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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前 대통령 국가장 엄수 본문
☆ 국가원로회 서신 220호 ☆
- "노태우氏가 사망했소" -
■ 노태우는 그냥 '물태우'에 불과하다. 대통령 한 것이 무슨 대수랴 그냥 아무개가 죽은 것이다. 노태우에 氏 字를 붙여 사망했다 알려준 것만 해도 과하거늘 무슨 청승 떠느라 '대통령'에 '서거'와 '국가장'이라니 밥맛없다.
"빈소 찾은 5.18시민군 '이제 화해하기를' "이라는 기사가 보수신문 1면에 떴다. 빈소를 찾아 상주인 노태우 아들과 인사를 나눈 자가 5.18을 대표한다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우리 좌파에서는 데모하다 감옥에 가는 건 훈장이나 매한가지다. 폭력배들 또한 사람을 두들겨 패 영창에 가는 것은 그들 사이에선 별이라 불리는 훈장이 된다. 그게 있어야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문재인 동지가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간 것도 책에다 써갈길 정도였다. 그렇지만 별도 별 나름 윤간을 하면 했지 강간이나 사기는 절대 아니다.
박남선 68세, 그 친구 5.18 때는 우리와 상관이 없는 골재 운전사였다.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 우리들은 모두 피신했다. 박남선은 졸지에 시민군 상황실장이 되었다. 그때의 전과를 포함하여 강간죄와 사기죄 등 흉악한 별 9개짜리 파렴치범이다.
그런 자를 노통 아들은 무슨 눈꺼풀이 씌워 광주까지 찾아가 사죄했고 그 대가로 전과 9범의 흉악 잡범은 5.18의 대변자로 변신하여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면 빈소를 찾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다"며 매스컴이 호들갑을 떨게 해주었으니 보수우파 언론 수준 또한 알아볼만하다.
■ 사람들은 소복이 쌓인 눈길에 찍힌 자신의 발자국을 보고 과거를 채점한다. 박정희도 그러했다. 한때 우리와 같은 길을 걸었었는데 그게 아마도 그에게는 중요한 각성제였나 보다. 남조선의 새역사를 건설한다며 우리와도 척을 졌다.
그의 변신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6.25참전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국익 신장의 기회로 월남 파병을 택한다며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한다더니 미군이 철수해 월남이 공산화되자 핵무기를 가지려는 그의 욕심은 닉슨에 이어 카터의 미제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제는 박정희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육영수 서거 후 미제에게 박정희는 눈에 가시였다. 이후락이 미 CIA 프락치라는 소문은 장안에 파다했고 장준하 동지의 잡지 '사상계'도 CIA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괴뢰도당 정보기관의 안테나에 잡혔던 것도 결코 미제와 무관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박정희를 호가호위한 차지철의 치기에 몸서리를 쳤던 중정부장 김재규에게 위컴 미 8군 사령관하며 글라이스턴 대사가 보인 호의는 궁정동 총성을 거사로 진술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터였다. 배신에 배신이라는 비정한 제국주의의 철칙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렇게 10.26은 갔고 역사는 12.12로 정반합의 진행과정을 거쳤다.
■ 1987년 6월 10일, 우리 좌파 동료들의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만큼의 엄청난 에너지가 광화문 광장을 빵빵하게 채웠다. 우리들만 이었다면 전에도 있어 왔던 터라 화염병과 돌멩이가 던져지고 최루탄이 발사되는 악순환 속에서 끝났을 거지만 이날은 달랐다. 소위 넥타이 부대의 합류였다.
그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직장에 들어가 넥타이를 맸다. 그들은 공부 안 한 우리에게 늘 일종의 죄책감으로 미안해하다가 전두환이 그의 후임자로 노태우보다는 장세동으로 대체하려는 낌새가 보이자 이른바 '호헌철폐' 운동에 적극 동조해 거리로 뛰쳐나오게 된 것이다.
군 복무까지 성실히 마친 그 세대는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60대 후반부터 70대 후반에 속한다. 그들은 뿌듯해했지만 주인공은 우리 전대협이었다. 2년 뒤 임종석 동지가 임수경을 평양축전에 보낼 때에도 넥타이 부대는 우리의 실체를 알지 못했고 파쇼 타도를 외치는 우리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었다.
북조선 교과서에도 김일성 수령님의 업적으로 5.18봉기가 실려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후 우리들은 진지전 작전으로 김일성 수령님의 장학금을 받고 콩나물 자라듯 판검사 등으로 길러졌으며 6.29선언은 우리가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받아낸 그들의 항복문서였다. 위장취업 전력의 서울대 김문수가 비겁하게 동지들을 배신하여 후회한다 했지만 우리가 이미 진지를 확보한 다음이었다.
■ 5대 신도시와 200만 호 건설을 시작으로 인천 신공항, 서해안고속도로, 경부고속철도, 부산 신항만 건설 등 노태우의 전진은 북방외교와 함께 5년 기간에 이룬 벅찬 성과라지만 우리가 쟁취하여 거머쥔 노조활동의 전면 허용 성과는 민주노총을 키움으로 모든 그의 긍정적 평가를 상쇄시키기에 충분한 우리들의 잔치였다.
북방외교 또한 트레이드 마크처럼 내세우지만 우리가 보기엔 88올림픽 이후 스르르 무너진 베를린 장벽따라 미제의 장난으로 소련이 해체되고 등소평의 흑묘백묘 정책으로 가만히 누워 있어도 입안에 떨어질 감인데 북방외교 한다며 몇 십 억불 차관으로 꿔줘가며 벌일 사안이었는지 혁명소조 모임에서 토의했던 사안이다.
특히 그가 재임 중 혁명동지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낸 것은 북조선에서도 볼 수 없는 의리를 저버린 처사로 죽는 마당까지 화해하지 못한 친구가 원수되는 전형이 되었으며 그걸 보고 노태우에 신세졌던 김영삼은 망설임 하나 없이 두 사람을 통째로 묶어 감방에 집어 넣어버리지 않았는가.
그때부터 남조선은 멈추기 시작했다. IMF라는 듣보잡을 맞게 되고 JP가 행한 역대급 DJ와의 합종연횡은 박멸되어야 할 보수우파 궤멸의 시작이었다. 피를 못 속인 박근혜가 부활을 시작하자 동지들이 뭉쳐서 촛불로 그녀를 태우니 갑자기 우리의 뒷배를 봐주었던 한물간 넥타이 부대가 태극기 부대 되어 우리에게 맞장 뜨자 달려들었다.
■ 프랑스 혁명하며 419혁명에 천안문 사태 거쳐 오렌지 혁명과 홍콩 민주화 운동 등 세계인의 시선을 끈 그 어떤 민중혁명에도 주도세력은 청춘들이지 노인들은 없었다.
6.10항쟁 때 거리에 나섰던 넥타이를 맨 먹물 먹은 것들이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을 거치며 우리의 실체를 깨닫기 시작했다. 박근혜 탄핵에 남조선의 위기를 감지한 그것들은 이미 북조선 향해 기울어진 땅덩이를 지켜야 한다는 직감으로 넥타이를 풀어헤친 말년의 편안함을 팽개치고 태극기를 우리 앞에 들이대었다.
안쓰럽기도 했다. 그들의 피와 땀이 서린 연금을 1인 군자금으로 꾸려 최장기간 집회 기록을 기네스북에 올리고 홍콩 젊은이들 반중운동의 모델이 되기도 했는바 이는 '넥타이 부대'에서 '태극기 부대'로 진화한 결과라고 북조선에서도 분석 보고서를 내놓은 적이 있다.
그들의 실체를 알기 때문에 우리는 남조선 사회에서 '틀딱'이니 '노틀'같은 딱지 값을 붙여 왕따를 시키는 작전을 썼다. 철없는 젊은 것들이 금방 넘어갔다. 하기야 4.19부터 시작하여 우리 좌파 운동권 선수들이 앞에 나서지 않으면 남조선 머저리 학생들은 꼼짝을 못 한다. 우리가 정권을 따먹고 북조선과 통일식만 남겨놓았는 데도 대장동이 무언인지 이재명은 뉘 집 개인지 조국 때부터 관심도 없고 데모는커녕 무엇을 하는지 다들 바쁘니 참 좋다.
박정희, 전두환에 이어 노태우의 3대를 우리들은 군부독재시대라고 폄하하지만 군부 통치를 해온 제3세계 개발도상국을 포함하여 사실 우리가 세운 그 어느 대통령도 이들 만큼 성공한 대통령은 없다. 우리가 '노태우氏 사망' 이라고 깎아내린 이유다.
2021년 10월 국가장을 치르며
동지여 들리는가 이 넋두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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