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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저씨

새벽이슬1 2022. 9. 9. 22:08



구로역 2번 출구 계단을 내려오면 맞은편에 가판점이 있습니다. 보통 가판점에서는 음료나 껌, 초콜릿, 스타킹, 우산 등 가격이 비싸지 않은 잡화를 팝니다. 그 가판점에서는 가방부터 시작해서 우산, 혁대, 중국산 한약재, 장난감 등을 팝니다. 이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장난감입니다.

장난감들은 노란색 컨테이너에 올려놓은 양은쟁반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동그란 양은쟁반은 요즈음은 쉽게 볼 수 없는 1980년대 풍입니다. 그 시절 어느 집에나 한두 개씩은 있었을 국화꽃이 크게 그려져 있는 누런색 쟁반입니다.

쟁반만 1980년 그때 풍이 아닙니다. 쟁반에 몇 개씩 진열되어 있는 장난감은 예전에 동네 구멍가게에서 명절 대목 때나 운동회 날 난전에서 팔던 기관총, 맴을 도는 강아지, 자동차 같은 것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시절에는 태엽을 감아서 움직였으나 지금은 건전지를 넣어서 동력을 전달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쟁반에서 저 혼자 맴을 돌고 있는 강아지며 헬리콥터, 북을 치는 곰인형을 보노라면 자연스럽게 주인 얼굴 쪽으로 시선이 갑니다. 중국인이나 조선족처럼 생긴 주인은 가판대 옆에 갖다 놓은 낡은 소파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초등학생들도 스마트폰을 갖고 노는 세상에 저렇게 조잡한 장난감이 팔릴 것이라고 믿는 주인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명절이 가까워지면 구멍가게 앞에는 평상이나 사과상자 같은 것을 엎어 놓고 갖가지 장난감을 내놓습니다. 화약을 넣어 터트리는 납으로 만든 권총이나 방아쇠를 당기면 불빛이 번쩍이며 총소리가 나는 플라스틱 기관총, 투명한 비닐로 포장을 한 인형, 엉덩이에 연결된 고무호스로 바람을 넣어주면 팔짝팔짝 뛰는 말, 양철로 만든 헬리콥터, 누르면 팔짝 점프를 하는 청개구리, 촛불에 불을 붙이면 통통 거리며 움직이는 보트 등이 구경꾼들을 불러 모읍니다.

요즘처럼 용돈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서 장난감을 구입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눈이 즐겁습니다. 명절에 친척 분들이 용돈을 주시면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며 설레기도 합니다.

명절이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오시는 부산 아저씨라 부르던 분이 계셨습니다. 부산 아저씨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분입니다. 말투도 부산 사투리를 쓰시는 분이셨습니다.

명절에 오실 때마다 저희 형제들을 모두 부르십니다. 한 명씩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거나 손을 잡아 주시고 나이에 따라서 용돈을 주셨습니다. 형하고 저는 나이가 한 살 차이인 데다, 제가 덩치가 훨씬 커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같은 금액을 주셨습니다.

형은 그것이 늘 불만이었습니다. 용돈을 받아 들고 다른 방으로 가면 내가 형이니까 얼마 정도를 내놓으라며 윽박지릅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들은 덩치가 큰 제가 행여 형을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열을 확실하게 교육시키셨습니다.

​설령, 형이 각목 같은 것으로 머리를 찍어 피를 질질 흘려도 무조건 제 잘못으로 돌리셨습니다. 또 동네 아주머니들은 저희 형제들을 볼 때마다 제가 일찍 태어나 형의 젖을 빼앗아 먹어서, 형의 덩치가 작은 것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런 이유로 늘 형한테 부채의식이 있어서 형한테 얼마라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형과 저는 구멍가게로 달려갔습니다. 아홉 살이었던 저는 양철로 만든 배를 살 생각이었습니다. 배 안에는 양초가 들어 있어 잘게 토막내 불을 때면, 물통에 넣은 물이 뜨거워지면서 배 후미에서 뿜어 나오는 수증기로 움직이는 구조입니다.

형은 붉은빛이 번쩍이며 총소리가 나는 플라스틱기관총을 사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형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가격이었습니다. 형은 한참 동안 총을 들여다보다 저를 바라봤습니다. 돈을 모아 총을 사서 하루씩 교대로 갖고 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저는 이미 모형보트를 들고 있었지만 형이 간절하게 부탁을 하는 통에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때만 해도 총에서 불빛이 번쩍거리게 만드는 장치의 동력이 건전지라는 걸 몰랐습니다. 밤늦게까지 총을 들고 밖에서 놀고 들어온 형은 집에서도 연신 드르륵거리며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어서 내일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튿날 아침을 먹은 후에도 형은 총을 주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다툼 끝에 겨우 총을 인계받았습니다. 그런데 불빛이 번쩍거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서야 건전지를 넣어야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건전지를 구입할 돈이 없었습니다. 불빛이 번쩍거리지 않고 총소리만 드르륵드르륵 거리는 총을 받았을 때의 허무함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이 터졌지만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고 너무 화가 나서 총을 도로 형에게 줬습니다.

​부산 쪽에는 부산 아저씨 형제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얼굴도 모를 정도로 고향에 발길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부산 아저씨만 명절에 오실 때마다 술이며 고기나 생선 등을 꼭 들고 오십니다. 용돈까지 주셔서 부산에서 꽤 잘 사시는 분이신 줄 알았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부산에 결혼식이 있어서 고향에 있는 친척 아저씨들과 함께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교통이 좋지 않아서 서울이나 부산에 관혼상제가 있으면 하루 전에 출발을 했습니다.

부산에 도착하니까 부산 아저씨가 역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부산 아저씨는 저희들을 데리고 영도다리며, 자갈치 시장 등을 구경시켜 주시고 회를 사주셨습니다. 저는 잠도 당연히 부산 아저씨 댁에서 자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부산 아저씨 댁은 좁아서 잘 수가 없다며 다른 친척집으로 갔습니다.

​부산에 계시는 친척 분들 중 맏형의 집인데 2층집으로 정원도 있는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이튿날 생각해 보니 용돈을 주시는 아저씨 댁이었다면 새우잠을 자더라도 마음이 편했을 것 같았습니다.

​잔치에 참석을 했다가 기차를 타고 영동으로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동행을 하셨던 아저씨들은 술에 취해 의자에 앉자마자 잠이 드셨습니다. 혼자 창밖을 바라보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부산 아저씨가 용돈을 주실 때마다 기다렸다는 것처럼 덥석 받기만 했던 시절이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웠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려운 살림에도 명절 때는 꼭 고향을 찾아 성묘를 하시던 아저씨가 대단한 분이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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