 한마디쯤은 거들 거 같다. 이런 게 정말 시란 말이야? 이런 걸 노벨문학상을 받게 하려고 빨갱이들이 번역본으로 로비했어?라고.) 혹시 '만인보' 일부만 그런 건 아닐까? 전체가 이렇다. 그럼 왜 이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을까? 문단이야말로 음습한 자폐적 공간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그런 상황에서 백낙청에 아부하는 평론가 그룹이 고은과 민중문학을 결사 옹호하고 있는 상황이 지금이다. 오늘 핵심을 말하자. 고은 자신이 노추(老醜)의 전형으로 추락했지만 특히 그의 시는 시가 아니다. 실은 문학도 아니다. 그건 문학으로 포장된 이적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게 오염 안 된 시선으로 바라본 고은의 숨겨진 불편한 진실이다. 고은의 퇴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의 더러운 반대한민국 문학의 실체 전부가 드러나야 옳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산다." ( 조우석의 촌철살인은 여기서 끝났지만 고은의 스토리는 더 있다) ■ 미 CIA 거점장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간다기에 삼성동 오크우드 호텔 일식집에서 조촐한 송별연을 가졌다. 그는 2000년 대 초반 주파키스탄 카라아치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본인의 임무 중 하나가 주파키스탄 카라아치 북한대사관 동향을 파악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팀에서 대사관에 출입하는 외부인을 고성능 줌 카메라로 촬영하는데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고정적으로 드나드는 한국인을 포착했다고 한다. 집중적으로 파악한 그의 신분은 시인 고은이었다. 당시 미 CIA 분석으로는 북한공작원에게 지령받은 임무수행 결과를 보고하고 공작금을 수령하는 정기적 접선이라고 했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붕괴가 시작된 대공 방첩망은 노무현 때는 일심회 간첩단을 적발하였다 하여 김승규 국정원장이 해임되었고 대공 수사국장도 좌천되었으며 뒤이은 이명박 정부도 취임하자마자 촛불에 데여 혼비백산하였고 고은은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민족적 추앙을 받고 있었다. 그 성추행범, 그 간첩이! 2023년 1월 21일 (김신조의 날) 색마 고은은 간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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