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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도 칸막이도 없던 中 화장실....어쩌다 공포의 공간 됐을까?

새벽이슬1 2021. 12. 15. 11:26

문도 칸막이도 없던 中 화장실..어쩌다 공포의 공간이 됐을까 [군맹무상(群盲撫象)]


중국의 현대식 공중화장실. /사진=소후닷컴
과거 농촌 공중화장실. 이런 곳은 더이상 찾기 어렵다./사진=바이두

▲... [편집자주]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고는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고사성어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운 중국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그려보는 코너입니다.

중국의 현대식 공중화장실. /사진=소후닷컴

풍문으로만 듣던, 악명 높은 중국 화장실의 진면목을 마주하게 된 건 10월 어느 날이었다. 지인들과 한 식당에서 식사 도중 잠시 화장실에 갔는데 입구에서 그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2시 방향, 한 남자가 쪼그려 앉은 채 일을 보고 있었다. 그 남자의 은밀한 신체 부위, 그 뒤로 몇 센티미터 지나지 않은 지점에서 한 줄기 그것이 아래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그 순간을 위해 달려온 오장육부의 남모를 헌신, 결정적 순간 '다 이루었다'는 침묵의 포효, 이 모든 것들을 담았으면서도 희로애락을 초월한 듯한 그 남자의 눈빛에 압도돼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영혼에도 살갗이 있었던가. 그날 영혼에 새겨진 상처의 깊이는 생각보다 깊었다.

이제 막 상처에 딱지가 질 무렵, 문짝 없던 화장실에서의 공황이 다시 떠오른 건 6일자 신화통신 기사 때문이다. 중국 국무원이 확정하고 발표한 농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5개년 행동계획(2021~2025) 관련이다.

한마디로 농촌 발전 방안인데 가장 눈에 띈 건 화장실 부분이다. 중앙농업국은 지난해 말 현재 전국 농촌의 위생 화장실 보급률이 68%를 넘어서고 올해 70%를 초과할 것 같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이를 '농촌 화장실 혁명'이라고 부른다.

2008 베이징올림픽 계기 화장실혁명 시동

시진핑 주석 이르러 농촌 화장실 '대수술'

여전히 문 없는 화장실 곳곳에…관습의 힘

중국 농촌 화장실은 거의 '공포'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 문 없는 건 기본, 널찍한 공간에 칸막이 하나 없이 듬성듬성 깊은 구덩이들이 뚫려 있고 이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봤다고 한다. 이번에 영혼에 상처를 낸 그 화장실은 문짝이 없어서 그렇지 그나마 양 옆으로 칸막이는 있었다. 지금이야 찾아보기 어렵지만 한국 농촌도 재래식에서 수세식으로 바뀐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중국과 차이라면 개인 공간으로서 얼굴과 몸을 보여줄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과거 농촌 공중화장실. 이런 곳은 더이상 찾기 어렵다./사진=바이두

중국 특유의 개방 화장실 유래를 놓고 여러 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문화대혁명 유물설이 비교적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문화대혁명 기간 중 홍위병들이 가정집에 처들어가 화장실을 부르주아적 사치물로 낙인 찍어, 보는 족족 부쉈다고 한다. 그리고 화장실을 공공화했고 이 과정에서 칸막이가 아예 설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동분자들끼리 대화할 수 없도록 고안했다는 건 양념 같은 얘기다.

이 말을 온전히 수용하기에 무리가 있다. 시골이고 도시고 집집마다 화장실이 있었다면 '화장실의 사유화' 개념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화장실 소유 유무가 빈부를 가르는 한 기준이었을 거라는 추론으로 이어진다. 농촌의 공동 화장실은 공산화 이전부터 있었다는 뜻이 된다.

누가 뭐라 하든 중국 화장실은 문화이며 전통이다. 그러나 중국 이미지를 훼손하는 유산인 것도 사실이다. 중국 화장실을 얘기할 때 '공포' '전율' '악몽' 같은 불명예스러운 수식이 따라다닌다. 구글에서 'chinese toilet'(중국 화장실)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no doors'(문 없음)가 가장 위에 뜬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르러 화장실 대수술에 나섰다. 이때는 대도시들이 대상이었다. 그리고 2015년이 되면서 '혁명' 수술대에 시골 화장실을 올렸다. 그해 시진핑 국가주석이 옌볜 조선족자치주를 시찰한 게 계기가 됐다.

시 주석은 농촌 화장실 현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69년, 아버지 시중쉰 부총리의 몰락으로 16살에 반강제로 시골로 내려가 7년을 토굴에서 생활했던 시 주석이 농촌 화장실 실태를 잘 몰랐다는 건 의아하다)

시 주석의 지시 아래 시작된 화장실 혁명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속도전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왔다.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무작정 수세식 변기를 설치하는가 하면 개방 화장실이 DNA에 각인됐는지 화장실 문을 달지 않은 집이 수두룩했다. 목표치를 채우려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도 화장실을 만들기까지 했다. 2016~2018년 건설한 옥외 화장실은 설계 결함으로 대부분 버려졌다.

신화통신은 랴오닝성 선양에서만 5년간 1억위안을 들여 화장실을 8만개 넘게 만들었지만 그 중 5만개가 방치됐다고 올 1월 보도했다. 중국 정부도 기가 막혔는지 며칠 전 농촌 주거환경개선 5개년 계획에서 화장실 혁명을 발표하며 "형식주의, 관료주의를 경계하라"는 명령을 사족으로 붙였다.

농촌이 아닌 대도시 상가에서 답답하다고 화장실 문을 떼는 건 관습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준다. 좋고 나쁨, 선악의 갈라치기로 볼 일이 아니다. 의식 변화를 강요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한명의 외국인으로서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중국도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오래 생활한 한 지인은 말했다. "10년 전에는 지금보다 더 더럽고 문 없는 화장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이 정도면 엄청나게 변한 거다."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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