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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죽인 딸 /중국 회족 이야기 본문
상흔문학(伤痕文学)과 반사문학(反思文学) - 5 -
<아버지를 죽인 딸> 나는 내 손으로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내 상처는 치유할 수 없어요. 20년이 지났지만 내가 아버지를 죽인 것이 맞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나는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사인방[(四人幇) 곧 마오져똥 말기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주석 왕훙원(王洪文), 정치국 상임위원 겸 국무원 부총리 장춘차오(張春橋), 정치국 위원인 장칭(江靑)과 야오원위안(姚文元), 이들에게 문화대혁명으로 수 백만 명이 죽은 데 대한 모든 책임을 물어 이 사인방을 죽이고 나머지 문혁에 앞장섰으며 마오져똥에게 아첨 충성 하던 자들은 다 빠져 나갔다.]이 분쇄되고 나자 무죄로 석방되었습니다. 나는 죄가 있는 걸까요? 없는 걸까요? 오빠와 새언니 모든 가족들은 모두 나를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결국 내가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어요. 내가 아니었다면 아버지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계실지 모릅니다. 그 때 나는 아버지를 구한 것일까요? 해친 것일까요? 1966년 8월 26일 아침이었습니다. 갑자기 홍위병들이 몰아닥쳐서 우리 집을 압수 수색하겠다고 찾아와서는 아버지가 자본가라고 말하는 겁니다. 사실 아버지는 자본가가 아니었어요. 그저 아래층에 방 하나가 남아서 세를 준 일 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시절에는 방 하나 세를 놓는 것도 일종의 착취라고 여겼지요. 홍위병들은 닥치는 대로 집 안 물건들을 박살냈습니다. 우리 가족은 무릎을 꿇고 재판을 받아야 했어요. 아버지는 그림을 그리셨지요. 해방(1949년 마오져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한 사건을 가리켜 해방이라 한다) 전에 그린 그림 한 점이 미국에서 전시되기도 했는데 그 그림을 문제 삼더군요. 우리가 제국주의와 내통을 한 간첩이라고 몰았어요. 그 때 홍위병들은 아주 어린 소년들이었지만 우리는 무서워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홍위병들은 한 무리가 들이닥쳐서 다 때려 부수고 난장판을 만들고 나가면 좀 있다가 또 다른 무리가 들이닥치고 그들이 지나가면 또 다른 홍위병들이 떼로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은 책이며 그림이며 전부 꺼내서 가득 쌓아놓고 불을 지르는데 집 안팎으로 연기가 가득했었지요. 26일부터 28일까지 아치부터 저녁까지 부모님과 나는 방 안에 갇혀 가죽혁대로 두들겨 맞았고 머리카락은 전부 잘렸습니다. 한 번은 골목입구에서 무릎 꿇린 채 비판투쟁을 당하기도 했지요. 그 당시는 도시 전체가 가산몰수 운동을 벌이고 있었고 도처에서 꽹과리를 치며 가두 비판투쟁을 하고 있었지요. 큰오빠와 작은 오빠는 아래층에 부모님은 2층에 살고 있었어요. 나는 의대를 졸업하고 아동병원에서 일했고 공산당 청년단에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과로로 병을 얻어 간염에 걸려 요양하러 고향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만 문화대혁명이 마을에 불어 닥쳐 화를 당한 것입니다. 8월 28일까지 꼬박 사흘 동안 나와 부모님은 아무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밥그릇도 다 때려 부쉈거든요. 홍위병들이 밥을 먹으러 간 사이에 냄비를 가지고 조카들에게 주고 국수를 끓이게 했어요. 그날 밤 나와 부모님은 위층에 있었는데 이 밤이 지나고 날이 밝으면 홍위병들이 또 들이닥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다시 가두 행진 비판 투쟁과 끝도 없는 괴롭힘을 당해야 할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해지고 두려워졌습니다. 방법이 없다면 죽어버리는 수밖에요. 우리 세 사람은 죽기로 했습니다. 우리 셋은 2층 복도 바닥에 앉아 어떻게 죽을지 의논했습니다. 벌써 새벽이 되었고 밖에는 비가 내렸지요. 우리는 곧 날이 밝을 테니 지체하지 말고 빨리 죽자고 얘기했어요. 그 때 작은 과도 칼을 발견했습니다. 홍위병들이 집안을 뒤진 때 떨어뜨린 것 같았어요. 나는 의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그 칼로 경동맥을 잘라 공기가 혈관 속으로 들어가면 바로 색전증으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가장 빨리 죽는 길이지요. 아버지는 그것이 가능한지 물었습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지요. 그 때 엄마가 그러더군요. “내 딸이 의학을 공부해서 이런 방법도 다 알고 있구나.”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했고 내가 먼저 부모님들의 경동맥을 끊은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했지요. 죽음을 앞두고 우리 세 사람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손을 잡은 채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 법. 날이 밝아왔습니다. 부모님은 빨리 손을 쓰라며 나를 재촉했습니다. 동물도 못 죽이는 데 어떻게 사람을, 하물며 부모님을 어떻게 죽일 수 있겠습니까? 그 때 아버지가 말했어요. “좋은 일 하는 것이란다. 엄마 아빠의 고통을 없애주는 일이야. 조금 있으면 홍위병들이 들이닥칠 텐데 그 끔찍한 일을 우리가 어떻게 견디겠니?” 나는 바닥을 더듬어 펜과 종이를 찾아서 유서를 작성했습니다. 가족들과 오빠들에게 남기는 유서였지요. - 유서 - “우리는 인민의 적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 결연하게 사회에서 없어질 겁니다.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만세! 무씨 집안 두 아들(오빠들)은 결연하게 혁명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나는 뛰고 있는 아버지의 경동맥을 찾아 단번에 찔렀고 곧바로 뜨거운 피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아직도 맥이 있니?” “1분도 안돼서 모든 게 끝날 거에요.” 어머니도 마치 치료 받는 환자처럼 얌전히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어떻게 알았는지 갑자기 둘째 오빠가 방으로 들어오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이 내는 목소리 같지 않았어요. 오빠는 올라오자마자 나를 끌어안고 칼을 빼앗었지요. 나는 오빠를 밀치고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서 뛰어내렸습니다. 엄마도 나를 따라 뛰어내렸지요. 그리고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습니다. 어버지는 그 날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투신 후에 살아나긴 했지만 병원에서 출신성분이 불량하다고 입원을 거부해서 몇 일 후 돌아가셨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때 어머니 돌아가신 줄을 몰랐지요. 나는 두 다리가 다 부러진 채 살아있는 것이었습니다. 왼쪽은 종아리 뼈가 부러졌도 오른 쪽은 허벅지 뼈가 부러져서 병원에서는 오른 다리 일부를 잘라냈습니다. 그리고는 10 kg짜리 모랫주머니를 달아 오른 쪽 다리를 늘리게 했지요. 그 다음에는 감옥에 가야 했어요. 1966년 9월 17일 나는 ‘문혁에 항거한 살인죄’로 무기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군관 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가 자본가 계급 아버지를 죽여서 문혁의 박해로부터 구해주었기 때문에 ‘문혁 항거죄’에 해당한답니다. 나는 12년을 감옥에서 있었습니다. 내가 자살하지 않은 단 한 가지 이유는 아직 어머니 살아계신 줄 알았거든요. 매일 생각했습니다. “우리 셋이 같이 죽기로 했는데 아버지 혼자만 돌아가시고 내가 이렇게 무기징역 받아 살아있으니 평생 어머니를 못 보겠구나...” 면회 온 오빠들을 만날 때 마다 너무나 미안했지만 눈물도 말라버렸습니다. 오빠들은 말했지요. “널 이해해. 넌 나쁜 사람이 아니야. 우리가 널 돌볼 거야.” 감옥 안에서도 학습과 비판투쟁이 있었습니다. 나는 문혁에 항거한 죄와 아버지를 죽인 죄를 통렬하게 자아비판 했습니다. 1972년에 징역 10년으로 감형 되었고 마오져똥이 죽고 사인방이 죽고나자 법원은 내 사건을 다시 심리했습니다. 결과 새로운 판결문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000에 대한 문혁 항거 및 살인죄는 성립될 수 없다. 원래 판결을 취소한다. 000에게 무죄 석방을 선고한다.” 나는 감옥에서 나와서 그리운 어머니를 만난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미 아니 계셨어요. 어머니를 만난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는데 어머니를 만날 수 없다는 말에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젊었을 때의 모든 기억을 안고 살아갑니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내가 아버지를 구한 것일까요? 해친 것일 까요? ************** 아래 사진은 중국 상흔문학 작가 펑찌차이(冯骥才), <一百个人的十年, 백 사람의 십 년>의 저자. 수 많은 사람들의 문혁 당시 체험 이야기들을 엮어 상흔문학 작품을 펴냈다. ~~~~~~~ 이 글의 주인공은 중국의 회족입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56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다민족 국가지요. 사실상은 훨씬 더 많은 민족들이 뒤섞여 살아갑니다. 회족은 인구 약 1,000 만 명 살짝 넘어가는 규모구요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무슬림들입니다. 건강 되고 기회 되면 중국 이슬람에 대해 글을 쓸 겁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이 너무나 많아요.~ 이것이 노무현이 존경하는 마오시대의 참 모습입니다. 많이들 공유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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