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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의 아픔 다룬 다큐멘터리 '송해'영화 제작 본문
작년 11월18일 개봉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진 4개월 설득 끝에 허락 받아내
코미디언 송해보다 인간 송해에 초점
실향민의 아픔 아들 잃은 비탄 담아
간담회 땐 "대중문화 최고령 책임감"
![](https://blog.kakaocdn.net/dn/qcUvC/btrEn8TvXS2/kNLdHKK8EKKMOxtKK6YNsk/img.jpg)
지난해 11월18일 개봉한 '송해 1927'은 국민 MC이자 현역 최고령 연예인인 송해의 일대기를 담았다. 그러면서 우리가 잘 아는 코미디언 송해의 모습과 미처 몰랐던 아버지 송해의 아픔을 진하게 담아내 호평받았다. 그는 개봉에 앞서 열린 간담회에서 "무대 연기와 공연, 방송 진행은 많이 했지만 (영화는) 처음이라 솔직히 제작한다는 얘길 들었을 땐 자신이 없어서 출연을 마다했다. '뭔가 이뤄내고 말겠다'는 제작진의 간절한 시선에 4개월을 끌다가 출연해도 좋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제작진의 의지와 송해의 결단이 송해의 삶을 그린 유일한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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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큐 영화는 차를 타기보다는 지하철을 고집하는 송해의 서민적 면모, 촬영 직전까지도 방송 대본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프로페셔널로서 모습이 담겼다.
윤 감독은 간담회 당시 "작은 대사 한 줄도 놓치지 않고 체크하고, 부지런하게 노력하는 선생님 모습에 촬영하면서도 많은 걸 배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코미디언의 웃음 뒤에 있는 실향민의 아픔과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비탄을 비중 있게 그린다.
영화 개봉과 함께 나온 동명 책 역시 송해와 그의 지인 인터뷰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것은 물론이고 비극적 개인사를 갖고 있는 노인의 회한을 담았다.
다큐멘터리에서 송해는 본명이 송복희라고 이야기하며, 한국전쟁 당시 연평도로 피난을 갔다가 미 군함에 실려 부산으로 가던 길에 이름을 고쳐지었다고 이야기한다.
"제 본명이 송복희인데, 상륙함에 실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망망대해를 헤맬 때 제 이름을 다시 지었습니다. 바다 해(海) 자를 따와서 '송해'라고요.
이 이름이 주민등록상 본명이 됐어요." 한국전쟁 당시 그는 3년 8개월 간 통신병으로 복무했다. 그는 휴전 협정 모스 암호를 전군에 직접 날렸다고 한다. "'1953년 7월27일 밤 10시를 기점으로 모든 전선의 전투를 중단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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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엔 실향민인 송해가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다는 내용도 있다. 그는 '전국노래자랑' 방송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회차로 2003년 8월11일 모란봉공원에서 한 '평양노래자랑'을 꼽았다.
"'그럼 이것으로 평양노래자랑을 여기서 전부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통일의 한길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하는데 관중들이 '와!' 하고 함성을 내고 박수를 쳤다"며 "'아, 난 정말 지상 최대의 쇼를 했다'는 그런 통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께 인사도 못드리고 남쪽으로 넘어온 게 아직도 한이라고 말한다.
'송해 1927'은 송해가 1986년 당시 스물두살이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사고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고조된다. 당시 그의 아들도 아버지처럼 가수를 꿈꿨다고 했다. 하지만 송해는 반대했다.
"흔히 낭패를 당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어만 봤지 내가 실감하지는 못했는데, 그런 느낌이 오더군요. 그런데 아들이 그랬다는 소리를 듣고 제가 맨 먼저 생각한 건 걔가 하고 싶다고 한 걸 못 해준 게 죄스러웠어요." 다큐에서 송해는 아들의 막내딸이 갖고 있던 아들의 자작곡 녹음 테이프를 30여년만에 들으며 눈물흘린다.
"북에 있을 때 예술 계통으로 가겠다는 나를 아버지가 몹시 나무랐는데, 나 역시 승낙하지 않았던 겁니다. 자식의 의중을 파악해야 하는데 그걸 못해서 어찌 아버지 노릇을 하겠는가, 자격 잃은 아버지로서 후회가 컸습니다. 아버지 노릇을 못 했다는 고백입니다."
아들은 서울한남대교에서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한남대교를 건너지 못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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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 당시에도 송해는 아들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에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한없이 나오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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