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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의 가장 유명한 명언은 "벽을 넘어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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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의 가장 유명한 명언은 "벽을 넘어서"

새벽이슬1 2022. 2. 28. 08:54


어제 작고한 李御寧 선생의 가장 유명한 名言은 ‘벽을 넘어서’

말과 글로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李御寧(이어령) 선생이 어제 작고했다. 향년 88세. 빈소는서울대 병원장례식장, 5일장으로 치른다고 한다. 그의 수많은 명언과 명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가장 짧은 것이리라.

명문추천/李御寧의 ‘벽을 넘어서’

名文이 꼭 길어야 하는 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선 짧을수록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1956년 대통령 선거 때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申翼熙대통령 후보를 내세워 자유당의 李承晩대통령에 도전했을 때의 구호가 ‘못살겠다. 갈아보자’였다. 정치구호 가운데 지금껏 최고작품으로 꼽힌다.

기자는 서울올림픽 개회식의 구호 – ‘벽을 넘어서’, 역시 1980년대 우리의 耳目을 집중시켰던 서울 올림픽 구호 –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1970년대의 –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 그리고 1990년대를 대표하는 朝鮮日報의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구호, 1960년대의 ‘조국근대화’ ‘민족중흥’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 를, 시대정신을 담은 명문으로 꼽는다.

이들 구호는 구호로만 끝나지 않았다. 인간의 마음을 憤起시켜 행동을 하게 함으로써 역사를 굴러가게 만들었다. 인간의 실천을 유도한 구호들인 것이다. 이들 명문 구호는 예언적인 면도 갖추고 있다. 서울 올림픽은 세계를 서울로 불러들여 서울을 세계로 알렸다. 이 올림픽은 또 인종과 종교와 이념의 벽을 넘어서 동서화합을 달성했고 그 1년 뒤엔 드디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 한 계기가 되었다.

베를린 장벽과 동구권 붕괴의 동력원이었던 시위 현장에서 데모송으로 울려퍼진 노래가 서울올림픽의 주제가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였다. 이 노래 가사 가운데 있는 ‘브레이킹 다운 더 월’(Breaking down the wall)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 그 현장에서 울려퍼졌다. 코리아나 그룹이 불러 유명해진 노래, 동양인이 부른 노래 가운데서 가장 많이 팔린 노래가 된 ‘손에 손 잡고’(Hand in Hand)는 1990년4월 체코 무용단이 金日成 생일에 맞추어 평양에 가서 공연할 때 배경음악으로 연주되었고, 김일성은 박수를 쳤다고 한다.

이 주제가는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주제가를 작곡했던 조지 모로데가 작곡하고 토머스 R 휘트록이 작사했다. 국내에선 주제가는 한국인 작곡가가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으나 朴世直 조직위원장이 ‘우리 취향이 아니라 손님 취향에 맞추어야 한다’면서 세계 일류 작곡, 작사가를 고른 것이 적중했다.

원래 서울 올림픽의 주제는 ‘화합과 전진’이었다. 좀 딱딱한 이 개념을 개폐획식의 기본철학으로 구체화시키면서 아주 역동적인 ‘벽을 넘어서’란 말로 풀어놓은 것은 개폐회식 상임위원 李御寧교수였다.

역대 올림픽 개회식 가운데서도 最高로 꼽히는 서울올림픽의 개회식은 ‘벽을 넘어서’란 분명한 주제의식으로써 모든 공연과 상징과 동작을 일관된 하나의 흐름으로 묶었기 때문에 그토록 힘찼고 예언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언어가 바로 역사의 動力이란 것을 실감케 한 구호였다.

문장력은 어떤 조직의 정신력과 교양, 그리고 총체적인 실력을 나타낼 때가 많다. 서울올림픽 이후에 한국에서 있었던 큰 행사, 예컨대 1993년의 대전엑스포나 2000년1월1일0시의 광화문 축제는 추억이 될 만한 구호도 명문도 그리고 이미지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올림픽 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명문이 없었기에 명작도 없었던 것인가.

李御寧교수는 ‘벽을 넘어서’란 명문을 만들어낸 서울올림픽 준비과정에 대해서 이런 감회를 밝힌 적이 있다.

“단군 이래로 춤추는 사람, 철학하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문학하는 사람, 음악인 등등이 이렇게 모여 마음을 같이 하여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일한 적이 일찍이 없었습니다. 기가 막힌 인재를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한국인이 이 정도밖에 안되었던 것은 서로의 능력을 보태준 것이 아니라 서로 깎아내렸기 때문이지요. 부정적 思考를 가진 사람들의 논리는 질서정연한데, 된다는 사람들은 콤플렉스가 있어요. 그래서 안된다는 사람이 지식인처럼 보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안된다는 쪽보다는 좀 구름잡는 얘기 같아도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지요”

써놓고 보니 이 말 또한 名文이다. 서울올림픽 성공의 한 요인은 군사문화를 대표하는 朴世直조직위원장(육군소장 출신)의 추진력과 文民을 대표하는 지식인 李御寧교수의 만남과 협력이다. 朴世直위원장은 부하직원들의 관료주의나 무사안일, 그리고 반발을 눌러가면서 李御寧교수의 천재적이고 때론 기발한 상상력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했다. 지식인의 꿈과 군인의 힘이 빚어낸 文武의 합작품이 바로 서울올림픽이었던 것이다.

이 성공비결은 많은 암시와 예언을 담고 있다. 理와 氣, 武와 文, 정신과 육체, 명분과 실제 같은 상반된 요소를 어떻게 통합하고 조화시키느냐, 여기에 우리 사회의 발전과 퇴보가 달려 있다는 암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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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 靈前에 바친 조시 '질경이꽃'이 아마도 마지막 명문일 것이다.

남들이 고인의 영전에 국화 한송이 바칠 때에 용서하세요. 질경이꽃 하나 캐다 올리겠나이다.

하필 마찻길 바퀴자국 난 굳은 땅 골라서 뿌리내리고 꽃 피운다하에 차화(車花)라고도 부르는 잡초입니다.

독재와 독선, 역사의 두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 밑에서 어렵게 피어난 질긴 질경이 꽃모습을 그려봅니다.

남들이 서쪽으로 난 편하고 따듯한 길 찾아 다닐 때 북녘 차거운 바람 미끄러운 얼음위에 오솔길 내시고

남들이 색깔이 다른 차일을 치고 잔칫상을 벌일 때 보통 사람과 함께 손 잡고 가자고 사릿문 여시고

남들이 부국강병에 골몰하여 버려둔 황야에 세든 문화의 집 따로 한 채 만들어 세우시고
이제 정상의 영욕을 역사의 길목에 묻고 가셨습니다.

어느 맑게 개인날 망각에서 깨어난 질경이 꽃 하나

남들이 모르는 참용기의 뜻, 참아라 용서하라 기다려라
낮은 음자리표 바람 소리로 전하고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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